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23화 (123/258)

123화

대천사 루시퍼는 과거 다른 대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천사들에게 신적인 존재로서 추앙받았다. 루시퍼의 신전은 그런 루시퍼를 떠받들던 천사들 중, 믿음이 지나치게 강한 천사들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루시퍼에 대한 믿음은 도가 넘어섰다. 어느 종교에나 믿음이 도를 넘어서는 광신도가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루시퍼의 신전에 남아있는 천사들이 꼭 그랬다.

이미 타락천사로서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까워진 루시퍼를, 그들은 아직까지 대천사라고 믿고 있었다. 벌써 수천 년 째 천사 진영에는 얼굴 한 번 내비추지 않고 있었는데도, 그들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이들인 만큼, 루시퍼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마검 루시퍼를 사용하는 전현승에게 호의적일 가능성이 컸다.

일행들은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았다. 이대로 기다리고 있으면 천사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하늘을 날고 있던 천사들이 싸움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붉은색의 창이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 그게 좀 사소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대답한 전현승을 천사들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천사들이나 악마들이나 워낙 플레이어들 간의 분쟁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지킬 선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도시 안에서 일으키는 소란은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도시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서로 무분별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면, 천사나 악마들에게까지 피해가 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악마들과는 다르게 천사들은 무분별한 살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정의에 가깝느냐를 떠나, 성향의 문제였다.

“다툼이라면, 어떤 거지?”

“그게… 이 검 때문입니다.”

전현승은 조심스럽게 마검 루시퍼를 꺼내들었다. 천사들이 싫어하는 검은색이 감도는 검에 천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검이 뭐 어쨌다는 거냐?”

“그게… 혹시 대천사 루시퍼를 알고 계십니까?”

‘루시퍼’의 이름이 나오자, 천사들의 눈이 흔들렸다. 보통의 다른 천사들 같았다면 금방 적대감을 드러냈을 텐데, 눈을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우린 루시퍼님을 모시는 천사들이다.”

‘걸려들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루시퍼의 신전에서 나온 천사들이었다. 전현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을 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이거 잘 됐군요. 사실 저를 비롯한 일행들도 신전으로 가고 있었거든요.”

“신전에?”

“네. 이 검을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전현승은 검끝을 아래로 내린 채 앞으로 내밀었다. 루시퍼의 이름이 나온 뒤부터 천사들은 전현승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대체 이 검이 무엇이지?”

“성검(聖劍) 루시퍼. 대천사 루시퍼님께서 제게 직접 내려주신 검입니다.”

흔들리던 천사들의 눈동자가 거세게 요동쳤다. 그들은 경악어린 표정으로 전현승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 그게 정말이냐?”

“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대천사 루시퍼님을 믿는 마음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마치 각본이라도 짜여 있기라도 하듯 전현승은 낯간지러운 말을 술술 내뱉었다. 순간 웃음이 새어나왔는지 옆에 있던 혜미가 큭, 하고 낮게 웃었지만 천사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어느 순간부터 대천사 루시퍼님은 타락천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셨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도 알고 있는 바라, 이 검을 가지고 있는 저를 공격했습니다. 다행히 함께 있던 동료 이방인분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요.”

“성검 루시퍼라니… 어디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믿지 못하시겠다면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전현승은 검의 손잡이를 천사들이 있는 방향으로 건넸다. 처음에는 고민하던 천사들도 서로 눈을 마주보더니 전현승이 건넨 검을 잡았다.

하지만 보통 천사들에 불과한 그들이 마검 루시퍼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방법은 없었다. 물론 전현승이 건넨 검은 루시퍼의 반쪽이 맞지만, 성검(聖劍)이 아닌 마검(魔劍)이었다.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카시엘님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천사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무언가를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보통 검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검 루시퍼는 보통 천사들인 그들이 판단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한 십 분 정도 이야기하던 천사들은 결론을 내렸는지 전현승에게 검을 돌려주며 물었다.

“함께 있는 이방인들은 믿을만 한가?”

“이들 역시 루시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입니다. 제가 보증하죠.”

사실 천사들은 이방인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방인이 다름 아닌 루시퍼에게 인정을 받은 존재라면, 보통 천사들보다 훨씬 믿을 만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루시퍼가, 사실은 진짜 타락천사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타락천사가 된 루시퍼가 그들을 죽이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따라와라.”

**

원래라면 루시퍼의 신전으로 들어가는 건 꽤 나중의 일이었을 것이다. 구조를 먼저 파악하고, 천사들이 얼마나 있는지, 어느 등급의 천사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각보다 일찍 신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것도 적이 아닌, 아군으로 속인 상태에서 말이다.

천사들의 바로 뒤로는 전현승이 서 있었다. 천사들은 전현승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바빴다. ‘루시퍼님을 실제로 본 적이 있냐’부터 시작해, ‘어떻게 검을 하사받게 되었냐’, ‘신전에는 처음이냐’등, 쉴 세 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우성을 포함한 다른 일행은 아예 없는 존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성은 신경 쓰지 않고 신전을 둘러보기에 바빴다.

‘다크듐에 있는 신전보다 큰데?’

루시퍼의 신전은 역시 한 때 대천사의 신전으로 쓰였던 만큼 규모가 대단했다. 소도시에 붙어있는 신전 주제에 악마 진영의 대도시인 다크듐보다 월등히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만하면 거의 성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었다. 적어도 하멜의 성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으니 말이다.

천사의 날개처럼 순백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신전은 도시와 멀리 떨어진 숲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는 의외로 꽤 많은 천사들이 남아있었다.

“잠깐! 뒤쪽의 이방인들은 뭐지?”

앞장서 신전으로 들어가던 중, 지나가던 천사들이 일행을 가로막았다. 성처럼 검문이 있지는 않지만, 이방인들의 출입은 신전에서도 엄격히 관리하고 있었다.

“루시퍼님의 계약자와 그 일행들이다.”

“루시퍼님의?”

신전 안의 천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했다. 역시 하나의 종교에서 믿음의 대상과 연관된 사람은 의심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짜겠지?”

“지금 카시엘님에게 확인을 받기 위해 가는 중이다. 혹시라도 사실일 수도 있으니, 혹여 무례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으음… 그러지.”

무례하지 않도록?

천사들의 대화를 듣고 난 뒤, 우성은 마검의 사용자라는 존재가 의미하는 바를 새롭게 생각했다. 마검은 천사 진영의 성검과 같은 의미를 지닌 물건이었다. 악마의 반쪽이며, 운명을 함께하는 무기. 그런 만큼, 아무래도 마검의 사용자는 악마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 모양이었다.

천사들과 전현승의 보증으로 일행은 신전 안으로 무사히 들어설 수 있었다. 5m가 훌쩍 넘어보이는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천장의 창문이 햇살을 받아 밝히는 실내를 볼 수 있었다.

몇 층씩 되어 보이던 겉보기와는 달리, 신전은 하나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 자체가 워낙 많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천장은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보였다.

신전 안은 휑했다. 군데군데 천사들이 있었지만, 신전 안이 워낙 크다 보니 적적하게 느껴졌다.

‘천사는… 여기만 스물 정도인가?’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일반 천사들이 스물. 하지만 일반 천사라고 하더라도 쉽게 볼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의 천사는 두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 천사 위의 등급인 엑시드(Exceed)급의 천사였다.

앞장서 가던 천사들은 엑시드 천사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가 앞에서 들었던 ‘카시엘’이라는 천사인가 싶었는데, 뒤에 들린 이름을 보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라엘님!”

“이들은 누군가? 이방인 같은데.”

“실은…….”

천사들은 전현승을 비롯한 일행들을 소개했다. 아니, 일행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전현승이 루시퍼의 반쪽인 ‘성검’을 가지고 있다, 이 한 마디면 모든게 해결되었다.

반응은 역시나 앞에서 만났던 천사들과 같았다. 한껏 놀란 눈으로 전현승을 바라보던 엑시드 천사 라엘은 일행을 이끌던 천사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이들은 내가 안내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천사들이 물러나고, 라엘이 일행의 앞으로 다가왔다. 우성은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를 두 번째로 만나보았지만, 역시나 가까이서 보자 다른 일반 천사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엑시드 급 천사들은 2회 차 플레이어도 상대하기 어렵다던데… 이런 놈이 더 많으면 위험하겠어.’

일행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신전에 있는 천사들의 소탕이었다. 천사들에게 있어 믿음이라는 힘은 일종의 신력이 강해지는 에너지원과 같아, 루시퍼를 믿는 천사들이 남아있는 이상 루시퍼는 완전한 악마가 될 수 없었다.

‘다행히 다른 천사들은 전부 일반 천사인 것 같지만…….’

우성이 주위를 살피고 있는 사이, 전현승은 라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라엘은 다른 천사들과는 달리, 전현승을 향해 공손히 말을 높였다.

“안으로 오시지요. 카시엘님은 더 안쪽에 계십니다.”

‘엑시드급 천사가 말을 높인다?’

머릿속에 떠오른 불안감에 우성의 눈이 흔들렸다.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엑시드가 존칭을 할 정도라면, 그것은 천사장급 이상의 천사일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었다.

엑시드까지는 어찌 상대가 가능했지만 천사장급은 문제가 있었다. 천사장급 천사는 여기 모여 있는 일행들 전부가 덤벼도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인 존재였다. 어쩌면 앞의 원정에서 만났던 미카엘의 분신보다 위험한 존재가 바로 천사장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천사 천사들까지 수십.

‘무슨 퀘스트 난이도가 이래?’

괜히 S등급 퀘스트가 아닌 듯했다. 하긴, 엑시드 급 천사들만 있다면 난이도에 비해 퀘스트가 너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군요.”

“이상하다니요?”

“루시퍼님의 반쪽을 가지고 계시다기엔, 저희와 같은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감히 제가 판단할 수 없는 힘일지도 모르는 것이지만…….”

미심쩍다는 눈으로 전현승을 바라보는 라엘은 무언가를 눈치 챈 듯했다. 순간 속으로 뜨끔했지만, 여기서 순순히 ‘나 사실 악마 진영의 이방인입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거야 카시엘님을 만나보면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긴. 카시엘님은 진실과 거짓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온 이상, 이제는 이들이 진정으로 루시퍼를 섬기는 천사들이기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제 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이들이고, 일행이 악마 진영 플레이어들임을 들키게 된다면 상황은 굉장히 난감해질 것이다.

“여기입니다.”

라엘은 신전 안쪽의 가장 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신전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이만큼 이동했으면 이 방이 신전의 끝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끼이익-.

문에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5m가 넘는 문은 저절로 열렸다. 마치, 이미 그들이 온 것을 안에서 알고 있는 듯했다.

[루시퍼의 석상을 발견하였습니다.]

[옛 천사장 ‘카시엘’이 등장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