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카웬의 유산
1
우드 골렘을 잡은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유한은 채린이 접속하기를 기다리며 레벨을올리고 있었다.
어제 장작 패기 스킬로 우드 골렘을 잡은 흥분이아직 가시지 않았기에.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장작 패기 스킬을 시도했다.
"키이이!"
지금까지 상대해 보지못한 괴상한 공격에 목인병은 한쪽 다리를 잃었다. 기우뚱하고 쓰러지기 무섭게,유한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쓰러진 목인병을 장작으로 해제해버렸다.
-경험치 115를 얻었습니다.
-140골드를 얻었습니다.
-장작 10개 얻었습니다.
스킬 경험치 50 올랐습니다.
-장작 패기스킬이 7랭크로 올랐습니다. 보다 나무를 잘 팰수 있게 되었습니다.
체력이 1 올랐습니다.
솜씨가 1 올랐습니다.
"크크큭, 드디어 7랭크가 되었다 이거지?"
지금까지 전투 스킬 하나없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장작 패기론 나무로 된 몹들 밖에 상대할수 없지만, 아예 없는것 보다는 낫다.
또 나무로 된 몹들은 레벨 100의 '악령의 나무'를 비롯해 각 레벨 대에 골고루 있기 때문에,언제 어떻게 사냥을 할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친구 시아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오,채린이 녀석 딱 맞게 왔구나"
오전 10시 30분.어제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던 장소였다.. 유한은 어젯밤에 헤어졌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채린이 있는 곳은 3층 던전 북쪽의 공터로,2층 중앙의 광장처럼 유저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는 안전지대였다.
"어서와.지그 너 먼저 접속해 있었구나"
"하하핫, 난 누구와 달리 부지런하거든"
그러나 채린은 유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부스스한 머리에 충혈된 눈동자,왠지 밤을 꼬박 샌 것 같았다.
"야,솔직히 마해.너,나 가고 나거도 게임 계속 했지?"
정말 귀신이 따로 없다.
유한은 어깨를 으쓱했다.
"장작 패기 스킬을 올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장작 패기 스킬로 몬스터를 잡을수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해도 이를 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생산직이라면 모를까,전투 직업군들은 그 시간에 전투 스킬을 올리는게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밤을 꼬박 샌거야?"
"워낙에 흥분이 가시지 않다보니.........."
"어휴,인간아.캡슐째 땅속에묻히고 싶니?"
가상현실 게임 초기에는 게임에 너무 빠져 캡슐속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뉴스에 종종 나왔다.
지금은 여러 안정장치로 그런일은 없지만, 게임 페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쳇, 오늘만 밤을 샌것뿐이야"
물론 거짓말이다. 바츠 시절까지 합치면 하얗게 지새운 날들이 손꼽을수 없을만큼 많다. 물론 모자라는 수면은 검정고시 학원에서 충당했다.
"재밌다고 너무 오래 하지는 마"
"시어머니처럼 잔소리하기냐?"
"재밌다고 게임을 오래하면 금방 질려 버리잖아. 넌 그렇게 되는게 좋니?"
채린은 게임을 즐기지만 오래 하지 않았다. 어떤 게임이든 오래하면 익숙해지고,익숙해지면 서서히 흥미가 떨어진다.
"딱 재미있을만큼만 하고 다른것도 해보라고.TV를 보든지,친구를 만나든지"
그러나 유한에게 게임보다 재미있는건 없었다.
TV오락 프로그램도 그저 그랬고,밖에 나가 만날 친구도 없었다. 게임에서 메신저 친구로 등록한것도 채린이 유일했다.
가상이 아닌 현실은 유한에게 재미없는 세상일 뿐이다.
"알았어,알았어.그러니까 어제 못한 탐험 오늘 마무리 하자고"
마녀 데보라의 던전 중에서 3층이 가장 크고넓다.
더구나 시간마다 통로의 형태가 바뀌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빙글빙글 돌아야 할 공산이 커진다.채린이 파티로 들어오자 유한은 곧바로 출발했다.
큰 통로는 다른 파티들의 왕래가잦고 몬스터들의 협공이 빈번하기 때문에 비교적 좁고 어두운 통로로 방향을 잡았다.
"여긴 무슨 공장 같은데?"
지하 1,2층과 달리 3층은 군데군데 횃불이 걸려 있었다.
그런곳에는 어김없이 용도를 알수 없는 장치들과 공구,부속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혹시 여기서 목인병을 만든건가?"
"맞아,지금 싸돌아다니는 놈들은 삼백년 전에 만들어진 놈들이야"
마녀 데보라가 목인병과 스켈레톤을 만들었고,용사 카웬이 데보라를 물리친뒤 졸개들은 던전 곳곳에 흩어졌다는 설정.
그러나 워낙에 많은 목인병과 스켈레톤 시리즈가 나타나고 있어 숨겨진 생산 시설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다.
"...........라고 왕국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
데보라 던전을 소재로 NPC들에게 말을 건네면 그런 식으로 수군거렸다.
하지만 숨겨진 생산 시설 따위는 없었다.
바츠 시절에 마르고 닳도록 뒤져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던전을 찾는 유저들이 심심하지 말라고 몹이 계속 리젠되는 것뿐이다.
"다 왔다. 저 앞이 데보라 던전의 보스방이야"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족족 없애고 오다보니 지하광장이 나왔다.
광장 뒤에는 커다란 돌문이 있었고 먼저 온 파티들이 광장의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었다.
광장의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범상하지 않았다. 중무자의 스켈레톤 나이트와 우드골렘,그리고 일반 목인병보다 2배는 큰 거대 목인병등등.
유저들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잘 싸우고 있었지만, 이미 죽었는지 누워서 구조를 요청하는 이들도 많았다.
"보스의 친위병들이지.저걸 다 쓰러트리면 돌문이 열리고 다음엔 보스랑 싸우게 돼"
"그러니까 일단은 저걸 쓰러트리라는 거구나?"
채린은 곧장 정면에있는 거대 목인병을 향하여 파워샷을 날렸다. 티케의 부적이 번쩍하는 순간,크리티컬 데미지가 터지며 거대 목인병의 피가 쭉 닳았다.
"뭘 보는거야?얼른 가서 해치워 버려"
"알았어"
유한은 채린이 활을 쏜 순간 티케의 부적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것을 보았다.
어제도 몇번 봤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착용하고 있을때는 그런일이 없었는데,채린의 궁술이 급격히 발전한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몹을 잡아야 하기에 오래 생각하고 있을수는 없었다.
"장작 패기!"
밤새 연마한 전법대로 유한은 거대 목인병의 다리부터 노렸다. 상대가 우드 골렘이든,거대 목인병이든 ,덩치가 큰 것들은 다리만 고장나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장작 패기!장작 패기!"
주변의 유저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전투 스킬도 아니고 생산 스킬로 몹을 사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유한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은 채린밖에 없었다. 모두들 자기앞의 몹을 상대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얼마동안 싸움을 벌였을까.
유저들이 광장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쓰러트리자,정면의 돌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러자 유저 몇명이 어두운 보스방을 향하여 달려갔다.
"야!멈춰!지금 들어가면 위험해!"
"무슨 소리!보스를 먼저 잡아야 보상을 챙길수 있다고!"
선두의 유저들은 보상에 눈이 멀어 동료가 말리는것도 뿌리친채 앞으로 뛰쳐나갔다.
조바심이 난 채린도 달려들어가려 했지만, 유한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문 바로 너머에 함정이 있어.대지 속성이 아닌사람은 큰 봉변을 당하게돼"
유한의말대로 땅이 들썩거리더니 보스 방에서 유저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스퀘이크 마법이 발현되었습니다.
대지 속성이 아닌 유저들은 30초간 움직일수 없습니다.
유한이 채린의 팔을잡은것은 이 때문이었다.
유한은 화염 속성이었고,채린은 바람 속성이었다. 뛰어 들어갔다면 꼼짝달싹 하지못하고 함정에 걸려 버렸을것이다.
보스 방의 이 1회성 마법 함정은 적이 침입하면 자동으로 지진을 일으킨다. 불나방처럼 뛰어 들어갔던 유저들은 탐욕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커다란 망치로 떡메를 칠때처럼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유저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연방 터져 나왔다.
"안에 뭐가 있는거야? 대체 보스가 뭐지?"
"글쎄,직접 가서 보는게 나을거야"
유한과 채린은 천천히 유저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노련한 유한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체린을 데리고 옆으로 살짝 빠지는것을 잊지 않았다.
쾅!
"크아악!"
커다란 돌주먹이 날아오더니 바로 앞의 4인파티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채린은 데보라 던전의 최종 보스를 똑똑히 볼수 있었다.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돌 거인.
마녀 데보라의 회심의 병기 자이언트 스톤 골렘이었다.
"맙소사!저런걸 어떻게 이겨?"
6미터가 넘는 자이언트 스톤 골렘은 마법이통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날리는 파이어볼이나 선더볼트는 그저 겉에 그을음을 남길뿐이다.
궁수들의 화살도 큰 타격을 주지못했다. 일반 활 공격은 팅겨나갔고,파워샷으로 HP를 얼마쯤 깎아도 곧바로 자연회복 되어 버리곤했다.
제대로 타격을 줄수 있는것은 기사나 전사 유저들뿐.
그러나 골렘의 주먹이나 발에 채이면 한방에 죽을수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달려드는 이들은 없었다.
'중구 난방으로 공격하기만 하다니,경험자들이 없는건가?'
모두 보스방은 처음인것 같았다.
'후후,나쁘지 않군. 보스를 빼앗길 염려는 없으니까'
문제는 유한자신이었다.
바츠라면 몰라도 대장장이 지그로 과연 자이언트 스톤골렘을 때려잡을수 있을까?괜히 앞으로 나섰다가 한방에 피떡이 되어 버리는것은 아닐까 우려되었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어제 일로 유한은 한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시아야,엄호좀 해줘.내가 저 녀석을 공격할 테니까"
"너 설마 바위를 상대로 장작 패기 스킬을 쓰려는건 아니지?"
"바보,당연히 아니지"
유한은 아이템 가방에서 커다란 곡괭이를꺼내 들었다.
일반 곡괭이보다 2배나 더 큰것으로 보스를 처리하기 위해 어젯밤 준비한것이다.
"으랏차차차!"
자이언트 스톤 골렘은 유한이 달려오자 그쪽으로 반응을 보였다가 채린이 날린 파워샷을 맞고 움찔했다.
스톤 골렘의 동작에 틈이 생긴 순간,유한은 웬만한 유저의 몸통보다 굵은 놈의 다리에 곡괭이를 쑤셔 박았다.
"채굴!"
나무로 된 우드 골렘에 장작 패기 스킬이 통했다. 그렇다면 돌로 된 스톰 골렘에게서 채굴 스킬이 통하지 않겠는가.
확실하진 않지만 유한은 그렇게 생각했다.어차피 채굴이라는게 바위를 파서 광물을얻는 일이었으니까.
카앙!
"어?"
그러나 곡괭이는 불꽃만 튀겨 냈다.
스킬이 먹혔다는 안내창도 뜨지 않고,어떤 광물이 떨어졌다는 설명도 없었다.
"뭐야? 왜 안되는거야?"
쾅쾅쾅!
다시 곡괭이질을했다. 그러나 역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크르르!"
화가 치밀었는지 자이언트 스톤 골렘은 유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자신의다리에 붙어 마구 곡괭이질을 하고있는 유한을 응징하기 위해 크게 발을들었다가 땅에 내리찍었다.
쿠웅!
"꺄악!"
채린은 유한이 쥐포가 되었을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게임이니 실제로 죽거나 하진 않겠지만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영상효과는 있다.
그러나 유한은 무사했다.
재빨리 바닥을 구르며 피한 그는 골렘의 반대편 발등에 올라섰다. 그리고 미친듯이 발등을 곡괭이로 내려찍었다.
"제길,왜 안 되는거야? 장작은 됐는데 왜 채굴은안되냐고!"
만약 여기서 채굴 스킬이 먹히지 않으면 최종 보스인 자이언트 스톤 골렘을잡기는 요원해졋다.
"저 또라이 자식,뭐 하는거야?"
골렘 주변의 전사 유저들은 유한이 하는 짓거리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날렵하게 자이언트 스톤골렘의 다리 사이롤 파고들때만 해도 뭔가 할것 같이 느껴졌는데,채굴이니 뭐니 영양가 없는 짓만 하고있는게 아닌가.
'왜? 왜 안될까? 이놈이 광물이 아니기 때문에?'
유한은 골렘 다리 사이를 다람쥐처럼 돌아다니며 연방 채굴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나 튕겨 나오는것은 돌조각 뿐.
왜 자꾸 돌조각만 나오는것일까?시스템상 스톤 골렘에 채굴을 사용할수 없는 것인가?
'대체 뭐가 잘못된거지?'
랑켈산의 광산에서 광물을 캘때 배웠던대로하지 않았던가.
그순간 ,유한의 머리에 베테랑 광부 안젤로의 말이 떠올랐다.
'좋은 광물을 얻으려면 곡괭이 다루는 요령뿐만 아니라 광석 자체를살피는 것도 중요해'
당시 안젤로는 그렇게말했다.
그리고,
'광석이라는게 말이야.애초에 여러가지 물질이 합쳐져서 만들어진거야.강한 압력에의해서 한덩어리가 되었지만, 각 물질들 간엔 경계가 있지'
광석에는 경계가 있단다.
안젤로는 그 경계를 노려서 치라고 했다. 그럼 적은 힘으로도 많은 광석을 얻게 될것이라 했다.
"그래,맞아!그러니까 안되는 거엿어!"
유한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소리를 질렀다.중구난방으로 두들기고 있는데 깨질리가 없었다.
유한은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공격을 피하며 녀석의 몸뚱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바위를 깎아만든 스톤골렘의 몸에는 연하지만 줄무니가 있었다. 좀전에는 왜 이런것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화가 났다.
"야!지그!정신 차려!"
뒤에서 채린이 다급하게 유한을 불렀다.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주먹이 정면에서 날아오는데 유한은 피하지않고 날아오는 주먹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순간,
"채굴!"
콰지직!
유한은 아슬아슬하게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주먹을 피하며 곡괭이를 휘둘렀다.
곡괭이를 찍은 곳은 골렘의 주먹중 가장 무늬가 짙은 경계.유한이 내리친 중심으로 골렘의 주먹 전체에 굵직한 금이 생겨났다.
골렘의 HP도 어느정도 깎였다.
-대리석 1개를 얻었습니다.
스킬 경험치가 20올랐습니다.
-지혜와 용기가 당신의자산입니다.
지식이 3올랐습니다.
"얏호!"
통했다. 역시 채굴 스킬도 통했다.
어제는 방어력이 약한 우드 골렘이라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았다. 생산 스킬도 얼마든지 전투에서 응용이 가능하다는것을.
환호하는 유한,그리고 뒤에서 좋아하는 채린과 달리 주변 유저들은 당최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크하핫!넌 이제 죽었어,인마!"
신이난 유한은 비호같이 자이언트 스톤 골렘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광석의 경계점만을 노려 후려친것은 물론이다.
두번에 한번 꼴로밖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양다리에 금이 가기시작했다.
"뭐,뭐냐? 저놈?"
주변의 유저들은 멍하니 유한이 날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또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공격 스킬을 그렇게 퍼부어도 멀쩡하기만 한 자이언트 스톤 골렘이 지금 연방 금이 가 깨지고 있었다.
유한의 채굴이 먹힌 이유도 있지만, 금이 간곳을 노려 채린이 파워샷을쏴 대면서 파괴가 가속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움직임이란............"
거기다 유저들은 유한의 빠르지는 않지만, 현란한 움직임을 보고 입을 다물수 없었다.
여기있는 누구도 자이언트 스톤 골렘에 바싹 다가가 공격을 퍼붓지 못했다. 한방만 맞아도 피가 반 이상 쭉 닳아 버리기 때문.
그런데 저 또라이는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움직임을 모두 알고 있는듯 한발 앞서서 움직이고 있었다.
저런것은 고레벨의 전사,그것도 사냥을 많이해본 사람만이 보일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본캐도 아닌 부캐 같아보이는 약한 캐릭터로 저렇게 움직일수 있는가?
'저놈 대체 누구지?'
유저들이 의문스러워 하는 사이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무릎 관절이 부서졌다. 중심을 못잡은 자이언트 스톤 골렘은 바닥에 엎어졌고,HP가 왕창 깎여나갔다.
"캬하하!죽어라,돌 쪼가리!"
유한은 움찔거리는 자이언트 스톤 골렘위에서 연방 채굴 스킬을 사용했다. 채린 역시 골렘 위로 올라와서 파워샷을 난사했다.
두명의 톰비가 어찌나 잔인하게 요리하는지,유저들에게 자이언트 스톤 골렘이 불쌍하게 보일정도였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하게 유저들을 학살하던 놈이었는데.
"이럴게 아니라 우리도........"
"서둘러!이러다가는 보상을 못챙긴다고"
멍하니 있던 유저들은 그제야 달려들어 공격을 한다 마법을 날린다 허둥지둥댔다. 보스를 쓰러트린 보상은 가장 공헌이 큰 파티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늦게 가세한 유저들은 이미 그 기회를 놓쳤다. 유한과 채린은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HP를 절반 이상 깎아 놓았기 때문이다. 보상은 그들에게 돌아갔다.
-'지그와 시아'파티가 자이언트 스톤 골렘을 쓰러트렸습니다.
전체알림 창이 뜬 순간,하얀 빛을 뿌리며 지그와시아의 모습이 보스방에서 사라졌다. 산산조각 난 자이언트 스톤 골렘과 무수하게 캐 놓은 돌조각들,그리고 허탈한 유저들을 남겨 둔 채로.
2
-경험치 1500을 얻었습니다.
-600골드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역시 던전 하나를 책임지는 보스몹다웠다.
안내창들이 떠더니 경험치와 레벨이 올랐다는 문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유한과 채린은 안내창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눈앞에 낯선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꺄아,여긴뭐야?"
채린은 감짝 놀랐다. 그녀는 마녀 데보라의 던전에서 보스를 쓰러트리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어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놀란것은 채린뿐만이 아니었다.
바츠시절에 숱하게 자이언트 스톤골렘을 잡고 보상을 받아본 유한도 흠칫 놀라고 있었다.
'여긴 대체 어디지?'
한번도 와보지 못한 낯선 공간.
바츠 시절에 몇번이고 들렀던 ,부서진 골렘과 잡동사니로 가득찼던 폐허 같은 보상 방이 아니었다.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마법 등 아래 커다란 기계들이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되어있었다.
마치 거대한 공장을보는듯했다.
기계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목인병과 각종 골렘들을찍어냈다. 완성된 놈들은 빛이 번쩍한느 순간 어디론가 소환되어 사라졌다.
"여기가 숨겨진 생산 시설일까?"
"아마도 그런것 같아"
바르카스 왕국의 NPC들이 말하던 비밀 생산 기지가 아닐까 싶엇다.
두사람은 가운데 놓인 통로를 따라 쭉 앞으로 걸어겄다.
그러자 목인병 생산시설들이 사라지고,정체를 알수없는 설계도와 못쓰는 마법 용액들이 내버려진 연구실이 나왔다. 연구실 너머는 서재였는데,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들이 아무렇게 쏟아져 있었다.
'왜 이런데로 온거지? 내가 대장장이라서? 대장장이가 골렘을 쓰러트렸기 때문에?'
알수 없다.
하지만,곰곰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들인 한번도 알려지지 않은 곳을 최초로 발견한것이 중요했다.유한과 채린은 사방을 돌아보며 스크린샷을 찍었다.
"헉!이건?"
유한은 연구실 한쪽에 우뚝 서 있는 강철 거인을 보았다.
크기가 3m는 족히 넘는 강철 거인은 멋들어진 갑옷을 장착하고 있었고,큰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투구의 눈이 번득이며 움직일것만 같았다.
'설마 이게 보상은 아니겠지?'
설사 보상이 맞다 해도 이만큼 큰 갑옷을 입을수 있는 유저는 없을것이다. 거기다 강철 거인의 갑옷 안쪽에는 수많은 톱니바퀴와 와이어로 구성된 몸체가 들어있었다.
대체 뭐 하는 물건일까.
몬스터의 일종일까,아니면 유저가 사용할수 있는 병기일까.
"지그야!여기 상자가 하나있어"
채린의 말을 듣는 순간,유한은 곧장 상자로 달려갔다.
보상은 보상방에 놓여있는 상자에 들어있는것이 일반적.채린은 그 보상 상자를 발견한 것이다.
채린이 뚜껑을 열자 안에서 다량의 금화와 함께 기름종이에 싸인 무언가가 나왔다.
"뭐지 이게?"
"고글..............같은데?"
판타지 세계를 지향하는 MMORPG에 고글이라니.
뭐 아무렴 상관없지만, 중요한것은 존재의 개연성이 아니라 아이템 옵션이었다.
"상태 확인!"
유한은 고글에 손을 대고 외쳣다. 그러자 창이 뜨면서 고글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었다.
[이글아이(Eagle Eye)]
명중률 20% 증가
사거리 30% 증가
솜씨 13상승
설명 : 마녀가 이계에서 소환한듯한 아티팩트.원거리 공격을 하는데 사용하면 안성맞춤이다.
부수 효과 : 밤에도 낮처럼 볼수 있다.
"우와,이거 괜찮은 장비인걸?"
궁수가 쓰기에 딱 좋은 물건이었다. 어차피 상자는 채린이 열었기에 그녀의 소유.
레어 품목임에 분명했다.
사거리 연장에 명중률 증가,거기다 밤을 낮처럼 볼수 있는 부가 옵션은 B랭크의 장비들중에서도 쉽게 발견할수 없다. 거기다 고글 유형은 유한도 처음 보는것이었다.
채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헤,지그 넌 아무것도 없어서 어쩌냐?"
"보상 상자는 하나만 있는게 아니야.뒤져보면 다른곳에서도 나올거라고"
유한은 사방을 뒤져 보았다. 그러자 서재에 있는 책 더미속에서 보상상자를 하나 발견할수 있었다. 새로 발견한 보상상자에서 돈은 안나오고 모두 3개의 물건이 나왔다.
첫번째로 나온것은,
[바람의 부츠]
방어 2 상승
민첩성 10 상승
설명 : 신으면 바람과 같이뛰어갈수 있다.
'쳇,뭐야? 채린이는 레어 품목이더니 ,난 단순 아티펙트냐?'
바람의 부츠는 상점에서 파는것은 아니지만, 중렙 몬스터를 잡으면 곧잘 떨어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유한의 입이 튀어나올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2개의 아이템을 싸고 있는 기름종이를 벗겼다. 그러자 두루마리 하나와 책 한권이 나왔다.
"뭐야 이건?"
"무슨설계도 같은걸?"
채린의 말대로 두루마리에 그려진것은 어떤 물건의 설계도 였다. 머리와 가슴 부위밖에 그러져 있지 않았지만, 유한은 그것이 아까 본 강철거인과 관계된 물건임을 직감했다.
아이템 설명도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가디언 설계도]
설계도를 완성하면 마녀 데보라가 만들려 햇던 '블랙 아이언'을 만들수 있을듯하다.
*제조 시 필요조건
합금 스킬 5랭크 이상
정밀 조립 스킬 3랭크 이상
*완성 후 소환 마법 7랭크 이상 마법사의 협조.
'컥!제조 옵션이 덜덜덜 하구나'
합금 스킬은 제련 3랭크 이상 되어야 비로소 배울 수있었다. 정밀 조립 스킬역시 생산 스킬 5랭크 이사 되어야 익힐수 있는 상위 스킬.거기다가 소환마법 7랭크의 마법사가 필요하다니.
대체 이렇게 해서 만든 가디언은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을까.
'가디언에 대한건 아직 드림맥스에서도 언급이 없었는데.............'
가디언은 아직 게임에 적용이 안된것일까.아니면 적용이 되었는데 유저들에게 공개를 안한것일까.몰래 적용된 사례라면 나머지 설계도는 또 어디에서 구할수 있을까.
유한은 설계도 역시 접어두고 마지만 책을 펼쳤다.
[용사 카웬의 교법]
마녀 데보라를 물리친 용사 카웬이 남긴 기록이다.
대장장이가 읽으면 그레인(Grain) 스킬과 암 브레이크(Arm Break)스킬을 익힐수 있다.
순간 유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책이 스킬북이란것도 놀랍지만, 아래에 있는 스킬을 익히기 위한 전제조건을 보고 눈이 번쩍 떠진 것이다.
[그레인 스킬을 익히기 위한 조건]
1. '대장장이와 최악의 상성'이 필요
2. '랑켈산 퀘스트','광산 마을의 퀘스트'수행.
[암브레이크 스킬을 익히기 위한 조건]
1. 채굴 스킬 보유.
2. 데보라 던전의 보스 자이언트 스톤 골렘을 격파.
3. 그레인 스킬 7랭크 이상시 스킬 습득 가능.
보통 사람은 눈살이 찌푸려질정도의 극악 조건이었다.
암 브레이크만 봐도 그렇다. 채굴 스킬을 익힌 광부가 데보라의 던전에 올일이 없고,반대로 자이언트 스톤 골렘을 잡은 전사나 마법사가 채굴 스킬을 익힐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동안 숱한 고생과 노가다를 수행했던 유한으로서느 입이 딱 떨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마치 이 스킬북은 바로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듯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레인 스킬? 그리고 암 브레이크라............'
유한은 곧장 책장을 넘겨내용을 읽어보았다.
앞쪽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언급된 마녀 데브라의 이야기가 용사 카웬의 일기와 뒤섞여 쓰여 있었다.유한의 시선이 집중된 부분은 중간부터였다.
............다른것은몰라도,마녀의 골렘은 쉽게 쓰러트릴수 없었다. 특히 자이언트 스톤 골렘의 경우는 더했다. 그러던 와중 나는 대장장이 한 사람으로부터 중요한 조언을 듣게 되었다.
모든 광물은 물질이 결합하여 이루어져 있고,각 물질들간엔 경계가 존재한다는 그의 말은 나에게 골렘 격파의 길을 열어준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단한 수련끝에 물질의 경계를 볼수 있는 안력을 키우고,그 안력을 보다 증폭시키는 스킬을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레인 스킬을 익히자,물질의 경게를 때려 광석과 무구를 파괴하는 스킬 암 브레이클르 익힐수 있었다.
세상에,무구를 파괴하는 스킬이라니!
전사의 길을 착실히 밟아갔던 유한으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스킬이었다.
방어구가 전체 방어력의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는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암 브레이크는 적의 방어력을 반감시킬수 있는 획기적인 스킬이었다.
더구나 오래 수련하면 무구가 파괴된느 동시에 상대에게도 타격을 입히는것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훗!내가 만약 이 스킬을 익힌다면?'
생각만 해도 재밌었다.
용사의 기록은 계속되었다.
아마 이 스킬을 익히는것은 전사보다 대장장이들이 더 유리할것이다. 그것은 이 스킬이 대장장이의 조언에서 나온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마녀 데보라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젠가 더욱 강력한 군단을 이끌고 돌아올것이다.
내가 마녀의 동굴을 파괴하지 않고 내버려 둔것은 그 때문이다.후인들이 마녀의 장단들을 상대로 수행하여 데보라 군단에 맞서는 실력을 쌓게 해주기 위해서...........
비밀 생산 시설이 가동하는 이유는 훗날을 생각하는 용사의 마음 덕분이었다.
감동적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이것도 드림맥스의 수작.일일이 감동 먹을 이유는없다.
유한은 데보라가 돌아올것이라는 카웬의 말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데보라가 완전히 죽지 않는다면 아직 그녀와 연관된 던전이나 퀘스트가 남았다는 소리잖아'
그러나 지금까지 이곳외에 데보라의 던전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없었다.
"왜? 보상이 마음에 안들어?"
"아냐,뭐 그럭저럭 쓸만해"
그럭저럭 쓸만한것이 아니었다. 이건 완전 대박이었다.
하지만, 채린에게 일일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어 유한은 대강 이야기해주고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찾았다.
연구실 한구석에 밖으로 나가는 이동 마법진이 있었고,그곳에 발을 딛자,두사람은 마녀 데보라의 동굴입구로 이동되었다.
"후아,이틀동안의 긴 탐험이었어"
"정말 많이 길었지"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치한 녀석들과 파티를 먹기도 했고,놈들을 퇴치하느라 몹몰이도 했었다.
지하 2층과3층의 던전은 채린이 지금까지 겪어본것들중 가장힘들고 벅찬 몬스터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모험이그쳤다면 여타의 다른던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그들은 지금 까지 알려지지않은 보상방에 들렀고 거기서 레어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내일 또 만나서 탐험 계속할래? 이 주변에 아직 볼것들이 많은데"
"글쎄..........어려울것 같아.당분간 게임에 접속하기 힘들것 같거든"
"그,그러냐?"
어쩐지 섭섭했다.
채린과 함께 돈 던전 탐험은 재미있었고,성과도 많았다.더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곳으로 탐험을떠나면 좋을텐데,여기서 헤어져야 한다니 아쉬운 일이었다.
"메신저 등록을 했으니까 내가 접속했을때 부르면 되잖아. 아예 게임을 그만두는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우거지상 짓지마"
"누가 우거지상을 지었다고"
"너 말이야너.나 이사갈때 니가했던 얼굴이 딱 이랬잖아"
그랬던가? 오래되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옛날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많이 섭섭한게 사실이었다.
"또 보자.지그야.게임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또 보자고"
"그래 잘가라"
또 볼수 있겠지.
아쉬워하는 유한을 두고 채린은 게임 접속을 종료했다.
게임에서 친한 사람과 이렇게 만났다가 헤어진것은 이번이 처음.옛날같으면 눈을 번쩍이며 곧바로 다른 필드로 떠났을 유한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채린이 가고 난뒤에야 유한은 깨달을수 있었다.
지그로 새롭게 도전한 데보라의 던전에서 얻은 최고의 보상은 스킬북이 아니라 친구라는것을 말이다.
BY RA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