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수리의 비결 (7/143)

수리의 비결

1

-낫을 수리하셨습니다.

내구가 13떨어졌습니다.

스킬 경험치 5를 얻었습니다.

'어째 제대로 고친적이 한번도 없냐'

내구가 떨어지면 수리를 해도 경험치를 조금밖에 받지못한다.

유한은 원망스런 눈빛으로목에 차고있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차고 잇으면 재수가 좋아진다더니 뻥이 아닐까 싶었다.

유한은 짤막해진 낫을 상대방에게 건넸다.

'농부'를지향하며 파종과 채집,수확에 열을 올리던 유저는 길이가 줄어든 자신의낫을 보며 떨떠름한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어쩔수없다.초보농부라서 수중에 돈이 별로없어 유한처럼 레벨은 낮지만 대신 요금이 산 대장장이에게 수리를 맡긴 자신을 탓할수밖에.

"휴우!"

농부를 한숨을 푹 내쉰후 낫을 들고 사라져버렸다.

오늘만 해도 이와 비슷한 일이벌써 3번째였다.

"이놈의 게임은 수리 성공률이 왜 이리도 지랄 같담?"

"수리를 하라는거야,말라는거야?"

"장비를 안부숴 먹으려면 비싼돈을 주고 NPC대장장이를 찾아가라니,이거 너무 하는거 아니야?"

'수리해드립니다'라는 팻말을 세운 대장장이들 앞으로 줄줄이 모여든 유저들이 제각기 분통을 터트리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발덴 광장의 대장장이 유저들은 대부분 수리 성공률이 70%미만의 초,중레벨이었기 때문이다.

장비를 맡겼다가 내구가 깎이거나 부러지면 어느 누구라도 혈압이 오를것이다.

"그래서 아예 수리에 신경 안쓰는 사람도 있다지?"

"아,'가우리'길드의'욘락대왕'님 말이야? 그양반은 늘 칼을 다섯개씩 들고 다닌다며?"

"내구가 다 닳을떄까지 쓰고 그냥 버린대.그래선지 칼도 싼거만 쓴다고 하더군"

"아니야.그래도 한 자루는 길드 대장장이가 만들어준 걸로 진짜 좋은걸로 갖고 있다더라"

유한도 재활용을무시하며 장비를 험하게 다루는 유저들에 대해서들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많거나 레벨이 높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많은 유저들은 자신의 무기에 애착을 가졌고,수리때마다 온전하게 살아남길(?)바랐다.

또한'숙련도'라는 수치가 있는데 이것은 장비를 사용할때마다 상승한다. 숙련도가 올라간 장비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하고 무게가 가벼워지기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하나의 장비를 오래 사용하는 편이었다.

물론 사악한 드림맥스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않았다. 유저들이 자주 장비를 구입해야 게임회사가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수리 성공률은 표시된 확률보다도 더 나쁘게 나왔다. 70%라고 10중에 7번이 성공하는게 아니라 10중에 7번 실패할수 도 있었다.

워낙에 이러다보니 추가로 행운이높아야한다는둥,닥치고 수리성공률을 높여야한다는둥,유저들 사이에 말들이 많았다.

"크악!야 이색키야!이게 어떤 철퇴인데 분질러 먹어!"

"케켁!이,이건 고의가 아닐........"

수리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드잡이까지 당하는 대장장이도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대장장이가 바닥에 내팽개쳐지는것을 보고 유한은 조용히 팻말을 내렸다.

이곳에서 어물쩍거리다간 자신도 그 유저 꼴이 날수있었기 때문이다.아니,그 유저보다수리 성공률이 더 형편없는 자신이라면 더 험한 경우를 당할수도 있었다.

실제로 꽤 고가의 검을 부숴먹은 대장장이 유저가 검의 주인에게 현피를당했다는 기사가 9시 뉴스에 뜨기도했다.

'어떻게 하면 수리를 잘할수있을까?'

남에게 욕먹기 싫었던 유한은 그동안 수리를 해서 번돈으로 싸구려 단검들을 사서 일부러 분질러 가면서 수리스킬의 숙련치를 높였다.

그렇게 며칠을 하니 수리 스킬이 8랭크에 올랐고,수리 성공률도 45%로 조금 높아졌다.그러나 들인 공에 비해 발전속도는 더디기 그지없었다.

'제길,생산 스킬은 잘 만드는 비법을 알게 되었는데..........'

물건을 만들떄 표면에 드러나는 선들의형태에 따라 품질의 고하가 결정됨을 알게되었다.

선들이 선명하고 간격이 일정하면품질이 높은편이고,반대로 선들의 간격이일정하지않고 흐릿하면 품질이 떨어졌다.

유한이 수련을 목적으로 산 5골드짜리 싸구려 단검들도 표면의 무늬가 흐릿하고 제멋대로였다.

'선들이 이래서야.........어라,이건?'

유한은 부러진 단검을 살펴보다가 고갤 갸웃했다.

단검의 부러진 부위를 중심으로 실금처럼 크랙이 간것을발견할수잇었다. 잘 살피지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작은 균열이었다.

"부러지면서 생긴건가?"

수십번도 더 검을 부러트리고 고치다보니 이런 균열이  생긴 모양이다.

거기다 검의 품질이 좋지 않은 것도 한몫단단히 했을것이다.

싸구려다 보니 제대로 된 단조 과정을 거치지 못했을것이고 불과 강도에 취약한것은 당연한일.금속 조직이 엉성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충격을받았으니 조직의 경계면을 따라 금이 생겼을것이다.

그런데,이 금이 난 자국이 심상치 않았다.

불규칙적으로 생긴것 같앗지만, 대부분표면에 드러난 선들을 따라 갈라져 있었다.

뚫어지다시피 단검을 노려보고있던 유한은어느순간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이제 어떻게 하면 알것 같군"

지금까진 파손 부위만 가열하고 두들긴것으로 수리를 해왔다. 그러나 그런 수리 방식으로 게임사에서 설정해 놓은 수리 성공률을 넘지못했다.만약 지금 봤던 대로,선을 따라 갈라진 실금들을 두들겨서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될까?

"좋아!한번 해보자!"

유한은 부러진 단검을 청동화로에 넣고 달궜다. 그리고 작은 모루위에 올려놓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파손된 부분을 무작위로 떄리던 전과 달리 실금들을 보면서 꼼꼼히 망치질을 했다.

-단검을 수리하셨습니다. 새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훌륭한 상태입니다. 

스킬 경험치 80을 얻었습니다.

-단검을 수리하셨습니다. 내구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스킬 경험치 65를 얻었습니다.

연속으로수리 성공.

내구도 전혀 떨어트리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을 45%의 극악한 수리 성공률을 가진 저렙 대장장이가 해낸것임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역시!내 생각이 옳았어!"

원리와 요령을 알것 같았다.

생산 스킬을 익힐떄와 비슷하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다 되는것만은 아니었다.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했지만, 아직 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단검을 수리하셨습니다.

내구가 2떨어졌습니다.

스킬 경험치 20을 얻었습니다.

"제길,이런건 무리라는건가?"

방금 유한이 수리한 단검은 실금이많이 가있고,칼날의 이가 거의 다 빠져 있었다. 버려야할정도로 상태가 나쁜것이었다.

아무리 실금까지 보는 안목을 키워도 완벽하게 수리를 해낼수는 없었다.

'손재주.........그러니까 솜씨가 더 필요하단거로군'

역시 수리 스킬 랭크를 더 높여야 할것 같았다.

수리 스킬 8랭크로는 겨우 나무나 무쇠로 된 D급 장비들밖에 고칠수 없는데,좀더 고급 장비들을 만지기 위해서는 수리 랭크를 높일 필요가 있엇다.

"좋았어!이제부터 수련치를 마구마구 올리는거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는 요령만 알면레벨업은 훨씬 쉬워진다. 덩치큰 사냥감을 잡을때는 급소를 노리면 되고,캐릭을 성장시킬때도 정해진 길이아닌 지름길을 찾아가면 더 빨리 키울수있다.

지금 유한은 제작과 수리에 있어 바로 그 요령을 터득했다.

3

유한은 혼자만의 수련터에서 다시광장으로 나왔다.

광장 한편은 여전히 시끌시끌했다.

수리를 맡고자 하는 대장장이들과 수리를 청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흥정과 고성,탄식,안도의 한숨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있었다.

이것과 달리 유한은 수리에있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팻말을 올리기전에 확인해 보고싶은것이 있었다.

"님,이것좀 봐주세요"

유한은 이곳에서 제일 수리 스킬이 높은'질풍장인'이 이라는 대장장이를 찾아가 대뜸 단검을 내밀었다.

수리 스킬을 올리기위해 일부러 내구를 마모시킨 싸구려 단검이었다.

"뭐요? 고쳐달라고? 새로 사는게 나을것 같은데?"

질풍장인은 뭐 이런것을 다 고쳐달라고 하느냐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고칠 필요는 없고 좀 봐주세요"

"보긴 뭘 봐줘요? 볼것도 없구먼"

"좀 자세히 보라고요.이상한거 안보여요?"

"아니,그러니까 뭘 보라는건데?"

"그러니까 표면에........"

유한은 미세한 금이 보이지 않느냐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혹시 다른 대장장이유저들이 모르는 사실이라면 훌륭한 영업비밀을 남에게 덜렁 알려주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단검이 어떻게 깨진것 같아요?"

"어떻게 깨지긴 어떻게 꺠져요? 그냥 가로로 뚝 분질러졌구먼"

질풍장인은 더 상대하기 귀찮다는듯 단검을 건네주며 고개를돌렸다. 그는 파손부위 아래쪽에 세로로 생긴 미세한 실금들을 보지 못한듯했다.

유한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다른 장인들에게서도 똑같이 물어보았다.

"아니,그러니까 대체 뭘 보라는건데요?"

"이거 싸구려의 모습을 한 전설의 무구라도 되나요?"

"님,혹시 용팔이 NPC에게 속아서 샀수?"

다른 대장장이들의 눈엔 일정한 방향으로 난 선이나 금이 보이지 않는듯했다. 전혀 그런것에는 신경을쓰지 않는것인지,그렇지 않으면............

'역시 내눈에만 보이는건가?'

발덴 광장의 대장장이들이 대부분 레벨이 낮은 이들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고레벨 대장장이들에게는 나중에 또 물어보면 알수있겠지만, 중요한것은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이 보지못하는것을 자신이 볼수 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통찰력을 기반으로 해서 낮은 수리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수리 실력을 갖게되었다.

'그래,확인은 이 정도면 충분해'

확인을끝낸 유한은 사람들 눈에 잘띄는곳에 팻말을 세웠다.

'30골드에 D급 이하의 장비를 완벽하게 수리해 드립니다'

라고 써놓으니 지나가던 유저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한번씩 돌아보았다.

"뭐? 삼십 골드?"

"D급이하만 수리해준다면서 뭘 저리 비싸게 불러?"

"아니,그보다도.......완벽하게 수리해준단다"

이곳에 있는 다른 대장장이들이 대부분 10골드에서 15골드 사이를 수리비로 받는것에 비하면 비싼편이었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초보 대장장이임이 분명한 자가 완벽하게 수리를 해주겠다고 장담하고있었으니.

"멱살 잡히고 싶어서 안달난 인간이구먼"

"게임을 하루이틀밖에 안해봤나 보지뭐"

"혹시 우리가 모르는 초고렙대장장이가 아닐까?"

"초고렙 대장장이 따위가 왜 저렙들이 사는발덴에 어슬렁거리고 있겠냐? 더구나 D급 이하만 해준다잖아.고렙쯤 되면 B급 이상장비를 수리해야 경험치를 얻는다고,저건 절대 고렙이 아니야"

"잠시 인심 좀 쓰려고 온건지도모르지"

"그래도 차림새를 보면 고렙은 절대 아니야"

터무니없을정도로 자신감에 찬 엉뚱한 녀석의 등장에 유저들은이리저리 한마디씩 했다.

만약 눈앞의 캐릭터를 조정하는사람이 과거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역사에 한획을 그은 바츠 유저였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유한은 광장 바닥에 퍼질러 앉아 느긋하게 손님이 찾아오기를기다렸다. 이렇게 비싸더라도 분명 한두사람은 호기심에 수리를 맡길것이다.그때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이면 사람들의 반응은 확 달라질 것이다.

오래지 않아 첫번째 손님이 나타났다.

그런데 녀석을 본순간,유한의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저기님,진짜 완벽하게 수리해 줄수있으신가요?"

'이 새끼가 왜?'

지금 수리를 해달라고 찾아온 녀석은 검정고시 학원에서 두번이나 마주쳤던 비곗덩어리였다. 게임 시스템상 얼굴과 몸매를 크게 바꾸지 못하기에,단번에 알아볼수 있었다.

캐릭터 이름은 '라스트모히칸'

"제가 힘들여 오크 전사를 잡아서 얻은 '오크니스 액스'에요.제발 흠없이 수리좀 해주세요"

녀석은 현실의 양아치스런 태도는 어디다 버렸는지,매우 공손하게 부탁을 해왔다.

물론 수리를 잘못해주면 본색을 드러낼지도.

'쳇!이 색키가 왜 하필이면첫빠따야?'

세상 참 넓고도 좁았다.

유한은 수리하다 실수인척 녀석의 도끼를 확 부셔먹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했다. 사소한 원한 때문에 대의를 그르칠수는 없었다.

오크니스 액스는 D급 장비들 중에서도 상급에 속한 물건. 이걸 흠없이 잘 고치면 단번에 좋은 평가를 받을수있다.

"좋아요.한번 맡겨 보세요"

유한은 오크니스 액스를 넘겨받았다. 도끼날은 물론 자루까지 빠지지않고 세세하게 살폈다.

오크니스 액스는 도끼날 중간에 이가 크게 빠져 있었고,몸체에도 미세한균열이 가있었으며,자루도 흔들흔들했다. 전체 내구는 58인데 22나 깎인 상태였다.

상태를 살펴본 유한은 곧바로 수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청동화로에 숯을 넣어 불을 붙이고 도끼와 자루를 분리시켰다. 도끼날은 화로에 넣어 달군 다음, 모루에 옮겨놓고 망치질을 시작했다.이가 빠진 부분을 두드려 메우고,실금을 따라 골고루 야무지게 두들겼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저런다고 잘 고쳐지는거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꽤 정성을 들이는것 같지않냐?"

주변에서 구경하던 유저들이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들이 뭐라거나 말거나 유한은 수리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수리할때 다른데 신경쓰는짓은 사냥할때 몬스터를 앞에두고 뒤를 돌아보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비곗덩어리가 유한의 신경을 건드렸다.

"근데 대장장이님 어디서본듯한.......?"

"어이쿠!손이 미끄러졌네!"

"허억!조심하세요!조심!"

유한이 일부러 실수하는 척하니 비곗덩어리는 화들짝 놀아 입을 다물었다.

녀석의 그런 모습에 재미가 들린 유한은 이리저리 장난삼아 실수하는척하며 비곗덩어리의 애간장을 살살 녹였다.

얼마후 ,오크니스 액스에 이가 빠진 흔적이 사라지고,미세한 균열들도 보이지않게 되었다. 유한은 숫돌에 날을 갈아서 마무리를 하고 자루는 쇄기와 함께 끼워 흔들리지않도록 했다.

-오크니스 액스를 수리하셨습니다.내구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스킬 경험치 65를 얻었습니다.

"오오!완벽히 고쳤어!"

비곗덩어리는 마치 새것처럼 윤기나 흐르는 도끼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췄다. 내구가 어느정도 깎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온전히 고쳐지니 기쁘지 않을수 없었다.

"고마워요.여기 삼십 골드"

비록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아이템의 가치에 비하면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감사합니다. 게임 즐겁게 하세요"

유한은 속으로 확 필드 보스에게 죽어서 경험치나 장비를떨어트리라고 저주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저 녀석 캐릭터 이름을알아놨으니 언젠간 두들겨 맞은 만큼 복수를 해 주겠다고.

이렇게 한번 실력을 발휘하자 다음 손님이 곧바로 찾아왔다.

"님,수리 잘한느 모양이네요? 내 칼도 좀 고쳐줘요"

초보 기사로 보이는 유저가 내민것은 이가 빠진 숏소드였다. 어찌나 알뜰하게 빠졌는지 칼이 아니라 톱이라 해도 믿을수 있을정도였다.

척 보기에는 가능성이 없어보엿지만, 생각보다 내구는 많이 닳아있지 않았다.거기다 검신 자체의 손상은 거의 없었다.

'호오,잘 다뤘구먼.덕분에 수월하겠네'

지그의 수리 성공률은 45%.그러나 상태가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니면 얼마든지 고칠 자신이 있었다.

-숏소드를 수리하셨습니다. 신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스킬 경험치 80을 얻었습니다.

"오오!이 연속으로 완전 수리!"

내구가 하나도 안깎이고 두번이나 완전 수리를 하는것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였다. 고레벨의 대장장이가 아닌 이상 수리하다 보면 이리저리 실패를 하게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유저들이 유한의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신의 아이템을 고쳐달라고 내밀자 유한의 입이 쟁반을 넣어도 될 정도로 쩍 벌어졌다.

'크하하하!이제 뗴돈을 버는것은 시간문제다'

덤으로 수리 스킬과경험치도 팍팍 올리고.

그러나언제나 하늘이 맑기만 한것은 아니다.

먹구름을 드리울때도 있었다.

'제기랄,이건 당최 답이 없군'

3번째로 받은 손님이 내민 무쇠 방패는 도저히고칠수가없어보였다. 가운데가 크게 벌어진데다,얼마나 험하게 다뤘는지 사방으로 균열들이 뻗어있었다. 정말 부서지지 않은게 용할정도였다.

전체 내구가 38인데 남아있는 내구는 달랑 2였다. 가만히 놔둬도 시간이 지나면 부서질것인데,수리한답시고 망치를 갖다댔다간 바로 박살 날것이다.

"저기,이건 저도 자신이 없는데요"

아무리 돈이 탐난다고 해도 할수 있는게 있고,할수 없는게 있다.

"왜요? 안심하고 완벽수리해준다면서요?"

"그래도 이건 상태가 너무 심해서...........나 아직 수리 스킬이 8랭크밖에 안된다고요"

유한의 솔직한 고백에 구경하고 있던 유저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야,들엇냐? 수리 스킬이 이제 겨우 8랭크래"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고치지?"

"고쳐 주기 싫으니까 구라치는거 아니야?"

유한은 괜히 말했다 싶었지만,유저들은 저마다 떠들면서도 그의 앞을 쉽게 떠나지않았다. 과연 저 대장장이가 고칠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최악의 무쇠 방패를 맡겼던 유저도 그랬다.

사실 그가 이곳에 오기전 다른 대장장이들을 찾아갔는데,한결같이 고칠수 없다며 고갤 내저었다.

"내구가 다 깎여도 상관없으니까 망가트리지만 말아주세요.제가 처음으로 산 방패거든요.정이들어서 버릴수가없어요"

수리가 실패하면 장비는 파괴되어 사라진다. 유한은 간곡한 그의 눈빛에 마음이 약해져 망치를손에들었다.

"좋아요.나도 장담한건 있으니까 부서지면 돈을 받지 않을게요"

유한은 지금까지보다 몇배의 정성과 시간을 들여 방패를 손질했다. 등과 이마에 땀이 흐르고 팔다리가 저려왔다.

하지만, 멈출수가 없었다.중간에서 그만두면 방패는 바로 부서질것이다.

-방패를 수리하셨습니다.

방패의 내구가 20깎였습니다.

스킬 경험치 5를 얻었습니다.

"오오오!"

주위에 모여있던 유저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터트렸다.

방패의 내구가 많이 깎이긴 했지만, 그래도 부서트리지않고 고친것만 해도대단했기 때문이다.

"님!제것도 고쳐 주세요!"

"아니에요.제것부터 고쳐주세요!돈은 더블로드릴게요!"

유한의 능력이 확실히 확인되자 장내는 먼저 고쳐달라는 유저들로 도뗴기시장을 방불케했다.

"야,저기 구석에 있는 대장장이 말이야.완전 도사더라"

"못고치는 무구가 없데.손만 가져다 대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던걸?"

"에이~설마!"

"정말이라니까.더욱 대단한것은 수리스킬이 8랭크라잖아.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 랭크 갖고 저런 신기를 보인다니 놀랍지안아?"

"나도 그럼 내 칼을 한번 가져가 볼까?"

다소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완벽히 수리만 된다면 결코 아깝지않은 금액이다. 거기다 고치다 내구가 조금이라도 깎이면 가격을 할인해 준다니 밑져봐야 본전 아닌가.

-10명 연속으로 완전 수리를 했습니다.

명성이 15올랐습니다.

'오호,이런식으로도 명성을 주는구나'

유한이 새로운 사실에 감탄하고 있을떄,그의 앞으로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엔 아주 예쁘고 늘씬한 손님이었다.

"무구를 잘 고쳐 준다고 하던데 내 활좀 봐 줄래요?"

'헉!얘는..........'

지금 유한의 앞에 선 사람은 저번에 랑켈산 필드에서만났던 궁수소녀였다. 이름이 시아라고 했던가?

그녀도 유한의 낯이 익었는지 아는척을 했다.

"어? 어디선가 본것 같은데......."

'얘가 까마귀 고기를 처먹었나? 분명랑켈산에서 만났잖아'

유한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왠지 그녀 앞에만 서면 자꾸 심사가 비틀리는것 같앗다.

시아란 름의 궁수 소녀는 유한의얼굴을 뜯어보더니 등짝을 냅다 후려갈겼다.

"끄억!뭐,뭐야!"

"너!강유한이지!"

너무나도 뜻밖의 소리에 유한은 깜짝 놀랐다.

"엥?누구?"

어리둥절해 하는 유한에게 시아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짜샤!누구긴 누구야,얼마전에도 봤잖아.나라고,송채린"

"에엑?"

랑켈산에서 보았던 이 궁수 소녀가 채린이었다니!

유한은 너무나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채린은 그런 모습이 우스웠는지,아님 너무 반가워서 그런지 그 예쁜 얼굴에 환한 웃음을 가득지었다.

"우와!너도 이게임을 하고있었구나!하긴 요새 안하는 사람이 거의없으니까"

아르페디아 온라인이 개발된지 3년.정식으로 서비스를한지는 1년이 조금넘었다. 그동안 여러차례의 크고 작은 패치를 거치며 발전한 이 게임은 국민게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성장했다.

"아무튼 반갑다.강유한,게임에서 아는사람 만나기가 참 어려운데 말이야"

"..........."

"너 뭐하는거야? 나 만난거 반갑지 안아?야,강유한!"

유한이 돌처럼 가만히 있자 채린은 어깨를 흔들어보려다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유한의 몸이 환한 빛이 되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그님의 요청으로 게임을 종료합니다>

유한은 도우미의친절한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캡슐에서 나와 두근거리는 속을달랫다.

오픈베타때부터 해왔지만, 게임속에서 자신의실명이 불리게 된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마주치고싶지않던 채린이었기에 놀람은 더했다.

"아아,어째 이런 일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벌써 2번이나 만났다. 현실에서 만난것까지 합치면 3번이나된다.

앞으로 계속 마주치게된다.

'제길,그건 싫은데........'

어릴적 친구가 싫어서가 아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자신의 한심한 꼴을 채린에게보여주고 싶지않았다.

주위의 시선을 확 끌어당길 정도로 예쁘게 자란채린이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할지,그리고 무슨생각을할지 두려웠다.

"빌어먹을 ,찾아야 될 놈은 안 나타나고!"

알수없는 마음에 속이 울렁거렸다. 주먹으로 벽을 후려쳐봤지만, 분기는 사라지지않았다.

그런데 이 망할놈의 심장은 왜 자꾸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 채린의 환한 미소가 스크린샷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3

"우왓!바츠다,드래곤 슬레이어 바츠야!"

"오!광전사 바츠"

군중속에서 유저들의 감탄과 찬사가이어졌다.

거기엔 놀라움도 뒤석여 있었다. 바츠가 어떻게 되었다는건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킹당했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멀쩡하잖아.장비도그대로고"

유한은 유저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갓다.

해킹을 당하다니.그게 무슨 말인가.

그럴일이 생길리가 없지 않은가.자신의 자랑스러운바츠가 사라지는 일따위 생길리가.......

'응? 근데 여긴?'

돌아보니 이상한곳에 와 있었다. 늘 다니던 사냥터와 마을이 아니었다.

회색빛 하늘과 유리와 강철로 된 차가운 빌딩.딱딱한 아스팔트 속의 이곳은 게임속세상이 아니라 한숨만 절로 나오는 답답한 현실이었다.

'어째서? 왜 이런데 바츠인채로 나온거지?'

유한은 순잔 이해가 되지않아 혼란스러웠다. 이곳이 현실이라면 바츠가 아닌 유한의 모습을하고있어야 옳았다.

그러나 현실속의 사람들은 그에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아니,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모두들 바츠에 대해 모르고 있는듯했다.

'뭐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씁쓸히 웃으며 지나가던 유한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고개를돌리니 저번에 자신을 떡이 될때까지 두들겨 팼던 비곗덩어리였다. 캐릭터명이 라스트모히칸이라고 하던가 ?게임에서도 한번 보았다.

"뭐야,새꺄!눈깔이 삐었어?"

곧장 비곗덩어리가 큰지막한 주먹을 날렸다.

느닷없이 얻어맞은 유한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곧장일어나 비곗덩어리를 쏘아보았다.

자신은 지금 강유한이 아니라 바츠다. 어째서 바츠의 모습으로 현실에 나올수있었는지 모르지만,마음만 먹으면 저런 비계 정돈 깊게 베기 한방에 쪼개버릴수 있었다.

"못할걸? 넌 바츠가 아니니까"

"뭐?"

비곗덩어리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유한에게 비곗덩어리는 말을 덧붙였다.

"니가 무슨 바츠야.넌 초짜 대장장이일 뿐이라고"

그리고 비곗덩어리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크니스 액스를든 전사 라스트모히칸의 모습으로,그리고 유한의 모습도 변했다.

바츠의 모습이사라지고,어느새 대장장이 지그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뭔지 몰라도 사실 이게 맞았다. 바츠는 이미 삭제 되었지 않았던가.

"젠장!초짜 대장장이라고 네놈 따위에 당할줄 알아?"

유한은 허리에찬 검을 뽑아들었다.그러나 비곗덩어리는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비웃기만 했다.

"초짜 대장장이도 아니지,넌 쓸모없는 퇴학생이니까"

"뭐,뭐야 이자식이!"

비곗덩어리는 또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몇배는 더 크고 무시무시한 랑켈산의 필드 보스 레이징 보어의 모습으로.

그에반해 유한은 지그의 모습도 잃어버렸다. 남은것은 구겨진 셔츠에 추리닝 바지를 입은 추레한 강유한의 모습뿐이었다.

"이제 알았냐? 니 원래 모습은 그런거라고"

"이 빌어먹을 돼지가!"

유한은 주먹을 불끈 쥐고 비곗덩어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강유한으로선 레이징 보어가 된 비곗덩어리를 이길수 없다. 비곗덩어리의 돌격에 유한의 몸은 하늘높이 튕겨졌다.

그리고 속절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4

쿵!

"으악!"

유한은 머리를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이 밝아지더니 사방이 똑똑히 보였다.

책상에 책과 노트는 아무렇게 쌓여있었고,컴퓨터와 캡슐 배선은 엉망으로 늘어져있었다. 바닥엔 먼지 뭉치와 휴지조각,빈패트 병이 구겨진 옷가지와 함께 나뒹굴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지저분한 자신의 방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꿈이었나?"

하늘까지 날았다 떨어진다 싶었는데,실은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진것뿐이다.

한심스러운  개꿈.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게임 속에서 정체를 들킨것 때문이라면 망할 비곗덩어리 녀석보다 채린이가 나타나는게 마땅하지 않는가.

'아니,채린이보다야 비곗덩어리 쪽이 낫지뭐'

채린이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전사 바츠,아니 대장장이 지그로서 채린에게 알려지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자꾸 만나다 보면 그녀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알게 될것이다

그는 채린이 자신에 대해서 몰랏으면 했다.

앞으로도 모를것이다. 이제 다니는 학원도 옮길것이고,게임을 해도 쉽게 마주치긴 어렵게 될테니까.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몇년만에 만난 친구를 외면해야 한다고생각하니 한심스럽고 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망할놈의 현실 같으니.

"젠장, 이따위 꿈을 꾸다니.대체 뭔일이 터지려고 그러는거야"

오늘은 즐거운 공휴일인데말이다.

과연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을모양인지,방문이벌컥 열리며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오셨다.

"일어났니?"

"예 ,뭐 같은꿈을 꿔서 잠이 확 달아났어요"

"다행이구나 .일어나서 씻고 방청소 좀하렴.거지가 보면 자기 소굴이라고 달려오겠구나"

확실히 유한의 방은 귀신 몇은 살고 남을만큼 너저분했다. 이나이대의 사내아이라면 대부분 방치우는것을 소홀히 하게마련이지만, 유한은 좀 심한 편이었다.

"그리고 밥 먹고 슈퍼에 가서아버지 좀 도와드리렴"

"현이는요?"

강유현.유한의 동생이다.

"친구들이랑 만날거라고 아침 일찍 나갔다"

"자식,휴일인데도 얼굴 보기 힘드네"

"네가 만날 관짝 안에 들어있으니 그렇지"

어머니가 맘에 들지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녀가 캡슐을 관짞이라 비하하는데는이유가 있었다.

초창기 캡슐과 가상현실 프로그램들에 문제가 있어 안에서 탈진해 죽은 사람들이 더러 나왔기 떄문이다. 

강제 종료 프로그램이 도입된거도 다 그 때문이었다.

거기다 실제로 캡슐을 관으로 쓴 사람도 있었다. 가상 현실에 푹 빠져서 죽어서도 계속 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던가.9시 뉴스에 나와 한때 이슈가 된적이 있었따.

"너도 이제 그 관짝에 그만 매달리고 밖으로 좀 쏘다니고 그래라.니가 무슨 드라큐라니?"

"알았어요.알았어"

유한은 어머니와 괜히 다투고 싶지 않았다.어머니 언성을 높이는짓을 하느니 대충 대꾸해주고 시키는대로 하는척하다 돌아오면 편하기 때문이다.

"좀 치우긴 치워야겠군"

유한은 옷가지를 발로차서 구석으로 밀어넣고 츄지조각들을 집어다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연 순간 캡슐안에 나뒹굴고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예,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강유한 고객님.드림맥스 고객 사담실의 실장 양호식입니다"

"아,안녕하세요"

누군가했더니 전에 전화했던 게임사 직원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고객님 댁으로 최신형 캡슐을  배송해 드릴 예정입니다. 오늘 자택에 계시죠?"

휴일인데도 드림맥스 직원들은 쉬지않는 모양이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접속율 1위 게임이 되었고,해외 진출도 순풍에 돛을 달고 있다는데 휴일이라고 느긋할 순 없을것이다.

그러나 유한에겐 그들의 그런 성실함이 왠지 짜증났다.

'제기랄,그런 성실함을 계정 관리하는데나 발휘해 주지'

해커가 유명캐릭터를 다 털어가고 지우는데도 멍청하게 방관하고 있었던 그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그러나 일이 이왕 이렇게 된거 받을건 확실히 받아내는게 좋았다.

"오후 5시쯤에 자택으로 배송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예,그렇게 해주세요"

전화를 끊은 유한은 방을 대충치우고 세수를 했다. 그리곤 딱딱한 식빵 한조각을 늦은 아침 삼아 질겅이며 아버지 슈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네입구에 '행복마트'라고 간판이 달린 가게가 바로 유한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총맞아죽던 해에 세웠다는 가게인데,중소 규모라도 오랜 단골이 많아 그럭저럭 장사가 잘 되고있었다.

대형 마트의 공습에 작은 슈퍼들이 차례로 문을 닫는 추세에 적자를 보지않는것만 해도 어디인가.

"허허,우리 구석퉁이 아드님께서 웬일인가?"

각진 얼굴에 후덕하게 생긴 아버지가 유한을 반겼다.

"엄마가 가게일좀 도와주래요"

유한의 아버지는 마침 일손이 필요했는데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청소좀 해라.저 뒤의 물건 좀 정리하고"

"왜요? 이만하면 깨끗하구먼"

"뭐가 깨끗해.저기 구석에 먼지 안보여?"

아버지가 가리킨 곳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곳이었다.

그런곳까지 알뜰히 닦으라 하니 유한으로선 귀찬은 노릇이었다. 하긴 아버지의 이런 근면함덕분에 이 작은 가게가 장사가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만날 그러지 말고 청소 로봇하나 사요.요새 성능 좋고 똘똘하고 가격도 싼게 얼마나 많은데"

"인마,그런 기계덩어리는 아무리 그래도 사람 손을 못 따라가는 법이야.조금만 움직여 주면 될일을 갖고 뭘 로봇을 사고 말고해?"

"편하니까 그러죠"

"그런걸 보고 게으르다는거야"

21세기문명 이기들을 거부하는 아버지에게 더이상어떤 설득도할수 없었다.하라는대로 묵묵히 걸레질을 할수밖에.

"그런데 너 아직도 아르 뭔가 하는 게임을 하고 있니?"

"많이는 안해요"

물론 거짓말이다. 유한은 요즘 지그를 키우는맛에 푹 빠져 하루 대부분을 캡슐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해커를 잡기위해 시작한 대장장이였지만, 요령을 터득하고 스킬을 높이면서 점점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 해커를 잡은 뒤에도 대장장이로 쭉 게임을 할지도.......

"작작해 인마.아버지도 너만할때 온라인 게임에 미쳐서 광렙으로 밤낮을 세웠지만 아무것도 얻은게 없엇어"

유한의 아버지는 온라인 게임 1세대였다.

2D와 3D온라인에 황금 같은 청춘을 바쳤지만, 남은것은 폐인이라는 타이트뿐.서른이라는 나이에 아무것도 손에 쥔것이 없이 살벌한 세상에서 생존 경쟁을해야했다.

그나마 가업을 이어받아 이정도까지 이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그는 아들도 자신처럼 되길 바라지 않았다.

유한의 나이라면 아무리 코스에서 이탈해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값진인생을 만들어 갈수 있었다.

"디지털로 만든 세계가 아무리 좋아도 현실보단..........어서오십쇼!"

유한에게 충고를  하려던 아버지는 가게 안으로 손님이 들어오자 곧장 깍듯한 태도로 맞아들였다. 좀전에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던 것과는 180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유한은 그런 아버지가 불만이었다. 아무리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약삭 빨라야 한다지만,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애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이 달가울린없다.

'가만!저 녀석은!'

가게로 들어온 손님을 본 유한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문 이니셜이 찎힌 티셔츠에 건빵 바지,허리에는 얼룩 재킷을 질끈 묶었다.

밀리터리 풍의 헐렁한패션보다 눈에 들어오는것은 뚜렷한 이목구비에 생기가 넘쳐흐르는 자태.

유한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얼마전에 게임에서 만났던 어릴적 친구.

바로 송채린이었다.

                                 BY R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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