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갑작스러운 말에 우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디아블로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우성이 가지고 있는 마검 아포피스는 온전한 형태가 아닌, 최종 형태 이전의 형태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우성이 말한 아포피스의 힘을 온전히 다룬다는 뜻은 마검의 최종 형태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로, <대리인>과 ‘나가’를 비롯한 아포피스의 모든 힘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그것을 바라기는 너무 큰 욕심이었다. 당장 그런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일단 아포피스부터 최종 형태로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만 되어도 우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직 그분의 힘은커녕, 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사실 지금 보니 신기할 정도다. 어떻게 너 같은 녀석이 다니엘을 죽일 수 있었는지. 아무리 그분의 힘을 빌렸다지만, 이런 몸뚱이로 어떻게 대천사를 상대할 수 있었을까?”
디아블로의 말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우성은 디아블로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대리인>을 사용하지 않은 우성은 그리 강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아포피스가 초(超) 마검이 되고, 타락천사 루시퍼를 통한 퀘스트를 완료하며 얻은 보상으로 마기가 늘어난 만큼 이전과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강해지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고작해야 준 랭커 플레이어 수준에 간신히 발을 걸치는 정도였다.
그것조차도 우성이 가지고 있는 검이 마검 아포피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어떤 스텟도 100포인트를 넘지 못한 우성은 사실상 준 랭커 플레이어 수준에도 끼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가장 높은 스텟이 정신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적인 전투력은 평가가 더 낮았다.
즉, 마검을 제외한 우성의 순수한 능력치만으로는 백 명이 덤벼도 다니엘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디아블로가 신기해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그분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이런 몸뚱이를 가지고 다니엘을 죽이다니 말이야.”
디아블로가 우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붉은색 빛이 머금어지더니 우성의 눈앞을 흐릿하게 가렸다.
“윽.”
우성은 머리가 지끈거려 눈을 끔벅이며 손을 저었다. 분명 디아블로가 무슨 수를 쓴 것 같은데,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그가 왜 갑작스럽게 이러는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띠링-! 플레이어 특성 ‘불굴의 의지’가 발동합니다.]
우성의 눈앞에 자동으로 ‘불굴의 의지’의 발동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말은 즉, 우성의 순수 정신력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굴의 의지가 발동하자 우성은 한결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줄어듬을 느꼈다.
“호오. 견뎌?”
“이게 대체… 뭐 하는 겁니까?”
“말도 하네. 생각보다는 더 쓸 만하군.”
디아블로는 우성의 머리를 옥죄던 손을 치웠다. 붉은빛이 사라지며 동시에 우성의 머리를 괴롭히던 고통이 사라졌다.
“정신력 하나는 쓸 만하군. 그분이 널 선택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불굴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위험할 뻔했지만 우성은 분명 디아블로가 뿜어낸 붉은색 기운을 버텨냈다. 91포인트에 이른 정신력 스텟과 불굴의 의지라는 특성의 조합은 정신에 타격을 주는 웬만한 힘은 거의 차단할 정도였다.
“하긴, 그분의 힘을 받아내려면 육체적인 힘 보다는 정신적인 힘이 중요하긴 하겠군. 인정하지. 몸뚱이는 별론데, 정신력을 쓸 만해.”
디아블로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되면 우성이 아포피스의 힘을 빌려 다니엘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 주신다면서요?”
“응? 그렇게 라니?”
“이 검에 담긴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성은 아포피스를 디아블로의 앞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디아블로는 아포피스를 이렇게까지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인 듯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검면을 쓰다듬었다.
“그래. 분명 그렇게 말했지.”
“어떻게 말입니까?”
“별 게 있나? 네가 그분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두 가지밖에 없는데.”
디아블로는 꽤 아포피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아포피스뿐만이 아니라 모든 마검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마력과 정신력.”
“그래. 그런데 넌, 정신력에 비해서 마력은 너무 형편없군.”
무어라 반박하려던 우성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78포인트라는 우성의 마력 스텟은 그리 낮다고 표현할 수 없었는데, 조금 생각해 보니 디아블로에게는 기가 찰 만큼 허약한 수치일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우성의 마력 스텟은 랭커 플레이어들과 비교해서 부끄러울 정도였다.
웬만한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들의 마력 스텟은 100을 훌쩍 넘었고, 그렇지 않은 전사 계열 플레이어들도 8~90대였다. 물론 모든 플레이어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번 선악공성에 함께했던 플레이어들 중 우성보다 마력 스텟이 낮은 플레이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78포인트라는 수치조차도 우성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순수한 우성의 마력 스텟은 그보다도 더 아래였다.
“갈 길이 멀다는 건 너도 아나보군.”
“……네. 아직 이 검을 다루기엔 형편없지요."
“그래. 실제로도 넌 이번에도 이 검을 제대로 다루었다고 보기는 힘들지. 결국 정신을 잃은 널 그분이 도와주지 않았나?”
도와주었다?
새로운 말이었다. 우성은 지금껏 아포피스가 자신의 자아를 빼앗아 갔다고만 생각했는데, 디아블로는 그와 달리 정신을 잃은 우성을 아포피스가 ‘도와주었다’고 표현했다.
이미 우성은 아포피스와의 대화로 그가 자신의 몸에 큰 관심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왜 구태여 자신의 몸을 빼앗곤 할까 했는데, 디아블로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갔다.
‘그랬던 건가?’
이렇게 달리 생각해 보면 우성이 아포피스에게 감사할 일이었다. <대리인>을 사용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질 우성을 도와 아포피스가 매번 그를 구했던 것이니 말이다. 우성이 사흘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것도 <대리인>의 효과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정신력도 문제긴 문젠데, 그건 앞으로 어떻게든 될 것 같군. 이번처럼 무리하게 그분의 힘을 빌려다 쓰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뭐, 사실 정신력은 내가 도와주려 해도 도와주기 힘들겠지만.”
“그럼……?”
“듣자하니 루시퍼 녀석의 마기 정수를 얻어냈다더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력도 그렇게 할 수 있겠나?”
[퀘스트 도착!]
이름 : 디아블로의 시련
구분 : 히든 퀘스트(Hidden Quest), 도박
등급 : S
보상 : 1000포인트, ???
* 태초악 디아블로가 내린 시련이다. 태초라는 먼 옛날부터 존재해온 그는 다른 악마들이 가지지 못한 강대한 힘과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당신에게 ‘자신의 마력을 얻어내라’는 시련을 내렸다.
시련을 이겨내면 어떤 힘을 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의 힘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하게 될 경우, 패널티는 죽음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디아블로는 우성과 루시퍼 사이에 있었던 거래를 알고 있었다. 태초악 디아블로는 악마들 사이에서 모르는 게 없는 악마라더니,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우성은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메시지를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히든 퀘스트라면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등급이 높은 히든 퀘스트일수록 얻어내기가 더욱 힘들었고, 보상 또한 그에 비례해서 컸다. 난이도가 꽤 높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우성은 웬만한 퀘스트는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는 무려 S등급이었다. 일전에 루시퍼의 퀘스트로 천사 진영에 갔을 때와 같은 등급의 퀘스트인 것이다. 장기간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이런 등급이 매겨진 걸 보면 아무래도 난이도가 꽤 극악인 모양이었다.
‘구분이 ’도박‘이라…….’
우성은 처음으로 퀘스트 내용 중 구분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퀘스트들이 ‘사냥’이나 ‘토벌’, ‘원정’ 등에 속해있는 반면 이번 퀘스트는 특이하게도 ‘도박’이었다. 그만큼 확률 싸움이라는 뜻이었다.
죽음만이 패널티의 전부가 아니다. 우성은 이 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죽음이라는 패널티만 하더라도 우성에게는 뼈아픈데, 그밖에 패널티가 추가로 주어질 수 있다니. 어느 정도의 보상을 얻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패널티가 생각보다 너무 컸다.
“어떻게 할 거냐?”
고민하는 우성을 디아블로가 재촉했다. 그의 만면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상황이 꽤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우성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루시퍼의 마기를 얻어냈던 순간을 떠올렸다. 몇 시간씩이나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 순간은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괴로운 기억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대가로 결코 적지 않은 마기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그런 보상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해도 다시 한 번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우성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고민이 길군.”
“……고민이 될 수밖에요.”
“하긴.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닐 만하군. 그런 몸뚱이로 루시퍼의 마기를 받아들였으니 말이야.”
디아블로는 우성이 겪었을 고통을 알 것 같은지 고개를 저었다. 허락되지 않은 몸에 대량의 마기를 억지로 주입하는 건 그만큼 큰 고통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력 역시 마찬가지. 더군다나 아무리 마력과 마기가 서로 다른 성질의 힘이라 하더라도 디아블로의 마력인 이상 마기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다.’
우성은 갈등했다.
아무리 루시퍼의 마기를 흡수했었다 하더라도 이번 상대는 디아블로였다. 태초악인 그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더군다나 실패할 경우 패널티는 최소 죽음이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역시 이건 기회였다. 그것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굴러들어온 기회. 어쩌면 이런 기회를 걷어찬 걸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포피스의 다음 형태에 필요한 마력 스텟은 몇이지?’
생각해 보니 아포피스가 초(超) 마검이 된 후, 우성은 다음 단계에 필요한 마력 스텟에 대해 오더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지금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지금 이 상태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아포피스의 다음 형태를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마력 스텟은 좀처럼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젠 포인트를 벌어 스텟을 올리는 방법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번 선악공성으로 포인트로 많이 얻었고…….’
도박.
우성은 아포피스를 한 번 보더니 지금까지 자신에게 찾아온 운을 믿기로 했다.
“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