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221화 (220/258)

221화

쉬이익-!

눈앞을 덮쳐오는 반짝이는 검격에 우성은 오싹함을 느꼈다.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검격보다도 더욱 빠르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성이 상대하던 플레이어들 중 가장 강한 박윤성보다도 훨씬 빠르고 날카로웠다.

우성의 신경이 순식간에 분산되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했음에도 아슬아슬하게 검을 막을 수 있었다.

쩡-!

갑작스럽게 나타난 플레이어의 검은 제법 묵직했다. 더군다나 검을 통해 결코 적지 않은 마력과 신력이 느껴졌다. 박윤성의 검에서 흐르던 백염보다도 훨씬 강한 힘이었다.

우성은 본능적으로 지금 검을 맞대고 있는 플레이어야말로 천사 진영 플레이어들의 우두머리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박윤성이 천사 진영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지금 우성과 검을 맞대고 있는 플레이어야말로 박윤성을 가볍게 찍어버릴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가진 ‘진짜’였다.

새롭게 등장한 플레이어는 우성과 그대로 검을 맞대지 않았다. 우성이 막 힘을 주어 검을 쳐내려던 때, 그 역시 검을 떼어내고 재차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검에서 번쩍이는 빛이 뿜어져 우성의 시야를 가렸다.

우성은 순순히 당하지 않았다. 평소의 우성이라면 모를까, <대리인>까지 사용한 우성이었다. 플레이어의 검에서 빛이 뿜어진 순간, 우성의 검에서도 어둠이 흘러나왔다. 마치 태양 아래를 가린 그늘처럼 두 빛과 어둠은 서로 충돌하며 섞여들었다.

챙, 챙, 까가강-!

두 사람의 몸이 사라졌다 나타났다가를 반복했다. 움직이는 모습을 제대로 쫒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박윤성을 비롯한 랭커 플레이어 몇 명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간신히 눈을 쫒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직접 몸으로 따라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쉽지 않겠는데.’

예상보다 <대리인>을 사용한 힘이 강하지 못했다. 정신이 온전하고,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대신이라지만 좀 더 아포피스의 힘을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의 상대가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다.

상대는 적어도 악마 진영의 최상위 플레이어인 ‘피엘’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1:1로 싸우게 된다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지만, 박윤성을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견제가 있는 상황에서 그를 압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검이 떨어지고, 잠시 거리를 벌렸다.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는 조금씩이지만 우성에게 밀린 나머지 잠시 검을 떼어놓아야 했다. 우성 역시 다른 플레이어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어 계속해서 밀어붙일 수 없었다.

우성은 잠시 주위를 살피며 상대 플레이어를 자세히 살폈다. 목 살짝 아래까지 기른 금발에 다소 느끼한 인상을 가진 서양 계열 플레이어였다. 영국인인지, 미국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 없는 플레이어는 결코 아닐 것이다.

“네가 피엘이라는 플레이어인가?”

잠시 검이 떨어지자, 방금 전까지 우성과 검을 맞대고 있던 플레이어가 물었다. 우성은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래? 악마 진영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가 피엘이라는 플레이어라던데, 그게 잘못 된 이야기였던 건가?”

성검 사탄의 사용자, 피엘.

그는 두 말할 것 없이 악마 진영 최강의 플레이어였다. 마검 디아블로의 사용자이자 붉은악마 클랜의 마스터인 김진성 역시 대단한 실력자로 평가받긴 하지만, 개인의 실력만 놓고 보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피엘을 더 높게 보았다.

아무래도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는 우성의 실력을 악마 진영 최고 수준으로 본 모양이었다. 하긴, 평소 상태도 아니고 <대리인>을 사용한 상태이니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다.

“저 녀석, 얼마 전 선악공성에서 난리를 피운 새로운 마검 사용자입니다. 이름은 이우성. 한국 진영의 플레이어입니다.”

잠시 전현승과 검을 놓고 대치하던 김동훈이 말했다. 우성은 어떻게 자신의 신상정보를 알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더 플레이어’라는 사이트가 있는 이상 더 이상 정체를 감추기는 어려웠다.

우성은 저번 선악공성에서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과 박윤성을 비롯한 여러 랭커 플레이어를 쓰러뜨렸다. 더군다나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학살하고, 그로 인해 선악공성을 악마 진영의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연히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물론,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까지 우성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보는 눈이 많으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마검 사용자라… 그런 것 치고는 실력이 제법인데?”

“그러는 넌 누구지? 실력을 보니 이름 없는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은데.”

“천사 진영의 성검 사용자 알렌이다. 소속 국가는 영국. 클랜은 없다.”

큰 기대 없이 물었는데, 의외로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성 역시 ‘더 플레이어’를 통해 천사 진영의 이름 있는 플레이어들에 대해서는 몇몇 알고 있었는데, 알렌이라는 플레이어는 천사 진영에서도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알렌?”

천사 진영의 최강자. 그는 악마 진영의 피엘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피엘과 성격마저도 꼭 닮아있었다.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는 어느 클랜에도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곤 했다. 일전에 선악공성에서 피엘과 알렌은 한 번 조우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다른 플레이어들의 개입으로 결판을 내지 못했다.

우성은 생각보다 싸움이 쉽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설마하니 이번 퀘스트에 알렌과 같은 플레이어가 개입되어 있을 줄이야. 박윤성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생각보다 훨씬 난이도가 어려워졌다.

‘어서 여길 정리하고 벨제뷔트를 도와줘야 하는데…….’

벨제뷔트의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지만 언제 상처가 재발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대리인>의 지속시간도 한계가 있어, 우성은 점점 더 시간에 쫒겼다.

“그 검은, 아포피스의 것인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다급히 움직이려던 우성의 다리가 우뚝 멈췄다. 타인의 입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던 이름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듣게 된 것이다.

“표정을 보니 맞나 보군.”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마검을 손에 넣었다지만, 이름도 없던 플레이어가 이렇게 단기간에 강해질 순 없지. 창세신 아포피스의 검이 아닌 이상에는 말이야.”

“아포피스에 대해서 아나?”

“알지. 우리 천사 진영의 창세신인 태양신 라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지. 성검 라를 가진 플레이어도 너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햇병아리였던 녀석이거든.”

태양신 라의 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역시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을 가진 플레이어가 천사 진영에 버젓이 활동하고, 천사 진영의 최강자인 알렌과 인연을 맺었다.

인연의 고리가 이어졌다. 우성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차분하던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우성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성검 라?”

“창세신들의 검이야말로 이 빌어먹을 게임을 끝낼 열쇠라고 할 수 있지. 어때,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게 많지? 마검 아포피스의 사용자, 이우성님.”

우성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동요할 만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이 정도 이야기는 피엘도 알고 있던 정보였다. 피엘과 같은 위치에 올라가 있다고 평가받은 알렌이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게 하등 없었다.

“네 검은 천신의 검이라도 되나 보지?”

우성은 마신 사탄의 검을 가지고 있는 피엘처럼, 알렌이 천신의 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천신의 검이라… 그 검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검은 아니야.”

“그럼?”

“성검 가이아. 모든 천사들의 어머니야말로 내 검의 주인이다.”

가이아.

천사들의 어머니이자, 태초의 천사로서 치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였다. 디아블로의 검을 가진 플레이어도 있으니 치천사 가이아의 검을 가진 플레이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외의 장소에서 그 검의 주인을 만난 것이다.

‘천신의 검은 아니라 이거지.’

치천사 가이아도 다른 대천사들에 비해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겠지만, 적어도 천신만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어떤 플레이어가 다루느냐에 따라서 검의 힘도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검의 등급에 있어서만큼은 알렌보다 피엘이 한 수 위에 있었다.

물론,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면 플레이어 개인의 기량에서는 알렌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성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마검 아포피스를 굳게 믿었다.

‘치천사 따위에게 질 순 없지.’

더 이상 대화는 불필요했다. 우성은 내딛은 발에 힘을 주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우성의 몸이 알렌의 앞에 도달했다. 갑작스러운 가속에 알렌이 당황하더니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검이 충돌하며 빛과 어둠을 뿌렸다.

주위에 있던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우성을 견제하고자 나섰다. 하지만 알렌이 혼자가 아닌 것처럼 우성도 혼자가 아니었다.

키아아아악-!

이 동굴의 원래 주인이 울부짖었다. 자신의 집을 헤집어 놓은 수많은 천사들과 플레이어들을 향해 거친 분노를 뿜었다. 뜨거운 용염이 덮치자, 우성을 향해 달려들던 플레이어들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용이 왜 우릴 공격하는 거지?”

“저 새끼, 용 소환수잖아!”

“용이랑 악마 진영 플레이어와 한 편이라는 거야?”

“이거, 약속이 다르지 않나?”

플레이어들은 천사들과 용들간의 약속을 걸고 늘어졌다. 용을 공격하는 건 금지된 일이라 플레이어들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

그 사이, 안현수와 에든, 에릭이 플레이어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용력이 가득 맺힌 안현수의 창이 빙그르르 돌며 바람을 날렸다. 날카롭고 단단한 창끝이 위협하자, 플레이어들은 주춤하며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

안현수와 에든의 실력은 웬만한 랭커 플레이어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뒤쪽에 있는 용의 불길은 오로지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만을 노렸다. 용과 하나가 된 안현수의 위용은 랭커 플레이어 여럿을 비롯한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밀어붙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발, 모르겠다!”

천사 진영의 랭커 플레이어 하나가 용을 향해 마법을 뿌렸다. 불길을 쏘아내는 용의 몸에 거대한 빛의 화살이 무수히 박혔다. 신력을 이용한 공격이었는데, 불길을 뿜어대던 용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키아아아악-!

“쭌아!”

“박윤성씨와 지크씨, 사가라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저 새끼들을 맡아! 천사들도 좀 도와주십시오!”

전현승과 대치하고 있던 김동훈이 지시를 내렸다. 실력 면에서는 박윤성이나 알렌에 비해 뒤쳐질지 모르나, 아무래도 두뇌 회전에 있어서는 플레이어들 중 가장 뛰어난 듯싶었다.

김동훈의 외침에 벨제뷔트를 공격하던 엑시드급 천사들 수십이 안현수와 에든, 에릭을 향했다. 플레이어들만으로도 벅차던 세 사람은 천사들의 합류로 인해 더욱 상황이 힘들어졌다.

“아무래도 다른 일행들이 꽤 힘들어 보이는데?”

알렌이 우성을 자극했다. 다른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상대하기가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대리인>을 사용한 우성은 알렌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성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서 빨리 알렌을 제압하고 가세하지 않으면 다른 일행들이 위험했다. 굳이 알렌의 말이 아니더라도 다급하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아악!”

그 때, 혜미의 비명소리가 우성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