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13화 (113/258)

113화

클럽 안쪽의 무대는 우성에게 무척 익숙한 곳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리던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음악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여자들과 남자들, 그리고 그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괴로워하던 우성.

눈앞에 그려진 과거의 모습에 우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과거라고 할 만큼 오래된 일은 아니었지만, 아포칼립스의 시간을 살고 있는 우성에게는 무척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우성아.”

앞장서서 걸어가던 성재가 조용한 목소리로 우성을 불렀다. 무슨 일인지 꽤 애잔한 목소리였는데, 그의 목소리는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묻혔다.

성재의 말을 듣긴 했지만 우성은 애써 그의 말을 무시했다. 음악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버린 우성에게 다시 성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성아.”

아까보다 조금 높아진 언성.

지금까지와는 달리, 예전 우성을 잘 챙겨주던 성재형의 말투였다. 아무리 귀가 안 좋아도 들리지 않을 리 없을 정도의 높은 목소리였기에, 우성은 음악소리를 핑계로 댈 수 없었다.

“왜요.”

“잘 들어. 절대 그 인간들 앞에서 지금처럼 뻣뻣하게 있지 마. 뒤지기 싫으면 말 잘 들으라는 거, 빈 말 아니야.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알아?”

“형을 위해서가 아니고요?”

“이런 답답아. 너 하나 잡는다고 나에게 뭐 보너스라도 떨어지냐? 너 그러다 뒤질까봐 걱정 되서 그런다.”

목소리는 간절했지만 우성은 아직까지도 성재의 말을 선뜻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알던 성재는 분명 평소에도 자신을 비롯한 밑의 직원들을 잘 챙겨주던 친근한 형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그 이미지는 깨진 거울처럼 박살나 버렸다.

무엇보다도 오전의 통화.

그것으로 인해 우성에게 있어서 성재의 이미지는 밑바닥 아래까지 추락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서현이를 언급해 협박을 하다니.

“늦었어요, 형.”

“이우성!”

“뭐 안 될 때마다 이름 부르는 거, 이제 그만 하죠. 안 그래도 음악소리 때문에 귀 아파 죽겠는데.”

더 이상 말을 나누기 싫다는 듯 우성은 손을 좌우로 저었다. 성재도 더 이상 우성에게 잔소리를 해 봤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그 뒤로 아무런 말도 없이 우성은 성재의 뒤를 따라갔다. 뜨겁게 춤을 추는 사람들을 지나, 무대 뒤쪽으로 향한 그들은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한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분명 경고했다.”

문고리를 잡은 성재는 곧장 열지 않고 원망스러운 눈길로 우성을 바라봤다.

“형 걱정이나 하세요.”

“시팔.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성재가 잡은 문고리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조명으로 반짝거리는 클럽 안과는 달리, 형광등으로 환하게 밝혀진 방 안이 눈에 들어왔다.

“왔냐?”

걸죽한 목소리.

방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코를 찌르는 지독한 담배 냄새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우성도 담배를 피는 편이었고, 클럽에서 일하며 여러 독한 담배 냄새는 거의 다 맡아 본 편이었다.

하지만 방 안을 가득 메운 담배 연기는 그런 우성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였다. 안현수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건 무슨 냄새야?”

‘시가 종류인가?’

이 정도로 독한 냄새라면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배는 아닐 것이다. 우성은 방 안의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덩치 큰 어깨를 바라봤다.

방 안에는 총 세 명의 남자가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아무래도 소파에 앉아서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남자가 가장 큰 형님인 모양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를 모시는 ‘아우’정도 되는 모양이었고.

후우-.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는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떼고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진한 독한 담배 연기가 방안을 더 뿌옇게 물들였다.

“성재야.”

“넵, 형님!”

“내가 꼭 이 아가들을 여기까지 불러야 겠냐?”

목에 가래가 잔뜩 낀 걸쭉한 목소리였다. 방문이 열리며 들린 목소리의 주인이 아무래도 그인 듯했다.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 어깨의 부름에 성재는 잔뜩 얼어붙었다. 아무래도 그가 성재가 그렇게 경고한 형님인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됐고, 앞으로나 잘 해라. 알잖냐? 나 이런 시시껄렁한 일로 화내는 사람은 아닌 거. 다 저 애새끼가 말을 귓구멍으로 안 처먹어서 그렇지.”

남자는 우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남자가 말한 ‘애새끼’가 우성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절 그렇게 불렀습니까?”

“당신? 허, 이 애새끼 보소. 새까맣게 어린 꼬마가 가정교육을…….”

“엄마아빠는 없고, 가정교육 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정 당신 소리 듣기 싫으면 자기소개라도 해 보시던가요.”

자신의 말을 중간에 끊는 우성의 말에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 새끼 보소. 애들아, 지금 이것이 한 말 들었냐?”

“들었습니다, 형님!”

“귀여워 죽겠지 않냐, 아주? 간 큰 놈. 그래, 새끼야. 나 어깨파 클럽 관리 담당 간부 조만석님이시다. 그러는 너야말로 애새끼 소리 듣기 싫으면 이름이나 말 해 보지 그러냐?”

기분이 나쁜 건지, 아니면 안 나쁜 건지 모를 모습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한 조만석은 우성과 안현수를 번갈아보며 소개를 요구했다.

“이우성.”

“안현수.”

짤막한 소개. 이름 외에는 자신을 소개할 말도, 소개할 이유도 없다는 듯했다. 그 중 조만석은 안현수에게로 처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래, 전직 형사님이라고 하셨나?”

“어. 너 같은 조폭새끼들 감방에 처넣던 사람이었다.”

“형사새끼들 어깨가 빳빳한 건 알고 있는데, 그것들도 결국 사람이라서 말이야. 우리 어깨파에도 전직 형사님이 한 분 계시지. 어때, 주먹 좀 쓰시나? 보아하니 실업자 같으신데, 우리와 함께 할 생각 있어?”

조만석의 제안에 안현수는 이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좆까.”

“역시 그런가. 그럼 이젠 우성아.”

“그쪽 친구 아닌데, 역겹게 친근하게 이름 부르지 마시죠. 처음 보는 사인데 존칭도 좀 사용해 주시고.”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대화가 이어져서 그런지 조만석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탁자에 부비며 으르렁거렸다.

“아따, 말 한 번 곱게 하네. 시팔, 그럼 나도 곱게 해 줘야지. 이우성씨. 대가리도 클 만큼 크고, 험한 일도 해 본 사람이라며 이러면 안 되죠? 듣자하니 당신 때문에 오는 손님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우리가 입은 피해가 얼만지 아십니까?”

“피해가 아니라 못 번 돈이겠죠. 그리고 따로 노예 계약서라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제가 일을 그만두겠다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습니까?”

천사의 조만석이 자신의 앞에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사람을 얼마나 만나 봤을까?

십여년 간 그가 만나본 사람은 지금껏 단 두 종류였다.

자신이 머리를 숙이던가, 아니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던가.

그리고 눈앞의 우성은 당연하게 자신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조만석에게는 주먹이 있었고, 조직이 등에 있었다. 누가 보나 약자는 우성이었다.

“이 새끼가 뒤지려고 진짜…….”

조만석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아저씨. 설마 손대시려고?”

안현수가 앞으로 나서며 팔을 걷었다. 그는 뺀질거리는 몸짓으로 툭툭 자신의 어깨를 건드렸다.

“맘대로 하시던가. 아. 맞다, 아저씨. 요즘 어깨파 하는 짓거리가 좀 수상하더라. 나 지금 민간인인데 이런식이면 신고할 수밖에 없어. 조폭들이, 어깨파가 민간인들 건드리고 다닌다고.”

“오냐, 새끼야. 마음대로 해 봐라. 현직 형사도 안 무서울 이 조만석이, 백수새끼 아가리 놀음에 휘둘릴 것 같냐?”

전직 형사라는 이름도 소용이 없는지, 조만석은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조만석의 뒤쪽으로 자리해 있던 두 명의 어깨가 앞으로 나섰다.

“형사였다니까, 사정은 안 봐준다.”

190에 가까운 장신의 남자가 두꺼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어린아이 얼굴 만 한 주먹은 흉기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안현수는 탄탄한 몸에 비해 한없이 초라했다. 아무리 전직 형사에, 운동을 많이 했다고는 해도 덩치에서 뿜어져 오는 힘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뻐억-.

안현수가 양 손을 들어 조폭의 주먹을 막았다. 공격받은 쪽은 안현수였지만, 오히려 놀란 쪽은 조폭이었다.

단단하다. 이것이 안현수의 팔을 두드린 조폭이 주먹을 통해 느낀 것이었다. 사람의 팔이 아닌 것처럼, 안현수의 팔은 단단한 껍질 같았다.

선빵을 막아낸 안현수가 교차한 팔을 벌리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이건 이럼 정당방위지?”

빠각-.

“아악!”

안현수의 다리가 조폭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조폭의 다리가 흔들리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안현수의 주먹이 위로 올라갔다.

콰직-.

후두부를 강타한 안현수의 주먹은 조폭의 정신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거대한 장신의 거구가 바닥에 허물어지며, 그 뒤로 또 다른 조폭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안현수는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싸움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안현수 혼자만이 아니었다.

콰드드득-.

위로 날아든 우성의 다리가 다른 한 명의 조폭의 가슴을 강타했다. 갈비뼈가 하나씩 부러지며 조폭의 눈이 고통으로 까뒤집혔다.

“끄어어어…….”

쿵-.

순식간에 두 명의 동생들이 당하자 조만석은 당황해 뒤로 물러났다. 주먹으로만 보면 휘하의 조직원들 중 제법 잘 나가는 놈들이었는데, 순식간에 둘이나 당해버린 것이다.

“뭐, 뭐야 이것들?”

저 덩치의 동생들이 주먹질과 발길질 한 번에 정신을 잃다니,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연장에 얻어맞아도 끄떡없는 놈들이었는데, 주먹질, 그것도 일반인에게 얻어맞았다고 실신이라니.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우성과 안현수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근력 능력치의 한계는 25였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계’일 뿐, 보통 사람의 근력은 8~10 정도에 불과했다.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한 여자의 경우 6~8정도였다.

아무리 힘이 센 조폭들도 15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고, 근력 20이 넘어가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우성의 근력 스텟은 30이었다. 안현수야 어느 정도 스텟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 그것에 얻어맞은 이상, 아무리 맷집 좋은 조폭들도 견디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조만석씨. 우리 이야기 복잡하게 만들지 맙시다. 나도 당신들과 복잡하게 얽히고 싶지 않으니.”

쓰러진 조폭의 멱살을 잡은 우성은 조만석의 옆으로 그 덩치를 휙 집어던졌다. 못해도 백 키로는 될 덩치를 가볍게 집어 던지는 모습은 온갖 궂은일을 다 해온 조만석도 제법 신선한 충격이었다.

“뭐, 뭐 어쩌자고?”

“나야말로 뭐 어쩌자고 묻고 싶습니다만. 멀쩡히 잘 사는 사람 불러다가, 뭐라고 했습니까? 뭐라고? 내 선에서 안 끝내면, 누굴 건드리려고?”

우성이 조만석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조만석은 천천히 다가오는 우성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밑바닥에서 십수년을 굴러온 그의 주먹은 제법 묵직했지만, 반사능력 스텟과 민첩 스텟이 높은 우성에게는 하품이 나올 따름이었다.

턱-.

우성의 손이 조만석의 멱살을 빠르게 낚아챘다. 손아귀 힘은 얼마나 세던지, 멱살을 잡은 손은 조만석의 얼굴을 우성 쪽으로 끌고 왔다.

“딱 한 번만 경고한다.”

조만석과 눈을 마주하는 우성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충혈된 눈동자라기엔 지나치게 새빨간 눈은, 조만석도 처음 보는 눈이었다.

눈의 가운데에 비친 까만 검은자위에 조만석의 얼굴이 비춰졌다. 한평생 겁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우성은 그의 얼굴을 바짝 가져와, 그의 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조만석. 어깨파? 시팔, 좆까, 이 개새끼들아! 내 딸 건드리기만 해봐, 다 죽여버릴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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