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알고 부른 것 아닙니까?”
“아, 그렇지. 그저 확인 차 물어보는 것뿐이다.”
루시퍼는 일행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2미터가 넘는 장신인데다가 네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가까이 다가온 루시퍼는 사람같이 않게 커 보였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군. 가끔은 내가 직접 중간지역을 넘어 남은 것들을 다 죽여 버릴까도 했는데, 조약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거든.”
루시퍼도 다른 악마들에 비해서는 꽤 정중한 편이었다. 지금껏 이런 악마는 볼락 외에는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나 한때 천사여서 그런지 보통의 악마들보다는 꽤 차분한 말투였다.
“전보다 말투가 좀 사나워진 것 같은데?”
“아, 이해해라.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말이지. 몸에 남아있던 신력이 다 사라져서, 그 어느 때보다 마기가 활발하게 날뛰거든. 당장 나도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전현승의 말을 들어 보니 이전의 루시퍼의 말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차분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악마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타락천사인데, 지금보다 더 정중한 말투라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루시퍼의 몸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의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신력이 사라지며 마기가 활발하게 날뛴다는 것인데, 서로 상반되는 힘이 충돌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 쪽의 힘이 자유를 찾은 듯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너 또한 진짜 악마가 될 수 있는 건가?”
“아니. 마왕(魔王)이 되겠지.”
마왕(魔王). 악마들의 정점에 오른, 대천사와 같은 존재들. 천신에게 인정을 받아 네 쌍의 날개를 부여받은 대천사들과는 달리, 마신에게 인정받아 오히려 뿔이 사라져버린 악마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현재 존재하는 악마들의 수는 사탄의 부재로 인해 한 자리가 공석이었다. 세월을 알 수 없는 억겁의 시간 동안 마왕의 자리는 늘 같았지만, 지금은 그 자리가 하나 비어있는 상태.
하지만 루시퍼 정도 되는 존재라면 충분히 그 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사탄의 부재를 채우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맙다. 이 녀석이야 이미 득을 챙겼고… 너희들 덕분에도 내 수천 년 염원이 이루어지게 됐으니, 마땅히 보상이 필요할 텐데.”
[‘히든 퀘스트(Hidden Quest) - 타락 천사의 완성’을 완료하였습니다.]
[7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라이프(Life)를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 ‘마왕의 길을 이끈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5개의 업적 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업적으로 교체가 가능합니다.]
[이후 보상은 타락악마 루시퍼와의 협의하게 결정될 수 있습니다.]
포인트와 라이프, 새로운 업적까지. 제법 화려한 보상이었다. 무엇보다 ‘마왕의 길을 이끈 자’라는 업적은 이름에서부터 지금껏 우성이 보아온 어떤 업적보다 광채가 느껴졌다.
[마왕의 길을 이끈 자]
* 타락악마 루시퍼는 천계에 남아있는 자신의 석상과 신도 천사들 때문에 타락천사에서 악마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가진바 능력은 이미 다른 마왕들과 견주어도 한 점 부족함이 없었지만, 천사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루시퍼는 마왕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루시퍼의 석상을 부수고, 그 신도가 전부 죽은 지금, 루시퍼는 마왕으로서 각성하고 있는 상태이다.
+ 모든 스텟 2포인트 상승
+ 선택 포인트 3포인트 상승(미사용 시 24시간 뒤 랜덤 배분)
+ 마법 저항력 15% 상승
업적 보상을 확인한 우성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업적에 대한 설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뒤에 있는 업적 보상 효과가 눈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대박 보상이다.’
모든 스텟 포인트를 상승시켜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유 포인트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24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이 걸려 있지만, 어차피 올려야 하는 포인트는 정해져 있는 만큼 있으나 마나 한 패널티였다.
무엇보다 우성에게 가장 부족한 마법 저항력을 상승시켜 주었다. 20퍼센트라면, 웬만한 갑옷보다 훨씬 마법 저항력이 높은 수준이었다.
비록 가지고 있는 업적 중 하나를 버려야겠지만 이만하면 어떤 업적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고급 퀘스트의 보상은 업적이 반이라더니,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더군다나 아직 남아있는 보상도 있다고 하니.
루시퍼는 꽤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이미 우성을 비롯한 일행에게는 시스템에 의한 보상이 주어진 상태였지만, NPC에 해당하는 루시퍼가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전현승씨는 벌써 보상을 받았습니까?”
보상의 선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우성이 물었다. 전현승이 받은 보상을 보고 어느 정도 보상을 요구할 것인지를 판단할 생각이었다. 앞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야… 아무래도 검으로 보상을 받았죠.”
“검?”
“진(眞) 마검 루시퍼. 새롭게 바뀐 제 검의 이름입니다.”
진(眞) 마검이라는 이름에 우성의 눈이 반짝였다. 우성의 마검 아포피스도 역시 처음에는 반(半) 마검이었다가 이후에 진(眞) 마검으로 바뀐 경우라 검의 등급 상향이 어느 정도 보상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전반적인 공격력이 상승될 뿐만 아니라 스킬 능력의 상향, 그리고 능력치 보상까지. 단순한 물질적인 보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전현승은 이번 보상으로 몇 발은 앞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치로 따져볼 수는 없는 일이다. 진(眞) 마검으로의 변화는 전현승에게는 큰 성과였지만, 다른 일행도 같은 보상을 바랄 순 없었다. 다짜고짜 루시퍼에게 전현승과 같은 검을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원하는 것들 있나? 적당한 선에서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말이야.”
보상이 ????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루시퍼는 따로 보상을 말하지 않았다. 일전에 원정 퀘스트에서 볼락도 이와 같은 말을 했었다.
하지만 볼락과는 달리, 루시퍼는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악마가 아니었다. 마왕급 악마들 중에서도 특히 루시퍼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존재였기에, 이번 일이 아니면 앞으로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신중에 신중.
적당한 선 안이라고는 하지만, 루시퍼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의 범위는 넓다. 그 선에 최대한 걸칠 수 있을 정도의 보상을 이야기 해야 이번 퀘스트를 통한 최상의 보상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아니, 그보다는…….
‘내가 필요한 게 뭐지?’
우성은 잠시 자신을 되돌아봤다. 지금까지 부족하다고 느낀 게 무엇인지.
우선, 포인트라고 이야기 한다면 우스웠다. NPC인 루시퍼에게 포인트를 달라고 한다? 말이 되지 않았다. NPC는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포인트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명(Life)를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것 역시 포인트와 같은 개념으로 NPC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 남는 건…….’
장비, 혹은 돈? 이것 역시 부족하지 않았다. 돈이야 아직 수십만 골드가 남아 있었고, 장비도 어나 하나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우성은 정말 그다지 부족한 게 없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선택지는 스킬과 스텟. 하지만 역시 루시퍼에게 스킬 숙련도를 올려 달라거나, 괜찮은 스킬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 남는 건 스텟뿐인데…….’
과연 NPC인 루시퍼가 스텟이라는 개념을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아니지. 스텟은 말 그대로 수치일 뿐이고…….’
결국 스텟은 곧 힘이었다.
근력이든, 민첩이든, 마력, 마기든, 그것은 곧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수치화 한 것뿐. 결국 본질은 플레이어 본인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것임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더 고민할 것 없이, 루시퍼에게 얻을 수 있는 힘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마기…….”
작은 우성의 중얼거림에 루시퍼가 되물었다.
“뭐라고 했나?”
“당신의 마기를, 저에게 나눠 주실 수 있습니까?”
우성의 질문에 루시퍼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우성을 이리저리 뜯어봤다.
“그러고 보니, 보통 이방인답지 않게 너는 마기를 가지고 있군. 신기하군, 신기해. 자세히 보기 전까진 내가 마기를 눈치 못 채다니…….”
그 때, 루시퍼의 시선이 우성이 들고 있는 진(眞) 마검 아포피스로 향했다. 설마 하는 표정을 짓던 루시퍼가 경악어린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 검…….”
루시퍼가 손을 뻗자, 우성은 검을 건네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아포피스는 낮게 울어, 우성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아포피스의 뜻이 그렇다면. 잠시 망설이던 우성은 결국 루시퍼를 향해 아포피스를 넘겼다. 새까만 흑색으로 반짝이는 아포피스를 받아든 루시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동그란 눈으로 검을 찬찬히 뜯어봤다.
“이건 분명…….”
루시퍼의 입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벌어졌다. 우성도 설마하니 루시퍼가 이런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기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꽤 긴 시간 동안 검을 뜯어보던 루시퍼는 우성을 향해 다시 검을 건넸다. 검을 받아 보니 아포피스가 잘게 떨리고 있었는데, 루시퍼에게 다시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모양이었다.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렇습니까?”
“이제 좀 왜 내가 네 마기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알 것 같군. 그래, 그 분의 힘이라면…….”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루시퍼는 이내 싱긋 웃으며 무릎을 낮춰 우성과 시선을 맞췄다. 마치 어른이 작은 어린아이에게 시선을 맞추는 느낌이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 내 마기를 주면 좋겠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그렇게 시선을 맞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알겠다. 아무튼 원래라면 안 될 말이다. 저기 있는 내 반쪽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내 마기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을 테지. 아니, 사실 저 녀석도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원래라면’이라고 하신 걸 보면, 저는 된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루시퍼는 우성의 말대로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러자 우성은 고개를 들어 루시퍼를 올려다봐야 했고, 루시퍼는 고개를 아래로 숙여야 했다. 우성이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고개를 들면서까지 올려다 봐야 한다는 것이 우성에게는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만약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네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마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가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패한다면, 죽을 수도 있을 거다.”
“모험이군요.”
“모험이지. 하지만 재미있겠구나. 이방인들이 신기한 존재이긴 해도, 과연 내 마기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주 흥미로워.”
수염도 나지 않은 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루시퍼가 우성을 바라봤다.
우성과 루시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일행들의 시선이 우성에게로 모아진지는 오래였다. 전현승과 에릭, 에든은 루시퍼와 같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안현수와 혜미, 혜정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각기 다른 상반된 두 종류의 시선으로 우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률은 알 수 있습니까?”
“알 턱이 있나. 나 또한 이런 적은 처음인데. 하지만 그리 낮지는 않을 거다. 물론, 그리 높지도 않을 거고.”
“반반이라는 거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어쩔 거냐? 할 거냐, 말 거냐?”
50대 50. 정말 다른 말이 나올 수도 없을 만큼 낮지도, 높지도 않은 확률이었다. 평소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갈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패하면 죽을지도 모르고, 성공하면 지금보다 훨씬 강한 마기를 가질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이라는 뜻은 정확한 수치가 나와 있지 않은 만큼 애매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루시퍼가 ‘훨씬’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면, 1, 2 포인트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도박인가?’
어차피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생명 하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