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11화 (111/258)

111화

우성은 그 뒤로 전현승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었고, 거의가 퀘스트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대략적인 퀘스트의 목적은 이미 알고 있었고, 문제는 난이도였다. 퀘스트 완료 조건만 듣고는 그 퀘스트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현승조차도 퀘스트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퀘스트의 등급이 곧 난이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S등급의 퀘스트. 우성과 전현승은 물론, 3회 차 플레이어인 에릭과 2회 차 플레이어인 에든도 처음 맡아 보는 등급의 퀘스트였다.

물론 퀘스트의 등급이 높은 만큼 그만한 보상을 기대해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난이도가 높은 만큼 위험이 따르는 건 당연했다. 당장 얼마 전 A+등급의 퀘스트만 놓고 봐도 그렇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잠시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우성은 곧 긍정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까짓것, 하자.”

안현수의 반응이야 예상했던 대로였고.

“저도 찬성이요.”

“리턴 코드라는 아이템도 있다며? 위험하면 돌아오면 되지.”

혜미나 혜정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우성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최종적으로 모든 일행들의 의견이 나오자, 우성은 전현승에게 확답을 내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전현승씨.”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우성씨.”

우성과 전현승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전현승은 새로 일행으로 합류한 우성과 안현수, 혜미와 혜정과 한 번씩 악수를 나눴다.

유독 혜미와 혜정과 악수한 시간이 길게 느껴진 건 착각일까. 그 중 혜정이 전현승의 타입인지, 혜정과 잡은 손은 아주 놓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전현승씨?”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하하하.”

짜증이 가득한 안현수의 표정에 전현승이 멋쩍은 미소를 머금으며 혜정의 손을 놓았다. 그 때, 에릭이 엣헴, 기침과 함께 혜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 합…….”

“잘 부탁합니다, 플레이어 에릭.”

그 때, 우성이 에릭의 손을 잡으며 위 아래로 흔들었다. 전현승이 선수를 쳤다고 마찬가지로 개수작을 부리는 게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잘 부탁한다니까요,, 에릭씨?”

우성은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에릭은 눈살을 찌푸리며 우성의 뒤쪽의 혜미를 바라봤는데, 아무래도 혜미가 제법 마음에 든 듯했다.

‘어딜 넘봐.’

혜미를 보는 에릭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우성은 어깨로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에릭의 얼굴에 파문이 일어났다.

“이런…….”

에릭이 우성의 손을 휙 뿌리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우성을 째려보는 게, 괜히 심보가 터진 모양이었다.

지가 차인 건 생각 못 하고.

전현승과 인사가 끝나고, 에릭은 혼자 심보가 터져 가 버렸다. 남아있는 에든이야 이미 원정을 함께 하며 알 만큼 아는 사이였으니 따로 인사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우성과 다른 일행들에게 ‘함께하게 돼서 반갑다’며 정중히 인사한 후, 전현승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대체 왜 끌어들인 거냐?”

‘저 녀석’이란 당연히 에릭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의문은 당연히 우성이나 다른 일행들도 공감하는 바였다.

전현승이야 성격은 조금 이상해 보여도 잘 알려져 있는 플레이어인 만큼 실력은 확실했다. 에든도 2회 차 플레이어인데다가 그간 원정에서 실력을 입증해 보였으니 전혀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에릭은 아니었다. 어딘가 모자라고 멍청해보이는데다가, 성격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저런 플레이어가 왜 함께 하게 됐는지 에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친구, 꽤 재미있던데? 하하하.”

뭐라고?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우성은 고개를 획 돌려 전현승을 바라봤다. 전현승을 잘 알고 있는 에든도 이 말은 어이가 없는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건 그렇고, 이유가 설마 그게 다냐?”

“뭐, 그 이유만은 아니지. 에든. 넌 저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플레이어 에릭. 드루드먼에서 활동하는 3회 차 플레이어 중, 가장 많은 원정 실패 전적을 보유하고 있는 플레이어. 성격이 괴상하고 실력이 형편없다.”

에릭은 드루드먼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플레이어였다. 전현승처럼 유명인사까지는 아니었지만, 3회 차 플레이어에 사건사고를 많이 겪은 플레이어인 만큼 그 도시 내에서는 꽤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검 루시퍼의 소유자에 뛰어난 실력으로 알려져 있는 전현승과는 달리, 에릭은 말하자면 폭탄 덩어리였다.

드루드먼 최다 원정 실패 보유 플레이어. 그는 지금까지 나선 일곱 번의 원정 중, 여섯 번의 원정 실패를 기록했다.

그 때문에 그 누구도 에릭과는 원정을 나가거나 파티를 맺으려 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원정 실패로 그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해. 드루드먼 최다 원정 실패 보유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에, 성격도 괴팍하고.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더라고.”

“실력?”

“그래. 실력은 제법 쓸 만한 플레이어야. 그렇지 않았다면, 여섯 번이나 되는 원정 실패를 겪고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 없겠지.”

에릭은 여섯 번이라는 원정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실패한 여섯 번의 원정 중 라이프를 잃은 원정은 단 한 건밖에 없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에릭을 가리켜 재수 없는 행운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그와 원정을 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결국 함께 원정을 나가면 죽는 건 에릭이 아닌, 함께 원정을 떠난 자신들이 될 것이기에.

그런데 그런 에릭이 실력만은 진짜다?

알려져 있던 사실과는 달랐다. 하지만 전현승의 말대로,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그 수많은 원정 실패에서 일일이 살아 돌아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 그 많은 원정 실패는 뭐지?”

“재수가 없는 거지. 쯧.”

“……그게 다야?”

“응. 실력은 이미 확인했어. 아마 다음에 보면 깜짝 놀랄 걸? 에든, 너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니까.”

옆에서 전현승의 말을 듣고 있던 우성은 에든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앞의 원정에서 에든의 실력을 직접 확인했던 만큼,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병신이?’

성격이 하도 이상해 실력도 형편없을 줄 알았는데, 전현승이 고평가를 내리니 제법 의외였다. 하긴, 실력만 진짜라면 성격이야 큰 상관은 없었다.

“그래도 그런 재수 없는 플레이어라면 굳이 데리고 갈 필요가…….”

“그리고 재미있잖아.”

“재미?”

“그래. 놀려먹기 좋고, 성격도 단순하고. 하하하. 정말 매력있는 친구야.”

놀려먹기 좋아서?

어쩌면 그 이유가 진짜가 아닐까 싶었다. 실력만 확실하다면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저런 이상한 이유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전현승, 너 진짜…….”

“뭐 어때. 실력만 확실하면 됐지. 알아보니 원정 실패 이유가 저 사람 때문도 아니었고.”

“그렇다면 괜찮지만…….”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 에든이 입을 우물거렸지만 전현승은 뭐가 걱정이냐는 듯 그의 등을 두드렸다.

“자, 자. 너무 그렇게 따지지 말자고. 이 아저씨야.”

**

전현승과 에든은 그 뒤 곧장 에릭을 따라 집을 나섰다. 에릭을 달래주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고, 어차피 이야기가 다 끝난 마당이라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떠나기 전, 에든은 전현승과 에릭이 머물고 있는 드루드먼의 여관과 자신이 따로 머물고 있는 하멜의 여관의 위치를 적어주었다. 서로 혹시 연락할 일이 있으면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밖으로 나가는 길, 에릭을 살살 달래는 전현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렁뚱땅한 전현승의 성격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현승과 만난 우성은 일행들과 함께 현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전과는 달리 따로 모이는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모이는 장소야 어차피 집이 있으니 정해져 있었고, 혼자 놔둔다고 불안할 만큼 이제 다들 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성은 소원의 방을 건너뛰었다. 당장 2만이 넘는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포인트를 사용하기보다는 한 시라도 빨리 현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서현이의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

현실로 돌아간 우성은 자신의 몸이 깨어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시간은 아직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었는데, 이 시간이면 분명 자고 있을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몸을 일으키고 있는 우성은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방금 막 전화를 끝낸 듯, 핸드폰의 배경화면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성재형……?”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기억들.

아포칼립스에 제법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 우성의 기억은 꽤 길게 이어졌다.

별 일 없이 지나간 하루째의 기억. 협박이 가득한 성재의 문자와, 알 수 없는 번호로 날아온 문자.

‘문자 내용은…….’

워낙 급작스럽게 밀려든 기억인지라, 문자 내용이 순간 흐릿했다. 무언가 중요한 문자였던 것 같은데.

‘아, 맞아.’

기억났다.

그 문자는 성재가 보낸 문자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번호로 날아온 문자는, 말투는 정중했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이 장문으로 적혀 있었다.

‘누굴까?’싶었지만 우성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성재의 이런 전화가 처음 걸려온 것도 아니었고, 그래봤자 클럽의 직원 중 한 명이겠거니 싶었다. 조폭이래도 찾아올 테면 찾아와 봐라 하는 마음이었고.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화가, 우성이 깨어나기 바로 직전에 걸려왔다.

- 이우성. 진짜 돌아올 생각 없냐?

성재의 목소리.

클럽에서 일을 할 당시, 친근하던 말투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살짝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재가 그립다거나, 클럽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성은 예전처럼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없습니다.’

- 너 그러다 큰일난다. 뒤져, 인마. 네 사정 알고 챙겨준 형님들이 몇인데, 이제 와서 이러기냐?

‘전 그 형님이라는 사람들 얼굴도 모릅니다만. 혹시 그 때 챙겨준 돈도 형 돈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돈이었습니까? 대단하군요.’

- 아니 그건… 하아. 됐고, 당장 오늘 밤에라도 찾아와라. 우성아. 형님들이 네 선에서만 끝낼 것 같냐? 서현이를 아는 게 나 혼자만인 것 같아? 잘 생각해 보고, 돌아올 생각 있으면 다시 연락하든, 날 찾아오든 해라.

‘형이 서현이 이름은 어떻게 알아요? 잠깐. 성재형? 성재형? 이런 시팔……!’

마지막 통화 내용을 끝으로, 3일간의 기억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그 순간, 우성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이 개새끼가……!”

배경화면에 떠오른 ‘성재형’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우성은 핸드폰을 집어던질 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서현이까지 끌어 들이려는 행태에 분노가 치솟은 것이다.

“내 딸…….”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현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성재의 얼굴이 떠올랐다.

감히, 그들은 서현이를 건드리겠다고 했다.

“내 딸을 건드리는 새끼들은… 다 죽여버린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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