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1
분노와 혼란에서 정신을 차린 유한은 제일 먼저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서비스하고 잇는 게임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네,주식회사 드림맥스입니다.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밝은 목소리의 여자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저기,게임을 접속했더니 캐릭터가 이상해져서......"
숫기가 없는 유한은 더듬거리며 일주일만에 게임에 접속했더니 계정이 마치 초기의 상태로 돌아간것 같다는 설명을 장황히 늘어놓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고객님"
뭔가 알아보는듯하더니 상담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고객님 계정은 이상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이상이 없다뇨?"
"캐릭터를 나흘전에 생성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무슨 소릴 하는겁니까!바츠는 오픈 베타 때 만든 캐릭터라고요!바츠라고 하면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그런데 사일전에 생성했다니!대체 무슨 귀신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겁니까!"
흥분한 유한은 더이상 더듬거리지도 않았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선 '용자의 집'이라 하여 최초,최다,최가의 기록은 물론이고,게임상에 일어난 여러 특이한 사례들을 꼼꼼히 모아서 관리하고 있다.
바츠가 홀로 드래곤을 잡은 전과 역시 용사의 집에 당당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4일전에 캐릭을 갓 생성했다니 이 무슨 망언인가.
"죄송합니다,고객님.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상담원은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한참 동안 자판을 두들기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유한은 잠시후 청천 벽력같은 소릴 들었다.
"고객님.고객님꼐서 말씀하신 전사 바츠는 닷새전에 삭제되었습니다"
"뭐라고요?"
상담원의 말에 따르면 사정은 이랬다.
원래 유한이 키웠던 전사 바츠는 5일전에 정식으로 삭제되었고,나중에 다시 같은 이름으로 새로운 캐릭터가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난 삭제 안했어요!시골 외갓집에 가 있느라 게임에 접속조차 못했다고요!내가 미쳤어요 ?정성 들여 키운 캐릭을 왜 지웁니까!"
"하지만 고객님,데이터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담원은 몇번이나 확인해 보았지만 분명그랬다.
유한은 어이가 없어 숨이 턱 막히는것 같았다.
이건 잘못되었다.
잘못되어도 매우 크게 잘못되었다.
그때 유한의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해킹!'
이 상황에서 유추할수 있는것은 해킹밖에 없다.
아이템의 현금 거래가 음양으로 횡행하면서,온라인 게임에 해킹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아이템을 해킹당한 고레벨 유저가 한순간에 파산하고,애지중지하는 캐릭터마저 삭제되어 게임을 접는 사람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각 게임사에서는 해킹에 대비하여 강력한 보안 프로그램과 방화벽을 구축했지만, 찌르는 창끝을완벽히 막아낼수 없었다.
그나마 캡슐을 이용한 가상현실 게임들은 사정이 나았다. 음성이나 지문, 홍채를 이용한 접속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안전성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역시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보안 장치나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면,비웃는듯이 해킹 기술도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가상현실 게임 접속 순위 1위로 올라선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주가가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 이에 아이템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가는 주이었고,현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과저에서 하나둘 해킹다하는 유저들이 나타났다.
유한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이들의 하소연을 본적이 있다.보고나서 그냥 '남의일'이라고 생각했는데,이게'자신의일'이 되어 버릴줄이야.
"이,이건 해킹이에요!누가 멋대로 접속해서 내 캐릭터를 지운거라고요!책임져요!회사에서 책임지라고요!"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린 유한은 강짜를 부리기 시작했다.
"고객님,책임을 지라니,무슨 말입니까?"
"무슨말이긴!회사 컴퓨터가 해킹을 당했으니 책임을 져야죠.설마 내가 지웠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죠?"
캡슐을 인터넷에 연결해 주는것은 유한의 컴퓨터다.
거기에는 게임사 드림맥스가 제공하는 캡슐 보안 프로그램은 물론,유료 백신이 깔려있다. 왠만한 바이러스나 악성 스파이웨어는 침투할수 없다.
유한은 드림맥스 쪽에서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가 털린것이라 확신했다.
설사 미지의 해킹 프로그램에 의해 내 컴퓨터가 뚫렸다 하더라도 게임사의 보안 프로그램을 깐 이상 그 책임은 게임사에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게임내에서 유명한 캐릭터가 지워지는데도 아무런 물음이나 확인을 않는다는게 당최 말이나 되는가!
"고객님,고객님쪽에서 개인정보를 소홀히 하신듯한데,이점은 저희가 책임져 드릴수가 없습니다"
"아,진짜 내가그런게 아니라고 그러네!"
"저희 회사는 고객님들의 계정을 보호하기 위해 최고의 보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무조건 내 잘못이라는겁니까?"
"일주일 동안 외부에서 저희 회사 서버를 침투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회사에 책임이 없으니 복구가곤란하다는 말이었다.
상담원의 설명에 유한은 꼭지가 도는것 같았다.
상당한 시간과 돈,열정을 게임에 투자한 고객을 어찌 이리 매정하게 대할수 있는가.
"시끄러!어쩄든 난 아무 잘못 없으니까 내캐릭이나 살려줘!안 그럼 고소할거야!빨리 원래대로 복구 시켜 달란 말이야!"
"뭘 복구해,이놈아?"
유한의 목소리가 컸던지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아들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획 낚아챘다.
"여보세요.그깟 캐릭터 안살려도 되니 염려마세요.이놈도 이제 정신차리고 공부할겁니다"
"엄마!뭐하는거야!그게 어떤 캐릭턴데!"
유한이 펄쩍 뛰었지만,어머니 김여사는 눈썹하나 까딱하지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큰 손바닥으로 아들의 등판을 후려갈기며 잔소리를 기관총처럼 퍼부었다.
"이놈의 자식!어미가 공부하라고 캡슐 사 줬지 오락하라고 사줬니!공부도 안하고 허구헌날 그 아에 틀어박혀서 노닥거리기나 하고,게임을 하면 돈이나오니 아님 하다못해........."
어머니의 잔소리는 1시간동안 계속되었다.귀 따갑게 이어지던 잔소리의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한번만 더 쓸데없는짓 해봐! 그땐 아예 캡슐을 고물상에 팔아버릴테니까!"
"엄마!"
"시끄러워!얼른 밥먹고 공부나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가막히다 못해 탁 풀려버린 유한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2
미치고 환장하는것은 유한만이 아니었다.
드림맥스에서도 바츠가 삭제되었다는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관련 직원들이 총출동해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시시껄렁한 캐릭터 하나 날아갔다면 별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드래곤 슬레이어로 명성이 자자한 바츠가 날아갔다는것은 큰문제다. 그것도 바츠 유저가 뜻하지 않은 삭제였다지 않은가.
"외부에서 해킹했을가능성은?"
부사장의 질문에 보안실 실장과 팀원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지난칠일간 외부에서 회사 데이터로 침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캐릭터가 삭제된것은 5일전. 그렇다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바츠 유저의 데이터가 해킹당한건 아니란 소리다.
"그럼 다른 경우와 같은건가?"
"유저 본인도 모르게 개인정보를 흘렸을겁니다"
부사장의 질문에 고객 상담실의 실장은 뻔하지않겠느냔 표정을 지었다.
귀찮다고 여러곳의 계정 아이디와 비밀 정보를 통일해 쓰거나,뭐가 준다는 피싱 메일에 낚였다가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것이다.
"흠,유저쪽에 문제가 있다면 복구는 곤란하군"
설사 유저에게 문제가 없더라도 복구를 해줄수는 없다.
회사의 실수가 명확하지않은 상태에서 인심쓴다고 복구를 해줬다가는 자칫 '게임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며 오해를 살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회사의 신임도가 추락할것은 자명하고,해킹당했는지 확실치 않은 유저들까지 벌뗴같이 달려들어 복구해 달라고 나설수 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긴 그렇습니다. 바츠라면 꽤 유명해서 말이지요.유명한 캐릭터가 날아갔다는데 유저들 사이에 말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냥 적당히 무시하면 돼"
부사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적당히 무시하다니요!부사장님,이건 심각해질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일로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탕!
부사장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치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부사장은 방금전 이야기한 직원을 노려보며 말을 건넸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이 재미가 없나?"
"예? 그,그럴리가 있습니까,얼마나재밋는데요"
아부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가입자 수천만명,게임접속 순위1위가 그냥 된것은 아니다.
게임을 구상하고 제반 기술을 확보한다고 걸린 시간만 10년.
여기에 방대한 필드,탄탄한 설정,수많은 퀘스트,끊이지않는 이벤트......
다른 게임들이 보유한장점에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그 특유의 장점과 깊이를 더했다.
가공성이 짙은 차가운 다른 게임들과 달리 아르페디아 온라인에는 자연스러운 온기가 있었다
그것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끌어들이는마력이었다.
일상의일부가 되고,결코 지겹지않은 즐거움이 되는 게임.
그것이아르페디아 온라인이다.
"그럼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야지!아르페디아 온라인이 유저 하나가 해킹당했다고 휘청거릴 게임 같나?"
절대 그렇지 않다.
해킹당한 본인이라면 모를까 다른 유저들은 조금 불안해할지는 몰라도 게임을 접지 않을것이다.
"이런건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 일이야.우리는 그저 다로 바츠 유저를 위로하고 공지로 이런 멘트를 남기면 그만이라고,'유저 여러분,개인 정보 유출에 주의하십시오'라는"
"그걸로 되겠습니까? 유저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면요?"
그말에 정경욱 부사장은 피식 웃었다.
게임에 있어 항의사례는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바츠와 연고나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럴일 없을걸.바츠는 독불장군이잖아.누가 녀석을 위해 항의해 주겠나?"
길드는커녕 파티도 하지않는것이 바츠다.
게임상 바츠와 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동경해서 전사 캐릭을 키우는 유저들이 있긴 하지만 집단 항의를 해줄 정도는 아니다.
"바츠 유저가 법적 대응을 할수 도 있습니다"
현재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아이템이나 캐릭터의 현 거래 시세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할수 있는 있는일이다. 그러나 정 부사장은 그런 가능성마저도 일축해 버렸다.
"열일곱살이잖아.고삐리가 법을 알아봤자 얼마나 잘알겠어.거기다 소송비가 어디 애들 군것질 값인가? 그리고 우리가 잘못한것도 없잖아.무서워할게 뭐 있다고 그래"
맞는말이긴 하지만 어쩐지 부사장이 사악해보였다.
직원들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정 부사장이 가끔씩 대마왕 NPC를 컨트롤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애들은 그냥 적당히 어르고 달래면돼.그럼 금방 잊어먹고 다른데 열중하기 마련이라고"
"부사자님 말대로 일이 술술 풀리면 다행입니다만..........."
"걱정마,유저들 안떨어진다니까.너무 오냐오냐 맞춰 주는것도 좋지않아.조르는대로 다 해주면 원칙이 무너지고 에미도 엉망이 되 버려"
그렇게 드림맥스는 바츠를 복구하지 않기로 결정지엇다.
드래곤 슬레이어 바츠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3
"겟 더 더티 엔드다.이 코쟁이 새끼야"
버츄얼 시뮬레이터.
캡슐이라 불리는 가상현실 기구의 원래 명칭이다.생김새나 편리성때문에 캡슐이라고 불리고 있다.
원래는 교육과 서비스를 위한 용도로 개발된제품이었다.
현재 유한처럼 가상 영어 마을에 접속하여 회화를 습득하건,저택에서 업무를 보고,회의를 하는 용도로 쓰도록만든것이다. 거기다 가상 도서관에서의 자료 열람이나 가상공간에서의 쇼핑,여행응을 하는데 사용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 가정용 컴퓨터의 운명이 그랬듯,
캡슐은 본래의 목적보다 게임의 용도로 더 많이 이용되었고,제품의 사양도 그 방면으로 발전되어 갔다.
본래의 기능은 상실하지 않았지만 캡슐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대부분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특히 유한 또래가 공부한다면 캡슐을 산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었다.
"하아!미치겠네"
유한은 가상 영어 마을에 들어간지 10분도 안되어 점속을 끊어버렸다.마구잡이로 말을 거는 학습 NPC를 상대하기 힘들기도 했지만,무엇보다 집중이 되지않았다.
집중이 안되는 이윤 단하나,유한에게 있어 분신과 같은 존재인 바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깟 캐릭터 하나가 무엇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말일 것이다.
작년에 학교에서 퇴학당한 유한은 오픈베타 때부터 접했던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푹 빠져 살았다.
때마침 상용화가 시작되며 여러가지 패치들이 단행되어 게임이 훨씬 재미있어졌기에,유한도 캐릭터 바츠로 본격적인 전투와 모험을 즐겼다.
거의 1년동안 모든 시간과 열정을 그 게임에 투자했다. 검정고시 학원을 가는 시간을 빼고는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노가다를 수행한것것이다.
피곤하거나 지겨운 줄을 몰랐다.
현실에서 경험할수 없엇던 꿈과 모험은 물론,스릴과 쾌감이 게임안에 있었다.
유일한 캐릭터인 바츠는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기는 커녕 120%충족시켜 주엇고,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까지 말끔히 날려주었다.
'어째서 그런일이!'
해킹은 그저 남의 일인줄만 알았는데.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했지만, 해킹범을 잡기는 어려울거란 말만 들었다.
유한은 텅빈마음을 당최 추스를 수가없었다. 만화를 보고 TV를 보고,심지어 게을리하던 공부를 하면서까지 잊어버리려 했지만,잊어지지도 않았고,뻥 뚫린 가슴도 채워지지 않았다.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진것 같았다.
현실의 자신과 달랐던 바츠.
그 때문에 애정을 쏟아 키웠던 바츠의 상실은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슬픔과 허탈감을느끼게 해주었다.
'이제 앞으로 뭘 해야 하지?'
17살.고교 중퇴의 한심한 인생.
공부를 잘하는것도아니고,특기같은것도 없다.
친한 친구도 없고,집도 그저 그렇게 사는 수준밖에 안된다.
그런 현실에서 지난 1년간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키우고 투자한것은 가상공간에서의 또다른 자신인 바츠.
바츠가 되어 경험한 모험의 나날 덕분에 시시한 현실을 잊을수 있었다. 비록 가상 세계 안이라지만, 그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광전사라며 두려워하고,드래곤 슬레이어라며 추어올려주는 사람들로부터 명성도 얻었다.
그런 바츠가 사라졌다.이제 소년 강유한은 아무것도 아닌 고교 중퇴생일뿐이다.
"진짜 죽고 싶다.젠장........"
한순간에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줄이야.
이미 죽은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분신이자 생명같앗던 바츠는 사라져 버렸으니까.
삐리리리리리!
유한이 연방 한숨만 푹푹내쉬고 있을때였다.
휴대폰이 울려서 들어보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있었다. 유한은 일단 전화를 받았다.
잘못오거나 쓸데없는 전화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경우엔 그냥 끊으면 그만이다.
"여보세요"
"강유한 고객님이십니까? 저는 드림맥스 고개 상담실의 실장 양호식이라고 합니다"
유한의 눈이 번쩍 떠졌다.
게임사에서 전화를 준것이다.혹시 캐릭터를 다시 살려주려고 그러는것이낙?
"이번에 고객님 사정에 대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저희도 드래곤 슬레이어 바츠가 사라진것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 바츠를 다시 살려주는거죠? 아이템도 찾아줄수 있고?"
사이버 수사대에서 난색을 표한 이상 기댈곳은 회사밖에 없다. 그러나 기대에 찬표정은 금세 시무룩하게 변해버렸다.
"죄송합니다.고객님.이미 삭제된지 24시간이 지났고,약관에 명시된 삼일간의 캐릭터 복구 신청 기간도 지났기 때문에 바츠를 정상적으로 복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그런.........난 해킹당해서 그런건데"
일주일,외갓집을 다녀온 그 사이에 자신도모르게 모든것이 끝장나 버렸다.
그런데 그걸 이해해 주지 않는단 말인가?
"그 점에 대해선 저희도 유감스럽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일단 저희 쪽 데이터베이스는 해킹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보안이 취약한 고객님 컴퓨터를 해커가 해킹한게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건 상관없고요.바츠를 정말 못 살려주는겁니까?"
"예,일단 복구 기간이 지나면 데이터는 자동 삭제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드래곤 슬레이어씩이나 되는 캐릭터인데요"
"기록은 용사의 집에서 관리되고 잇고,계정 데이터 문제는 다른 유저들과의 형편성을 고려해 유저가 삭제 신청한 경우 따로 보관해 두지는 않습니다"
사실 복구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안되면 비슷하게나마 짝퉁을 만드는식이라도 복구는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드림맥스의 입장은 복국 불가였기 때문에 양호식은 회사의 입맛에 맞춰진약관 원칙을 내세우고있었다.
건성으로 생각했던 약관이 이리 잔인하게 적용될줄이야.
유한의 어깨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축 처졌다.
조금전만해도 다시 바츠를 되찾을수 있다는 회망에 부풀어기에 절망은 더 깊었다.
"으으..........정말 복구 방법이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여기에 고객님꼐서는 개인정보를 소홀히하신 책임이 있기 땜누에 저희가 더욱 나서기가어렵습니다"
"전 피해자라고요!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겁니까?"
유한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복구를 못해 주는건 둘째치고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실 유한에게도 책임이 있다.
양호식도 그점을 발견해서 약관과 더불어 유한을 압박해 나갔다.
"저희는 일주일마다 비번을 갱신할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해킹 예방 차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고객님의 계정 비번은 가입한뒤로 한번도 변하지 않았더군요"
"그,그거야 음성이나 홍채,지문 인식 같은게 있잖아요"
"요즘 같은 세상엔 그런것도 쉽게 도난당합니다. 맹신하시는 분들도 많은데,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과거와 비교할수 없는 고해상도 캠카메라를 이용하여 홍채 정보를 뺴 가는 해커도 있다.
피싱 전화를 걸어 음성 정보를 훔치기도 하고,공공장소에 남은 지문을 습득해가기도한다.
더구나 캡슐을 쓴다고 하지만 그런 정보역시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 신호로 입력,저장되고 있다.온라인으로 연결만 되어 있다면 해커는 얼마든지 빼갈수있는것이다.
"약관에는 본명 '본인의 개인 정보 관리 소홀로 인해 벌어진 일은 게임사가 책임을 지지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저희도 봐드리고 싶지만 형평성 문제를 고려하지않을수가 없습니다"
유한은 완전히 할말을 잃어버렸다.
오만하긴 하지만 틀린말도 아니라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 유한에게,양호식은 최후을 일격을날렸다.
"그리고 저번에 고객님과 연결된 상담원의 말로는 어머님이 게임하는걸 반대했다고 하던데요"
10년전,청소년들의 인터넷 홈쇼핑과 온라인 게임중독으로 인해 벌어지는사회문제를 방지하고자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었다.
이에따라 청소년들이 홈쇼핑이나 온라인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동의라는것이 대개 서류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부모님의 개인정보를 훔치고,서명을 꾸며서 회원가입을 성사시키곤 했다.
유한도 아르페디아 온라인 계정을 만들떄 그랬다.
"설사 저희가 복구를 해드릴수 있다 쳐도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시면 손을 써 드릴수 없습니다"
회사의 돈줄을 잘라 내는짓이지 그렇게까지 하는 회사는 없지만,드림맥스는 바츠의 복구불가에 이 사항을 써 먹고 있었다.
'다시말해서 결론은 아무것도 못해준다는 거잖아!'
대체 뭐하러 전화를 한것이지 모르겠다. 안됐다고 위로한답시고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짓은 쓰린 속을 헤집는것이나 다름이 없다.
'쓰벌!그러니까 나보고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거야 뭐야!'
유한은 내심 인터넷에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폭로해 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사라진 캐릭터가 돌아올수 있을까?
분란이 있다해도 드림맥스 같은 거대 게임사가 순순히 굴복할까?
회의적이었다.
더구나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불리했다.
3심까지 가서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의 기분이 이럴까? 악을 쓰고 발버둥을 쳐도 어쩔수 없는 상황.잔인한 현실은 또 한번 유한에게 굴복과 수긍을 강요하고 잇었다.
학교를 그만 뒀던 그때처럼.....
"아무튼 이번사건은 저희 회사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고객님이 당하신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위문품이라도 드릴까 해서 전화를 드린겁니다"
"위문품이요?"
"예.위.문.품입니다"
양호식은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위문품임을 강조했다.
"조만간 최신형 캡슐을 고객님 자택으로 보내드릴겁니다. 그리고 저희 드리맥스의 게임 중 어떤 것이든 육 개월동안 무료로 즐길수 있는특별 쿠폰도 이메일로 보내드리려 합니다"
최신형 캡슐이야 유한도 탐을 내고 있었다.
200만원대의 이 신형 캡슐은 양산형의 부족했던 후각이나 미각 기능을 향상시켰고,촉감이나 통감등,기존의 감각 기능들도 훨씬 편리하고 안전하게 개선시킨 제품이었다.
거기다 그래픽 해상도나 음향 효과는 기존의 것에 비할바가 아니었다.인체 공학적인 공간 배율과 자세 교정 시스템은 보다 쾌적하게 가상 체험을 즐길수 있게 해주엇다.
"그동안 고객님꼐서 저희 게임을 성원해주시고 또 이끌어 주셨기에,저희가 이만큼 신경을써 드리는겁니다"
'치,생색을 내기는'
위문품 지급이라는 핑계로 사태를 여기서 막아보자는 투가 역력했다.
유명 캐릭터가 해킹당한 사건이라면 게임내의 다른 유저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할테니까.
유한이 바츠의 복구를 원하는까닭은 그에게 있어 바츠는 소중한 존재였고 ,동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결코 남에게 의지하지않고,방해받지도않고,스스로의 길을 열어가며,앞을 가로막는것은포악한 레드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깨부숴버리는 용사.
현실에선 결코 맛볼수 없는 꿈과희망.
비록 가상현실에서라지만 ,그 꿈과 희망을 보여주던 존재가 날아갓다.
그충격과 공허함은 어떤 위로의 말이나 위문품으로도 지울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게임이든 새로 하시면 특별한 아이템을 받으실수 있을겁니다"
"됐어요.그딴거"
무엇으로 생색을 내든 지금의 유한을 달랠수 없었다.
희망이 저 멀리 날아가고 나니,의욕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보통 해킹을 당하면 게임을 접는다고 한다.
유한으로선 왜 그럴까 싶었는데,지금 그 기분을 똑똑히 알것 같았다.
"고객님,상심이 크시겠지만, 좌절하지 말아주십시오.고객님이라면 다시 전사 바츠와 같은.....아니,그것을능가하는 존재를 창조할수 있을것입니다"
직원이 뭐라고하건간에 유한은 전화를 거기서 끊었다.
'내가 과연 할수 있을까?'
말로는 무너진 탑을 쉽게 쌓을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 그럴수 있을까?
어려웠다. 몇번을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에게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분신을 잃은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할수 있을까.유한에겐 지금 그 어떤 의욕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바츠의 전설이 끝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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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카스 왕국의 왕도 발덴.
이곳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초보자들의 여러 시작점중에서 가장 많은유저들이 몰리는곳이다.
활기차고 번화한 환사의 도시는 현재 그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NPC들을 제외하고,유저라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리저리 뭉쳐서 심각한 대화를나누고 있었다.
"야,바츠가 없어졌다며?"
"해킹을 당했데,공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적혀 있더라고.개인 정보 관리에 주의하라면서"
"바츠 유저 게임 접겠구나"
광전사 바츠의 사망(?)은 유저들에게 이슈거리가 안될수 없었다. 바츠 유저가 자살을 했다는등,게임사를 상대로 고소를준비중이라는둥.......온갖 루머들이 떠돌았다.
"그만큼 캐릭터 키우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진짜 불쌍하다"
"대체 어쩌다 해킹을 당한거야? 괜히 나까지 불안해지잖아"
"나당장 비번 바꾸러 갈래"
다들 안됐다는 반응 아니면 나도 혹시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뿐.
잠시 동정과 불안감을 느끼던 유저들은 제각기 플레이를 하기위해 이리저리 흩어졌다.퀘스트를 즐기거나,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끼리끼리 모여 잡담을 즐기거나.
'쳇,뭐야.바츠가 고작 이 정도였나'
왕도 발덴의 중앙 광장.
한쪽에서 크게 실망하는 사람이 있었다. 천바지와 면티를 걸치고 허리에는 단검을 하나 달랑 찬 초보 캐릭터.
'지그'
지그는 유한이 새로 생성한 캐릭터였다.
현재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 들어왔는데,이번 사태로 인한 유저들의 반응은 그의 기대 이하였다.
'슬퍼하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너무들 섭섭하네'
원체 솔플만 즐겨서 파티에 들거나 길드에 가입한적이 없었다.
교류가 없다보니 게임상으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유저들이 제 일처럼 가슴아파해 줄거라는 기대는 하지않았다.
다만 아르페디아를 주름잡았던 캐릭터가이대로 사라져서는 안된다,게임사가 복구를 해줘야 한다는 등등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
유한은 그런 유저들의 반응을 등에업고 게임사에 다시 졸라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츠의 일을 동정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이상으로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었다.
용자의 집에 선명한 발자국을 찍어놨으니 그걸로 된게 아니냐는 말을 하는 이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바츠 말고 혼자서 레드 드래곤을 떄려잡을 사람이 있을까?"
"바츠가 상위 50위 정도였으니까,그 위의 랭커들이라면 가능하겠지"
"아냐,그건 랭킹보다 배짱이 중요한거야.그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은'철십자'길드의 '베히모스'님밖에 없을걸"
사람들의 관심은 차츰 다른곳으로 쏠렸다.
이를테면,바츠가 가졌던 아이템에 대해서.
"바츠 말이야.솔플하면서 레어아이템을 꽤 챙기지 않았을까?"
"당연하지.지금 해킹한 놈은 일단 잠수한채 팔 기회만 엿보고 있을걸"
"해커가 아이템을 잘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 바츠야 없어지던 말든 상관없지만 아이템은 사라지면 아깝잖아.기존에 있는것도 가격이 뛰어 버리니까"
"아무렴 ,자원은 재활용해야지"
"그렇고 말고"
'윽!이럴수가!'
유한은 바닥에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이키운 캐릭터가 아이템보다 가치가 없다니.
정말이지 사람들이 태연히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헤집는것 같았다.
누군가 세상에서 사람의 말이 가장 잔인하다고했는데 그걸 실감할수 있었다.
'이 자식들!너희가 한번 당해봐라!너희가 당해보라고!'
절규하는 유한의 머리속에서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자신을 해킹한 녀석의 낄낄거리는 천박한 웃음소리가.
컴퓨터 앞에 앉은 해커가 자신이 힘들게 획득한 레어 아이템으로 배를 부리는모습이 떠올랐다.
키득거리며 바츠를 삭제하는 모습도보였다.
분명히 녀석도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유한이 분명 게임을 접을거라고.
"빌어먹을!내가 그냥 접어버릴줄 알아!"
버럭 내지른 소리에 유한의 옆을 지나가던 유저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한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초급 퀘스트를 건네주는 NPC에게로.
'두고보자,이대로는 안 접는다.어떤 비겁한 새끼인지 몰라도 찾아서 작살을 내 놓을테다!'
한떄 의욕을 상실해 심각하게 게임을 접을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키득거리는 해커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화가 나서 이대로 찌그러져 줄수가 없었다.
비록바츠는 사라졌지만, 유저 강유한은 아직 사라지지않았다.
현실에서 벼랑까지 내몰리긴 했지만,아직 그는 죽지 않았다.
게임을 접지않을것이다. 즐기기만 했던 과거와 다르게 플레이할것이다.
이제 유한에겐 목표가 확실히 잡혔다.
동경하던 자신의 분신을 날려버린 녀석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BY RA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