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02화 (102/258)

102화

서걱-.

천사의 날개를 벤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쉽게 떨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원래 이렇게 쉬울 리는 없겠지.’

우성은 다른 하나의 천사가 찔러오는 창끝을 바라봤다. 제법 날카로운 창끝은 정확하게 우성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오고 있었다.

천사들의 신체능력은 3~4회 차 플레이어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원래의 우성이라면 보통 천사 하나를 감당하기도 버거울 것이다.

하지만 <대리인>을 사용한 우성은 천사가 그렇게 버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찌르는 창이 느리고 무디게 보여, 우성은 가볍게 검을 휘둘러 천사들의 창을 막아낼 수 있었다.

쉬익-.

창끝의 궤도를 흘려보낸 후, 우성은 곧장 천사를 향해 검을 수직으로 베었다. 하지만 천사들이 영 허약한 건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우성의 검을 피해내며 창을 고쳐 잡았다.

짧은 순간 이어진 교전에 안현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성을 바라봤다. 이미 천사의 창에 어깨를 꿰뚫린 안현수는 구멍이 뚫린 어깨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너… 멀쩡한 거 맞냐?”

“……아직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신할 수 없어 우성은 여지를 남겨두고 대답했다. 안현수는 긴장한 듯 우성을 바라보다 손바닥으로 타고 있던 용을 쓰다듬었다.

“내려가자.”

키아아오-.

거대한 주둥이를 벌리며 용이 울음을 토해냈다. 용은 마치 날개가 달린 작은 공룡같은 모습이었는데, 덩치가 3미터가 조금 넘어 작은 코끼리만했다.

용기사(Dragon Knight)라는 직업의 이름을 생각해 보면, 안현수가 용을 부린다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안현수도 지금껏 은연중 숨기는 게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용을 부리는 건 그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역시 소환 주문인 만큼 일정량의 포인트가 필요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제법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던 듯, 지금껏 안현수는 한 번도 용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멋지네. 용.”

“그렇지? 이름은 준이로 정했다.”

“무슨 또 이름이야? 됐고, 혜미랑 혜정이나 잘 부탁… 아니, 됐다.”

‘부탁한다’라는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우성은 몸을 돌렸다. 안현수의 어깨에 난 상처가 제법 크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지금은 반대로 혜정에게 안현수의 상처를 돌봐달라고 부탁할 때였다.

쉬익-.

깡-!

우성은 세 마리의 천사가 찔러오는 창을 동시에 쳐냈다. 플레이어들과 싸우면서 천사들의 수도 제법 줄어들어 있긴 했지만, 그래봤자 아직 서른 가까이 남아있었다.

“일단, 셋!”

우성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몸을 앞으로 날려 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손 끝에 부드럽게 베어지는 느낌과 함께, 천사 셋의 몸이 반으로 베어져 땅으로 떨어졌다.

“후우우.”

몰아쉰 한숨을 길게 내쉬며 우성이 바닥에 착지했다. 그 수 순간, 가슴과 함께 발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윽.”

‘내 몸도 아주 정상은 아니고.’

가슴의 상처야 말할 것도 없었고 우성 스스로 자해한 상처도 자세를 무너뜨리는데 한몫 하고 있었다. 특히 가슴의 상처는 잘못 움직였다가는 크게 벌어질 것 같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혜미, 혜정! 그리고 살아있는 분들 모두 이쪽으로 모이십시오!”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일일이 보호할 여력이 없어 우성은 혜미와 혜정을 포함한 살아있는 플레이어들은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우성을 포함해 7명이었다.

그 중에는 당연하게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에든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혼자서만 벌써 셋의 천사를 죽였는데,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보나 체력적인 소모로 보나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칼랍을 비롯한 천사들은 쉽사리 우성을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방금 전 우성이 세 명의 천사들을 베어버린 탓에 쉰 명이었던 천사가 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뭐 해? 안 덤비고.”

“……이방인들을 너무 무시했군. 설마하니 미카엘님을 상대할 수 있는 이방인이 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 우릴 살리니, 마니 하던 새끼는 어디로 갔지? 이빨까지 말고, 얼른 덤벼.”

우성은 손가락을 흔들며 ‘들어와’라며 칼랍을 도발했다. 그렇지 않아도 칼랍은 움직일 생각이었던 듯, 한 손으로 창을 앞으로 겨누며 한 손을 높게 들었다.

“지금부터 모든 천사들은 저 이방인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미카엘님의 명령은 아직 유효하다. 목표는 이방인들의 말살이다. 실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던 천사들이 일제히 우성을 노리고 창을 찔러왔다. 수십의 창이 자신을 노렸지만, 우성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으니…….’

오히려 다른 플레이어들, 정확히는 안현수와 혜미, 혜정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천사들은 우성과 다른 일행들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우성 한 명만을 노리고 있었다.

“혜미, 혜정. 그리고 다른 플레이어 분들.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

퍼억-.

힘차게 대답하던 한 여성 플레이어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우성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여성 플레이어의 머리를 짓뭉개고 있는 거대한 도끼가 보였다.

“넌!”

“니들이 잊고 있던 쩌리들이다, 이 개새끼들아!”

쉬익-.

깡-!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 이는 카치로와 함께 도망갔던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였다. 그를 포함한 두 명의 플레이어는 각각 한 명의 플레이어의 머리를 깨버리고는, 다음 플레이어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에든과 안현수의 적절한 대응으로 그들의 다음 대상인 플레이어는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인원이 순식간에 두 명이나 줄어들고, 예상치 못한 적이 등장하자 우성은 애가 탔다.

이것으로 남은 플레이어는 우성을 포함, 고작 다섯이었다.

‘저것들을 놓치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길게 생각할 새가 없이, 천사들의 창이 우성을 덮쳐왔다. 우성은 재빨리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키고는 아포피스에 마력과 마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어차피 1시간 뒷면 사라질 힘.’

우성은 가진바 모든 마기와 마력을 쏟아냈다. <대리인>의 효과인지, 아포피스의 주위를 감싼 기운은 마력보다는 마기가 더욱 짙어 검붉은 색이 더욱 형형했다.

사악-.

우성의 검이 천사의 창을 지나쳐 목을 베어냈다. 순조롭게 한 명의 목을 베어냈지만, 시작과는 달리 과정은 썩 순탄하지 않았다.

“이방인!”

“시끄러-!”

우성은 두 갈래로 나뉜 기다란 창을 크게 휘둘러 오는 칼랍을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미카엘이 사라진 지금, 칼랍이야말로 남아있는 천사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칼랍은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상급 천사였다. 다른 천사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아, 칼랍은 힘겹게나마 우성의 검을 막아냈다.

까아앙-!

“윽.”

“……젠장.”

그대로 밀어붙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성은 곧장 칼랍의 창을 떨쳐낼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수십의 천사들이 금방이라도 몸을 벌집으로 만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쪽은…….’

그 순간, 우성의 눈에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과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안현수, 에든이 들어왔다.

***

왼쪽 어깨가 꿰뚫린 안현수는 한 팔만으로 창을 휘두르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왼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평소의 절반 정도밖에 실력을 발휘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레이트 힐(Great Heal)!”

제법 고가의 마법서에 속하는 회복 주문은 빠른 속도로 어깨에 느껴지는 통증을 완화시켜 주었다. 더군다나 혜정의 플레이어 특성은 5레벨의 <축복>으로, 버프나 회복과 같은 이로운 효과에 추가 보정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왼 팔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른팔을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고맙다 혜정…….”

“오빠, 뒤에!”

감사의 인사를 마저 듣기도 전, 혜정은 안현수를 향해 도끼를 휘둘러 오는 플레이어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안현수가 눈을 빛내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창에 용력을 가득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쨍-!

천룡창(天龍槍)의 창대가 플레이어의 도끼와 부딪혔다. 용력을 어지간히 불어넣어 그래도 상대할 만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안현수는 플레이어의 도끼질에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 용(龍)등급이라는 무기의 격차가 있음에도 매울 수 없을 만큼, 안현수와 천사 진영 플레이어 사이에는 스텟이 차이가 존재했다.

‘끙. 미치겠군.’

우성은 혼자 천사들 수십을 막아내고 있건만, 자신은 플레이어 한 명을 상대하지 못해서 끙끙거리는 꼴이라니. 다행히 적절한 타이밍에 혜미의 마법이 플레이어를 덮치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다.

“오빠! 괜찮아!”

“아, 그래. 혜미야, 고맙다.”

옆을 힐끗 보니 에든은 혼자서 플레이어 한 명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우성처럼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역시나 2회 차 플레이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도 질 순 없지.”

에든이 한 명을 막아주니 안현수와 혜미, 혜정은 한 명의 플레이어를 상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상대는 2회 차 플레이어, 이쪽은 신규 플레이어만 셋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신규 플레이어의 수준이 아니었다.

“준아.”

키아아아아-.

우스꽝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안현수의 용은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토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도끼를 든 플레이어도 용은 처음 보는지 흠칫 놀라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현수는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가 불러낸 용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었다. 용에도 등급이 나뉘었는데, 그의 종속 아래에 있는 용은 가장 낮은 등급의 헤츨링 수준이었다.

“어디 한 번 날아보자, 준아.”

키아아아-.

안현수가 막 용의 등에 올라 타려던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웅-.

안현수가 들고 있던 천룡창이 지금껏 보여준 적 없던 울음을 떨었다. 들고 있던 안현수가 깜짝 놀랄 정도의 떨림이었다.

“이, 이거 왜 이래?”

“오빠, 뒤!”

혜정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천룡창의 떨림은 너무 심해, 도저히 안현수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혜정의 보호 마법이 적절한 타이밍에 완성되었다. 안현수의 주위로 투명한 막이 생겨나는 것을 선수로, 천사 진영 플레이어의 도끼가 아래로 내려찍혔다.

꽈직-.

쨍-.

장작 패는 듯한 소리를 뒤로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단 한 번에 혜정이 만든 방어가 깨어진 것이다.

키아아아-.

안현수가 불러낸 용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천사 진영 플레이어를 덮쳐갔다. 작은 코끼리만한 용이 날아들어 덮치자, 플레이어는 제법 기겁한 듯 반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덩치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용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퍼억-.

캬아아아악-!

“준아!”

거대한 양손 도끼에 얻어맞은 용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내심 긴장했던 플레이어는 어이없다는 듯 안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뭐야, 별 것 아니잖아?”

“시발, 이거 대체 왜 이래! 불량품이냐!”

아직까지도 천룡창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휘두르는 것은 커녕, 들고 있기도 힘이 들 정도로.

그 순간, 땅에 고꾸라진 용이 고개를 쳐들며 안현수를 향해 울었다.

키야오-!

[용력(龍力) 스텟 30포인트를 달성하였습니다.]

[천룡창(天龍槍)이 각성의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천룡창(天龍槍)이 신룡창(神龍槍)으로 상향됩니다.]

[신룡창(神龍槍)의 권능과 이능이 행해집니다. 계약된 용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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