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우성이 돌아온 걸 확인한 혜미는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줄 알았다며 주저앉는 혜미를 보듬어준 우성은 그 다음에 눈물을 글썽이는 혜정을 달래야했다.
에든과 에릭의 반응은 전현승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우성이 대천사를 쫒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은 마찬가지로 우성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의외의 결과라곤 하나 우성을 반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일행이 모두 모이자 우성은 활동 도시를 다크듐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부터 다크듐에서 활동하던 전현승과 에든, 에릭이야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안현수를 비롯한 혜미와 혜정도 우성의 결정에 따라주었다.
1회 차부터 2회 차, 혹은 수준 높은 3회 차 플레이어들이 주로 활동하는 대도시인 만큼 다크듐의 주위에는 강한 몬스터들과 높은 등급의 퀘스트들이 많았다. 안현수나 우성은 괜찮다지만 아직 혜미와 혜정에게는 조금 버거운 장소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성은 혜미와 혜정이 이번 선악공성을 계기로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고 믿었다. 마법의 수준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싸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드루드먼보다는 보다 수준이 높은 다크듐이 이상적이었다.
물론, 결정됐다고 바로 다크듐으로 떠날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게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가장 급한 일이었던 선악공성은 끝났고, 현실에도 신경을 써야했다.
묵고 있던 하멜의 여관에서 대악마 클랜원들은 잠시 현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워낙 오랫동안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던 터라 반대하는 클랜원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우성에겐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할 일이 남아있었다. 아니, 아마도 우성뿐만이 아니라 대악마 클랜원 모두에게 남은 일일 것이다.
“어서 와라, 플레이어 이우성. 오랜만이군.”
“오랜만이긴 하네.”
현실로 돌아가려던 우성은 꽤 오래간만에 ‘소원의 방’으로 향했다. 얼마 만에 이곳을 방문하는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간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행보는 잘 봤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냈더군.”
“반가운 모양이다?”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 어떤 일에서든 난 플레이어의 편이니 말이야. 플레이어 이우성의 성장은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우성은 간혹 생각을 해봤다.
이미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오더라는 존재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도 오더라는 존재를 만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과연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오더를 통해 이곳 아포칼립스를 접하게 됐을까? 아니면 오더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를 통해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일까?
답은 알 수 없었다. 그에 대한 답을 알기위해선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와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포칼립스의 성격상 선악공성이 아니고서는 그럴 기회가 없는데, 선악공성에서 느긋하게 플레이어들끼리 대화나 나누고 있을 일은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 역시 그들끼리 ‘오더’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성은 그들이 부르는 ‘오더’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오더’와 다른 존재일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성의 눈앞에 있는 오더는 누가 보더라도 천사들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으니 말이다.
“이제는 플레이어 이우성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군.”
“그러시겠지.”
“하지만 내 권한으로 플레이어 이우성의 상태는 확인할 수 있다. 정말이지… 상상 이상의 성장속도다. 정신력 스텟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지만, 솔직히 마력 스텟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급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더의 감탄도 이해가 갔다. 우성 역시 이번 디아블로의 퀘스트를 통해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인지는 알 만하군.”
“항상 하던 소리가 있었지.”
“그래. 정신력을 올려라, 플레이어 이우성. 다른 능력이 오른 건 기뻐할 일이지만, 그에 따라서 네 상태는 더 위험해졌다.”
아포피스의 힘이 우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우성의 정신력에 비례해 약해졌다. 그리고 반대로 마력과 마기의 스텟에 비례해서 강해진다는 이야기를 오더를 통해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마력 스텟이 큰 폭으로 오른 지금, 우성의 상태는 이전보다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정신력 스텟이 다른 스텟들보다 우월하게 높았지만, 이제는 마력 스텟이 정신력 스텟보다 더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알아.”
“플레이어 또한 지금 네 상태가 위험하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잘못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리고 네 말대로 내가 여기 온 이유도 그 때문이고.”
“현명한 선택이다.”
오더의 의견과 우성의 의견이 일치한 건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항상 어떤 일을 경정할 때면 오더가 우성을 설득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언제나 한 번 틀린 적이 없어 우성은 대부분 그의 의견을 수렴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우성이 한 발 앞서 오더의 말처럼 정신력 스텟을 올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힘보다는, 아포피스라는 검을 제대로 다루기 위한 안정성을 택한 것이다.
“마력 스텟 100, 정신력 스텟 95. 포인트는… 대천사 다니엘을 죽이고 얻은 보상과 합쳐 77000포인트. 현재 플레이어 우성이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로 대략 30포인트 정도의 스텟을 올릴 수 있다. 어떻게 할 거지?”
30포인트.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스텟의 한계였다. 하지만 이렇게 스텟에 모든 포인트를 투자하게 된다면 남는 포인트는 거의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포인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가능한 5천 포인트에서 2만 포인트 이하까지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는 게 혹시 모를 사망에 대비해서 손해가 적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많은 포인트를 무턱대고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중해야 한다.’
포인트를 사용해 스텟을 올리는 데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움이 따랐다. 지금 당장에는 아포피스를 다루는데 불안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최소한의 스텟으로 안정을 찾을 방안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네가 보기엔 어떻지, 오더?”
“자세한 설명을 바란다.”
“아, 맞다. 내 속을 못 읽는다고 했지. 이런데서는 좀 불편하긴 하네.”
우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지금 내 상황에서 정신력 스텟에 몇 포인트를 투자하는 게 현명할까 해서 묻는 거야. 몇 스텟을 올려야 포인트가 크게 낭비되지 않고 최대한의 효율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
“필요한 포인트는 1000포인트다.”
“……지불하지.”
우성은 짧게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포인트를 지불한 순간, 오더는 우성의 질문에 최적의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스텟 하나하나에 최소 1100포인트 이상을 소모하는 판이었으니 1000포인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정확히 플레이어 우성에게 필요한 정신력 스텟은 110포인트다. 마력 스텟 100포인트보다 10포인트 이상은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10포인트 이상이라… 그럼 만약, 마력 스텟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면?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마력 스텟이 아니라 마기 스텟이 더 높아지게 된다면?”
“마기 스텟 또한 영향이 없지 않겠지만 마력 스텟이 높아지는 경우보다는 위험이 덜하다. 지금 플레이어 우성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마력 스텟과 아포피스의 공명을 통한 자아의 균열이다. 높아진 마력은 아포피스의 힘을 더욱 끌어내겠지만 그만큼 네 정신을 갉아먹을 것이다.”
“결국 마력 스텟이 100포인트가 넘어가면, 거기에 비례해서 정신력 스텟도 올려야 한다는 소리로군.”
“바로 맞췄다.”
우성은 오더의 조언을 듣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성의 머릿속에는 이미 자신의 포인트와 마력 스텟, 그리고 정신력 스텟에 대한 계산이 끝난 상태였다.
“정신력 스텟 15포인트를 올리지.”
“소모 포인트는 27000포인트다.”
“승인한다.”
이미 결심을 굳힌 우성은 27000이라는 포인트를 망설임 없이 지불했다. 몸에 미약한 빛이 비춰지고, 곧 우성은 눈앞이 맑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15라는 스텟이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오더의 말대로라면 10포인트 정도의 차이는 상당히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당장 마력 스텟이 1이라도 오른다면 아포피스의 힘은 그 즉시 우성을 위협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레벨 포인트 전부를 플레이어 특성에 올인(All in)하지.”
“……플레이어 우성의 선택은 파격적이나 안정적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한다. 현재 플레이어 우성이 보유중인 레벨 포인트는 75400포인트다.”
“두 번 말 할 필요 없어. 플레이어 특성 <불굴의 의지>에 올인하겠어.”
우성은 부족한 정신력 스텟을 <불굴의 의지>에 기대기로 마음먹었다. <불굴의 의지>의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 함께 정신력 스텟이 올라가기도 했고, 스킬 자체의 효과에서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면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더 역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의미에서 말한 것뿐이지 우성의 결정을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마 우성의 선택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면 그는 절대 만류했을 것이다.
게다가 포인트가 아닌 레벨 포인트의 사용 권한은 오더가 아닌 우성에게 있었다. 지금 우성이 있는 장소가 소원의 방이기 때문에 오더를 거쳐 포인트를 사용하는 것뿐이지, 아포칼립스 안이었다면 우성의 재량으로 레벨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승인하지.”
[띠링-! 75400레벨 포인트(Level Point)를 사용하였습니다.]
[‘불굴의 의지’의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불굴의 의지’의 스킬 레벨이…….]
[…….]
우성은 눈앞으로 <불굴의 의지>의 스킬 레벨 상승 메시지 3개를 볼 수 있었다. 무려 7만이 넘는 레벨 포인트를 사용했음에도 3개밖에 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성은 충분히 만족했다. 이것으로 마력 스텟의 상승과 함께 깎여나간 체력 포인트가 조금 복구되고, 정신력 스텟 또한 6포인트가 올라갔다.
[능력치]
- [근력 : 73] [민첩 : 74] [체력 : 82] [맷집 : 74] [반사능력 : 60] [마력 : 100] [정신력 : 116] [마기 : 60] [PP : 1860]
: (- 2600p)
우성은 새롭게 변한 자신의 능력치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비록 비주류 스텟이라는 정신력 스텟이지만, 우성의 스텟 포인트는 웬만한 랭커 플레이어들과 견줄 만한 수준에 올라있었다.
‘밑에 소모 포인트가 좀 뼈아프긴 하지만.’
꿈도 못 꿀 만큼 높게만 보였던 100이라는 스텟 포인트를 어느새 두 개나 달성하게 되었다. 정신력 스텟은 선악공성이 끝남과 동시에 세 자리 수를 맞출 생각이었지만 마력 스텟은 사실상 어부지리로 얻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플레이어 이우성의 빠른 성장에 경의를 표한다. 또한, 앞으로 그대의 행보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바를 말하고 싶다.”
“기대?”
뜻밖의 말에 우성은 그간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기대라면, 어떤 기대지? 날 통해서… 아니, 이 검을 통해서 전쟁을 끝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들렸나?”
“그래. 오더, 넌 대체 누구의 편이지? 나 같은 플레이어들의 편인가? 아니면 우리가 악마라고 부르는 존재들의 편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굳이 악마와 천사들의 싸움에 ‘플레이어’라는 인간들을 개입시킨 거지?”
“난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알아. 하지만 이건 포인트를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알아야겠어.”
우성은 한 자, 한 자 힘을주어 물었다.
“오더, 넌 내게 뭘 바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