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대천사 미카엘과 대천사장 라파엘의 주 관심사는 최고악(最高惡)이라는 벨제뷔트에게로 모아져 있었다. 현 악마들 중 디아블로와 함께 최강의 마왕으로 꼽히는 그는, 천사들이 예의주시 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벨제뷔트를 제압하기 위해 대천사 하나가 죽고, 그를 포함한 천사장 여럿과 수많은 천사들이 죽었다. 그 싸움에 직접 참여했던 대천사 미카엘은 벨제뷔트의 무서움을 알고있는 만큼, 절대 그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벨제뷔트의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보고. 벌써 벨제뷔트를 찾기 시작한 지 수백 일이 지났다. 억겁의 삶을 산다는 대천사라지만, 벨제뷔트를 찾기 시작한 근 일 년 간의 시간은 미카엘에게 있어서도 그리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고 있던 수련을 멈추고 미카엘은 잠시 보고를 올린 천사장을 돌아봤다. 염화로 이글거리던 불꽃이 시들며, 신전 안을 가득 메웠던 열기가 사라졌다. 수천의 천사들을 이끄는 천사장 퀴엘은 미카엘의 가장 가까운 수족 중 한 명이었다.
“어디냐?”
“중간지역에서 악마진형에 조금 가까운 용의 숲입니다. 정확한 위치까지는 아직 파악중입니다.”
“용의 숲이라.”
용의 숲도 그리 좁은 지역은 아니었지만, 중간지역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좁힌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하필이면 벨제뷔트가 발견된 지역이 ‘용의 숲’이라는 점이다.
“하필이면 그 곳이라니.”
아무리 중간지역이 악마진영과 천사진영을 나누는 경계라 해도, 알게 모르게 구역은 나뉘어져 있었다. 중간지역 중에서도 악마진영에 더 가까울수록, 천사들이 손을 쓰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자칫 대천사인 미카엘이 그곳까지 천사들을 이끌고 직접 움직였다가는 악마와 천사들간에 맺은 조약에 위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벨제뷔트를 잡는데 일반 천사들만 보낼 수도 없었다.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대천사가 움직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행이라면 벨제뷔트가 제대로 힘을 쓰지는 못할 거라는 점이겠지만.’
천사들에게 붙잡히고, 상당량의 마기를 잃어버린 벨제뷔트는 회복하는데 적어도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라 예상되었다. 아마도 아직까지 벨제뷔트는 본신의 힘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계속 지금처럼 벨제뷔트를 찾으러 움직여야 할까요?”
천사장 퀴엘의 물음에 미카엘은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싶었다. 벨제뷔트가 용의 숲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벨제뷔트의 위치가 밝혀지는 즉시 직접 움직일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용의 숲이다.
용의 숲은 벨제뷔트 뿐만이 아닌, 이미 몬스터라고 부르기 힘든 존재인 용이 서식하는 지역이었다. 몇몇 에이전트급 용들의 경우에는 천사장들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용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천사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용은 결코 천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중간지역에 서식하는 만큼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어느 한 쪽을 택하자면 그들은 엄연히 악마들의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용들의 우두머리이자, 반신(半神)이나 마찬가지인 신룡(神龍)이 악마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순 없지.”
최고악을 처치할 수 있다.
루시퍼와 같은 교화는 물 건너갔지만, 악마들에게서 최고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만을도 천사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이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들인 공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순 없었다.
“벨제뷔트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라. 단, 섣불리 그를 제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빨이 빠졌더라도 그는 최고악이다. 더군다나 그곳이 용의 숲인 이상, 용들 또한 조심해야 할 거야.”
“에이전트급 용들 정도는 제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천사장 퀴엘은 미카엘의 수족 중 가장 신력이 뛰어난 천사장이었다. 분명 그라면 한 마리의 에이전트급 용 정도는 어찌 상대가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미카엘이 아니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봤자 퀴엘이 상대할 수 있는 에이전트급 용은 한 마리. 하지만 용의 숲에는 몇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최고악을 비롯한 천사들이 개입한다면, 신룡(神龍)이 개입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신룡이 진짜 존재하긴 하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신룡이 진짜 신은 맞습니까?”
인간과 엘프, 드워프, 천사와 악마를 비롯한 모든 종족에는 각자의 신이 존재했다. 물론 종족을 초월한 객체로서 신(神)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도 있었지만, 몬스터로 분류되지 않은 하나의 종족은 반드시 그들만의 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용(龍)이라는 존재들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종족이었다. 인간이나 천사, 악마들처럼 고도의 지성을 갖춘 객체도 아니었으며, 몬스터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그 대문에 그들은 한 때 신수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이상하군. 그러는 넌 왜 그들에게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네? 그야…….”
퀴엘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껏 당연하게도 ‘용’이라는 존재들을 천사나 악마같은 고등의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들이야 지성이나 가진바 힘든 천사나 악마들보다 떨어지지만, 그 잠재력이 무한하고 무수히 많은 객체들이 존재하는 만큼 하나의 종족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용은?
종족도 아니고, 몬스터도 아니다.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못한 만큼 퀴엘은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신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당연함’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 미카엘님은 정말 신룡이 있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미카엘의 말투에서 무언가를 느낀 퀴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껏 퀴엘이 가지고 있던 용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었다.
“확신만 하는 게 아니지. 만나도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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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무슨 일이냐?”
여관으로 돌아온 우성의 말에 다른 일행들의 반응이었다. 여관 문 밖으로는 정진혁이 기다리고 있었고, 안현수와 혜미, 혜정은 어리둥절한 상황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저 문밖에, 그때 시작의 마을에서 만난 놈이 있다는 거야?”
“그런 거지.”
“그 녀석이 왜?”
답답함으로 가득한 혜미의 물음에 우성은 진땀을 흘렸다. 반응이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정색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퀘스트를 도와준다고…….”
“그 B등급 퀘스트 정도는 우리들끼리도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면 우리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돼?”
“그건 아니지만… 2회 차 랭커 플레이어의 실력이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하다고 저런 혹 덩어리를 데리고 와?”
정진혁에 대한 혜미의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지 못했다. 근래에 들어 혜미의 이런 격한 반응은 처음 보는 것이라, 우성은 난감했다.
안현수의 표정이나 혜정의 얼굴색도 썩 좋은 건 아니었다. 정진혁의 실력이 궁금해 괜한 선택을 했나 싶어, 우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어쩌지?”
“저 녀석 실력이 궁금하면 직접 붙어 보던가. 사실 나도 궁금하긴 궁금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기에 붉은악마 클랜에서 간부까지 하고 있는지.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대단한 녀석으로 보이지는 않았거든.”
정진혁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유명했다. 붉은악마 클랜의 간부이자, 새로운 마(魔)등급 장비의 사용자로 준 랭커 플레이어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얼마 전 선악공성에서 꽤 많은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그곳이 바로 마병 옥토퍼스의 첫 공개 무대였는데, 정진혁의 활약으로 악마 진영의 힘이 한층 도약했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전현승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할까?’
전현승은 5회 차 플레이어이긴 하지만 웬만한 2회 차 플레이어와 견줄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그것조차 꽤 오래 전의 일이라, 우성과 함께 퀘스트를 떠났을 때에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장 카시엘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우성보다는 전현승의 몫이 가장 컸다. 특수한 스킬을 통해 타락천사의 날개를 펼친 전현승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다.
“역시, 궁금해.”
“……이럴 때 보면 진짜 전투민족 같다니까.”
우성의 중얼거림에 혜미는 못 말리겠다는 듯 푹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혜미의 생각과는 달리, 우성이 전현승이나 정진혁과 같은 플레이어와 싸워보고 싶은 이유는 싸움이 즐겁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과 겨루어 봄으로 인해 스스로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검 사용자로 이름 높은 전현승이나, 준 랭커라 평가받는 정진혁과 겨룰 수 있을 정도라면 자기 자신의 실력에 더 이상 부끄러움이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난 반대. 만약 그 인간이랑 퀘스트를 진행하겠다면, 차라리 난 빠질래.”
“저도… 그렇게 내키진 않아요. 그렇게 중요한 퀘스트도 아니고요.”
혜미와 혜정이 손을 들고 결정하자, 안현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난 사실 큰 상관은 없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정진혁이란 놈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차라리 이렇게 된 것, 난 차라리 퀘스트 진행보다는 정진혁과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큰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인 우성과는 달리, 안현수는 싸움이라는 데 꽤 재미를 붙인 상태였다. 피가 튀는 살인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느낌이 좋다나 뭐라나. 어찌 보면 전현승과 좀 닮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일단, 함께 퀘스트를 진행하는 건 포기해야겠군.”
“그런데 그 녀석 성격에, 대련을 신청한다고 해서 순순히 ‘그렇겠습니다’고 할까?”
“……아니겠지.”
혜미의 의문은 당연했다.
정진혁은 2회 차 플레이어, 그것도 A등급이라는 꽤 높은 클래스에 랭크된 플레이어였다. 더군다나 옥토퍼스라는 마(魔)등급 장비까지 가지고 있어, 2회 차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준 랭커 플레이어였다.
게다가 정진혁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플레이어였다. 성격만 놓고 보면 허세와 자만심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대형 클랜의 간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정진혁에게, 이제 갓 신규 플레이어 딱지를 떼어낸 플레이어들이 도전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폭소를 터뜨릴 일이었다. 정진혁의 성격에는 아마 비웃음을 지으며 침을 뱉을 수도 있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녀석도 기분 꽤나 나쁠 걸. 처음 시작의 마을에서만 하더라도 자기의 클랜 입단 제의를 거절했다고 쌍욕을 뱉던 놈인데, 버스 태워주겠다는 걸 거절하면 퍽이나 기분이 좋겠어? 아마 자기 기분 나쁜 상태에서 대련을 하자고 하면, 얼씨구나 할 걸?”
보통 방법으로는 우성을 비롯한 일행을 무시하는 정진혁이 대련을 해 줄 리가 없었다.
결국은 정진혁의 기분을 망쳐놓고 그의 심기를 건드려 싸움을 유도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다. 정진혁의 입장에서는 나름 초보 플레이어들에게 ‘버스’를 태워주겠다는 것일 텐데, 그것이 보기 좋게 걷어 차였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안현수는 옆자리에 놓아둔 신룡창(神龍槍)을 집어 들었다.
“그럼 어디, 랭커 플레이어라는 사람의 실력을 확인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