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07화 (107/258)

107화

최고악(最高惡).

마왕 벨제뷔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최고(最高)라는 단어는 자존심이 강한 악마들이 감히 사용하지 않는 단어였다. 특히 왕(王)급의 악마들은, 같은 왕(王)의 이름을 가진 악마들이 자신의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세 명, 같은 왕들 중에서도 서로가 인정하는 악마는 존재했다.

최고악(最高惡) 사탄.

최저악(最低惡) 벨제뷔트.

태초악(太初惡) 디아블로.

이 세 명의 악마들은, 악마들 사이에서도 인정하던 ‘진짜 마왕’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더 이상 최고악(最高惡) 사탄은 없었다. 어떠한 이유로 스스로 멸하기를 자처한 그는, 최저악(最低惡) 벨제뷔트에게 최고악의 이름을 물려주고 영면에 빠졌다.

최고악의 부재는 악마들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다. 그는 태초부터 존재해온 악마라는 디아블로를 제압하고 악마들의 진정한 왕으로 우뚝 선 존재였다.

최고악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롭게 최저악에서 최고악이 된, 벨제뷔트는 디아블로와 어깨를 나란히 두었다. 사탄과 같은 최고악의 칭호를 얻었지만, 그렇다 해도 진짜 사탄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금 최고악 벨제뷔트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사라지기 전 중립 지역으로 향했던 바, 대부분의 악마들은 그가 천사들의 함정에 빠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천사가 된 벨제뷔트라…….‘

최고악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천사들의 대천사장과 같다고 볼 수 있었다. 천사들을 통솔하고, 대표 하는 이름이 대천사장이라면 악마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 최고악이다.

“그럼 벨제뷔트님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나야 모르지. 하지만 아마, 중간지역에 있지 않을까 하는군.”

“중간지역이라… 그렇군요.”

하긴, 지금의 벨제뷔트는 천사도, 악마도 아닐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천사 진영도, 악마 진영도 아닌 중간지역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튼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어. 고맙다.”

[A+퀘스트 - ‘천사가 만든 동굴‘을 완료하였습니다.]

[3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0000레벨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라이프(Life)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원정대’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천사를 베는 검’을 보유중입니다. 칭호 변경 시 근력과 민첩이 1포인트 상승하며, 마력 스텟이 5포인트, 정신력 스텟이 3포인트 감소합니다.]

[던전 보상 ‘성마검 벨제뷔트’를 성과물로 지불하였습니다.]

[5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한 번에 한해 볼락에게 부탁을 할 수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는 당신의 부탁을 들어 줄 것입니다.]

성마검 벨제뷔트를 내놓음으로서, 5000포인트를 획득했다. 메시지를 보니 벨제뷔트는 볼락의 손으로 넘어갈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 벨제뷔트에 큰 욕심은 없었다.

‘천사를 베는 검?’

처음 보는 칭호에 우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이번 원정을 통해 얻은 수확은 퀘스트 완료 보상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우성

직업 : 아포피스의 대리자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남자

칭호 : 천사를 베는 검

클레스 : S

[능력치]

- [근력 : 47] [민첩 : 46] [체력 : 57] [맷집 : 42] [반사능력 : 40] [마력 : 53] [정신력 : 76] [마기 : 15] [PP : 1860]

: (- 1000p)

* 플레이어 특성 : 불굴의 의지 Lv.7 <상세정보>

* 업적 : 죽어가는 숲의 생존자, 숲의 입구를 열다, 개미소굴을 소탕하다, 대천사의 씨앗을 제거하다, 대천사의 분신을 제거하다.

* 포인트 : 22124p

* Lv. 포인트 : 18480

* Life : *****

역시 단기간에 스텟을 올리는 데에는 일반적인 사냥이나 수련보다는, 새로운 던전이나 퀘스트가 보다 효과적이었다. 왜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던전, 퀘스트 하면 눈이 커지는지 알 것 같았다.

‘업적 보상이랑 새로운 칭호 덕분인가? 스텟이 확 늘었군.’

가장 눈에 띄는 스텟의 변화는 역시 마력과 정신력이었다. 다른 스텟들 역시 적지 않은 폭으로 올랐지만, 마력은 8, 정신력을 6으로 상승폭이 비약적으로 컸다.

기본적으로 제일 스텟의 상승 폭이 적은 스텟은 각각 3포인트씩 스텟이 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칭호와 업적의 보상이 제법 큰 모양이었다.

‘이걸로 업적이 5개인가?’

플레이어 한 명이 가질 수 있는 업적의 개수는 5개였다. 칭호는 단 하나밖에 사용할 수 없었는데, 이에 비하면 업적은 플레이어의 능력을 보다 손쉽게 올려주었다.

하지만 업적이란 그렇게 구하기 쉬운 게 아니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한 회 차에 하나의 업적을 구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기에 3회 차 이상의 플레이어들되어야 이나 5개의 업적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모아버렸어.’

나쁘지는 않지만, 이제부터는 순수하게 수련이나 포인트를 통한 스텟의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성은 속이 쓰렸다. 하지만 다른 플레이어가 본다면 벌써부터 5개의 업적을 모두 모았다며 부러워 할 일이라, 배부른 아쉬움일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때,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에든이 물었다. 처음과는 달리 제법 초조해진 표정의 볼락은 그의 질문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군.”

“계획이 없으십니까?”

“일단, 디아블로님을 뵐 생각이야.”

태초악(太初惡) 디아블로. 그는 벨제뷔트가 부재중인 지금, 사실상 최고의 악마라고 할 수 있었다. 악마들이 처음 태어날 때부터 존재해 왔으며, 같은 마왕들조차 같은 악마인 그를 두려워 할 정도이니 말이다.

“디아블로님을 뵙고, 벨제뷔트님의 행방을 알아 봐야겠지.”

“그렇군요. 부디 일이 잘 마무리되길 빕니다.”

“나가려는가?”

보상을 받았으니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건가? 에든은 미련 없이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그렇군.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라.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선이면, 무엇이든 한 가지 들어주도록 하지.”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뒤를 따라 다른 일행들 역시 소파에서 일어났다.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어차피 보상도 챙긴 것 우성은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다.

그 때, 볼락이 떠나는 일행을 보며 여운을 남겼다.

“어쩌면 조만간 자네들을 다시 볼 지도 모르겠군.”

**

구름 위를 연상케 하는 하얗고 폭신한 바닥. 그리고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과 거대한 신전의 구조물.

대천사 미카엘은 염화(炎火)의 천사였다. 지옥의 겁화를 뛰어넘는 유일한 불이며, 태초의 천사들을 창조했다 전해지는 불꽃이 바로 염화였다. 그런 불을 다루는 미카엘은, 대천사장 라파엘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다 알려져 있는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인간들은 천사와 악마들을 신적인 존재로 치부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들은 조금 특별할 뿐인 하나의 종족이며, 이 세계를 만든 창조신의 피조물에 불과했다.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태생적인 강함에 수련을 통해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인간들과는 달리 태생적인 강함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람에, 보통 악마들과 천사들은 따로 단련을 하지 않았다.

화아아악-.

거대한 염화의 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구름 위의 구름을 뚫고, 마치 태양까지 향할 것만 같은 염화의 기둥은 천사들의 진영, 일명 천계(天癸)를 후끈 덥혔다.

“또 미카엘님이신가?”

“하여튼 다른 대천사분들과는 달리, 정말 자주 보이시는 분이야. 하루가 멀다 하고 저리 염화를 보여주시니.”

미카엘의 염화는 모르는 천사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수천 년 전부터 줄곧,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천계를 덥혀왔으니 말이다. 그것도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시간 동안 그의 염화는 천사들의 눈을 비춰왔다.

다른 대천사들과는 달리 미카엘의 강함은 태생적인 강함에 스스로의 노력이 더해져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천사임을 망각하기라도 한듯, 인간처럼 매일 스스로를 두드리고 단련해왔다.

그 결과 그는 대천사장은 아니더라도 일반 천사장의 신분에서 대천사가 될 수 있었고, 이제는 대천사장 라파엘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천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화륵-.

염화의 검이 대기를 태웠다. 태우지 못할 것이 없다는 염화가 응집된 검은 미카엘의 무기였다. 그는 여덟 개의 염화의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니, 날아오르려 했다.

“……루시퍼?”

검을 휘두르며 한 점 흔들림이 없던 그의 눈에 일순 파문이 일었다. 거대한 강에 작은 조약돌 하나가 떨어진 정도의 변화였지만, 그의 표정이 감정이라는 것이 생겨났다는 건 제법 큰일이었다.

“분신이 사라졌다?”

미카엘의 몸을 감싸고 있던 염화가 꺼졌다. 그의 주위로는 한 점 공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온 몸을 두르고 있던 염화가 사라진 그의 얼굴은 제법 미남이었는데, 염화처럼 새빨간 머리는 그의 얼굴과 무척 잘 어울렸다.

“정말… 루시퍼인가?”

분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은 미카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마검 벨제뷔트를 성검으로 바꾸는 계획은 미카엘이 수백 년 전부터 계획해 오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악마라면 절대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미카엘의 결계를 ‘이방인’들이 통과한 것이다.

“이것까진 예상했다.”

이방인들의 개입. 이방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10년, 20년 정도의 세월은 태초에 가까운 시절부터 존재해온 미카엘에게 찰나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방인들의 존재는 감히 간과할 수 없었다. 그들의 힘은 천사들은 물론, 악마들을 위협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미카엘은 이방인들의 존재로 인한 변수를 이방인들로 막아내기로 했다.

"미카엘.“

그 때, 미카엘의 신전으로 익숙한 얼굴이 찾아왔다.

긴 녹색 머리를 아무렇게나 기르고 얇은 순백의 옷을 치렁치렁 두른 다섯 쌍의 날개를 가진 유일한 천사.

바로 대천사장 라파엘이었다.

“벨제뷔트가 사라졌다.”

“그래. 내 분신도 죽었더군.”

두 사람의 대화는 간결했다. 미카엘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인지라, 보통 일이 아님에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의 검도…….”

“어쩌면이 아니라, 확실하겠지. 그곳에 악마들의 이방인이 찾아갔으니.”

“이방인들이?”

라파엘은 마검 벨제뷔트가 봉인되어 있는 장소를 미카엘의 분신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도록 부탁한 것도 자신이었고, 그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니까.

더군다나 휘하 천사들 오십과 백골렘까지 보내놓은 상태였다. 최근에 들어서는 나름 실력 있다는 이방인들과 미카엘의 계약자까지 보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 미카엘의 계약자가 불의의 일로 볼락에게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던 차, 교화중이던 벨제뷔트가 사라지고 미카엘의 분신이 죽으면서 이방인들에게 마검, 아니 이제는 성마검이 된 벨제뷔트를 빼앗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놈들이 문제였나?”

“그 놈들만은 아니지. 우리도 그렇듯, 악마들과 그들의 검은 평행선들 걷는다. 우리가 벨제뷔트를 놓치지 않았다면, 이방인들도 검을 회수하지 못했겠지.”

그 누구보다 마검과 악마들, 그리고 성검과 천사들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미카엘과 라파엘이었다. 그런 만큼 이번 일의 잘못을 무조건 이방인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들의 영향이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

“그보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벨제뷔트를 찾는 게 먼저 아닌가? 그렇게 되면, 성마검도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될 일인 텐데.”

“그렇긴 하군.”

과거 수천년 전, 악마들과 천사들 간의 균형이 깨어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천사 루시퍼의 악마화, 타락 천사의 등장이었다.

대천사 미카엘과 라구엘, 그리고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몇몇 대천사들은 일명 ‘타락 악마’를 만들기를 계획했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지던 이 계획은, 벨제뷔트를 사로잡음으로서 성공하나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벨제뷔트는 천사도, 악마도 아닌 상태로 그들의 손을 벗어났다. 이것만 해도 나름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라파엘은 유일무이한 다섯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미카엘을 향해 말했다.

“대천사들에게 말한다. 지금 이 시간부로 휘하의 천사들을 모두 동원해 사라진 벨제뷔트를 찾는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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