소설리스트

13화 레드 타이거 용병대 (14/143)

레드 타이거 용병대 

1

출발하기 하루전부터 약속된 장소에 유저들이 속속 합류했다. 개척대를 호위하기 위한 용병들과 직접 물건을 사고팔 상인,그리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잡다한 생산직들이 모이니 거의70명에 달했다.

생산직은 대부분 저렙이었고,호위직은 중렙에 드물지만 고렙의 유저들도 섞여 있었다.

바르카스의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던 모양인데,보상의 고하를 떠나 퀘스트를 해 보자며 참가한듯했다.

'출발 안하나? 거의 다 온것 같은데'

기다리기 지루했던 유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러 유저 군상들 중에는 어제 그 '뇌물녀'도 끼여 있었다. 노란 카트에 뭔가를 잔뜩 실어 놓았는데 ,아마 노스아크에 가서 팔 물건들이리라.

상인들은 보통 카트,마차,상단의 순으로 거래 규모를 키운다.

레벨이 낮고 돈이 많이 없을때는 카트에 짐을 싣고다니고,중렙에 돈좀 벌었다 싶으면 마차를,고렙에 한지역의 상권을 장악했다 싶으면 상단을 소유한다.

카트라 해서 무시할것은 못된다. 보기에는 야쿠르트아줌마들이 끌고다니는 작은 수레 정도로 생각되지만 그안에는 자그마치 쌀 포대 50개는 거뜬히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있다.

'이름이 뭐지.......리지스라고?'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그녀는 이번 상행이 무척 기대되는지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긴 기대되기도 할것이다.

대장장이가 생산과 수리로 능력치를 올린다면 ,상인은 거래로 능력치를 올릴수 있다. 거래중에서도 가장 큰 이문이 많이남는 거래는 독점 거래.

이번바르카스 왕국과 노스아크 간의 거래는 성공하기만 하면 독점 거래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뇌물을 먹였든 아니든 상관할바 아니다. 부패관리나 상인을 신고하는 퀘스트가 있는것도 아니고,그렇다고 저 여자의 뇌물 행각 때문에 유한이 손해 본것도 없었다.

탈락한 유저에게는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저 여자처럼 관리들의 유형을 파악해서 뇌물을 먹이는것도 일종의 능력이라고 봐야 했다.

'응?'

유한이 그녀를 한참 살펴보고 있을때였다.

그녀가 무슨 일인지 카트를 끌고 유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내놔"

"뭘?"

유한이 어리둥절해 묻자 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부터 날 훔쳐봤잖아.아니,아까부터가 아니지.어제 외무성에서도 그랬잖아"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관람비 내.모두 합쳐서 삼십골드야"

유한은 어이가 은하계 너머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갔다.

아니,얼굴좀 훔쳐봤다고 관람비를 내라니.대체 이런 억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같이 늘씬한 미소녀를 음흉한 눈으로 훔쳐 봤으니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지 .안그래?"

소녀의 말에 유한의 입이 댓 발은 나왔다.

"뭔놈의 대가!비쩍 말라서 볼것도 없는 주제에"

"뭐라고?"

"볼것도 없다고 했다. 앞이고 뒤고 슬림사이즈에 완전 평면인데 대체 뭘 보냐?"

사실 리지스의 몸매는 나쁘지않았다. 다만 제법 글래머였던 채린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일뿐.

유한의 야유 섞인 항의에 리지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유한에게 내밀고 있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아무튼 본건 본거잖아!얼른 관람비 내놔!"

"아놔,짜증나는 여자애로구먼!"

"짜증은 누가 나는데?"

두사람이 서로 내니 못내니 으르렁거리고 있을때였다. 

유저들이 모여 있는곳으로 한 무리의 전사들이 다가왔다.

그들을 바라본 유한은 흠칫 놀랐다.

그들은 바로 어제 제과점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길포드와 그의 부하들이었기 때문.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시간을 엄수하라 하지 않았소!"

NPC관리가 언성을 크게 높였다.

호위 전력으로 고용한 이들이 늦는 바람에 출발이 지연되어 버린것이다.

"정예 병력을 선발한다고 늦은겁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길포드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 그가 데려온 길드원들은 길드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저렙 혹은 중렙의 유저들이었다.

이번 퀘스트에 참가시켜 레벨과 경험치를 쌓게 해주려고 그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뭐야,우리말고도 용병단이 참가하는거야?"

"왕국에서 호위를 위해 따로 의뢰한거라나봐"

"그런데,저 아저씨들 별로 강해보이지않는데? 복장이 추레해 보이는게 초보티를 갓 벗은 유저들같아"

"하긴,빈티가 심하네"

용병들의 복장은 낡아 빠진 레더아머에 가죽 바지엿다. 그렇다고 무기도 그리 좋은것도 아니었다.

왜 바르카스 왕국에서 저들에게 경호를 의뢰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야,근데 저 아저씨 어디서 본것 같지 않아?"

"글쎄,비슷비슷한 사람이 한둘이냐?"

길포드는 수군거리는 유저들 속에서 유한을 찾아싿. 혹시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다행히 유한은 참가하고 있었다.

씨익!

길포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유한에게 의미있는 웃음을 흘리고 돌아섰다. 왠지 이번 여행이 저녀석으로 인해 심심하지않을것 같았다.

"자,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길포드와 용병대가 합류하자,외무대신의 간단한 축사를 끝으로 개척대 행렬이 왕도 발덴을 출발했다.

총 100대의 식량을 가득 실은 수레를 중심으로 일꾼 NPC와 병사 NPC들이 모습을 드러냈고,그들의 뒤로 상단 호위를 맡은 용병들과 잡무를 지원할 생산직 유저들이 따랐다.

'훗!이렇게 빨리 노스아크로 가게 될줄은 몰랐는걸?'

유한은 성문을나서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공략 사이트에는 노스아크는 대장장이들이 꼭 가보야 하는 나라라고 적혀 있었다.

드워프들의 대장장이들이 뭔가를 가르쳐 주는것은아니지만, 캐릭 육성에 있어 힌트를 얻을수 있고,여러가지 광물을 값싸게 구할수 있어 스킬 수련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식량값이 너무 비싸다는것과 기술 수준이 높아 유저들이 생산한 상품은 잘 사주지 않는다는 단점 때문에 대장장이 유저드이 활동하기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퀘스트 완수로 무역로가 열리게 되면? 

바르카스 왕국과 교역으로 노스아크의 식량값이내려갈것이고,유한을 포함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유저들이 노스아크에서 생활하는게 가능해질 것이다.

그것은 게임의 설정이 변하게 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유한은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개발자인 드림맥스의 야심을 엿볼수 있었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뿐아니라 게임속의 세계에도 자유도를 부가하겠다는건가?'

이런저런 이벤트나 사건의 결과에 따라 게임의 설정이 변하고,게임속의나라들이 변한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개척대가 무역에 성공하면 노스아크는 고렙이나 몇몇 소수의 유저들만 갈수 있는 은둔의 나라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유저들이 쉽게 찾아갈수 있는곳이 된다

반대로 실패하면 노스아크는 여전히 폐쇄적인 국가로 남게 될것이다.

유한은 꼭 퀘스트에 성공해 보상을 얻고,노스아킁서 새로운 스킬도 익히겠다고 다짐했다.

2

이번 무역행의 중요성을 보여주듯 유저들을 제외하고도 동원된 NPC만도 200명이 넘었다. 기사와 병사들을 제외하고도 제법 많은 일꾼들이 동원된것이다.

'기욘이 호위 병력의 대장이었구나'

어쩐지 자신만만해 보인다고 했더니 그 이유가 있었다.

무역행첫날,유저들은 바짝 긴장했다

난이도 B클래스의 퀘스트를 처음 접해 본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갈수록,나타나는 몬스터의 수준도 높아졌다.

회색 오크나,라이칸스로프,실버울프류같이 위협적인 몬스터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한번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거기다 NPC병사들과 협공하여 해치우니,몬스터들은 개척대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유저들은 점점 과감해지게 되었고,오히려먼저 몬스터에게 달려들어 공격할정도로 자신감이 붙었다.

"뭐야? 난이도 B클래스라더니 이렇게 쉬워도 되는거야?"

"그러게.이전 C클래스보다도 못한거 같아"

자신감이 붙은것은 좋았지만, 거만감도 함께 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들의 긴장감은 뚝뚝 떨어졌다. 나중에는 소풍이나 온것처럼 재잘거리거나,장난을쳤고,무겁다고 장비를 몽땅 벗어버리는 유저들도 나왔다.

"오늘밤은 이곳에서 쉬어간다"

해가지자 개척대 행렬은 평원에멈춰섰다.

병졸 NPC들이 주위로 흩어져 나뭇가지를 주워오자 요리사 유저들은 무쇠 솥에 각종 재료들을 넣고 끓이기시작했다. 

요리사 유저들은 제각기 자신의 솜씨를 뽐내려는지 신선한 재료와 조미료들을 아끼지 않았다.

"호오,냄새 좋은데?"

유한이 군침을 꼴깍 삼키고 있을때였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유저가 그에게 칼을 하나 쭉 내밀었다.

"어이,대장장이.이 검좀 봐주겠나?"

검을 봐달라고 한 유저는 길포드가 데려온 용병중 하나였다.

그가 내민 검은 내구가 겨우 1 남은것으로 고치기보다 버리는것이 나을정도로 상태가나빴다. 아니,오히려 수리한다고 망치를대다가는 부서질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무척 아끼는 검이야.부숴 먹으면 알아서 하라고"

그는 유한의 코앞에 주먹을 흔들며 을러댔다.

유한은 그가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알수 있었다.분명 그의 대장이 제과점에서 자신에게 당했던 수모를 갚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것이다.

'흥, 순순히 당해 줄것 같으냐?'

유한은 청동화로에 불을 지피고 그레인 스킬을 활성화했다. 검신을 뻘겋게 물들일 정도로 금이 간 자국이 많았다.

망치를 조금이라도 잘못 놀리면 끝장.유한은 검을 조심스럽게 불에 달군 다음 모루에 놓고가장 균열이 큰 쪽부터 천천히,그러면서 야무지게 두들겼다.

깡! 깡! 깡!

두들기다 식히고,다시 가열하여 두드릭는 것을 몇차례 반복했다.몸이 땀으로 흥건히젖었지만, 엉망으로 부서졌던검이 차츰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용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브로드소드를 완벽히 수리하셨습니다.

경험치 100을 얻으셨습니다.

"자요,다 고쳤습니다"

유한이 새것과 다름이 없는 검을 건네주자 용병은 넋을 잃고 검만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어제 무기점에서 사서 일부러 돌에 내리치는등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앗던 검이었다. 그런데 그걸 부서트리는 것은 커녕 내구 하나 안날리고 고스란히 고쳐 버린것이다.

'귀,귀신같은 솜씨다!'

왠지 기가 죽어버린 용병은 어깨를 늘어트린채 길포드에게 돌아왔다. 마침 길드원들과 식사를 하고있던 길포드는 그가 돌아오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돌렸다.

"왔나? 어떻게 했나?적당히 손을 봐 줬겠지?"

"저,그게......."

우물쭈물하던 용병은 유한이 고쳐준 검을 길포드에게 내밀었다. 그검을 본 길포드와 다른길드원들은 눈을 동그랗게떴다.

분명 자신들이 이리저리 긁고 내리쳐 고물로 만들엇던 검이다. 그런데 살때와 다름없는 모습인데다가 자르르 윤까지 흐르고 있었다.

"어,어떻게 된거냐?"

"그녀석이 멀쩡하게 고쳤습니다"

"정말로?"

고렙대장장이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D급 무기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브로드소드를 이렇게 깔끔하게 고쳐버리다니.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가?'

하긴 처음 만났을때도 그랬다. 자신의 눈빛 공격이면 사나운 맹수도 잠재울수 있는데,녀석은 빤히 바라보면서 꼬박꼬박 말대꾸까지 했다.

대체 누군가.

길포드가 발덴에 오래 있었다면 '수리의 지존'으로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는 유한에 대해서 들었을것이다. 그러나 그와 그의 길드원들은 최근까지 다른 지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쩌실 겁니까? 그냥 놔두실 겁니까?"

방금 말을건넨사람은 왼쪽 이마에서 뺨까지 카랒국이 나있는 사내였다. 그는 대장이 명령을 내리면 저 버릇없는 꼬마 녀석의 입에서 악  소리가 날 정도로 교육시킬 자신이 있었다.

과거 해병대 훈육단에서 악명을 떨친그는 버릇없는 녀석과 고문관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다.

"글쎄,그냥 놔둘수는 없지"

그냥 놔두면 자신과 길드의 체면이 손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힘으로 밀어붙이기도 힘들다. 이미 눈치 빠른 몇몇 유저들이 자신의 용병단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엇으니까.

"그녀석 지금 당장 내 앞에 데려오도록"

곱게 타이르든,따끔하게 손봐주든.

그런것은 녀석에 대해 보다 확실히 알고 나서 할일이었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유한은 3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자신을 둘러싸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은근슬쩍 기욘의 검을 집으들었다.

아까 왔던 자와 같은 길드의 용병들.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긴말하지 않겠다. 우릴 따라오던지.아님 뒤질때까지 맞다가 포션을 다 날릴지 둘중 하나를택해라"

건들거리며 말하는 폼이 불량스러웠다.

"따라가면 어떻게 됩니까?"

"어른에게 무례했던 것을 얼마나 반성하는가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겠지"

그말에 유한은 결정을 지었다. 어쨌거나 이 아저씨들은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속셈이 분명했다.

"둘다 싫은데요"

"후후후!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선택하겠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원래 그의 무기는 배틀 액스였지만, 그걸 쓸수는 없었다. 유한이 한방에 죽기라도 하면 머더러가 되기 때문이다.

"일단 선방부터 한대 맞고........!"

사내가 달려들며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훈육단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신봉을 주무기(?)로 사용한만큼 유한을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장작 패기!"

유한은 검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검과 나무 몽둥이가 마주치는 순간,나무 몽둥이가 두조각으로 쪼개지자 사내는 당황했다. 말이나무 몽둥이지 그의 정신봉은 기름먹인 박달나무를 깎아 만들어 철퇴만큼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무기가 애송이의 괴이한(?)스킬에 박살났다.

"이 자식,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거냐?"

"뭐긴 뭡니까?장작 패기지"

원한다면 누구나 쉽게 익힐수 있는 장작패긱.그러나 장작패기는 나무를 패는생활 스킬이지 전투 스킬이 아니다.

유한의 말을 곡해한 사내는 분노를 터트렸다.

"이 자식이 감히 어른을 우롱하려 들어?"

사내는 뒤춤에 차고 있던 배틀 액스를 꺼내 들었다. 진짜 떄릴 생각은 아니고,겁을 먹도록 잠깐 위협만 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한은 피하기는커녕 달려들면서 검을 마주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에 펼쳐지는 그의 스킬은.

"암 브레이크!"

유한의 검 끝에 빛이 잠깐 맴돌다 사라졌다.두 무기가 마주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이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우직!

검과 도끼가 충돌했다면 구조적으로 허약한 검이 꺠지기 마련.

검의 주인이 약하다면 더 말할것도 없다.사내도 분명히 유한이 들고 있는검이 깨졌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거미줄같이 균열이 가더니 우수수 깨지는것은 바로 그의 손에 들린 배틀액스였다.

"아니!"

-암 브레이크가 성공했습니다.

스킬 경험치가 50올랐습니다.

'우흐흐!역시!'

유한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심 암 브레이크를 믿었지만 ,결과를 확신하진 못했다.

상대방이 무기를 휘두르는순간 정확하게 스킬을 먹이지 못하면 도리어 부상을 입을수도 있었기 때문.

"이,이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이때다!'

유한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사내가 당황하는 사이 연이어 공격을 퍼부었다. 머리에 남아있는 바츠의 실전 감각이,당황하는 사내를 놔주지 말고 몰아칠것을 외쳤기 때문.

눈앞의 사내는 거칠어 보이는 만큼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예전의 바츠였다면 한 주먹거리도 안되겠지만, 지금은 대장장이 지그.레벨도 그렇고,전투력도 그렇고 정식으로 겨룬다면 결코 이길수 없는 상대다.

상대가 암브레이크에 당해 허둥댈때 최대한 타격을 입혀 놓아야 한다.

유한은 앞으로 나서며 기욘의 검을 마치 도끼 다루듯이ㅣ 연달아 내리쳤다. 사용한 스킬이 암 브레이크였음은 물론이다.

쾅쾅쾅!

암 브레이크가 연거푸 3번 떨어지자 사내의 방패는금방이라도 누서질듯 너덜너덜해졌다. 사내는 이해할수 없었다.내구 170의 방패가 어찌 허접한 대장장이의 칼질 몇번에 고철이 된단 말인가.

'이건 뭔가 잘못됐어!'

그가 아는 상식 밖의 사태였다.

어쨌거나 지금은 놈의 괴이한 공격을 피할수밖에 없었다. 무기든 방어구든 놈의 칼끝에 닿기만 하면 박살이 나버렸다.

하지만 마냥 피할수도 없다. 놈이 귀신같이 그가 피하는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이 자식!"

"흥!전사의 패턴이야 뻔하지"

바츠의 유저였던 유한에게  상대의 움직임은 능히 읽을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패턴이 간단한 도끼전사라면 더욱 말할것도 없다. 다만 힘과 속도가 떨어져 그를 궁지로 내모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유한이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매직 미사일(Magic Missaile)!"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내가 다급하게 나섰다.

우락부락한 용병들 중에서 그나마 체력이 가늘고 단정한 인상의 소유자였는데 ,직업이 마검사였다.

그가 날린 마법탄이 유한의 등을 후려갈겼다.

펑!

결정적인 순간에 두들겨 맞은 유한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HP를 보니 피가 20 % 닳아 있었다. 유한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공격당했다는 사실보다 최후의 일격에 방해를 당한것이 더욱 기분이 나빴다.

"흥!혼자서는 대장장이 하나 못 죽이나 보군"

"뭐야?"

유한에게 몰렸던 사내는 물론이고,마검사와 다른 한명의 사내가 발끈하며 나섰다.

그러나 딱히 대꾸할 말은 없었다. 사실 말이지 다 큰 어른 셋이서 어린애 하나 갈구고 있는것 자체가 부끄러운일이었으니까.

"다 덤벼 보시지!댁들 같은 허접 전사들이 몽땅 덤벼도 겁나지 않으니까"

"이 자식이 말이면 단줄아나!"

"안 덤비면 내가 먼저 덤빈다!"

유한은 검을 휘두르며 세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혼자라서 불리하거나,상대가 전사라서 두렵다거나 이길수 없을거라는 생각은 하지않았다. 어차피 질 싸움이면 죽을떄까지 한 방이라도 더 때리고 상대의 무기를하나라도 더 부숴 놓을 셈이었다.

"먹어랏!암 브레이크!"

"이런,싸가지 없는 자식!"

"어따대고 어른에게 칼질이냐?"

일대 삼!

비리비리한 고딩과 신ㅊ 건장한 사내 셋의 싸움.그나마 사내들은 전사계열이고,고딩은 생산직.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처음엔 유한이 장작 패기나 암 브레이크같은 스킬과 바츠 시절의 감각으로 싸움을 대등하게 이끌어나갔다.

그러나 기욘의 검이 마검사의 마법 공격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가자 더 이상 스킬들을 사용할수 업게 되었다.

"흐흐흐!꼬마야,이제 그만 항복 하시지!"

세 사내는 싸우는 중에 유한의 단점을 간파했다.

괴상한 스킬의 정체는 모르지만, 적어도 검이 없으면 스킬을 구사할수 없다는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제 싸움은 끝났다. 적당히 주물러 주고 대장 앞으로 데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그들만의 생각이었다.

"항복 좋아하시네!차라리 죽여!배 째!"

유한은 고래고래 악을 쓰며 세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눈은 까뒤집혔고,죽음마저 도외시한채 마구 달려들었다.

그가이렇게 나오자 세 사내는 검과 마법을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대적했다.

유한은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열대 맞으면서도 한대 날렸고,바닥을 뒹굴면 상대의 얼굴에 흙을 집어던졋다. 상대가 차는 다리를 붙들어 매달리기도 했다.심지어는 아예.......

"물어뜯기 스킬!"

"이 자식 !있지도 않은 스킬을 만들지마!"

그야말로 개싸움.

기이한 스킬의 등장에 흥미를 느끼고 싸움을 지켜보던 유저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나둘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그렇게 얼마나 싸움을 벌였을까.

유한은 얼굴이 다 터지고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려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갖고 있던 포션도 다 썼고 이제 HP도 달랑 10 남았다.

세 사내는 더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머더러가 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아직도 으르렁대는유한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리고,그런 애송이의 근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어이,이 녀석 좀 치료해줘"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에 말에 함께 있던 용병들중 하나가 다가와서 유한의 몸에 포션을 부어주고 갔다.

유한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가자,칼자국 사내가 다가와서 손을내밀었다.

"난 자칼이라고 한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십인장이지.너처럼 독종인 대장장이는 처음봤다"

사내는 유한이 그저 싸가지 없는 녀석인줄만 알았다.

하지만틀렸다. 녀석은 싸가지가 없는게 아니라 배짱이 두둑한것이었다. 그리고 사나이다운 투지도 갖고 있었다.

"앞으로 잘 지내........"

"호두까기 스킬!"

퍽!

유한은 또 없는 스킬을 만들어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낭심이차인 자칼은 입에 거품을 물고 고꾸라졌다. 곁에 있던 두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칼 형님!"

"캬캬캬!웃기고 자빠졌네.신명나게 패놓고 잘지내자고? 너같으면 그러겠냐?"

유한의 비웃음에 사내들은 무기를 뽑아들었다.그러나 자칼이 이를 말렸다. 말린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는 유한을 잡아먹을듯 노려보였다.

"죽여 버리겠다. 썅 놈의 새끼!"

"어이구~그러셔!어디 한번 죽여봐!죽여보라고!"

또 한번 개싸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1:1이었다.

그러나 처음과달리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자칼의 동료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3

"하하핫!그랬었단 말이지?"

길포드는 애벌레처럼 꽁꽁 묶인 유한을 내려다보며 크게 웃었다.

유한이 이런꼴이 된것은 끝까지 자칼에게 대든데가 길포드를 만나지 않겠다고 박박 우겼기 때문이다.

떨떠름한 얼굴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한 자칼에게 길포드는말했다.

"저놈 풀어줘"

"네?"

"할말이 있으니까 저놈 풀어주라고"

자칼이 유한을 묶고 있는 로프를 끄르자,길포드는 술이가득 담긴 잔을 유한에게 내밀었다.

"자 ,마셔라.사내답게 한방에 털어 부어"

"대,대장님?"

레드 타이거 용병대언들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대장이 건방진 고삐리를 용서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유한은 술잔을 받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예상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쿠쿵!음주는 청소년에게 유해합니다.

명성을 10 잃으셨습니다.

유한은 안내창을 무시했다. 그리고 길포드가 따라주는 술을 또 받아마셨다.

실제로 취하지도 않는 술을 ,그것도 청소년일 경우 패널티를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신데는 이유가 있어다.

-쿠쿵!청소년에게 음주를 강요하셨습니다.

명성을 100잃었습니다.

-쿠쿵!19세 미만에게는 술을 권할수 없습니다.

명성을 200잃었습니다.

"에이,시끄러!어른이 애들한테 술 가르치는게 뭐가 나빠!"

길포드는 손을 휘휘 저으며 자신의 앞에 떠오르는 안내창들을 지워버렸다.

자신이 10배 패널티를 받을것이 분명한데도 또 술을 따른다.

유한은 이 길포드라는 아저씨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난 처음에는 네 녀석을 불러 따끔하게 혼내줄 생각이었다"

술잔을 던져 버린 길포드가 입을 열었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너에게 예절 교육좀 시키려고 한거지.하지만, 네 녀석이 부하들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바뀌더군"

"왜요? 날 죽이기라도할 셈입니까?"

"죽여? 왜 내가 널 죽여야 하지?"

"그거야 당연히 당신 부하와 싸웠으니.........."

유하의 대답에 길포드는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핫!정말 재밌는 녀석이군.한번 싸웠다고 다 죽여야하다면 여기 게임속에 살아있을 녀석은 얼마나 되겠냐?"

유한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서툴렀다. 바츠 시절 독불장군의 길을 걸었던 것도,현실 속의 어른들에 대한 불신의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네녀석의 투지가 마음에 들었다. 질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악바리 정신이 말이다"

"쳇, 그게 무에 대수라고......."

유한은 그저 만만히 보이고 싶지 않았을뿐이다.

"어쨋거나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겠나? 네 녀석이라면 부하들도 동의할것 같은데"

"대,대장!"

이번에도 부하들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용병단은 대단하고 안 하고를 떠나 아무나 들어올수 있는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드 타이거 용병단은 오프라인에서 한곳에 속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만든 길드였다.

"싫은데요"

유한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냐?"

"낄데가 없어서 아저씨들이 우글우글한 곳에 낍니까?"

"허허,요놈 말버릇하고는"

길포드와 부하들은 유한을 노려보았지만, 크게 탓하지 않았다.

젊으니까,팔팔한 10대니까 당연하게 나오는 반응이다. 자신들도 저만할땐 그랬다.

"그리고 전 체질적으로 단체 생활이 맞지 않습니다. 전튜계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에겐 할일이 잇었다. 바로 해커를 잡아야 한다.

척 봐도 가난해 보이는용병 길드에 그의 아이템이 있을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가? 그렇다면 할수 없지"

길포드도 더이상 권하지  않았다.

"그런데,좀 전의 그 이상한 스킬은 뭐지? 자칼 말로는 무기를 부서트렸다고 하던데"

아마도 암 브레이크를 말하는듯했다.

"아,그거요? 비밀입니다"

"뭐,비밀?"

"당연하죠.미쳤다고 자신의 히든 스킬을 가르쳐 줍니까? 아저씨 같으면 가르쳐 주겠습니까?"

유한은 암 브레이크를 자신만의 스킬로 만들고 싶었다. 개나소나 암브레이크를 쓰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대장장이의 히든 스킬이라........'

아르페디아 온라인에는 숨겨진 스킬이 많다. 히든 스킬들 중 공개된것이 전체의 반이 안될거란 말이 있을정도다.

그런 히든 스킬은 NPC를통해 습득할수 있고,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으 스킬북을 통해 배울수도 있다.

그러나 길포드가 알기에 대장장이의 히든 스킬은 쇠나 무구를 만드는것에 있지 전투에 있지 않다.대장장이가 전투 스킬을 배웠다고 들은적도 없다.

하지만, 자유도가 높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그런것이 하나쯤 있다 해도 이상할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유한의 태도는 당연했다.

뼈 빠지게 고생해서 습득한 만큼, 유저들의 히든 스킬에 대한 독점욕은 무척 강하다. 인심이 좋아서 습득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것은 길포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알려지지 않은 히든 스킬을 습득하고 있었다.

부하들에게도 가르쳐 주지않은 그만의 필살기였다.

"거참 깐깐한 녀석이군"

"흥,그래도 누구처럼 막돼먹지는 않았다고요"

유한은 끝까지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평원의 밤은 깊어갔다.

                                                   BY R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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