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50화 (149/258)

150화

‘어?’

우성은 눈앞에 보이는 대여 수련장의 천장을 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지며, 머리에 충격이 온 것이다.

‘이게 뭐지?’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우성은 혼란에 빠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무기의 상하관계 덕분에 정진혁의 무지막지한 힘을 막아낼 수 있었고, 움직임은 우성이 더 빠른 상태였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성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윽.”

아직 싸우는 중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머리가 욱신거리며 뭄이 휘청거렸다. 그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고 방금 전까지 우성이 누워 있던 자리로 거대한 도끼가 내려찍혔다.

꽝-!

바닥이 움푹 파이며 도끼날이 들어갔다. 자칫 목이 날아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성은 가슴을 쓸어 넘기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바로 고개를 들어 눈앞을 바라보니 정진혁이 몸에서 마기를 스멀거리며 우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지껄였냐?”

콰득-.

땅을 파고 들어갔던 옥토퍼스가 다시 정진혁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아포피스에게 눌려 있던 옥토퍼스는 어느새 겁을 상실하곤 울음을 그친 상태였다.

“네가 이길 것 같다고? 7회 차 햇병아리 새끼가, 날?”

화가 단단히 난 듯 정진혁의 목소리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날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우성이 한 말이 꽤나 그의 심기를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길 것 같다’는 우성의 말은 그냥 내뱉었던 말이 아니었다. 분명 정진혁과의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우세를 점했다 생각했기에 한 말. 하지만 이렇게 한 순간에 뒤집힌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였지?’

우성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기억을 되짚었다.

정진혁의 몸을 향해 파고들어 아포피스를 찌르려던 때였다. 우성은 분명 정진혁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먹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잘만 하면 승패가 결정 날지도 모를 정도의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검이 들어가지 않았어.’

우성의 눈에 조금 파여 있는 정진혁의 갑옷이 들어왔다. 저곳이 바로 우성의 검이 찔러 들어갔던 자리였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우성의 검은 정진혁의 몸에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갑옷을 조금 꿰뚫는 게 고작인 정도. 정진혁이 걸치고 있는 갑옷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떠나, 맷집 스텟이 장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상 갑옷이 단단해 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처 하나 입히질 못해?’

우성은 ‘맷집’이라는 스텟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근력, 민첩, 마력과 같이 스텟이 올랐다고 직접적인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스텟이거니와 맷집 스텟이 늘었다고 피해를 받지 않는 경우는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성은 정진혁의 스텟 중 108이라는 근력 스텟만 신경 썼지, 맷집 스텟 자체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래 봤자 몸이 좀 단단하겠구나, 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헌데 다른 무기도 아니고, 아포피스를 막아냈다. 그것도 마기를 잔뜩 머금은 아포피스를 말이다.

“너 같은 새끼가, 세 자리 수 맷집을 뚫을 수 있을 것 같냐?”

“……세 자리 수 스텟이 뭐 그리 대수라고.”

“대수지. 한 스텟이 세 자리를 넘었다는 건, 진짜 상위 플레이어에 발을 걸쳤다는 증거니까. 그리고 두 개의 스텟이 세 자리 수를 넘은 순간부터 최상위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걸 누가 정했습니까?”

“정해? 누가 정한 사람이 있을 것 같냐? 세상이 그렇다. 여기가 그런 세상이야. 장비, 스킬. 이렇게 좋으면 뭣 하냐? 결국 그런 것들을 사용한 건 플레이어고, 플레이어가 약하면 아무리 좋은 스킬과 장비도 하수구에 처박히는 거지.”

주절주절 떠든 말들은 결국 자신이 뛰어난 플레이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우성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은 비교적 많이 부족한 플레이어라는 뜻일 거고.

장비, 스킬. 이것만 놓고 보면 우성은 최상위 플레이어를 넘어, 아포칼립스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포피스라는 최상급 마검도 그렇고, 그밖에 다른 장비들도 어느 플레이어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아포피스를 얻으며 유니크 직업인 ‘아포피스의 대리자’로 전직하며, 우성은 사기적인 패시브와 몇 가지 엑티브 스킬을 얻게 되었다. 그 중 <대리인>은 최후의 수단이긴 하나, 사용만 하면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스킬과 장비를 사용하는 건 우성 본인. 장비와 스킬의 힘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진혁의 말대로 우성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세 자리 수 스텟이라…….’

아직 우성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그나마 가장 높은 스텟인 정신력 스텟이 91포인트였고, 다른 스텟들은 80포인트가 넘는 스텟은 전혀 없었다.

하나의 스텟이 100포인트가 넘기 위해서도 그렇고, 두 개의 스텟은 아득하게 머나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결국 정진혁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방금 전의 생각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실력에 자괴감에 빠진 우성과 마찬가지로 정진혁 역시 열이 뻗치긴 마찬가지였다.

‘시팔, 쪽팔리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단순히 스텟 탓만은 아니었다. 처음 엑티브 스킬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는 달리, 정진혁이 가지고 있던 스킬 중 하나를 발동시킨 것이다.

‘광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정진혁에게는 우성의 <광폭화>스킬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 능력, 즉 근력과 민첩 따위의 스텟을 상승시키는 스킬이 몇 개 존재했다. 그리고 정진혁은 그런 스킬들 중 하나를 발동시킨 상태였다.

그것은 바로 <맷집> 스텟을 상승시키는 스킬이었다. 체력 스텟을 갉아먹는 대신, 근력과 맷집 스텟을 상승시키는 스킬은 정진혁의 가장 높은 두 가지 스킬을 상승시켜 주었다.

아무리 동 회 차 플레이어에 비해 특출하다지만, 고작 7회 차 플레이어에게 엑티브 스킬을 사용하게 될 줄 몰랐던 정진혁은 겉으로는 태연해도 속으로는 화를 삭이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네 대답을 들어보자. 너나 저기 찌그러져 있는 놈이나, 대체 뭐냐?”

“……무슨 질문이 그렇습니까?”

“사실 좀 놀라긴 했어. 아직 햇병아리 새끼들이긴 해도, 7회 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놈들이라. 아마 저기 있는 두 년들도 그렇겠지?”

혜미와 혜정을 흘기며 묻는 질문에 우성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나 안현수만큼은 아니지만 혜미와 혜정 역시 7회 차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스텟과 좋은 장비들, 그리고 여러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녀들 역시 이번 회 차에 들어오며 S클래스 플레이어로 판정받았을까.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대답하긴 썩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정진혁의 말 중, 또 다시 혜미와 혜정을 ‘년’이라고 저급하게 표현한 게 제일 껄끄러웠다.

“대답하지 않으려 해도 대답해야 할 거다. 안 그럼 뒤질 걸?”

“…….”

정진혁은 작정하고 우성과 안현수에 대해 알아내려는 모양이었다. 한 번 옥토퍼스의 힘을 끌어내고, 엑티브 스킬까지 사용한 이상 정진혁은 더 이상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예상 외로 정진혁이 진지하게 나오자 우성은 꽤 난감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우성과 안현수가 받은 특전이나 지금까지의 행보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자니, 자신을 비롯한 일행에 대한 정보가 너무 새어나가는 것 같았다.

‘도망이라도 쳐야 하나?’

일단 대여 수련장을 나가기만 하면 도시 안이었다. 아무리 정진혁이 막무가내에 붉은악마 클랜을 등에 업었다 해도 도시 한 가운데서 버젓이 살인을 저지르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도 말 할 생각이 없어?”

“……아직 안 끝나지 않았습니까?”

“허, 나 이 새끼 골 때리네.”

쿵-!

옥토퍼스를 바닥에 내려찍으며 정진혁이 으르렁거렸다.

“아직도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들어?”

“조금은요.”

“그러냐? 그럼…….”

꽈드득-.

“뒤지던가.”

쉬이이익-!

땅에서 도끼를 빼낸 정진혁이 위로 도약했다. 무시무시한 다리 힘은 순식간에 정진혁의 몸을 몇 미터씩이나 띄워 올렸고, 위로 쳐올린 옥토퍼스는 우성의 몸을 양단할 듯했다.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그냥 가볍게 휘두른 공격만 해도 무겁다 여겨졌는데, 그 때와 비교하면 정진혁은 더 강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내려찍는 도끼는 정진혁의 근력과 더해져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막을 수 없다면, 피한다.

우성은 황급히 몸을 옆으로 날렸다. 정진혁 역시 그리 느리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도끼를 피할 수 있었다.

콰앙-!

쩍, 쩌저적-.

정진혁의 도끼가 바닥에 내려 찍히는 순간, 도끼와 부딪힌 지면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쩍쩍 갈라졌다. 더군다나 마력과 마기가 가득 담긴 정진혁의 도끼질은 주위에 충격을 가해 옆으로 피한 우성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헉.”

비틀거렸던 우성은 황급히 아포피스를 앞으로 휘둘렀다. 그렇게 큰 자세로 도끼를 내려찍었던 정진혁이 다시금 옥토퍼스를 휘둘러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꽈앙-!

얇은 검신의 아포피스에 거대한 옥토퍼스가 부딪혔다. 지금까지처럼 봐주지 않고 크게 휘두른 탓에 우성의 손에는 정진혁의 힘이 고스란이 전해졌다.

찌익-.

손아귀에 전해진 충격으로 우성의 손이 찢겨져 나갔다. 무기를 다루는 주인의 차이 탓일까? 어느새 옥토퍼스는 아포피스에게 겁을 먹지 않고, 자기 본신의 힘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큭.”

손아귀가 찢어진 탓에 우성은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여기서 검을 놓치면 곧장 도끼에 목이 날아가거나, 몸이 양단될 게 분명했다.

아마 안현수는 처음 정진혁과 부딪히면서 곧장 이런 느낌이었겠지. 압도적인 힘의 차이라는 게 무엇인지 우성은 지금에 와서야 알 수 있었다.

쾅, 쩡-!

‘미치겠네.’

정진혁의 공격을 막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기 자체가 워낙 크고, 힘에 비해 움직임이나 도끼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번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우성은 손아귀가 찢어지고, 팔이 덜덜 떨리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면 그러려니 할 텐데,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힘이었다.

‘다 피할 수 있으면 차라리 좋을 텐데…….’

모든 공격을 유유히 피하고 파고들어 일격을 먹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성의 움직임은 그 정도 수준까지 빠르진 않았다. 그렇다고 정진혁의 움직임이 아주 굼뜨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빠르다면 빠른 편이었지.

‘광전사’라는 직업에 어울리게 정진혁은 쉴 세 없이 우성을 몰아붙였다. 도무지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한 번에 손아귀가 찢겨 나갔던 우성은 두 번, 세 번 공격이 이어지며 점점 손이 터져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팅-.

“큭.”

결국 우성의 손에서 아포피스가 떨어져 나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팔과 손으로 잡고 있던 검은, 정진혁의 마지막 도끼질 한 번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제 다 끝났냐?”

옥토퍼스를 우성의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대고는 정진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처음에야 조금 팽팽했겠지만, 결국 조금 실력 발휘를 하자 정진혁의 압도적인 승리로 싸움이 마무리되었다.

“대답은?”

“…….”

마지막까지 입을 다무는 우성을 보며 정진혁의 표정이 다시금 구겨졌다. 워낙 성격이 급한 그는 옥토퍼스를 위로 치켜들었다.

“셋 센다. 하나. 둘…….”

마지막으로 셋을 세며 정진혁이 도끼를 내려치려던 순간이었다.

“정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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