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마녀 데보라의 동굴 (8/143)

마녀 데보라의 동굴

1

"안녕하세요.아저씨.저 기억 안나세요?"

"응? 누구더라?"

"아이참!저 채린이에요.채린이"

"아하!송씨네 깡패 딸내미!"

깡패라는 단어에 채린의 예쁜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옛모습이야 어떻든 강씨 아저씨가 자신을 기억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강산이 변하기도전에 네가 먼저 변해 버렸구나"

"호호호,저 많이 에뻐졌죠?"

"그래,그래.멋진 아가씨가 다 됐구나.근데 역니 웬일이냐?"

"그냥요.옛날에 살던 동네가 얼마나변했나 보고싶기도 하고,또........."

채린은 유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한은 모른척 열심히 가게를 청소하고있었다.

그런 유한에게 스르르 다가온 채린은 엉덩일 냅다 걷어찼다.

"아얏!뭐하는짓이야!"

"너야말로 뭐 하는건데? 옛날친구가 왔는데 무시하기니?"

"가,가게 일이 바빠서 몰랐어"

"거짓말 마라.너 아까 나 온거 다 봤잖아"

채린은 또 한번 유현을 걷어찼다.

하필이면 무릎아래를 워커로 까 버리는 바람에 3배는 더 아팠다. 게임으로 치자면 크리티컬 데미지가 터진 셈이고,유한의 HP는 간당간당해졌다.

"너 이번까지 치면 세 번째다. 게임에서 만난것까지 치면"

'세번째가 아니라 네 번쨰 일텐데..........'

여전히 랑켈산에서 만났던 건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그때는 레이징 보어한테 쫓기느라 정신이 없었을테니까.

어쨋거나 유한에겐 지나간 일보다 현재가 더 중요했다.

채린이 도끼눈을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반갑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하는거 아니야?"

"바,반가워"

"헤에,엎드려서 절 받기네.반갑다면 어제는 왜 도망간건데?"

게임속에서 만난 채린이 자신의 본명을 부르며 아는척을 하는 바람에,깜짝놀라 게임 접속을끊어버렸다.

"왜그랬어? 내가 무슨 메두사라도 되니?"

메두사는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나오는 중급 몬스터다.

뛰어난 마법 공격에 유저를 석화시키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고렙들도 줄행랑을 칠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그렇게 된건 드림맥스에서 메두사의 용모를 너무 무섭게 재현해 놓은 덕분이었다.

레벨 고하를가릴것 없이 매두사를 처음본 유저중 상당수가 상태 불안정에 빠져 강제 로그아웃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쳣고,게임사 내부에서도 메두사를 좀 예쁘게(?)패치하자는 주장이 나왔다.그러나,

"그 정도는 돼야 메두사 아니겠어?"

부사장이 이렇게 고집을 부려서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단다.

아무튼,얼마나 유명한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아르페디아 온라인의 메두사'라고 하면 흉측함과 공포의 대명사로 다알고 있을정도였다.

물론, 채린은 흉측함과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거리가멀었다.

"그,그때는 엄마가 심부름을 하라고 부르셔서 그랬어"

"거짓말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데?"

"진짜라니까!넌 어릴때 친구를 그렇게 못 믿냐?"

유한은 이대로 밀리면  죄다 털어놓아야 할것 같아서 강하게 밀고 나갔다.

확실히'어릴 때 친구'라는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채린은 더 이상 추궁을 하지않았다. 그틈에 유한은 슬그머니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온거야?"

채린의 눈빛을 보자니 엣날 동네를 찾은 이유는 자기때문인 듯했다. 설마 내구가 깎인 활을 고쳐달라고 친히 왕림한 것은 아닐테고.

"아저씨,유한이 좀 빌려 갈게요"

채린은 유한의 팔을 잡아끌고 가게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 게임한지 얼마나 됐어?"

"글쎄,두어달 정도되었어"

오픈 베타때부터 2년정도 되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바츠는 사라졌고,채린에게 게임페인이라고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장장이 말고 다른 캐릭터는 없어?"

"지그 말고 다른건 없어"

유한은 가슴이 아팠다. 그런 유한의 마음을 아는지모르는지,채린은 곧 말을 이었다.

"그럼 부탁하기가 좀 곤란한걸........"

"부탁? 무슨 부탁을 하려는건데?"

"내가 요새 레벨을 높이는 중인데,던전에 가면 레벨이 잘 오른다고 하더라"

채린의 말이 맞았다. 숲이나 사냥터보다 던전쪽에 더 강한 몬스터가 나오기에 더 많은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을수 있다.

그런데 던전이 무작정 좋기만 한것은아니다.

"근데 너는 궁수잖아.궁수면 던전이 불리할텐데?"

초보 궁수들의 경우 필드 같은 개활지에서 익혀놓은 히트앤드런(Hit And Run) 이 몸에 배어 공간이 한정도니 던전에서는 전투를 수행하기 불리했다.

물론 계속 하다보면 던전에 익숙한 전투 스타일을 만들어갈수 있다. 하지만,그렇게 되기 위해선 몇번이고 몬스터에게 터지고 바닥에 드러누워야 했다.

"그건 네 말이 맞아.확실히 불리하지.그래서 같이 가줄 사람을 구했는데 두명밖에 못 구했어"

"두명 이라............"

어떤 던전에,어느정도 레벨의 유저들이 가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4인파티가 일반적이었다.그 이하로는 파티 전투를 수행하기 힘들고,그 이상은 경험치나 아이템 분배에 있어 잡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저마다 수행하고 있는 퀘스트가 있어 바쁘다는거야.퀘스트 안하는애들은 나보다 더한 초보거나 다른 먼 필드에 있어서 불러오기가 어렵고"

"그래서 날 찾아온거구나"

"너도 이 게임 하니까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아무래도 안되겠네"

고레벨이면 모를까,저레벨의 대장장이는 급하게 무기를 수리해주고,화살이나 만들어주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아예 못 싸우는것은 아니지만, 변변한 전투 스킬이 없으니 전투에 큰 도움을 주지는못한다. 오히려 위험에 처하면 구해줘야 하니 짐이 되어 버린다.

지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유한이 바츠 시절의 전투 감각을 잊지않아 일대일정도가 가능하지,던전에서 몬스터 뗴거리에 둘러싸이면 방법이 없다.

튀거나 아님 잡혀서 죽어야 한다.

"언제 갈건데?"

유한이 문득 물었다.

"응?"

"던전언제 갈거냐고.시간맞으면 내가 도와줄게"

무슨 생각에선지 유한은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너 대장장이 캐릭터밖에 없다며?"

"그걸로도 충분해"

그의 말에 채린은 말도 안된다는듯 피식 웃었다.

"야,강유한.너 그렇게 까불다가 경험치 잃고 엉엉 운다?"

그녀가 가려는 던전은 초보 대장장이가 들어가기에 위험했다. 자신도 혼자 들어갈 엄두가 나지않아 파티원을 구하고 있는 중이니까.

"시꺼,간만에 착한일좀 하려는데 뭔 잔소리.내가 대장장이라도 근접전은 너보다 강할걸"

랑켈산에서의 경험도 있지만, 대장장이라 하여 무조건 약한건아니다. 대장장이라도 경험을 쌓기에 따라 전투에 뛰어난  능력을 보일수 있다.

유한이 갑작스레 던전에 가기로 마음먹은 이윤 서둘러 캐릭터를 키우기 위함이다.고위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서는 생산 계열 스킬들의 랭크도 올려야 하지만, 그에못지않게 솜씨나 인내력 같은 기본 스탯들도 중요하다.

기본 스탯들을키우기에 던전 만큼 좋은곳도 없다.

"토요일 오후 한시야"

유한의열정이 전해졌는지 채린이 선뜩 말했다.

"그때 던전에 갈거니까 발덴 중앙 광장에나와있어"

그녀는 유한을 파티에 넣기로 했다.

친구중에는 마땅히 더 알아볼 사람도없고,유한이 장담을하기도 했기 때문.

"알았어.근데 이렇게 이야기해놓고 날 두고 가기없기다?"

"너야말로 약속시간 잊지마.그리고 확실히 서포트안해주면 국물도없을줄 알아"

그렇게 말하며 채린은 유한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친근감의 표시.이런식으로 툭툭 건드려 대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수 있었다.

옛날처럼 자신을 친구로 생각해 주고 있다는것.

아무것도 묻지않고 예전처럼 어울리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마치 어제 놀이터에서 또 보자고 헤어졌던 것처럼.

"그럼 토요일 오후 한시에 보자"

"알았어.잘가"

동네를 한바퀴 돌러본 채린은 유한에게 인사를 건네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채린은 창문을 열고 유한에게 다시말을 건넸다.

"어이,강유한.힘내라.어깨 축 늘어트리지 말고"

"뭐라는거야? 누가 힘이 빠졌다고"

"지쳐 보이는거 눈에 다 보여.파이팅이다!다음에 봣을때도 상한 동태 꼴 보이면 그냥 날려 버린다!"

버스는 떠나고 채린도 떠났다. 유한은 채린이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떄까지 가만히 서 잇었다.

'그자식,뭘 알고 있는건가? 아니면 그냥 해 본 말인가?'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지그가 된 뒤로도 바츠의 플레이 스타일을 버리지않았던 자신이 채린이 파티 이야기를 꺼내자 덥석  하겠다고 달려든 점이다.

고위 대장장이가 되어 해킹범을 잡겠다라는 당위성은 있지만, 지금까지 파티 플레이라곤 전혀 하지않았던 그가 아까 전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마치 놀러가자며 부르는 친구에게 이끌린것처럼.

"뭐,나쁘진 않겠지"

모르는 놈들과 얼굴 마주하고 할바에 아는 사람이 더 낫지 않겟는가.더구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터.

유한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방으로 올라와서 게임을 하려고 캡슐을 열고 들어갔지만,어째서인지 로그인을 하지않고 그냥 나와 버렸다. 뭔가 달랐다. 어제까지 들어갔었던 캡슐이 오늘은 전혀 다른 공간이 돼 버린 듯 낯선 기분이었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열자 어머니가 마치 못볼것을 본것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관짝이 하나만으론 부족했나 보구나"

"아!"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1층이 웅성거리는것을 보니 드림맥스에서 캡슐을 보내온 모양이다.

"도대체 어디서 돈이나서 캡슐을 산거니?"

"산거 아니에요.보상으로 받은 거에요"

"보상?"

"해킹당했거든요"

유한은 추긍하는 어머니에게 대충 사정을 알려주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택배업체 직원들은 캡슐을 유한의 방에 내려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새것 냄새가 풀풀 풍기는 캡슐을 내려다보던 유한은 소맬르 걷어붙였다.

"뭐 하려고 폼을 잡니?"

뒤따라온 어머니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방 청소 좀 하려고요"

"어머나,어쩌다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니?"

"글쎼요.잘 모르겠어요"

유한은 방을 싹 치웠다. 아침에 대충 쑤셔 놓고 말았던 것과 달리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먼지를 닦고 휴지는 밖에 내다 버렸다. 그리고,

"이건 이제 필요없어"

지금까지 애지중지했던 구형 캡슐을마당에 내놓았다.

동생이 필요하면 가져갈것이고,아니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팔아치울것이다.그렇게 헌집이 나간 자리에 새집이들어섰다.

"그래,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게 좋지"

반짝이는 새 캡슐에 비친 유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2

"수리가 다 되었스니다"

채린이와 던전에 가기로 약속한 날도 유한은 열심히 발덴의 중앙 광장에서 수리 스킬을 연마하고 있었다. 자투리 시간마저도 소중했던 그는 광장 한편에 팻말을 세워둔채 영업을 계속했다.

솜씨 좋은 대장장이에 대한 소문이 제법 퍼졌는지 이웃도시에서까지 유저들이 찾아와 무구를맡겼다.

"헤헤헤!다음에 또 이용해 주십시오"

30골드를 챙긴 유한이 손님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닷새 내내 죽어라고 수리만 해 댄 덕에 수리 스킬은 7랭크에 올라섰고,수리 성공률은 45%에서 49%로 무려 4%를 높였다.

물론 돈도 꽤 많이 벌었고,명성도 더 올라갔다.

"이제 슬슬 이곳을 떠날때가 됬네"

보다 나은 성장을 위해서는 발덴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초보들만 득시글하는 이곳곽 달리 다른 도시에선 좀더상위 랭크의 무구를 만질수 잇고,그만큼 경험치를높일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시간이 되었는데........."

현실 시간으로 오후 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유한이 내심 늦는 채린을 탓하고 있을때 늘씬하게 빠진 궁수소녀와 제법 멋을 부린 기사,마법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궁수는 당연히 채린이었고 기사와 마법사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대략 유한보다 2~3살이 많아보였다.

"아하하,늦어서 미안"

채린이 넉살좋게 웃더니 옆의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다.

"인사해.이쪽은 기사 제르스 오빠고,이쪽은 마법사 알덴 오빠야.모두 한성 대학교에 다니고 잇데"

"아,안녕하세요?"

유한의 인사에 1,2학년 정도로 보이는 두 사람은 그를 한차례 쓰윽 훑어보았다.이런 안하무인의 태도에 유한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은 상관없단듯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뭐야? 대장장이잖아?"

"던전을 탐사하는데 대장장이는 거추장스럽기만 할텐데......."

"그러게.차라리 도둑이었으면 좋았을걸"

유한은 욱한 마음에 바츠 유저엿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말해봤자 이자리서 증명할 길이 없다.

"시아야.그러지 말고 우리끼리 가자.우리가 완벽하게 방어해 줄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돼"

"그래,이 오빠가 시아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해줄게"

'제르스와 알덴이라..........'

두녀석이 채린을 상대로 거들먹거리고 있는동안 유한은 두놈들이 누군지 곰곰이 생가해 보앗다.

처음 만나는 놈들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대체 어디서 들어봤었던가?

'맞다!이놈들은 분명!'

게임 공략 사이트에서 본적이 있었다. 주의 요망이라며 몇 차례 씩 올라온 이름들.

'분명 게임하면서 여자들한테 껄떡대는 놈들이라고 그랬어'

두녀석은 레벨이 좀 높은것을 이용해 초보 여성 유저들을 꼬시고 다니는 놈들이었다.

처음에는 게임을 가르쳐 준다며 접근해서 아이템과 경험치를 미끼로 껄떡거렸다. 그러다 여성쪽에서 어느정도 받아준다 싶으면 오프라인에서 만나자고 끊임없이 귀찮게 구는 진드기들이었다.

당연히 두놈의 평판은 '최악'이었다. 

중렙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명성치는 0.

여자들에게 엄한짓을 하다 먹은 패널티 때문이다.

'채린이녀석.모르고 끌어들였나 보군'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치고 각 사이트의 공략집을 면밀히 살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임을 빨리 즐기고 싶은 마음에 대부분은 건성으로 넘어가고 부딪히고 깨져 본뒤에야 공략집이나 관련 사이트를 뒤지는 것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명성도만 검색해 봐도 알았을텐데.채린이 이 녀석 그렇게 같이 갈 사람이 없었나?'

하기야 게임상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나쁜 놈인지 착한분인지 어찌 알겠는가 ? 당해보고야 이놈이 나쁜 놈이구나.......라고 아는게 일반적이었다.

"아무튼 이녀석은 두고가자.삼인 파티라면 경험치도 더 만이 챙길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얘는 내 친구에요.같이 가기로 약속했다고요"

"안돼.가봣자 경험치나 잃을걸.그럼 이 녀석도 손해야"

유한이 내심 생각하는 와중에도 채린은 두사람과 옥신각신했다. 둘은 계속 반대하는 입장이었고,채린은 약속도 했고 친구니까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끝날것 같지 않은 싸움은 유한이 나서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형님들 세지않나요?"

"훗,물론 우리가 좀 강하지"

유한의 아부에 두 녀석은 우쭐댔다.

레벨 70대.초보들만 득시글한 발덴에서 어깨에 힘주고 다닐만했다.그래봤자 바츠에게는 한방감도 안될 레벨 이지만.

유한은 비웃음을 감추고 말을 이었다.

"그럼 저 하나 챙겨주시는것도 문제가 없으시겠네요"

"야,누가 대장장이 따위를........"

"형님들'꽤 평판이 좋다고'들었는데요.저렙 유저들을 파티로 데리고 다니면서 많이 키워 주신다면서요?"

순간 두 녀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유한이 '꽤평판이 좋다'는 말에 강세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자식,우리들에 대해 알고 있나?'

두 녀석도 자신들의 악명이 퍼진것은알고 잇었다.

그래서 요즘은 게임을 처음 하는 여성 유저들에게만 수작을 부리고 있는데,이 초보 대장장이는 아무래도 자신들에 대해 아는 듯했다.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것이 데리고 가지 않음녀 채린에게 까발릴 속셈임이 틀림없다.

"대장장이 하나 키워준다고 생각하시고 좀 데리고 사주세요.저 무기 수리 잘하거든요"

'맞아요.던전 가서 칼이 부러지면 어떡해요?"

두녀석은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못이긴척 수락을 했다.

"알았다. 그럼 인심 좀 더 쓰는 셈치지"

유한은 녀석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것을 보았다.

그걸 눈치 못챌 유한이 아니다. 놈들은 그냥 순순히 자신을 받아준 것이 아니다.다 속셈이 있는 것이다.

'분명 던전에서 떼어 놓을 수작이렷다?'

파티 플레이는 안해봤지만, 혼자서 던전을 돌면서 그런 모습을 종종 보았다.

고렙 따라 던전왔다가 상대방이'귀찮다'고 두고 가는 바람에 고립되어 어쩔줄 몰라하던 초보 군상들.

결국 그런 치들은 몬스터에 죽어 경험치를 잃고 마을에서 부활하거나,죽으면서 떨어트린 아이템과 돈을 바라보며 통곡을하곤했다.

'내가 쉬운 놈이 아니라는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사실 채린에게 이 둘의 정체를 까발리면 일은 간단하게 끝난다. 하지만 유한은 그렇게'가볍게'놈들을 끝내 놓긴 싫었다.

자신을 무시한  만큼의 합당한응징을 해주리라.

유한은 그렇게 결심했다.

3

아르페디아 대륙은 광대하기 때문에 멀리 갈때는 꼭 탈것이 필요했다. 게임속 다양한 이동수단이 있지만, 단체로 이동할때 역마차만큼 저렴하고 간단한것이 없었다.

"자,내려"

록스턴은 발덴 남쪽에 있는 마을로,'은둔의 숲'과 '마녀의 산'으로 가는 관문이다. 마을과 그 인군은 40~60대 레벨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데 중렙으로 성장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덕분인지 록스턴엔 갓 초보를 벗어난 유저들이 많았다.

'오랜만이군'

유한도 바츠시절에 이주변을 돌면서 레벨을 좀 올렸다.

레벨만 올린게 아니다. 처음으로 게임에 자신의 흔적을 또렷이 남겨두기도했다.

'잠깐,그럼 지금 가고 있는 던전이 혹시?'

자신이 아는 그곳이 아닐까?

유한이 가만히 서있자 채린이 물었다.

"뭘 생각하는거야? 막상 던전에 가려니까 무섭니?"

"아니,채린아.그 때문이 아니라......."

"게임할 동안은 채린이 아니라 시아라고 부러.나도 지그라고 부를거니까"

유한이 의문을 표하자 채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야 게임하는 기분이 난단 말이야.넌 안그래?"

"하긴"

사람들이 가상현실 게임에 빠져드는 이유는 현실 일탈때문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과 모험의 세계를 즐기고 있는데 진짜 이름으로 부르면 흥이나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파티는 록스턴 마을에서나와서 마녀의 산으로 올라갔다.

수풀을 헤치고 계곡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폭포 하나가 나타났다.

콰콰콰콰콰!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뒤로 커다란 동혈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채린이 그곳을 가리켰다.

"저곳이 바로 우리가 탐험할 던전이야"

'큭!역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유한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마녀 데보라의 동굴.

록스턴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레벨업과 아이템 드랍이 잘되기에 만은 유저들이 찾고 있었다.

지금도 유한과 채린이 속한 파티 말고 여러 사람들이 던전으로 들어가는 중이었고,폭포 주변에는 포션과 랜턴,화살 따위를 파는 상인 유저들의 좌판이 가득했다.

"마녀 데보라의 동굴..........대체 어떤 곳이죠?"

채린도 이곳이 유명하단거만알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녀의 물음에 제로스는 잔뜩 잘난 척하며 설명했다.

"삼백여년전,바르카스 왕국을 위협했던 데보라의 본거지라 하더라"

마녀 데보라,혹은 인형술사 데보라라고 불린다.

그녀는 단순한 흑마법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흑마법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군단을 만들어서  록스턴을 비롯한 주변지역을 정복했던 여왕이었다.

그녀의 마법 군단은 바르카스 왕국의 수도 발덴을 위협했지만, '용사 카웬'에게 패배하여 먼 나라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다 나오는 이야기야"

록스턴 인근의 정보들을 검색하다 보면 나오는 이야기다.그 인근의 유적이나 몬스터들은 데보라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난 그런거 안봐요.그런거 보고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그러냐?"

하긴 채린이 공식 홈페이지나 공략 사이트를 뒤적였다면 자신들과 파티는 절대맺지 않았을것이다.

"그나저나 네 친구는 왜 우두커니 서 있는거야?"

"대장장이 녀석.겁을 먹은것 같은데?"

그러나 유한은 겁을 먹어서 던전 앞에 멍하니 서 있는것이 아니었다. 마녀 데보라의 동굴 옆에 새겨진 금박이 입혀진 문구 때문이었다.

[이 던전은 전사 바츠 님이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바르카스 왕립 학술원-]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게임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던전의 최초 발견자나 미지의 지역에 처음 들어간 모험가의 이름을 푯말로 새겨 기리고있다.

마녀 데보라의 동굴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유한이었다.

동굴 앞에 나됭굴고 있는 돌조각들도 던전 입구를막고 있던 바위를 부수면서 생긴 것이다.

최초로 발견만 한것이 아니라 3층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한것도 그였다. 공식 홈페이지 용자의 집에 가면 그 당시의 동영상을 볼수 있다.

'그래,이곳에서 레벨을 꽤 올렸었지'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고 또 슬펐다.

전생에 살던 곳을 방문했다면 혹시 이런느낌일까.

"뭐하니,지그야.너 그냥 놓고 간다"

"무서우면 들어오지 않아도 돼"

제르스와 알덴,그리고 시아가먼저 던전안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문구를 바라보던 유한은 고개를 흔들고 던전 안을 들어갔다.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때가 아니다.

4

던전안은 완전 암흑 천지였다.

저 멀리 먼저 들어간 유저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고,그들이 왔다 갔다 할때마다 번쩍이는 불빛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조심해!이 던전은 몬스터들천지야"

알덴은 지팡이에 라이트마법을 걸어 사방을 좍 비추었다.

그러자 스켈레톤과 목인병(木人兵)등이 시야에보였다.녀석들은 불빛이 나타나자 곧바로 반응하여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것보라고 .이렇게 가까이에 몬스터가 있을줄은 몰랐지?"

"던전에선 사방을 잘 비춰보면서 가야돼.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니까"

칼과 방패를 든  스켈레톤 병사가 파티를 둘러싸고,목인병들이 화살을 날렸다.

위험한 순간, 불꽃이 터지고 칼날 이 번득였다.

"리볼빙 파이어(Revolving Fire)!"

"휠 슬래쉬(Wheel Slash)!"

요란하고 화끈한 연발 마법과 범위 공격 스킬들이 터져나왔다. 유한과 채린은 가만히 있어도 경험치를 얻을수 있었다.

많이 해 본 솜씨인지,제르스와 알덴은 어렵지않게 몬스터들을 해치워 나갔다. 여유가 있는지 전투중에 이런 저런 충고까지 해줄정도였다.

"목인병은 불에 약하니까 파워샷(PowerShot)보다는 불화살이 더 강한 타격을 입힐수있어"

"어,그래요? 나아직 불화살 스킬은 안올렸는데"

"전투 스킬은 부지런히 올려둬.안그러면 시아 네 친구 대장장이처럼 고생한다"

제르스는 보라는듯이 유한을 가리켰다.

유한은 스켈레톤 병사 하나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나타나자마자 제르스와 알덴의 화려한 기술에날아가 버렸지만, 일부러 그랬는지는 몰라도 유한의 앞에 나타난녀석은 멀쩡했다.

레벨 38의 스켈레톤 병사는 저렙 몬스터들 중에서도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동작이 빠르거나 힘이 센것은아니지만, 단숨에 박살 내지 않으면 자꾸 살아나 상대하기 귀찮다.

"끼이이!"

유한의 공격을 막은 스켈레톤은 가운데 뾰족한 뿔이 달린 방패를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유한은 대장장이 망치로 방패를 후려쳐 버리고는 스켈레톤 병사의 허리를 기욘의 검으로 갈랐다.

-경험치 110을 얻엇습니다.

-120골드 얻었습니다.

-레벨 36이 되셨습니다.

힘이 1 올랐습니다.

솜씨가 1 올랐습니다.

"이야 ,제법인걸?"

채린의 칭찬에 유한은 으쓱해 하며 두 녀석을 바라보았다. 

제르스와 알덴의 표정이 일그러졋다. 대장장이 녀석이 스케렐톤 병사에게 터져서 바닥에 누울거라 생각했는데 반대로 돼 버렸다.

'역시 저자식은초보가 아니야.전투를 많이 해본것 같아'

'걱정마.어차피 대장장이야.전투 스킬은 없으니까 다구리당하면 눕게 되있어'

둘은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유한을 어떻게 떨어트려 놓을까 열심히 머릴 굴렸다. 되도록 시아가 의심하지 않도록 조심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속 보인다,인마들아'

아마 나를 떨어트려 놓을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겠지.

피식 웃은 유한은 뒤쪽으로 돌아섰다. 바로 뒤에서 목인병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레벨 39의 나무로 만든 병사 목인병.

마녀이자 인형수사 데보라의 여러 작품들중 하나다.

나무로 만들어 화염 속성의 공격에 취약하지만, 활이나 석궁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은 초보유저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일행의 뒤에 생성된 녀석은 팔에 달린 석궁을 유한에게 쏘았다.

머뭇거리던 유한의 다리에 화살이날아와 박혔다.

"지그야!"

놀란 채린이 재차 화살을 발사하려는 목인병에게 파워샷을날렸다.

보통 활 공격보다 3~5배는 강한 파워샷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울리며 날아가 목이병을 산산조각 냇다. 제대로 크리티컬이 터진것이다.

"지그야,괜찮니?"

채린이 다가와 물었다.

"걱정마.피는 좀 깎엿지만 죽을 정돈 아니야"

그러나 유한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실제와 같은 수준의 통증은 아니지만, 통감 옵션을 꽤 높여놓았기에 이번 공격은 상당히 아팠다. 마치 커다란 주삿바늘에찔린것처럼.

더구나 방금전 목인병의 공격은 유한의 체력은 3/1이나 깎아 놓았다. 거기다 화살에 마비 효과가있는지 오른쪽 다리를 움직일수 없었다.

"헤,이거 큰소리쳤는데 역시 짐만 되었나?"

"그런 소리하지마.넌 잘 싸웠어.재수가 좀 없었던거야"

유한은 자신을 위로하는 채린에게서 제르스,안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것 참 잘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에게 유한은 꾸벅 고갤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형님들.저때문에 앞으로도 못가고....."

"그러게 대장장인 대장간이나 지킬것이지"

조롱의 눈빛을 보이는 둘을보며 유한은 내심 이를갈았다.

"저 때문에 던전 탐사를 그만둘수 없으니까 먼저 가세요"

"응? 먼저 가라고?"

"무슨 소리야?그럼 널 두고 가라는거야?"

채린이 말도 안된다며 반대했다.

유한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우리말고도 들어온 사람들이 많아.지체하다간 다른 파티에게 몬스터를 다 뺴앗길거야.그러니까 날두고 형들이랑 먼저가"

"넌 어쩌고? 대장장이가 혼자 남아서 어쩌려고?"

"좀 쉬면 체력이 회복될거야.그때쯤이면 마비도 풀릴거고.그럼 바로 쫓아가지 뭐"

채린은 고개를 저었지만, 제르스와 알덴은 이런 기회를 놓칠수 없다는듯 그녀를설득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하늘이준 기회였다.

"시아야.친구 말이 맞다. 머뭇거리다간 몬스터를 다른 녀석들에게 뺴앗길수 있어"

"어차피 같은 파티니까 여기서 쉬고 있어도 경험치는 올라갈거야"

"그래,같은 파티원이니까 위치 파악도 된다고.이 근처의 몹들은 다 쓸어버렸으니까 리젠되는데 시간이 걸릴거야.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제르스와 알덴은 이 기회를놓칠 생각이 없었다. 유한이 회복하고 있는 사이에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거리를 벌려 놓을 생각이었다. 대장장이니까 몬스터들을 뚫고 쫓아오기도 쉽지않을것이다.

"그냥 나도 같이 기다릴래요.오빠들먼저 가세요"

"안돼 ,시아야.경험치 말고 숙련도와 컨트롤을 익히는 것도중요해.그냥먼저 형들을 따라가"

제르스와 알덴은 시아를 설득하는 이 멍청한 대장자이자식이 예뻐 보일 정도였다.

출발하기 전에는 상당히 껄끄러웠었는데 말이다.

거듭된 설득에 결국 채린도 유한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이템 가방에서 포션을 꺼내서 유한에게 주었다. 마비가 풀리는데 도움은 안되지만 체력을 회복시키고 몬스터들과 싸우는데는도움이 될것이다.

"알았어.그럼 마비가 풀리면 곧장 쫓아와야해.위험하면 곧바로 쪽지나 귓속말을 보내고"

"그래 .어서 먼저가"

아무래도 두고 가기 껄끄러웠던지,채린은 몇번이나 주저하다가 두 녀석과 함께 던전 저편으로 사라졌다.

파티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유한은 곁에 놔두었던 랜턴의 불을껐다. 곧있으면 몬스터들이 리제될 것이기 때문에 불을 켜 두는것은 위험했다. 

'데보라 던전의 몬스터들은 불빛과 소리에 반응해 움직이지'

사실이 그랬다. 이렇게 불을끄고 가만히 있으면 바로 옆에 유저가 있어도 몬스터들은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알덴처럼 불빛을 사방에 비추고 다니는짓이야말로 '나 죽여줍쇼'라고 광고하는 멍청한 짓이었던 것이다.

물론,그것이 몬스터를 몰아오는데는 좋은 효과가 되긴 하지만.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수많은유저들중에서 꽤 노련한 사람이 아니면 이 사실을 모른다. 알아도 가르쳐 주지않을것이다.

아니,안다해도 하기가 힘들다.

인간은 정보의 8할이상을 시각으로 얻는 생물 .본능적으로 어둠을 두려워하고 ,어둠속에서 활동하는데 익숙하지않다. 불리하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랜턴을 찾게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단 말이야'

유한은 랜턴이 필요없다. 바츠 시절데보라 던전을 안방 들여다보듯 속속들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시스템은 가상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와 똑같이,혹은 더 높은 수준으로 리얼리틸 반영하곤 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때가 됬군'

얼마쯤 어둠속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유한의 눈에 리젠된 몬스터들의 흐릿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포션의 약발이 도는지 체력이 거의 회복되었고 동시에 다리에 걸려있던 마비도 풀렸다.

씨익!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유한은 목인병이 쏜 화살을 충분히 피할수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부위에 맞아준것이다. 그리고 일부러 채린을 설득해 파티원들을 먼저 보냈다.

유한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악하게 웃었다.

"크크크,이제 슬슬 반격에 나서 볼까?"

                                            BY R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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