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17화 (117/258)

117화

암상은 어두운 상점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상점이었다. 보통 하멜의 상점이 양지에 나와있으며 NPC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비해, 암상은 지하의 주인 없는 땅에서 플레이어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암상이 지하 음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까닭은 그곳의 물건들이 깨끗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암상의 아이템과 장비들은 불법적인 물건이었다. PK나 던전, 퀘스트에서의 뒤치기, 혹은 계획적인 사기를 통해 구해진 물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나름 플레이어들간의 살인이나 범죄에 대한 단속이 이루어지는 아포칼립스였지만 암상은 크게 성행했다. 아무리 서로가 서로를 단속한다지만, 현실에서도 범죄가 이루어지는 마당에 아포칼립스에서 범죄가 이루어지지 않을 리 없었다.

‘불법’이라고 하면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하다. 잘 알려져 있으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알 만한 사람들도 잘 몰라야 하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암상은 아니었다.

알 만한 사람들도 모르는 게 아닌, 모를 만한 사람들도 알 만큼 유명한 곳.

그곳이 바로 암상이었다.

“진짜, 광장 한복판에 이런 데가 있네.”

“……그러게. 진짜였네.”

‘더 플레이어’에 암상을 검색해본 우성은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저 게시글에서는 지나가는 멀쩡한 장비 걸친 플레이어 아무에게나 물어보라는 팁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말대로 제법 광택이 흐르는 장비를 걸친 플레이어에게 암상의 위치를 물었는데, 광장 한복판 어느 건물 쪽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고 했다. 암상이 아니라 거의 일반 상점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암상이라는 이름값은 있어, 광장에서도 조금은 구석진 곳,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에 있었다. 그래봤자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바로 광장 한복판이지만 말이다.

“……일단 들어가 봐야 겠지?”

암상이라기에 잔뜩 긴장하고 왔던 우성은 김이 빠진 얼굴로 지하로 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아래로 조금 내려가자, 넓고 어두운 계단 아래를 환하게 밝히는 횃불이 켜져 있었다. 기름덩어리에 붙어 있는 횃불은 꽤 오랜 시간 켜져 있었는지,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끌벅적한 광장에서 얼마나 내려왔다고 벌써부터 바깥쪽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제법 암상다운 느낌이 들어, 풀어졌던 긴장이 다시 이어졌다.

“손님이오?”

늘어지는 하품이 섞인 목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앞장서 가던 우성이 잠시 걸음을 멈춰 세우고 물었다.

“여기가 암상 맞습니까?”

“제대로 찾아는 왔습니다만. 몇 회 차십니까?”

플레어들간에는 역시 몇 회 차 플레이어인가가 강함이나 재력의 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신규 플레이어입니다’라고 대답했다가는 혹여라도 쫒겨나기 십상이라 우성은 다르게 대답했다.

“몇 회 차인지는 대답하기 싫고, 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만.”

“간혹 5회 차나 6회 차 떨거지들이 천 골드 정도 가지고 있다고 돈 좀 있다고 설치곤 해서 말입니다. 혹시 손님도 그런 떨거지는 아니겠죠?”

“걱정 마십시오. 그 백배는 가지고 있으니.”

천 골드의 백배면 10만 골드였다. 이만하면 어지간한 1, 2회 차 플레이어들도 손안에 가지고 있기 힘든 돈이었다.

일행의 장비와 마법서를 구하고 우성에게 남은 돈은 80만 골드 정도였다. 하지만 우성은 이 돈을 모두 밝히지 않았다. 어느 누구라도 개인이 이만한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건 주목을 받기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암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른하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있다. 그 순간, 계단 아래쪽의 어둡던 공간이 환하게 밝혀지며 암상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상의 주인은 의외로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아니, 할아버지라고 말하기엔 꽤 정정해 보였는데,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노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 중간쯤 되어보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나이에 비해 허리가 꽤 굽어 있었는데, 꼽추인 듯했다. 허리를 툭툭 건드리는 그는 우성과 안현수를 발견하고는 몸을 돌렸다.

“자, 이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화악-.

노인의 주위로 불의 결정이 떠올랐다. 총 네 개의 결정은 밝은 빛을 내뿜으며 주위를 은은하게 밝혔는데, 라이트 마법에 비해 밝기가 조금 약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우성은 노인의 마법이 결코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이 만든 불의 결정은 원래라면 폭발계열 마법이었는데, 그것을 쏘아내지 않고 4개씩이나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2회 차. 어쩌면 1회 차 플레이어일지도…….’

플레이어 중 저런 노인이 있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그 노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은 더 의외였다. 더욱이 암상을 운영할 정도면 플레이어들 중 제법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우성과 안현수는 노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 아래로 내려갔음에도 암상은 꽤 안으로 더 들어가야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일단 물건들부터 좀 보시죠.”

화악-.

노인이 만들어낸 불꽃의 덩어리가 순식간에 밝아지며 주변을 빨갛게 밝혔다. 환한 불길은 받은 선반 위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먼지가 쌓여 있어, 겉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기대 이한데.’

암상을 방문한 우성과 안현수는 제법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반 상점가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품질의 물건이 준비되어 있다는 암상인만큼, 쓸 만한 장비들이 꽤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먼저 물건을 구경하려던 우성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졌다. 아무리 봐도 현재 일행이 걸치고 있는 장비보다 좋아 보이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리턴 코드(Return Code)라는 아이템 있습니까?”

“리턴 코드 말입니까? 있기야 합니다만… 흘흘. 가격이 제법 될 텐데요.”

“얼맙니까?”

“요새 리턴 코드가 조금 귀해져서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2만 골드였는데, 지금은 2만 5천 골드까지 뛰었습니다.”

처음 들었던 가격보다 5천 골드나 높은 가격이었다. 필요한 물건은 2개이니 합치면 1만 골드의 추가 지출. 우성은 속이 쓰렸지만 그렇다고 1만 골드 때문에 S급 퀘스트를 포기할 순 없었다.

“2개 필요합니다. 있습니까?”

우성은 품에서 1만 골드짜리 전표 5장을 꺼냈다. 특별한 마법 처리가 되어있는 전표는 어느 경매장을 가나 즉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전표를 확인한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결코 위조할 수 없는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는, 진짜 전표였다.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표를 받아든 노인이 몸을 돌려 암상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이 가 버리자 암상 안에는 우성과 안현수만 남아있었다.

우성은 기다리며 주위에 펼쳐져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둘러봤다. 대부분이 무기나 갑옷, 천류의 장비들이었는데, 간혹 먼지가 쌓여있지 않은 물건들도 있었다.

[레퀴엠의 잿빛 지팡이]

* 저승으로 가는 길을 연주하는 진혼곡 레퀴엠은 수천, 수만 번씩 연주되며 작은 하급 신을 만들어냈다. 악마도, 천사도 숭배하지 않는 작은 신은 그를 믿는 사람이 없자 소멸되었는데, 레퀴엠은 소멸되기 전 자신의 영혼을 담아 지팡이를 만들었다.

* 최하급의 신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다. 사용자의 마력을 대폭 올려주며, 마력을 이용한 주문을 증폭시켜주지만 사용자의 마력을 빠르게 갉아먹습니다.

+ 마력 스텟 10포인트 상승

+ 주문 증폭률 40% 상승

+ 주문 소모 마력 50% 상승

무지막지한 지팡이에 우성은 할 말을 잃었다. 무려 하나의 스텟을 10포인트나 상승시켜 주는데다가, 주문에 대한 증폭률이 40%나 상승하다니.

‘좋긴 좋은데…….’

하지만 그 밑의 패널티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주문하나 사용하는데 필요한 마력이 50퍼센트나 상승하면, 금세 마력이 동이 나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보통 장비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 정도 장비는 상점에서는 물론, 경매장에서도 잘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템의 설명을 보면, 하급 신이긴 해도 신의 영혼이 담겨져 있는 장비라고 한다. 워낙 수준이 낮은 신, 비록 이미 소멸해버린 신이어서 그런지 신(神)등급 판정은 나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쓸만한 장비임에는 분명했다.

‘혜미에게 하나 선물이라도 해 줄까……,’

하나의 장비가 생각 이상으로 쓸 만해 우성은 그 뒤로 몇 개의 장비를 더 살펴봤다.

그 뒤로 살펴본 장비들은 과연 암상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경매장에는 간혹 수준이 별로 높지 않은 장비들도 나오곤 했는데, 암상의 장비들은 하나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장비들이 대부분이었다.

“오, 이거 괜찮은데?”

“여기 안 괜찮은 장비가 어디 있냐?”

“그러게. 쩝. 볼락에게 돈이나 달라고 할까? 여기서 장비나 좀 사게.”

안현수의 욕심이 당연할 정도로 암상의 장비들은 하나같이 고품질이었다. 밖으로 들고 나가면 적어도 하나에 1만 골드 이상은 거뜬히 받을 만한 것들이 대부분일 정도였다.

‘왜 여기 손님이 많이 없는지 알 것 같군.’

이만한 물건들을 살 수 있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있을까? 어지간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암상에 손님으로 오기는 힘들 것이다.

하루에 장비 하나만 팔아먹어도 1만 골드 이상. 우성은 과연 암상의 재력이 어느 정도일지, 그리고 모든 도시의 암상을 움직이는 주인은 어떤 사람일지가 궁금해졌다.

“많이 기다렸나? 여기 있네.”

돌아온 노인이 한 손에 두 개의 구슬을 가지고 돌아왔다. 일전에 전현승이 보여주었던 리턴 코드였는데, 노인은 우성의 손에 구슬을 쥐어주었다.

“물건은 확실히 줬네. 흘흘흘.”

[리턴 코드(Return Code)]

* 최상위 귀환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구슬이다. 구슬의 안으로는 다량의 마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용 시 지정된 장소로 이동한다. 거리의 제한은 없으며, 1회 사용 시 효과는 사라진다.

간단한 설명이 전부였다. 이미 전현승에게도 사용 효과를 들은 후였기에 달리 놀랄 만한 부분도 없었다.

우성은 엄지손톱만한 구슬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잠시 시선을 돌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장비들을 살폈다.

“뭐 더 필요한 거라도 있습니까?”

“잠시 좀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격들을 모르겠군요.”

가격만 괜찮다면 구입할 의향이야 충분히 있었다. 경매장에서 나오는 물품보다 썩 괜찮은 장비들도 널려있었으니 말이다.

“클클. 가격이 제법 세긴 하지만… 손님은 돈이 꽤 많으신가 봅니다.”

“가격이나 알려 주십시오.”

우성이 눈짓으로 처음에 확인했던 장비 ‘레퀴엠의 잿빛 지팡이’를 가리켰다. 노인은 선반에 올려져 있던 지팡이를 들어 올리곤 이리저리 살폈다.

“꽤 괜찮은 지팡이지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건인데, 꽤 알아주던 플레이어가 쓰던 겁니다. 뭐,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요.”

“그런 건 됐고, 가격은 얼맙니까?”

“5만 골드. 그래도 능력치를 확인하셨다면 아시겠지만, 제법 쓸 만한 겁니다.”

쓸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웬만한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본다면 눈에 불을 키고 침을 흘릴 만한 장비였다.

문득 우성은 이곳에서 가장 좋은 장비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 ‘쓸 만하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장비가 이 정도면, 과연 ‘좋은 물건이다’라는 장비는 어떤 물건일까.

“그보다 좋은 장비는 없습니까?”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는 말이었다. 우성의 말은 ‘암상의 수준이 이 정도냐’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요. 클클클.”

우성이 레퀴엠의 잿빛 지팡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노인이 선반 위로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구부정하게 휜 등을 두드리며 노인이 우성과 안현수의 몸을 위아래로 살폈다.

“거 보아하니, 그쪽 분 꺼 창에 손색이 없어 보이고… 이쪽은…….”

“저도 무기는 됐습니다.”

“무기가 필요 없으시다? 흠…….”

안현수의 창을 슬쩍 보던 노인은 단숨에 그의 창이 범상치 않은 무기임을 알아차렸다. 아포피스를 장갑의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우성은 무기가 보이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검을 추천할까 우성은 무기를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그럼 남는 건 옷인데… 쯧.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는데, 거 옷 좀 제대로 된 것 좀 걸치고 다니시지는.”

몸을 돌린 노인이 우성과 안현수를 향해 손짓했다.

“따라 오십쇼. 그렇잖아도, 끝내주는 옷이 두 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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