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240화 (239/258)

240화

‘무슨 일이 있긴 있었어.’

아무 일도 없는데 한 달 동안 밥을 굶고 다녔을 리는 없었다. 대여 수련장에 다녀온다더니 연락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어쩌면 꽤 험한 일을 겪고 왔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지? 중간지역을 건너가기에는 악마들도 부담이 있을 텐데.”

“듣기로는 선악공성에 열리는 게이트를 통해 공격한다러라고. 하긴, 그게 가장 정확한 방법이긴 하니까.”

게이트. 아포피스에게 듣기로 그것은 디아블로가 맹약을 어기면서 만든 것이다. 하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만든 도구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아깝긴 할 것이다.

“그럼 대략 600일 정도 남은 건가?”

“많이 남은 것 같긴 한데, 사실상 그 시간 동안 제대로 강해지긴 힘들겠지. 요새는 스텟 하나 올리기가 고역이라니까.”

안현수 역시 스텟 포인트의 벽에 부딪힌지 오래였다. 포인트를 통한 스텟 상승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운 상태였다.

“어쩔 거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무래도 플레이어들도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모양이던데.”

“필수라며? 그럼 참여 해야지.”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냐? 이번 전쟁이 잘못 되면, 아포칼립스가 뒤집어질지도 모르는데. 악마 진영이 패하면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인 우리라고 무사할 수 없지 않겠어?”

“이기면 돼.”

“뭐…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안현수의 조급함과 불안함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해지려고 노력한다 한들, 사실상 안현수 개인의 강함에는 한계가 있었다. 랭커 플레이어, 혹은 최강의 플레이어라는 피엘조차도 개인의 무력만으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는 없었다. 단지 한 팔 거들 뿐이지.

사실상 이번 전쟁에 가장 큰 관여를 하는 존재는 마왕들, 그리고 대천사들이었다. 마왕이 얼마나 큰 활약을 하며 대천사들이 얼마나 마왕들을 잘 막아내느냐, 그것이 바로 전쟁의 승패를 가로짓는 열쇠였다.

그들에 비하면 안현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이제 꽤 손에 꼽히는 실력자라고 해도, 결국 마왕들에 비해 플레이어들의 강함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성처럼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또 모를까. 피엘 정도 수준만 되어도 천사장들과 맞서 싸우며 전쟁에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우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일행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이 도와줄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다.

**

우성은 자신의 몸 상태가 완전히 나아지는데 사흘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사실 하루 정도만 쉬어도 컨디션 회복에는 충분했지만, 조급하게 움직인다고 해서 이 이상 더 성장의 여지가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흘 동안 꿀같은 휴식을 취한 우성은 도시 밖으로 나가 중간지역의 입구로 향했다. 오른손에는 이미 아포피스를 검의 형상으로 변화시킨 뒤였다.

‘달라진 것 같긴 한데…….’

몸 상태가 한 번 바닥을 기었다가 다시 올라오니 얼마나 강해졌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민첩이나 근력, 체력과 같은 기본적인 스텟들이 오르면 몸이 더 가볍고 강해진 것 같지만 마력과 마기와 같은 힘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상승했는지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마땅한 상대를 찾아보기보다 우성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방법으로 사냥을 선택했다.

다크듐의 사냥터는 웬만한 2회 차 플레이어들도 애를 먹을 만큼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랭커라는 이름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다크듐과 중간지역 사이에 있는 사냥터에서 이루어지는 퀘스트를 받고, 사냥을 하곤 했다.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는 제법 돈이 되고 레벨 포인트도 적잖이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성은 아예 중간지역의 입구까지 들어가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아무런 스킬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이 정도인데, <광폭화>와 <유체화>, <초감각>까지 모두 사용하면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강해질지 짐작이 어려웠다.

‘패시브 스킬인 <마검술>과 <절대적인>까지 레벨이 올랐으니… 공격력 하나는 끝내주겠군.’

무엇보다 우성은 직업 특성인 <절대적인> 스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마검술과 같은 스킬은 레벨 포인트로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었지만, 직업 특성 <절대적인>은 아포피스의 형태가 진화되어야만 함께 레벨이 오르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반(半) 마검에서 진(眞) 마검으로, 진(眞)마검에서 초(超) 마검으로. 마검이 한 단계씩 진화할 때마다 <절대적인>이라는 스킬은 진성을 경악시킬 만큼 바뀌었다.

헌데, 마검이 신(神) 마검으로 바뀌면서 스킬 레벨이 최고치를 찍었다. 스텟 능력치의 총합에 비례해 절삭력이 강해지는 아포피스의 특성상, 스텟 포인트의 상승과 마검의 등급 향상, 그리고 여러 패시브 스킬들만 고려해도 엄청난 성장임은 확실했다.

“슬슬 이쯤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빠르게 중간지역 숲 안으로 들어온 우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감을 넓혔다. 곧 감각을 찌르르 울리는 소름 끼치는 살기가 우성의 살갖을 스며들었다.

“왔군.”

숲 여기저기서 수많은 눈들이 우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늑대와도 같은 눈빛은 꽤 다수로 무리를 이루었다.

중간지역 입구에 서식하는 먹이사슬 최상층의 몬스터. 그들은 우성이 혼자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언덕 위에서 폴짝 뛰어 내린 놈의 무게에 땅이 흔들렸다.

거대한 덩치를 가직 늑대의 모습이었다. 몸길이만 해도 5미터에 달하고, 높이만 2미터가 넘었다. 그런 놈이 무려 다섯.

늑대신. 녀석에게 붙은 이름이었다. 몬스터들 중 최고 등급의 몬스터에게만 붙는다는 신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강함은 짐작할 수 있었다. 늑대신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랭커 플레이어 둘은 덤벼들어야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한 번 우성을 비롯한 일행도 녀석을 만나고 위험할 뻔했다. 벨제뷔트를 만나기도 전에 몰살당할 뻔한 기억은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때만 해도 늑대신 세 마리가 전부였다. 녀석들이 위험한 이유는 거대한 덩치와 힘도 있었지만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셋, 많게는 지금처럼 다섯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

“다섯이라…….”

우성의 앞으로 다섯 마리의 늑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생각에 늑대신들은 우성을 경계했다. 우성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과 마기, 이 두 가지 힘이 그들을 위축하게 만들었다.

“적당하겠지?”

[‘광폭화’ 모드가…….]

[‘유체화’ 모드가…….]

[‘초감각’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우성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엑티브 스킬. 그것이 발동된 순간, 우성은 다시 한 번 껍질을 벗어던졌다.

<초감각>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광폭화>를 통해 더 강해지고 빨라졌으며, <유체화>를 통해 귀신처럼 신묘해졌다.

우성의 검, 아포피스가 마기를 품었다. 우성 본인의 마기가 아포피스에 맺히자 신(神) 마검은 그 마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광폭화>스킬 덕분에 140에 달한 마력 스텟 역시 거기에 힘을 더했다.

두려운 존재. 늑대신들의 눈에 우성이 사냥감에서 포식자로 변했다. 미처 당황할 틈도 없이 우성이 먼저 움직였다.

사악-.

사람의 몸통만한 거대한 늑대신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절단면이 얼마나 깔끔한지 피도 튀지 않았다.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정작 검을 휘두른 우성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 민첩한 늑대신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면서도 어떻게 둠직이고 검을 어떻게 휘두른 건지 적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민첩 스텟 때문만은 아니다.’

<광폭화>와 <유체화> 덕분에 우성의 민첩 스텟은 110을 넘은 상태. 더군다나 마력과 마기를 통해 강화된 육체는 스텟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갑작스럽게 강해진 몸에 적응하기보다는 정신이 몸에 적응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베는 느낌이 없다.’

늑대신의 가죽은 상급 방어구 제련 재료로 사용될 만큼 질기고 단단했다. 잡기가 여간 어려운 몬스터가 아니라 늑대신의 가죽을 벗기면 수천 골드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 늑대신의 가죽과 단단한 뼈를 베는데도 우성은 검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마치 연한 두부를 베는 듯한 기분이었다.

절삭력.

기본적으로 검이라는 장비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검은 얼마나 단단하고, 얼마나 예리한가에 따라 그 가치가 갈렸다. 단단하기로 따지면 아포피스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절삭력 역시 플레이어의 성장 정도에 따라 무한히 성장한다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우성은 아포피스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본적인 마력 스텟이나 마기 스텟이 부족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아포피스의 힘이 지금껏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성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이야말로 아포피스라는 마검의 원래 형태였다.

<대리인>을 제외한 모든 스킬을 발동시켰기 때문인지 늑대신 다섯을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삼 분 남짓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애초에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정적으로 스텟을 올려주는 스킬들은 분명 성장이 후반부까지 이루어진 지금에 더 큰 효력을 발휘하지만, 굳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늑대신 다섯 마리 정도는 십 분 안에 쓰러뜨릴 자신이 생겼다.

“<대리인>은 실험해 볼 상대가 없겠는데…….”

우성은 중간지역에서 <대리인>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신력의 물약도 챙겨온 상태였다.

중간지역의 몬스터들은 하나하나가 위협적이었다. 한두 마리 정도면 몰라도 수십 마리가 달려든다면 <대리인>을 사용할 만한 썩 괜찮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우성은 자기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스텟이 대폭 오른데다가 신(神) 마검이라는 절대적인 무기를 얻은 우성은 중간지역의 몬스터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수백 마리 정도면 몰라도… 그 정도로 몰려들 일은 없겠지, 아마.”

중간지역의 몬스터들은 머리가 비상하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우성이 반복해서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다닌다면 자신보다 강한 맹수라고 생각하고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더 이상 몬스터들을 만날 일도 없겠지.

이 정도라면 대천사급의 존재를 만나지 않는 이상 <대리인>을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성은 스킬을 사용한 상태라면 얼마 전 벨제뷔트를 구할 때 만난 천사장 퀴엘과도 맞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대천사를 만날 일도 없을 텐데…….”

중간지역에 있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대리인>을 사용할 만큼 어려운 상대는 없었다.

다음 번 선악전쟁이야말로 아포칼립스에서의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아포피스는 그 싸움이 무사히 끝난다면 우성에게 한 가지 소원을 더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우성은 신(神) 마검을 손에 쥔 후, 처음 <대리인>을 사용할 때를 대비해 미리 실험을 해볼 생각이었다. 신(神) 마검은 아포피스의 이전 단계인 초(超) 마검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리인>의 스킬 레벨이 최고치를 찍은 이상, 어쩌면 아포피스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힘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전쟁 중에 변수로 작용할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아무런 상대 없이 무작정 <대리인>을 사용하기도 그렇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만 우성은 자기 스스로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없었다.

‘마땅한 상대가…….’

늑대신들의 시체 사이에서 고민하던 우성의 머릿속에 두 얼굴이 떠올랐다.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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