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우성은 두 자루의 검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일행은 우성을 발견하자 우르르 몰려왔다.
“어떻게 됐어?”
“보상이 뭐였습니까?”
혜미와 에든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혜미는 거대한 세 악마 사이에서 우성이 무사한지 걱정되었고, 에든은 벨제뷔트로부터 받을 보상이 어떤 것인지가 궁금했다.
곧 일행은 우성이 들고 있는 검 두 자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자루는 평소 우성이 사용하던 검이었고, 한 자루는 생소한 검이었다. 척 봐도 보상은 검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안현수가 우성이 들고 있던 검을 자세히 관찰했다. 색은 변했지만 그는 그것이 꽤 익숙했다.
“그거 설마, 벨제뷔트냐?”
“그래.”
“마, 마검이요?”
어마어마한 보상에 에든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에든 역시 마검 벨제뷔트를 처음 발견했던 퀘스트에 함께 참여했었다. 회색빛이었던 검이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변해서 돌아왔으니,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만했다.
“보상이 꽤 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보상으로 마검이 걸려 있을 줄이야…….”
“SS등급의 퀘스트니까요.”
지금껏 마검이 퀘스트 보상으로 나온 경우는 모두 S등급의 퀘스트였다. 마검 벨리알, 마검 플뤼톤이 바로 S등급의 퀘스트의 보상으로 나온 대표적인 마검이었다.
벨제뷔트의 마검이라면 SS등급 퀘스트의 보상으로 적절했다. 마검 자체가 S등급 퀘스트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인데다가, 벨제뷔트의 검은 다른 마검보다도 훨씬 높은 등급을 가진 마검이었으니까.
“능력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아뇨, 아직이요.”
말이 나온 김에 우성은 벨제뷔트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마검 벨제뷔트]
* 최고악(最高惡) 사탄이 신이 된 후, 그 이름을 최저악(最低惡) 벨제뷔트가 물려받았다. 사탄, 디아블로와 함께 3대 악마의 이름에 올린 벨제뷔트는 현존하는 악마들 중 최고라 자부할 만큼 강한 존재이다. 벨제뷔트는 마왕의 이름을 하사받고 정해진 운명대로 자신의 검을 만들었다.
* 플레이어의 성장 정도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마검입니다. 플레이어의 근련과 민첩, 마력에 비례해 절삭력(공격력)이 강해집니다.
* 신력을 지닌 모든 존재들에게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 사용자의 체격과 손의 크기에 가장 적합한 크기로 형태가 변화합니다.
* 검을 종속시킬 수 있습니다. 종속 시, 추가 능력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마검은 플레이어에게 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신력 스텟이 높을수록 마검에 대한 반발 효과가 줄어들거나, 소멸됩니다.
ps. 벨제뷔트가 이 검을 당신에게 선물한 이유를 생각하십시오.
같은 마검이기 때문일까? 어딘가 아포피스와 닮아있는 능력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단계 성장형 마검인 아포피스와는 달리 시작부터 능력치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과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라는 특수 항목이 제외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ps는 뭐지?’
아포칼립스에서 꽤 여러 가지 장비들의 능력치를 확인한 우성이었지만, ps라는 항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다른 일행들도 벨제뷔트의 능력치를 확인하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누구도 ps라는 항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아무래도 우성의 눈에만 보이는 모양. 우성은 그 항목이 벨제뷔트의 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군.’
한편, 특히 우성의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다.
‘추가 능력치 확보.’
현재 우성에게 필요한 능력치는 두 가지, 마력과 정신력이었다. 마검 벨제뷔트는 종속 계약을 한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늘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장비를 통해 능력치가 올라가는 경우는 꽤 많았다. 어느 정도 수준 높은 장비는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적든 많은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우성에게 필요한 건 장비에 기댄 능력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능력치 상승 효과였다. 아포피스의 다음 단계는 우성의 마력 스텟이 120 이상일 때 각성되니까. 정신력 스텟 역시 반드시 필요하기도 했다.
‘벨제뷔트가 말한 마력과 정신력을 동시에 올리기 위한 방법이 이건가?’
거기까지 추측한 우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신하기 어려웠다.
‘고작 이 정도로 보긴 힘들겠지.’
우성에게 필요한 마력 스텟은 20. 정신력 스텟 역시 적어도 그 정도는 필요하다. 아무리 마검 벨제뷔트가 대단한 장비라고 해도, 단숨에 그만한 능력치를 올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경매에 붙이기만 하면, 적어도 300만 골드 이상은… 아니, 상상도 못하겠군요. 사실상 마검이 경매에 나온 적은 없으니까요. 마병이라면 모를까.”
한 사람의 플레이어 앞에 두 개 이상의 마검이 돌아간 적은 없었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마검을 자신의 소유로 사용하고 랭커 플레이어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만큼 마검이 시중에 나왔을 때 측정될 가격은 짐작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최고악 벨제뷔트의 이름이 붙은 마검은 디아블로와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검은 따로 쓸데가 있습니다.”
“어디에요?”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팔지는 않을 겁니다.”
우성의 말에 에든과 에릭이 아쉬워했다. 검을 쓰는 두 사람인 만큼, 마검 앞에서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우성에게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번 퀘스트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우성이었다. 그 다음이라고 한다면 안현수를 꼽을 수 있었지만, 애초에 우성이 없었다면 퀴엘을 비롯한 우리엘과의 싸움도 성립이 불가능했다.
우성이 벨제뷔트의 처분을 어떻게 하든, 불만을 제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군다나 따로 쓸데가 있다고 못을 박아뒀다면 입맛을 다시는 정도에서 그칠 수밖에.
“전현승씨.”
“네?”
“혹시 루시퍼를 종속시켰을 때, 고정 스텟이 오르거나 하셨습니까?”
“네. 그런데요?”
“몇 포인트가 올랐는지 알 수 있나요?”
전현승은 우성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만약, 고정 스텟이 올라가는 수치가 높으면 우성이 쓸 게 아니더라도 검을 종속시켜 놓는 게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벨제뷔트를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모든 스텟이 5포인트 정도 올랐습니다.”
“꽤 많이 올랐네요.”
“그렇죠. 그 뒤로 타락자라는 유니크 직업을 얻으면서 모든 스텟이 3포인트 상승했으니, 이 검을 통해서 총 8포인트의 스텟을 얻었네요.”
어차피 직업이야 이미 가지고 있으니 뒤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종속 시 얻는 포인트만으로 만족해야된다는 소리.
‘벨제뷔트라면 10포인트 정도는 얻을 수 있으려나?’
그렇다고 해도 10포인트가 빈다. 모든 게 추측뿐이었지만 우성은 아무래도 장비 설명 끝에 있는 ps라는 표시가 걸렸다.
단순히 종속 시 얻게 되는 포인트만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왜 ps라는 표시가 달려 있을까?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 아무래도 잠시 따로 행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 가려고?”
“그냥, 대여 수련장 하나 빌려서 행동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고, 짧으면 하루, 길면… 글쎄,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
우성은 벨제뷔트의 검의 처분을 혼자 고민해볼 생각이었다. 다만 느낌적으로 꽤 긴 시간이 걸려야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뿐이었다.
우성은 방을 나오기 전, 벨제뷔트가 보여준 웃음이 신경 쓰였다. 동시에 ‘조심하라’는 디아블로의 말도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벨제뷔트는 여흥, 디아블로는… 뭘 원하는지 모르겠군.’
애초에 아스타로스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이상할 게 없었다. 당장 우성이 서 있는 이곳, 신전의 주인이 바로 아스타로스였으니까. 아무리 힘이 센 손님이 왔다고 해도 주인이 쫒겨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아스타로스가 보통 악마도 아니고, 마왕급에 이른 악마가 아닌가?
정작 생각해야 할 건 디아블로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벨제뷔트야 상처를 치료해야하고 우성을 만나야 하니 그 자리에 있어야한다지만, 디아블로는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단순히 벨제뷔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아니, 그건 아닐 텐데…….’
우성은 어쩌면 자신을 보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두 가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럴 리가 없지, 싶으면서도 그렇다면 왜? 라는 의문이 남는다. 아포피스라는 검을 가진 만큼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디아블로가 그런 이유였다면 진작 더 얼굴을 봤을 것이다.
‘모르겠군.’
우성은 잠시 생각을 접기로 했다. 앞으로 디아블로를 볼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관련된 무슨 의미가 있다면 나중에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봤자 디아블로에게 확답을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일행과 헤어진 우성은 지체할 것 없이 곧장 다크듐의 대여 수련장을 찾았다. 다크듐은 다른 도시와는 달리 도시 규모에 비해 수련장 자체가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 수준이 높아, 수련 자체에서 능력치를 올리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후웅-.
수련장에 들어선 우성은 아포피스를 잠시 장갑의 형태로 바꾸고 벨제뷔트를 휘둘렀다. 지금껏 아포피스만 휘두르다가 전혀 다른 검을 휘두르려니 느낌이 이상했다.
조금 더 묵직한, 하지만 조금 더 강한 느낌. 우성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일단은, 좀 더 휘둘러볼까?”
우성은 평소 수련하던 것처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평소 쓰던 검이 아니라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수련하고 몬스터들을 사냥한 덕분에 원래의 폼을 살릴 수 있었다.
그냥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우성은 퀴엘이라는 가상의 적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천사장 퀴엘은 지금껏 우성이 아포피스에게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싸웠던 중, 가장 강한 상대였다.
대리인을 사용하지 않은 우성은 가상의 적이라고는 하나 퀴엘에게 형편없이 밀렸다. 우성은 가상의 싸움에서 죽더라도 쉬지 않고 덤벼들었다. 죽어도 다시 싸우고, 다시 싸웠다. 상상 속에서 수십 번의 죽음을 경험한 우성은 벨제뷔트라는 검에 꽤 익숙해질 수 있었다.
‘다르다. 많이.’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우성은 벨제뷔트이 아포피스와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겉으로 봐서는 아포피스나 벨제뷔트나 별 차이가 없는 검이었다. 벨제뷔트의 손에서 우성의 손으로 들어온 검은 사실상 똑같은 장검 형태로, 무게도 서로 비슷해 눈을 감고 휘두르면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하나, 명백한 차이는 바로 느낌. 검에서 흘러 나오는 기운의 차이였다. 아포피스의 힘과 벨제뷔트의 힘은 크기가 다를 뿐, 그 힘의 근본이 달랐다.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지?’
답이 나오지 않아 우성은 일단 검을 휘둘렀다. 벨제뷔트를 손에 쥐는 순간, 그것은 우성을 향해 자신을 휘두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야 정답이 보일 거라고.
실제로 우성은 벨제뷔트를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검을 다루는 법이 아닌, 검에서 흘러나오는 힘에 말이다. 그것은 아포피스의 힘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였다.
[마기 스텟이 1포인트 상승하였습니다.]
뜻밖의 성과. 마기 스텟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우성에게 필요한 건 다른 스텟이었다.
“허억. 허억.”
몇 시간씩 가상의 적과의 싸움을 펼치니 힘에 부쳤다. 단순히 움직이는 게 아니고, 상상 속에서 수십 번 죽으면서 움직이니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이 들 수밖에.
잠시 숨을 고르던 우성은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아포피스를 바라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우성은 피식 웃었다.
‘쌍검술이라…….’
어쩌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통 검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두 개의 마검을 휘두르는 것도 꽤 위력적일 것이다. 어차피 우성의 싸움은 늘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이었으니. 쌍검술만큼 위력적인 검술도 없었다.
그렇게 왼 손에는 벨제뷔트를, 오른손에는 아포피스를 쥔 순간.
[아포피스의 힘이 벨제뷔트의 힘과 충돌합니다.]
[벨제뷔트의 힘이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두 개의 마검은 서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