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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97화 (97/258)

97화

아아아아-.

하아아아아아-.

천사들의 울음소리는 기묘했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어,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울음소리를 통해 천사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정신력이 부족한 플레이어들은 머리를 감싸며 천사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지끈거리는 머리의 통증을 참아내야만 했다.

“대, 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건지…….”

“글쎄요… 전 스물까지 세다가 포기했습니다만.”

어디로 시선을 돌리든 보이는 건 천사들뿐이다. 물처럼 투명하게 벽을 통과해 모습을 드러낸 천사들은 어느새 양쪽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적어도 마흔은 넘을 겁니다.”

“천사가 마흔이라…….”

기형 천사만 하더라도 사실은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천사에 비해 비교적 약한 것뿐이지, 굳이 등급을 매긴다면 기형 천사들 역시 중급 이상의 마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진짜 천사가 아닌 기형 천사만 해도 그럴 진데, 한 쌍의 날개를 온전히 갖춘 진짜 천사들은 과연 얼마나 강할까? 우성은 아직까지 진짜 천사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중급 악마 정도이려나?’

우성은 볼락이 거동하고 다니는 중급 악마들을 떠올렸다. 한 뼘이 넘는 크기의 뿔을 가졌으며, 제법 무서운 마기를 뿌리고 다니는 녀석들이었다.

중급 악마 하나가 어지간한 3, 4회 차 플레이어와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중급 악마라고 모두 같은 중급 악마가 아니었지만, 아무리 약해도 4회 차 플레이어의 평균 수준은 되었다.

눈앞에 천사들이 만약 중급 악마들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고작 16명밖에 남지 않은 원정대가, 3, 4회 차 수준의 힘을 가진 적 수십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가 끝일지도 모르겠군요.”

암담한 표정을 짓던 에든이 곧 잠시 내렸던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을 들어 올린 팔에는 제법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표정에 희망이 보이지는 않았다.

포기하니 편해진다는 말이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 에든은 살아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했다. 오히려 ‘어차피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이다.

내심 에든의 정신력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우성은 하늘을 배회하는 천사들을 바라봤다. 빙글빙글 허공을 돌아다니느라 수를 세기가 썩 어려웠지만, 하나 둘 세다 보니 대충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쉰 정도인가? 많기도 하군.’

천사들의 수를 세어보던 우성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왜 공격하지 않는 거지?’

이상함을 느낀 사람은 우성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더 이상 움직임이 없는 천사들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앞의 기형 천사들은 원정대를 발견하는 즉시 공격을 가해왔다. 날카로운 어금니와 손톱, 날개를 가진 기형 천사들은 그들이 아는 천사들과는 달리 ‘마수’라는 이름에 가까웠지만, 분명 반쪽은 천사였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천사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온 자신들에게 적대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분명 자신들을 발견했을 천사들이 이상하게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왜지?’

그 의문이 더욱 확대될 무렵, 허공에 둥실 떠 있던 천사들이 하나 둘 지상으로 내려왔다.

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쪽 저 멀리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뒤쪽으로 도망갈까 고민하던 플레이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들은 이 순백의 공간과 꼭 어울리는 날개를 둥글게 접으며 자신의 새하얀 몸을 감쌌다. 백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다른 천사들과는 달리 몇몇 천사들은 새하얀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는데, 여성형의 천사가 대부분인데다가 하나같이 미모가 눈이 부실 만큼 뛰어나 플레이어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죽기 전에 눈 호강은 하는군요.”

“……사람도 아닌 저런 놈들 가지고 눈 호강은 무슨. 전 사람이 좋습니다.”

“가끔은 이색적인 것도 좋지 않습니까? 저희 미국은 개방적이라서 말입니다. 하하하.”

이런 상황에서도 농이라니. 정신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태평한 건지 모를 사람이었다. 어느새 천사들은 플레이어들의 주위를 둥글게 둘러싼 상태였다.

“이방인들인가?”

다른 천사들과는 달리 두 쌍의 날개를 가진 남성 천사가 앞으로 나섰다. 한 쌍도 아니고,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라면 보통 천사는 아니었다.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만 해도 힘겨운데, 무려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들의 날개는 악마들의 뿔처럼 힘을 상징했다. 두 쌍의 날개라면 거의 상급 악마에 준하는 존재였다.

“그럼, 우리가 악마로 보이나?”

“아니. 그렇지 않다. 악마였다면 이곳에 들어오지조차 못했겠지.”

의외로 사근한 말투에 에든은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들을 적대시 한다고 생각했는데, 공격을 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저들은 먼저 대화를 시도해왔다.

“너희를 여기로 보낸 게 누구냐?”

“……그걸 우리가 꼭 대답해야 하나?”

아직 경계를 풀 수는 없어 에든은 천사의 질문에 대답을 아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고 느꼈다.

“안타깝군. 살 수 있는 구멍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이방인아.”

“살 구멍?”

역시나 싶은 마음에 에든이 눈을 빛냈다. 천사들이 먼저 ‘살 수 있는 구멍’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 천사들은 너희가 아는 악마들처럼 사악하지 않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싸움, 더욱이 불필요한 싸움이라면 할 필요가 없지.”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 믿지 않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소중한 목숨을 허비하는 그대들의 멍청함을 비웃기야 하겠지. 그럼 다시 묻겠다, 이방인들아. 그대들을 이곳으로 보낸 게 누구냐?”

이 말을 믿어야 할까, 믿지 말아야 할까.

에든은 속으로 갈등을 시작했다. 던전 안으로 들어와 깽판을 쳐 놓은 불청객을 이리 좋게 대해주니, 아무래도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볼락! 72악마 군주, 하멜의 영주, 볼락입니다!”

그 때, 원정대의 플레이어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소리쳤다.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았던 에든은 앞으로 나선 플레이어를 보며 소리쳤다.

“플레이어 리치앙!”

“저희를 보낸 건 하멜의 영주인 볼락입니다. 저희는 그의 소환에 따라 하멜에서 나름 유능한 이방인들이고, 이 던전의 정체를 밝혀내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중국인 플레이어이자 여성 마법사 플레이어인 리치앙은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에든은 어이가 없었지만, ‘살려주겠다’는 한 마디에 그녀와 같은 마음을 가진 플레이어들도 다수 있었다.

‘젠장. 어쩔 수 없나.’

여기서 허무하게 라이프를 잃느니,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희망을 따라는 게 맞을 것이다. 에든 역시 리치앙의 행동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맞습니다. 저희 원정대는, 하멜의 영주 볼락의 의뢰를 받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네가 여기 우두머리인 것 같구나.”

눈썰미가 제법인지 천사는 다른 플레이어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에든을 바라봤다. 에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성은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를 빤히 바라봤다.

‘진짜로… 살려주려는 건가?’

묻는 말에 답하면 살려주겠다. 영화 속 악역들이나 자주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들 속 고분고분 대답한 멍청이들의 최후는 늘 죽음으로 이어졌다.

우성은 자신들 역시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고, 저들은 사람이 아닌 천사라는 데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천사이기 때문에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성은 은연중 그런 생각을 해 버렸다. 천사니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우성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악마나, 천사나 결국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걸 명심해.’

그 순간 우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노인의 말.

시작의 마을의 포탈을 관리하는 노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보통 노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만이 사는 시작의 마을에서 어찌 악마들을 알고 천사들을 알며, 그 둘을 동시에 아는 듯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말 덕분인지 우성은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저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속에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만은 틀림없었다.

“정말… 묻는 것에만 답하면 살려주는 겁니까?”

“그거야 너희들의 선택에 달려있지. 그럼 다음으로 묻겠다. 혹시 여기서 이방인 박윤성을 아는 사람이 있나?”

또 다시 거론된 박윤성.

모두의 시선이 우성에게로 향했다. 방금 전 천사 진영 플레이어들과의 만남에서 우성이 김창환과 박윤성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서지 않으려고 했건만, 그럴 수가 없었다. 따가운 눈총들은 ‘얼른 나서지 않고 뭐 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우성은 천사들을 향해 성큼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은 죽었다.”

곱지 않은 눈빛을 가진 우성의 말투는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우성의 말투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지만, 정작 천사들은 별로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죽었다? 그 이방인이 말이냐?”

“그래. 그 녀석을 죽인 건 앞에서 말한 하멜의 영주, 볼락이다. 우리랑은 관련이 없어.”

“으음… 볼락. 그 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

72악마 군주라는 이름은 제법 무거운 것이었다. 적어도 그 위로 존재하는 마왕 급의 악마들을 제외하면, 악마들 중 그들보다 강한 악마는 존재하지 않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볼락’이라는 이름에 천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수긍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우성을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을 둘러보더니 물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다. 이방인 박윤성, 그는 우리 천사들에게도 무척 중요한 인물이니.”

“어차피 이방인은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알고 있다. 문제는 한 번 죽은 이방인은 다시 천사들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여기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 위험한 중간지역을 넘어야 하지.”

중간지역.

상급 마수,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온다는 지역으로 악마들의 진영과 천사들의 진영의 사이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숲이었다. 적어도 2회 차 이상의 플레이어나 되어야 반대 진영으로 넘어갈 엄두가 나기에 중간지역을 통과하는 플레이어는 그렇게 많이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중간지역을 통과하기도 전에 애꿎은 라이프만 잃어버릴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과는 마찬가지로 천사들 역시 중간 지역을 두려워 한다는 점만은 같았다. 그곳에서 출몰하는 웬만한 마수들이 중급 악마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시 묻겠다. 이방인이여, 넌 어떻게 박윤성의 존재를 아는 것이냐?”

“…….”

우성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천사들에게 있어서 박윤성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만큼, 잘못 대답했다가는 그들의 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박윤성은 대천사의 씨앗이다.

미카엘의 주구이며, 그런 만큼 천사들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를 죽였다는 것은 천사들의 반감을 사기에 아주 적당한 일이었다. 박윤성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곧장 공격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해야 할까?

그 순간, 우성의 머릿속에 다시금 노인의 말이 스쳤다.

‘악마나, 천사나 결국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걸 명심해.’

‘그래, 어차피 똑같은 놈들이라면…….’

살려줄 리가 없지.

망설임이 깨끗하게 사라지며, 우성이 눈을 뜸과 동시에 대답했다.

“내가 죽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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