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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143)

PROLOGUE

"급하다!급해"

"인석아!뭐가 급하다고 뛰어 들어가!"

차에서 내린 유한은 곧장 장으로 들어갔다. 못마땅해 하시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뒤에서 터져나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않았다.

"설마 그사이에 랭킹이 내려가지는 않았겠지"

일주일 전 유한은 어머니에게 끌려 시골로 내려갔다.

그동안 게임 접속을 전혀 하지못했기에 온몸에 가시가 돋는것 같았다.

바에 들어온 유한은 옷을 갈아입자마자 바로 캡슐에 들어가 게임에 접속했다.

<아르페디아 대륙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눈앞이 환해지며 주위의 풍경이 경건한 빛의 신전으로 바뀌었다.게임'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전형적인 접속 대기 화면이었다.

은빛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던 작은 요정이 다가와 물었다.

<게임에 접속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그럼 내가 캡슐에 왜 들어왔겠냐?"

유한이 시골에 내려간것은 외할머니께서 위급하시다는 외삼촌의 전화 때문이었다.

당신이 죽기전에 외손자얼굴을 한번더 보고싶다고 하셨단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어머니의 손에 잡혀 가기싫은걸 억지로 끌려가 외갓집에 도착했을때 밝은 얼굴로 문앞에 서서 반겨주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뵐수있었다.

외할머니께서 거짓말을 하신것이다.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외손자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나.

'제길, 랭킹이 내려가면 다 외할머니 때문이야!'

유한은투덜거리며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곧이어 캐릭터 선택창이 뜨자,유한은 부랴부랴 유일한 분신'바츠'를 선택했다.

<바츠님께서 접속하셨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십시오>

요정의 귀여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유한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청룡 열차를 타고소용돌이 속으로 빠려들어가는것 같아다.

"큭!하여간 이놈의 접속 방식은 당최 적응이 안된다니깐!"

어지럼증 때문에 고개를저은 유한의 눈앞에 바르카스 왕국의 왕도 발덴의 광장이 보였다.

쏴아아아아!

중앙 분수대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 주위로 경비병을 비롯한 NPC들과 막 게임을 시작하건 아직 저레벨이라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초보유저들이 보였다.

"어라? 이상하네.난 분명 천공의 탑에서 게임을 중단했는데......."

게임을 하다 죽었을때가 아니면 종료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것이 상식.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보던 유한의 눈이 번쩍 떠졌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유일무이한 분신 바츠의 복장이 천 바지에 면 티였다.

이건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복장이 아니던가!

"이,이게 뭐야!레드 본 플레이트 메일과 플레임 소드는 어디간거야? 그리고 또 아이템 가방은?"

화염 속성의 방어력 400짜리 레드 본플레이트 메일은 획득하기가 힘든 A급의 방어구다.

플레임 소드는 또 어떤가? 화염의 시전 퀘스트 중에 손에 넣었단 공격력 250의 장비가 아닌가!

화들짝 놀란 유한은 서둘러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허공에 나타난 윈도우 창을 본 유한의 머릿속에 콰르릉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으아아아!이게 어떻게 된거야아아아아아!"

주변 풍경이 컴컴하게 변했다. 쇼크로 충격을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츠 님의 상태가 불안정하여 게임에서 강제로 접속을 종료하겠습니다>

아리따운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비극의 소년 강유한은 게임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강제로 접속 종료 당했다.

가상현실 게임의 최대 문제는 바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중독 현상이다.

초창기의 어설픈 가상현실 게임들과 달리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거의 현실과의 차이를 느낄수 없을정도로 완벽한 가상현실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제작사 측은 유저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가상현실 게임에 중독될것을 우려.발매전부터 몇가지 안전장치를 갖춰놓았다.

그중의 하나가 자동 종료 프로그램이었다.

유저의 정신 상태가 불안하거나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게 되면 프로그램이 강제로 게임접속을 끊어버린다.

"어떻게 된거야!대체 어째서 나의 바츠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바츠라고 하면 상당히 유명하다. 상위 50위권정도의 전사캐릭터로,고집스런 기행과 전과로 명성이 자자했다.

바츠는 길드활동을 하지않았다.

파티플레이도 전혀 하지않았다.

필드든 던전이든 항상 홀로 플레이했다.

그는 혼자 싸우는것에 집착해서 주변의 사람이 호의로 보조 마법이나 힐링을 해주는것조차 싫어했다.

이정도에서 그쳤다면 그냥 독불장군으로 취급을받았을것이다.

그런데 그런 독불장군이 상용서비스와 동시에 등장한 최강의 필드 보스몬스터 레드 드래곤을 단신으로 떄려잡았다.

그것도 HP와 MP를 빵빵하게 채우고 새로 리젠된 레드 드래곤을.

단신으로 드래곤을 잡는것은 게임사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공언했던일.

그러나 바츠는 남들이 보는앞에서 당당히 레드 드래곤을 잡았고,이 상황은 동영상 파일로 찍혀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각 공략 사이트들에 올라갔다.

광전사 바츠,드래곤 슬레이어 바츠.

이후로 바츠는 유저들에게 그렇게 불렸다.

바츠처럼 되겠다는 유저들이 무수히 나오면서 전사 캐릭터의 숫자도 많아졌다.

그러나 바츠가 누군지 아는사랆은 아무도 없었다. 현실은 커녕 게임상에서도 바츠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바츠는 사납고 외로운 늑대였다.

그런데 그늑대가 갑자기 하룻강아지가 되었다.

"대체 어째서........"

유한은 캡슐 안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한대 맞은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자신으 ㅣ유일무이한 분신인 바츠가 완전 빈털터리에 레벨마저 1로 돌아와있는것을 호강니했을때는 심장이 오그라드는줄 알았다.

다행히 심장은 멎지않았지만,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듯했다.

그 구멍으로 휑한 바람이 계속 스쳐 지나갔다.

"뭐,뭔가 착오가 있는게 틀림없어"

우연히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접속되었을뿐일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유한은 다시 아르페디아 대륙에 접속했다.

<접속을 할수 없습니다>

<컨디션이 회복될때까지는 접속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6시간이후에 접속을 하시기 바랍니다>

몇번이나 접속을 시도했지만 매번 같은 소리다.

강제 종료된유저는 6시간내에 재접속이 되지않는다.

이 또한 게임을 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쾅!

캡슐 벽면으로 주먹으로 내리친유한은 방안의컴퓨터로 아르페디아 온라인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게임을 할수는 없지만, 자신의캐릭터 상태를 확인할수 있다.

"크아아악!"

그토록 부정했건만 악몽은 현실이었다.

좀전에자신이 본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홀로 죽을 고생을 하며 획득했던 아이템들은 모조리 사라졋고,돈과 보석으로 가득차 있던 자신의 은행 창구도 텅 비어있었다.

이정도라면 그래도 지랄 발광을 떨지않았을것이다.

아이템과 돈이야 다시 모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유한을 정말 미치게 하는것은 무수한 시간과 노력으로 키워 놓은캐릭터가 완전히 초기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레벨 1.

스테이터스 포인트와 스킬 포인트까지 캐릭터를 처음 생성했을떄 그대로였다.

"크아아악!이럴수는없어!정말 이럴수는 없다고!"

유한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이놈의 자식!이럴수 없긴 뭐가 이럴순 없어? 빨리 방청소나 해!"

미치고 환장할 판에 방문 너머로 어머니의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날은 강유한 게임 인생에서 최고로 비참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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