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90화 (189/258)

190화

푸욱-. 턱-.

우성이 검을 한쪽 날개에 꽂더니, 다른 한쪽 손으로는 다니엘의 날개를 붙잡았다. 저런 상처를 입고 어떻게 움직일 수 있나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날아갈 만큼 다니엘은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 안 돼!”

“안 되긴.”

서걱-.

찌이이이이이익-.

우성의 검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우성의 팔 근육이 크게 꿈틀대더니 그대로 다니엘의 날개를 찢어냈다.

“아아아아악!”

네 쌍의 날개 중, 총 네 개의 날개가 베어지거나 찢겨졌다. 다니엘은 고통보다는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천사의 상징이자 힘의 근원인 날개가 찢겨지는 충격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웠다.

“네 놈!”

“큰 소리 치지 마라. 귀 아프다.”

다니엘은 날개를 크게 펄럭여 우성을 떨쳐냈다. 하지만 이미 베어지고 찢겨진 날개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다니엘의 날개를 절반가량 베어버리긴 했지만 우성 역시 상태가 썩 좋다고 볼 수 없었다. 몸 구석구석 박힌 파편들은 내부를 휘젓고 있었고, 이미 충분히 위험할 만큼 많은 양의 피를 흘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우성의 우세로 보였다. 그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단순한 표정의 문제였다.

다니엘과는 달리, 우성은 웃고 있었던 것이다.

“……제 정신이 아니군.”

“그럼, 이 정도 상처를 가지고 너처럼 울기라도 할까?”

“울긴 누가 울었다는 거냐!”

“지금 네가 말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란 말이지. 날개 좀 찢긴 게 그렇게 억울한가?”

“그걸 말이라고……!”

발끈해서 소리치려던 다니엘은 말을 다 이을 수 없었다. 잠시 말을 걸었던 우성이 그대로 다니엘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다니엘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다시금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미 절반의 날개가 베어지고 찢겨진 다니엘의 방패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쩌저적-.

다니엘의 막은 단 한 번의 검격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힘의 근원인 날개가 찢겨졌기 때문도 있지만, 우성의 검이 그만큼 매서운 까닭도 있었다. 다니엘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고선 양 손을 펼쳐 우성을 가리켰다.

채채채채챙-!

금이 간 막이 깨어지며 순식간에 우성을 덮쳤다. 몇몇 파편은 우성의 몸을 완전히 관통하기도 했고, 몸에 깊숙이 박혀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 상태가 좋지 않던 우성이었는데, 그 부상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성은 미소짓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과다출혈로 정신을 잃거나 죽었을 만한 부상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더라도 고통에 움직이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성은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고통을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진하게 번져있었다.

푸욱-.

그 순간, 우성의 검이 다니엘의 목을 꿰뚫었다. 부상을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그의 검이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은 다니엘에게 닿은 것이다.

“커…….”

“전쟁은 이제 곧 끝난다.”

촤아아악-.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우성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목에 박혀있던 검이 그대로 다니엘의 몸을 찢으며 피를 튀었다.

투둑, 투두두둑-.

다니엘의 핏물이 우성의 몸과 얼굴로 튀었다. 몸이 반으로 베어진 다니엘의 숨통은 곧바로 끊어지지 않았다. 신력으로 똘똘 뭉친 그의 몸은 이 지경이 되고도 잠시나마 목숨을 연명하도록 만들었다.

“이방……인…….”

“아직도 내가 그냥 이방인으로 보이나?”

미약한 생명력을 쥐어짜 손을 뻗는 다니엘의 머리 위로 우성의 발이 올라갔다.

콰득-.

다리에 힘을 주자, 다니엘의 머리가 그대로 으깨졌다. 수백 세기를 살아온 고결한 대천사의 죽음치고는 너무 잔인하고 초라한 최후였다.

그 순간, 우성의 눈앞으로 몇 가지 문구가 떠올랐다. 대천사 다니엘을 벤 보상이었는데, 우성이 그토록 원하던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성은 그런 메시지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으깨진 다니엘의 시체만 내려다보았다.

“힘들군.”

다니엘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우성의 몸이 비틀거렸다. 다니엘 못지않게 우성의 몸 상태 역시 좋지 않았다. 다니엘이 죽었기 때문인지 그나마 몸 속을 헤집던 신력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온 몸에 조각조각 박힌 파편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미 출혈은 정도를 넘어선지 한참이었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머리가 띵 하고 어지러웠다. 그나마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우성의 높은 정신력 스텟과 <불굴의 의지>라는 플레이어 특성 덕분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주인에게 곤란한 상황이겠지?”

우성의 옆으로 다시금 나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다시 한 번 대량의 마기를 사용한 탓인지 우성의 몸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플레이어 특성을 비롯한 정신력으로 겨우겨우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것들 치워라. 아, 가능하면 날개는 챙기고. 주인에게 쓸모가 있을 것 같으니.”

우성의 말에 나가가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선악공성 전체를 휩쓸었던 나가가 고작 심부름 따위에 사용되고 있는 모습은 누군가 본다면 우스울 일이었다.

움직이기 시작한 나가는 다니엘의 시체를 손으로 들어 입 안에 삼켰다. 나가의 뱃속으로 들어간 다니엘의 시체를 보며 우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 흘린 핏자국 정도는 전쟁터 인근인 만큼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좀… 피곤하긴 하군.”

우성은 아포피스를 들어 빤히 바라봤다. 피곤한 얼굴로 씩 웃으며 그는 방금 전 내뱉었던 알 수 없는 말을 다시금 중얼거렸다.

“전쟁은… 이제 곧 끝난다.”

**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라 생각되던 하멜에서의 선악공성은 어이없을 만큼 허무하게 끝이 났다. 최소 사흘 이상, 길면 닷새 이상까지도 진행되던 선악공성이 고작 이틀만에 끝이 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첫째 날 한 시간 만에 전쟁이 종료된 서쪽 지역의 상황과 두 명의 대천사가 마왕 벨리알, 타락천사 루시퍼에 의해 제압된 일이 밑바탕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타락천사 루시퍼의 활약이 이번 선악공성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악마들은 대천사 다니엘을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천사 가비엘을 죽인 것만으로도 이번 선악공성에서의 수확은 충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다섯 명의 천사장들과 무수히 많은 천사들까지 죽이지 않았던가.

우성은 전쟁터에서 꽤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됐다. 가비엘과 싸우면서 잠시 사라졌던 우성이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큰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부상을 입은 우성의 상태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미 출혈량은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이미 대부분 지혈이 되어있어 고비는 넘긴 상태였다.

‘또 정신을 잃었나?’

눈을 뜨지 않은 상태에서 우성의 의식은 먼저 깨어났다. 보이는 게 없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나 왜 쓰러졌는지는 확실히 기억이 났다.

‘신성한 정신력의 물약도 소용이 없어.’

분명 선악공성의 첫째 날에는 <대리인>을 사용했음에도 아포피스에게 자아를 먹히지 않았다. 물론 자아만 먹히지 않고 평소와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리인>을 사용하고 처음 자아를 뺏기지 않은 경험이었고, 우성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이만하면 ‘신성한 정신력의 물약’의 효과는 충분히 보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 날, 대천사를 상대하기 위해 물약을 복용하고 <대리인>을 사용했을 때에는 사실상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아포피스에게 자아를 빼앗긴 채 대천사 다니엘과 싸웠던 건 우성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기분 거지같군.’

자신의 몸임에도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몸을 움직이고 있는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몸이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나른하기도 하면서, 영영 자신의 몸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들었다.

우성은 몸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의 몸을 찾지 못했는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몇 번 이런 경험을 해서인지 금세 다시 몸을 되찾을 거라는 직감이 든다는 점이었다.

-이제 좀 쓸 만하군.

‘남의 몸을 그렇게 마음대로 가져다 쓰니 좋냐?’

-마음대로라니. 이게 다 주인이 능력이 부족해서다. 네 정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아포피스의 말에 우성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정신력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아포피스에게 자아를 빼앗기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첫째 날에는 불안정하다지만 <대리인>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번에 사용한 <대리인>에서는 완벽하게 아포피스에게 자아를 빼앗기고 말았다.

‘정신력이 조금만 더 낮았다면, 몸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겠군.’

우성은 ‘신성한 정신력의 물약’을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 사용한 ‘강인한 정신력의 물약’도 효과 자체가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성한 정신력의 물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만약 우성이 ‘신성한 정신력의 물약’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이번 <대리인>의 부작용으로 몸을 되찾지 못하고, 아포피스에게 몸을 완전히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건 나도 원하지 않다. 부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주인아.

우성은 아포피스의 대답에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아포피스가 자신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만큼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을 빼앗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었다. 우성은 이번 기회에 정신력 스텟을 좀 더 올릴 필요성을 느꼈다. 이미 물약을 복용하지 않은 순수 정신력 스텟이 90대에 오른 이상, 랭커 플레이어의 기준이 되는 스텟이라는 세 자리 수가 되면 그 능력은 훨씬 더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군.”

우성은 귓가에 들리는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우성의 몸이 살짝 꿈틀거렸다.

‘누구지?’

슬슬 몸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잃어버렸던 몸에 정신이 돌아가며 몸을 감싸고 있는 푹신한 느낌이 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제대로 떠 지지 않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느낌상 누워 있는 등이 딱딱한 땅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일어나려 하나 봅니다.”

“쓰러져 있는 걸 주워왔더니 애물단지밖에 안 되는군.”

한 사람, 아니 한 악마의 목소리는 매우 익숙했다. 가느다랗고 살짝 쉰 듯한 그 목소리는 볼락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는 다른 한 명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우성은 볼락이 그에게 말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어, 이제 깼군.”

눈을 떠진 우성의 앞으로 처음 보는 악마의 얼굴이 들어왔다.

‘악마?’

눈앞에 있는 악마의 머리에는 뿔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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