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85화 (184/258)

185화

다니엘의 힘에 의해 날아간 우성은 정신이 없었다. 온 몸에 가득 차 있던 마기와 상반되는 신력이 몸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아프다.’

날아간 우성은 바닥에 처박혔다. 상처를 조금 입긴 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성은 이상하리만치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뭐지?’

-확실히, 이제 슬슬 쓸 만해 졌군.

언제나처럼 들려온 아포피스의 음성이었지만 우성은 평소와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지금껏 들려온 아포피스의 목소리가 울림처럼 머리에서 맴돌았다면 이번엔 마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듯했다.

-어때? 이 힘은 만족스럽나? 부족하지 않나?

‘이제야 좀 마검같은 소리를 하는군.’

지금껏 달콤한 소리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아포피스였다.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힘을 주겠다는 이야기나, 감정을 자극하는 말들보다는 함께 길을 걷는 동반자라는 느낌이 더욱 강했다.

그랬기에 우성은 안심할 수 있었다. 처음 아포피스라는 특전을 얻을 때, 오더는 우성에게 아포피스를 주의하라고 일렀지만 우성은 아포피스를 그리 경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우성 스스로의 높은 정신력 스텟을 믿는 이유도 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포피스는 우성에게 처음으로 힘을 주겠다는 설탕처럼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다. 이전부터 오더의 경고를 기억하고 있었던 우성은 혹시라도 아포피스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장에 뿌리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달콤하다. 아니, 이것은 달콤하다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몇날 며칠 메말라 있던 갈증에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 평소 ‘힘’이라는 걸 갈망한 적은 없었지만 우성은 본능적으로 그것에 끌림을 느꼈다.

무엇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대천사 다니엘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뭐?

‘글쎄. 모르겠군.’

아직까지 우성은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유혹은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마검이 무조건적으로 힘을 제공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힘을 원한다는 대답을 하면, 거기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고민되나? 대체 무엇이?

‘그거야…….’

-내 힘이 너를 해할까봐? 고작 이 정도 힘도 다루지 못하는 건가? 그래서야 네 딸 하나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포피스의 말은 우성의 심기를 자극했다. 딸이라는 역린을 건드리면서도, 실상 앞뒤를 따져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아포피스의 힘을 완벽하게 다루지 않더라도 서현이의 병을 고쳐주는데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 부족해.’

우성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

콰직-.

우성의 검이 다니엘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막에 꽂혔다. 방금 전과는 달리, 부딪히고 더 큰 힘을 주지 않고도 단숨에 대천사가 만들어낸 막을 깨어낸 것이다.

다니엘의 시선이 벨리알에게서 우성에게로 돌아갔다. 벨리알 정도의 수준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막을 이렇게 쉽게 깨뜨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해도 우성이 자신의 막을 깨뜨린 것이다.

“이 녀석이?”

다니엘이 다시금 우성을 향해 신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우성은 크게 검을 휘둘러 다니엘이 뿜어낸 신력을 받아쳤다. 완전히 막아낸 것은 아니지만, 이전처럼 볼품없이 날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 번 자신에게 당한 이방인이 살아 돌아온 것도 놀라운데, 이젠 자신의 막을 깨어내고 공격을 피하기까지 하자 다니엘은 적잖이 놀랐다. 이방인들 중에서는 피엘 외에는 경계할 상대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뭐 하는 녀석이지?”

“글쎄.”

우성은 대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여전히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인 채, 다시 검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그 때, 다니엘과 우성의 사이로 한 명의 천사장이 끼어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던 엑시드급 천사들도 여럿 천사장을 도왔다. 다니엘이 천사장 한 명으로는 힘들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떼거지로 몰려왔군.”

우성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천사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재미있긴 하겠네. 킥.”

그답지 않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우성이 다시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움직이기 시작하려 했다.

“제 정신이 아니군.”

우성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그곳에는 전현승과 리우의 앞에 선 피엘이 혀를 차며 서 있었다.

“검에 먹히기라도 한 건가? 이런 경우는 꽤 오래간만이군.”

“……아직 먹힌 건 아니다.”

“그럼 그 눈에 살기는 뭐지? 당장에라도 날 죽이고 싶어서 안달인 것 같은데. 아닌가?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지 않아? 그리고 너 스스로도 ‘아직’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위험하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신성한 정신력의 물약을 복용했음에도 우성은 자신의 상태가 위태롭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첫째 날 선악공성에서 <대리인>을 사용했을 때에는 정신이 어지럽다거나 위험하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다. 이후 물약의 효과가 떨어진 뒤에는 조금 위태롭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성의 상태는 아슬아슬한 저울주와 같았다. 언제 정신을 잃고 아포피스에게 자아를 먹혀버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다시 자아를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참견 마. 그러다 죽어.”

“참견 할 수밖에. 네가 미쳐 날뛰다가 우리에게 칼이라도 겨누면, 난 널 죽이는 수밖에는 없으니까. 보아하니 감당도 못할 거면서 무리하게 검에게 의지한 모양인데, 한심하긴.”

피엘의 가시 돋친 말에 우성의 입가에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눈을 빨갛게 물들인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자, 꽤 살벌한 표정이 되었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그러는 넌 똥오줌 못 가리는군.”

피엘이 슬며시 검을 들어올렸다. 그의 검에서 스멀스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무리 우성이 <대리인>을 사용한 상태라지만 피엘을 압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태였다.

“진정들 하시죠. 저희들끼리 싸우면 어떻게 합니까?”

마검 사모스의 사용자 리우는 우성과 피엘의 사이로 끼어들어 중재에 나섰다. 리우는 피엘을, 전현승은 우성을 붙잡았다. 지금 당장 두 사람이 싸우면 세 명의 천사장을 상대할 사람이 없어진다.

리우는 천사장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다행히 천사장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여전히 다니엘의 옆을 지킨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우선은 천사장들과 대천사를 잡는 게 먼저입니다. 그 뒤에 싸우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피엘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뭐가 중요한지 정도는 아실 것 아닙니까?”

“……그래. 알지.”

피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흘려 지나가듯 대답했다.

“중요하다면, 이 녀석이 훨씬 더 중요하거든.”

“네?”

“뭐, 그래도 당장 칼질부터 안 하는 걸 보니 아주 맛이 간 건 아니고.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피엘은 우성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일단 한 줄기라도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조금 자극적인 말을 내뱉은 것도 우성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우성 역시 피엘이 자신에게서 관심을 떼자 더 이상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노심초사했던 우성과 피엘의 대립이 금세 끝나자 전현승과 리우는 마음을 놓았다.

“그 지경까지 됐으면, 어디 실력이나 한 번 보여 봐라. 그럼, 서둘러 움직이지. 언제 다른 대천사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피엘은 가능하면 다른 한 명의 대천사가 등장하기 전에 다니엘을 처리하고 싶었다. 우성의 합류로 인해 상황은 다시금 기울어졌다.

세 명의 천사장을 서둘러 제압하고, 벨리알을 도울 수 있다면 다니엘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건방지게 말하는군.”

우성의 주위로 붉은색의 마법진이 여럿 생겨났다. 바로 ‘나가’들을 소환하는 마법진이었는데, 예전과는 달리 우성은 한 번에 여러 마리의 나가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그 덩치를 키운 나가들은 온 몸이 온통 붉었다.

“……어제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우성과 함께 서쪽 지역에 있었던 전현승은 이미 한 번 나가의 모습을 보았었다. 그리고 그 나가 하나하나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나가 하나의 힘은 어지간한 랭커 플레이어들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물론 나가를 불러내면 우성 역시도 힘을 빨리 소진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런 단점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나가는 강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우성이 불러낸 나가는 서쪽 지역에서 보여주었던 나가보다 더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처음 카시엘과 싸울 때의 녹색 피부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피부가 새빨갰다.

육 미터? 아니, 칠 미터 쯤 될까?

나가들은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우성을 바라봤다. 이제는 나가들을 부리는 게 익숙한 것인지 우성은 곧장 손을 들어 다니엘을 비롯한 천사장들을 가리켰다.

“천사장들과 대천사 다니엘을 죽여라.”

우성의 말 한마디에 나가들은 절도있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곤 곧장 몸을 돌려 다니엘을 향해 창을 찔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사이를 세 명의 천사장들이 가로막았다. 거기에 더해 수십의 엑시드급 천사들이 나가들을 향해 창을 내던졌다.

엑시드급 천사들이 던진 창은 나가들의 질긴 피부를 제대로 꿰뚫지 못했다. 간혹 피부에 창이 박히더라도 나가들의 덩치에 비해서 창은 너무 작았다. 무엇보다 우성에게서 지속적으로 마기를 공급 받는 만큼 나가들의 회복력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빨랐다.

“저건… 꽤 쓸 만하군.”

피엘 역시 우성이 불러낸 나가들이 꽤 대단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비록 <대리인>을 사용했기 때문에 함께 강해진 존재들이긴 했지만, 나가들 하나하나는 피엘이라 하더라도 쉽게 볼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엑시드급 천사들이 던진 창을 온 몸으로 맞으며 나가들이 세 명의 천사장들과 격돌했다. 아니, 격돌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콰득, 콰드득-.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손이 나가들의 목을 움켜잡았다. 거인의 손인가 싶었는데, 그 끝을 따라가 보니 몸은 없고 허공에서 뻗어진 손이었다.

-키아아악!

나가들의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두 개의 손에 붙잡힌 나가들은 목이 부러지더니 서서히 쓰러졌다. 나가라면 우성의 마기를 받아 부러진 뼈도 회복시킬 수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성의 마기는 나가들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거대한 손의 등장에 전장은 잠시 멈추었다. 나가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천사장들도, 서로 싸우고 있던 벨리알과 다니엘도, 서로 검을 겨누고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도 모두 한 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나오셨나.”

두 마리의 나가가 목이 부러져 죽었지만, 우성은 오히려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하늘 높이 두 개의 손이 내려온 끝을 보고 있었다.

꽤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얼굴의 그의 눈동자에 가득 찼다.

“가비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