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05화 (105/258)

105화

<성마검 벨제뷔트>

성당의 정 중앙의 검은 반쯤 땅에 꽂혀 있었다. 손잡이부터 검신까지 연한 회색빛을 띄고 있었는데, 우성은 그 검을 보는 순간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을 함께 느꼈다.

“……뭐지?”

아무리 주위를 둘러 봐도 성당 안에는 검 외에 다른 물건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면 저 검이 바로 이 던전의 마지막 보상이라는 뜻이었다.

과정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싶은 보상이었지만 우성은 어떤 실망감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검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우성은 검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성당은 규모에 비해 있는 게 없었다. 몇 개의 의자와 천장의 정 중앙에 뚫린 구멍, 그리고 그 구멍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

천장의 구멍에서 새어 들어온 빛은 검을 비추고 있었다. 검은색에 더 가까운 회색을 띄고 있는 검이었지만, 검은 새하얀 빛을 받아 형형한 밝은 빛을 뿜었다.

우성은 검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빛에 닿은 손이 따끔거리기 시작하며 우성은 반사적으로 손을 뺐다.

[경고! 과도한 신력에 노출되었습니다. 더 이상 신력에 노출되면 일시적으로 스텟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뭐야?”

신력?

천장에서 들어온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마치 처음 결계를 통과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역시 결계를 감싸고 있던 힘은 천사들의 ‘신력’이었던 모양이었다.

손이 따끔거렸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우성에게는 스텟 ‘마기’가 있었다. 스텟의 일시적인 저하 역시 경계를 통과했을 때와 같은 패널티였다.

‘이것도 미카엘이 쳐 놓은 건가?’

결계 정도의 패널티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우성은 손을 뻗어 검을 움켜쥐었다. 전기처럼 팔을 따갑게 찌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 정도 고통은 견딜 만했다.

[과도한 신력에 노출되었습니다.]

[마기 스텟을 측정합니다.]

[마력 스텟을 측정…….]

역시나 결계를 통과할 때와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팔에 가해지는 고통은 지금이 훨씬 크다는 점이었다.

[2일간 모든 스텟이 5포인트 감소됩니다.]

최종적인 패널티에 우성은 속으로 경악했다. 결계를 통과할 때는 고작 1포인트 감소였는데, 무려 그 다섯 배인 5포인트라니.

우성은 속으로 차라리 안현수나 다른 일행들을 시킬 걸 하며 후회하고는, 움켜잡은 검을 뽑아 빛에서 꺼내었다.

스걱-.

검은 거친 소리를 내며 땅에서 뽑혀져 나왔다. 빛 사이에서 빠져 나온 검은 생각보다 검은 색이 도드라졌다. 검의 손잡이와 검신을 잇는 사이에는 진한 붉은 색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막 검의 능력을 확인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히든 던전 - ‘대천사의 함정‘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던전 보상 - ‘성마검(聖魔劍) 벨제뷔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성마검?’

성검도 아니고, 마검도 아니고, 성마검이라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장비 등급이었다. 천사 진영의 최고 등급 아이템인 성(聖)과 악마 진영의 최고 등급 아이템인 마(魔)가 동시에 들어가 있으니,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라고 봐야 할까?

우성은 좀 더 생각을 하기보다는 일단 벨제뷔트의 능력치를 확인하기로 했다.

[성마검(聖魔劍) 벨제뷔트]

* 벨제뷔트는 옛 악마들의 정점이었던 사탄의 자리를 물려받은 최고악(最高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사탄과 마찬가지로, 악마들의 최고악 벨제뷔트 대천사들의 함정에 빠져 부상을 입고는 홀연히 자리를 감추었다.

* 마검(魔劍) 벨제뷔트는 오랜 시간 동안 신력을 받아 마검(魔劍)도, 성검(聖劍)도 아닌, 성마검(聖魔劍)으로 변화한 상태이다.

* 본래 벨제뷔트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대부분 잠재되어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벨제뷔트의 권능에 의해 본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유니크 직업 - 벨제뷔트의 종속]으로 전직이 가능하다.

+ 사용자의 능력에 비례한 등급의 악마 소환 가능(상세정보)+ 마기 스텟의 생성 가능(선택)

+ 모든 스텟 1포인트 상승

+ 절삭력(공격력) 10% 상승

+ (잠김)

+ (잠김)

다른 아이템에 비해 제법 설명이 긴 무기였다. 사실 능력만 놓고 보면 성(聖)과 마(魔)가 들어간 장비라고 생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무기였다.

하지만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 다량의 신력에 노출된 벨제뷔트는 본래의 힘이 대부분 잠재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 증거로 장비의 능력 중에는 (잠김) 표시가 되어있는 칸이 있었다.

마검이라면 악마 진영에서도 최상위 등급으로 표시되어 있는 만큼, 중요한 무기이긴 했다. 하지만 미카엘씩이나 되는 대천사가 고작 장비 하나 때문에 움직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최고악(最高惡) 벨제뷔트가 연관이 되어 있는 건가?’

무기의 설명으로 보면, 벨제뷔트는 대천사들의 함정에 빠져 사라졌다고 했다. 그 직후 마검 벨제뷔트를 성검으로 바꾸는 계획이 시행되었다니, 그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뒤가 구렸다.

‘마검과 악마 사이에 정말 관계가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대천사가 고작 무기에 이런 큰 던전을 만들면서까지 음모를 꾸몄을 것 같지는 않았다.

벨제뷔트를 이리저리 들고 살피는 우성에게 안현수가 기다리다 지쳐 물었다.

“그 검 대체 뭐냐?”

“직접 확인해 봐.”

우성은 안현수에게 벨제뷔트를 건넸다. 그러자 세 명의 일행이 각자 돌아가며 벨제뷔트의 설명과 능력을 확인했다. 그 반응들은 우성과 거의 비슷했다.

“애매한데.”

“그렇지?”

“사용하거나 팔기엔 장비 효과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설명을 보니 그저 그런 장비는 또 아닌 것 같고…….”

안현수의 말이 바로 우성의 생각이었다.

말 그대로 계륵(鷄肋). 좋은 장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다. 더군다나 우성에게는 전혀 부족할 게 없는 아포피스라는 최상의 검이 있지 않은가.

“일단, 가지고 돌아가자.”

그 뒤로 성당 안을 좀 더 뒤져 봤지만 따로 나오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이 성당 자체가 오로지 벨제뷔트를 위해서 만들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일행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는 에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몸이 조금 회복되어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 제대로 몸을 가눌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결국 에든은 안현수가 부축하기로 했다. 이 역시 우성과 가위바위보로 결정되었는데, 안현수는 ‘왜 또 나야!’라며 절규했다. 일행은 천사들의 시체와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아 사라지지 않은 플레이어들의 시체, 그리고 백골렘과 기형 천사들의 잔해들을 지나쳤다.

일행은 백골렘의 핵과 기형 천사들의 날개, 천사 진영 플레이어들의 몸을 뒤져 나온 몇 개의 장비와 벨제뷔트까지, 이번 원정으로 얻은 모든 수확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죽은 플레이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살아남았기에 얻을 수 있었던 보상이었다.

길고 긴 던전을 되돌아간 우성은 가장 처음 던전으로 들어갔던 입구를 지나치며 결계가 사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과는 달리, 입구를 나오며 아무런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방인들이 나왔다!”

던전의 입구를 나오자, 우성과 다른 일행들을 확인한 악마가 소리쳤다. 설마 계속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던 우성은 악마들이 보이자 내심 놀랐다.

악마의 외침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볼락의 종속인 라몬이었다. 그는 던전에서 나온 우성과 다른 일행들을 둘러보고는 물었다.

“다른 이방인들은 어디 있지?”

“……모두 죽었습니다.”

“전부?”

공교롭게도 우성을 포함한 다른 일행들만 빠져나왔다. 에든 한 명이 살아있긴 했지만, 그도 몸이 썩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으 라몬은 미심쩍은 눈으로 우성의 뒤쪽으로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볼락님은 어디 계십니까?”

서둘러 보상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우성은 라몬을 재촉했다.

“영지에 돌아가 계시다. 대충 탐사도 끝난 것 같으니. 보고는 영주님 앞에서 받도록 하지.”

**

하멜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험난하지 않았다. 볼락이 없더래도 다수의 중급 악마들과 남작급의 악마인 라몬이 있는 이상, 서쪽 숲의 하급 마수들 정도가 감히 덤벼들지 못한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서쪽 숲은 개발이 잘 되어있지 않은 만큼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규모가 큰 만큼, 도시로 돌아가는데 걸린 시간만 사흘에 가깝게 소모되었다.

그 과정에서 에든은 악마들에게 어떤 편의도 받을 수 없었다. 여전히 안현수와 우성, 그리고 가끔씩은 혜미나 혜정의 부축을 받으며 에든은 힘겹게 움직였다. 그렇게 이틀쯤 이동했을 때, 꾸준한 혜정의 치료 덕분에 에든은 혼자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일행은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북문으로 우회하였다. 그쪽이 볼락이 있는 성과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북쪽 성의 광장을 지나, 일행은 처음으로 성문을 지났다. 거대한 성문은 특별한 재질로 만든 단단한 쇳덩이로 이루어져 있어, 감히 그 너머를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그그그-.

굳건히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자, 일행은 라몬의 안내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하멜의 성에 들어온 안현수는 간소한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우성과 다른 일행들 역시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사는 성이라는 생각 탓에 음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성 안은 보통 중세 성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처음 성으로 들어가 높고 아름다운 홀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보았던 영국의 성과 꼭 닮아있었다.

“뭐 하고 있나? 얼른 따라오지 않고.”

감상도 잠시, 라몬은 걸음을 멈춘 일행들을 재촉했다. 좀 더 성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볼락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라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볼락은 성의 가장 위층에 있었다. 악마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악마들은 높은 곳을 선호했다. 그 때문에 성 내의 악마들 간에도 등급이나 권력에 따른 거주 층수가 달랐는데, 라몬은 볼락이 있는 가장 위층에서 바로 아래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성은 총 5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높이가 어지간한 20층 아파트와 비슷했다. 1층 홀이야 말할 것도 없고, 2층부터 5층까지의 모든 층의 천장이 워낙 높았던 탓이었다.

다리가 아플 만큼 계단을 오른 뒤에야 5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체력이 좋은 우성과 안현수, 에든은 괜찮았지만 혜미와 혜정이 꽤 지쳐 보였다.

“여기다.”

“아 진짜, 더럽게 높네!”

다리가 아프다며 울상을 지으며 혜미가 불평을 토로했다. 하지만 라몬은 그런 사정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넓은 5층에 단 하나뿐인 문앞으로 다가갔다.

“라몬이냐?”

문을 두드리기도 전, 안쪽에서 볼락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닌 듯 라몬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이방인들이 돌아왔습니다.”

“들어 오거라.”

라몬은 일행을 향해 문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가장 먼저 앞에 서 있던 우성이 라몬이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가고, 에든과 안현수를 비롯한 일행들이 뒤따랐다.

5층의 볼락의 방 안은 보는 것처럼 넓었다. 한 층의 전부가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대체 몇 평이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한 층 전부가 하나의 던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래도 텅 비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벽의 곳곳에는 식기들과 그림, 무기들과 같은 여러 장식들이 배열되어 있었고 있을 만한 가구들은 다 갖춰져 있었다. 한 층 전체를 하나의 방으로 사용한다는 게 너무 비효율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사람의 생각과 악마의 생각이 같을 리 없으니 따질 생각은 없었다.

“돌아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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