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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226화 (225/258)

226화

“커억!”

입안에서 핏물이 튀어나와 밖으로 뿜어졌다. 마기와 동화되어 움직임 우성의 검은 이미 알렌의 가슴을 꿰뚫은 상태였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반응도 할 수 없었다. 퀴엘이라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알렌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정확히 심장을 찌른 일격이었다. 다른 때라면, 아무리 심장이 꿰뚫렸다고 하더라도 몇 분은 버텼을 것이다. 알렌의 생명력은 강철처럼 단단하고, 그의 몸에 깃든 가이아의 힘은 그 생명력에 더욱 힘을 불어넣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을 꿰뚫은 검은 아포피스였다. 아포피스의 검에서 흘러나온 지독한 마기가 그의 심장에 스며들자, 거짓말처럼 그의 생명력은 숨을 멈췄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절명한 것이다.

퀴엘만을 노리던 우성이 역으로 알렌을 노렸다. 퀴엘 역시 알렌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생각에 알렌을 전혀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우성의 시선이 퀴엘에게로 향했다. 조급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느긋했다. 마치 즐거운 사냥을 나서듯.

알렌을 노린 건 우성의 정신력이었다. 아포피스의 광기를 마주하고, 천사들을 향한 살의를 키울수록 점점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 따라 알렌보다는 퀴엘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지만, 서둘러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알렌부터 죽이는 편이 현명했다.

우성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그것을 해냈다. 아포피스에게 자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말이다. 이제 우성이 상대해야 할 적은 퀴엘, 하나뿐이었다.

‘오래 끌면… 어떻게 될지 몰라.’

시간은 짧게. 단칼에 끝내야 한다. 퀴엘을 쓰러뜨린다고 싸움이 다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알렌의 죽음에 퀴엘은 우성을 더욱 경계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알렌을 죽인 우성의 한 수는 퀴엘조차도 반응하지 못했다. 알렌처럼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방금 전 우성이 알렌이 아닌 퀴엘을 노렸다면 적어도 작거나 큰 상처 하나쯤은 입었을지도 모른다.

선수필승. 퀴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방금 전과 같은 수를 사용해 우성이 공격해온다면 제대로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 전에 먼저 우성의 가슴에 창을 찔러넣어야한다.

날개를 펼친 퀴엘의 몸이 우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두 갱의 창이 들려있었는데, 그는 양 손에 든 창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창을 사용할 수 있었다.

우성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검을 꼿꼿이 든 상태에서, 퀴엘이 달려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또렷이 응시했다. 오히려 반응이 없자 달려들던 퀴엘은 어딘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게 되면 반대로 역습을 당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퀴엘은 반대로 가속을 붙였다.

“먹어.”

우성의 입이 열렸다. 섬뜩한 느낌이 퀴엘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두 개의 창을 위로 들었다.

콰득-.

거대한 아가리가 창에 막혔다. 퀴엘의 머리를 씹어 먹으려던 날카로운 송곳니는 바로 우성이 불러낸 ‘나가’의 것이었다. 징그럽게 벌어진 입은 퀴엘을 한 입에 집어삼키려고 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그대로 먹힐 뻔했다. 아니, 그전에 나가의 송곳니에 몸이 꿰뚫렸을지도 모른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때, 비로소 우성이 움직였다.

“어?”

사라졌다. 방금 전처럼 흩어진 마기 속에 녹아든 것도 아닌데, 우성의 모습을 놓쳤다. 퀴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둘로 나가의 입속에서 탈출하고자 창을 크게 휘둘렀다.

나가의 몸은 단단했다. 가죽 역시도 웬만한 창칼에 찢어지지 않을 만큼 질겼다. 하지만 퀴엘의 신력이 깃들어 있는 창은 나가의 입과 피부를 어렵지 않게 찢어냈고, 퀴엘은 그 입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입이 다 찢어졌지만 나가는 죽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에 죽을 만큼 나가의 생명력은 약하지 않았다. 퀴엘은 우성을 움직임을 놓쳤다는 데에서 조급함이 들어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까꿍.”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듬과 동시에, 퀴엘은 고개를 돌렸다.

서걱-.

간신히 몸을 틀어 피해냈다.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날뻔한 걸 면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으아아아아악!”

웬만한 상처는 숱하게 겪었던 퀴엘이었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와 함께 왼쪽 날개가 통째로 베어져나간 것이다.

천사에게 있어서 날개란 일종의 상징이자, 힘의 근원이었다. 날개를 잃은 천사는 힘을 잃는다. 물론 잃어버린 날개의 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 내에는 불가능했다. 적어도 수십 년, 퀴엘과 같은 천사장급의 천사들은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라 날개를 잃는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이었다. 천사들은 자신의 날개를 천신이 내려준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여겼다. 그것이 베어졌다는 것은 곧 죽음이나 동등한 것이다.

“그렇게 충격 받을 것 없어.”

푸욱-.

비명과 함께 눈이 뒤집힌 퀴엘의 가슴에 아포피스가 깊게 박혔다. 검신에 스멀거리며 흐르던 마기가 퀴엘의 심장에 스며들며 그의 몸을 죽였다. 퀴엘은 몸속에 있는 신력을 최대한 끌어내 저항하려 했지만, 날개 한쪽을 잃으면서 힘이 줄어든 데다, 우성의 마기가 워낙 강해 끝내 저항할 수 없었다.

“이방인… 에게…… 내가…….”

죽는 일이 있다면 마왕들 중 한 명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생각해오던 퀴엘이었다. 천사장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고, 웬만한 대천사들보다 더 오랜 삶을 살아온 그였다. 이방인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인간들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생각에 그들을 하찮게 여겼다.

그런데, 그 하찮게 생각한 이방인, 인간의 손에 죽임을 당하다니? 퀴엘은 죽기 직전까지도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촤악-.

심장에 박힌 검을 휘둘러 우성은 퀴엘의 몸을 반으로 베어버렸다. 퀴엘이라면 몸속에 스며든 마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우성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은 언제 끊어질지 모를 만큼 위태로웠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았다.

퀴엘과 알렌. 천사 진영의 가장 큰 전력 중 둘을 죽였다. 알렌이야 플레이어인 만큼 죽더라도 천사 진영에서 다시 부활하겠지만 퀴엘은 아니었다. 엄밀히 따져 그는 NPC에 속하는 존재였으니,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원래 우성은 둘을 쓰러뜨리면 다른 일행을 도울 생각이었다. 세 마리의 나가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았다지만, 우성의 도움이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이야 금세 정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엘과 천사장을 상대로 밀어붙이던 벨제뷔트는 상처가 재발해 연신 밀리고 있었다. 다행히 퀴엘이 우성을 상대하기 위해 싸움에서 빠져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벨제뷔트를 돕는다.’

우성의 눈에 우리엘의 모습이 들어와 박혔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를 보는 순간, 우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욕망은 ‘살의’에 가까웠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녀라 해도 천사들을 향한 우성의 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죽여라. 우리엘을.

아포피스의 목소리가 귓가를 속삭이는 순간, 우성의 몸이 날아갔다. 벨제뷔트를 향해 창을 휘두르고 있던 우리엘은 갑작스럽게 개입한 우성을 향해 창의 경로를 바꿨다.

꽈앙-!

우성의 몸이 볼품없이 날아갔다. 검과 창이 부딪혔지만, 퀴엘을 압도하던 우성도 우리엘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퀴엘이 당한 거군요.”

안타깝다는 듯 우리엘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언뜻 의외라는 어투도 섞여있었다. 설마하니 퀴엘이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그의 검을 가지고 있더래도, 인간 주제에 퀴엘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엘…….”

우리엘에게 당해 벽에 처박힌 우성은 멀쩡했다. 애초부터 우성을 노렸던 공격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경로를 튼 것뿐이었다. 그 정도 공격에 당할 만큼 현재의 우성은 약하지 않았다.

우리엘은 동굴에 들어선 순간부터 벨제뷔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우성이 우리엘을 직접 노리고 달려든 이상, 이제는 우성까지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엘의 시선이 처음으로 우성에게로 향했다. 언뜻 싸우는 모습을 본 것과는 다르게, 직접 눈을 마주친 것이다. 붉고 검은 눈동자를 가진 우성의 눈을 마주한 순간, 우리엘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섬뜩함을 느꼈다. 분명 공포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분명 우성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퀴엘이 왜 당했는지 알 것 같군요. 악마의 힘을 직접 끌어 쓰다니… 그것도, 보통 악마의 힘도 아닌…….”

그 순간, 우리엘을 향해 거대한 주먹이 뻗어왔다. 창을 빙그르 돌려 방어한 우리엘은 자신의 원래 상대를 떠올렸다.

“어디 한눈을 파나, 우리엘.”

“벨제뷔트. 지금의 당신은 제가 알던 벨제뷔트가 아닙니다.”

“상처만 입지 않았으면, 너 따위는…….”

“그건 상처를 입지 않았을 때를 말하는 거죠.”

우리엘 역시 손을 뻗어 벨제뷔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벨제뷔트의 몸을 환하게 감쌌다. 벨제뷔트의 온 몸에 자잘하게 나 있던 상처들이 빛나고, 등에 입은 큰 상처가 조금씩 벌어졌다.

“으으으으…….”

벨제뷔트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수만 년의 세월을 존재해온 벨제뷔트라도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우리엘은 전적으로 벨제뷔트의 상처를 이용해 그를 상대했다.

하지만 벨제뷔트는 역시 벨제뷔트였다. 아무리 상처가 고통스럽고 충격이 커도, 그는 우리엘의 창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창을 부술 듯 힘을 주며,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앙-!

동굴의 벽이 허물어졌다. 단지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용의 뼈로 이루어진 단단한 동굴이기에 이 정도이지, 다른 동굴같으면 진작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력을 이용해 방어막을 만들어낸 우리엘도 충격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상처를 입었다고는 하나, 벨제뷔트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전성기때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우리엘이 만들어낸 방어막정도는 쉽게 부수어졌을 것이다.

“역시… 당신을 먼저 제압해야겠군요.”

“쉽지는 않을 텐데?”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 아닌가요?”

벨제뷔트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벨제뷔트는 점점 더 힘을 잃을 것이고, 싸움은 우리엘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지금 당장만 해도 벨제뷔트는 우리엘에게 밀리는 형국이었으니 말이다.

“난 안중에도 없다, 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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