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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94화 (94/258)

94화

문 안쪽으로 보이는 플레이어들의 수는 일곱 명이었다. 처음 장난스럽게 원정대를 맞이한 두 명과는 달리, 다른 다섯 명은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저곳에는 식수와 몇 가지의 생필품, 잠을 잘 수 있는 침낭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예 여기서 살림을 차린 듯했다.

‘이방인’이 아닌, ‘플레이어’라는 단어를 쓴 걸 보면 이들은 분명히 같은 플레이어들이었다. 방금 전 말투 역시도 이곳의 NPC로 보이지는 않았다.

“……플레이어들인가?”

“딱 보면 몰라, 병신아?”

에든의 물음에 낄낄거리며 받아친 플레이어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다른 몇 명의 플레이어들도 원정대를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피식피식 웃는 게, 꽤 여유로워보였다.

“천사 진형 플레이어들이겠군.”

“그래. 이 빌어먹을 퀘스트도 이제 막바지야. 악마들은 여기 못 들어온다고 했으니, 니들도 플레이어들이겠군 그래?”

악마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그것을 알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퀘스트의 조건으로 표시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플레이어들이 맡은 퀘스트는 플레이어들과 플레이어들간의 싸움인 PVP퀘스트의 일종이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지?”

“우리도 모르겠다, 시팔. 조온나 오래 있었던 거밖에. 처음 퀘스트를 맡았을 땐 대박이구나 싶었는데, 여기서 이게 뭔 꼴인지. 퉷.”

“야, 김창환.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닥쳐봐. 내가 어련히 잘하려니까.”

껄렁거리던 플레이어는 한 발 앞으로 나서 에든과 눈을 마주쳤다. 아무래도 그가 이 자리의 대표인 모양인 듯, 다른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그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았다.

“야, 넌 몇 회 차냐? 아무래도 여기선 네가 대빵인 것 같은데.”

“악마진영 2회 차 플레이어 에든이다. 그러는 넌?”

“어? 의왼데. 나도 같은 2회 찬데. 이름은 아까 들었다시피 김창환이고. 이야, 같은 회 차 동기를 만나다니. 이거 반갑네. 그런데…….”

씨익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김창환이 물었다.

“같은 2회 찬데, 넌 왜 이렇게 좆밥으로 보이냐?”

“…….”

도발이었다. 에든은 울컥하면서도 흥분하지 않았다. 이대로 달려들어 봤자, 손해보는 쪽은 자신이었다.

애초부터 에든이 성질이 급해 보이지는 않았는지 김창환은 별로 아쉽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발이 걸려들지 않아도 상과는 없다는 듯, 몸을 휙 돌리려 했다.

“야, 빡빡이.”

“뭐, 시발?”

상대적으로 머리 숯이 적은 게 콤플렉스였는지 막 몸을 돌리려던 김창환은 눈을 치켜뜨며 원정대의 사이를 노려봤다.

“어떤 개새끼야!”

“반응 한 번 적극적이네. 너도 네가 빡빡이인 건 아나봐?”

우성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하지만 나중은 몰라도, 지금 당장은 싸우러 나온 게 아니었다.

“니들 박윤성이랑 무슨 관계냐?”

“박윤성?”

버럭 화를 내려던 김창환은 익숙한 이름이 우성의 입에서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몇 걸음 더 우성과 원정대를 향해 성큼 걸어오며 물었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냐?”

역시나.

박윤성이 이 원정 퀘스트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게 확실시 되었다. 그리고 아마 그는, 이들과 함께했던 일행이었을 것이다.

“질문은 내가 먼저 한 것 같은데? 보아하니 너도 내가 어떻게 박윤성을 아는지 궁금한 것 같고.”

“이 건방진 새끼가…… 뒤질라고…….”

“아무튼 난 니들과 박윤성이 연관이 되어있다는 건 알았다. 어차피 우리, 싸울 것 아니었나? 난 궁금증이 풀렸는데. 아쉬운 쪽이 먼저 대답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성과 김창환의 대화에 에든을 포함한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성의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안현수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은 박윤성의 존재는 알았지만, 이름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후우… 좋아. 넌 시발, 이따가 내 손에 반드시 뒤질 줄 알아.”

“혓바닥 한 번 기네. 궁금하면 얼른 대답이나 하지?”

끝까지 약을 올리는 말투에 김창환은 이를 악물었지만 지금 당장 아쉬운 쪽은 그들이었다. 간신히 화를 억누른 김창환이 입을 열었다.

“함께 퀘스트를 받은 파티원이었다. 사실상 그 녀석 덕분에 이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지.”

“박윤성 덕분에? 혹시 그가, 대천사의…….”

“젠장. 많이도 알고 있군. 그래. 그 새끼 직업이 대천사와 연관이 있어. 그 덕분에 이곳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지. 파티원을 구하던 차에, 운 좋게 우리들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어떤 퀘스트냐고 물으려던 우성은 곧 입을 다물었다.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말해줄 것 같지 않았고, 잠시 말을 멈췄던 김창환이 이를 악물며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새끼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두 놈과 백 일 전쯤에 밖으로 나가더니 연락이 두절이란 말이지. 현실에서 연락처를 모르니 행방을 알 길이 있나. 그러게 혼자 움직이지 말라더니, 그 또라이 새끼. 카악, 퉷.”

말을 끝마친 김창환은 목에 끼어 있던 누런 가래를 바닥에 뱉으며 우성을 노려봤다.

“이제 네 차례인 것 같은데? 넌 박윤성을 어떻게 알지? 그 녀석은 천사 진영 플레이언데.”

“거창한 이유 있겠냐? 만났으니까 알지.”

우성의 대답은 김창환도 예상하던 바였다. 하지만 그래도 영 이해는 가지 않았다.

“만났다니, 그럼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박윤성 그 새끼, 성격은 또라이지만…….”

“그래. 세긴 세더라.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이쯤 이야기 하니 안현수를 포함한 다른 일행들도 박윤성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우성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론말 말하지. 뒤졌어, 그 새끼.”

“지랄! 박윤성 그 새끼를 죽일 수 있는 놈이 하멜에 있을 리가…….”

“누가 플레이어에게 죽었데?”

우성은 흥분해서 소리치는 김창환의 말을 끊었다.

“볼락. 하멜의 영주, 72악마 군주.”

“……아.”

이제 이해한 듯 김창환이 탄성을 질렀다. 볼락이 직접 나섰다는 말에 원정대의 다른 아군 플레이어들도 깜짝 놀랐다. 아포칼립스가 7회 차까지 진행된 지금껏 볼락이 움직인 적은 없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하멜의 영주가 움직였을 줄이야.”

고개를 끄덕이던 김창환이 씩 웃으며 원정대를 바라봤다.

“그래도 다행이군. 볼락이 움직였다는 건, 박윤성을 죽인 녀석이 이 안에 없다는 거니까.”

“나도 다행이다. 그렇게 박윤성을 강하다고 빨아대는 걸 보면, 적어도 니들은 박윤성보다 약하다는 소리니까.”

“뭐, 그게 틀린 소리는 아닌데…….”

대표로 나섰던 김창환이 한 손을 들자, 뒤쪽의 다른 여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적어도 니들보단 강하니까, 상관없지.”

사악-.

선공은 천사 진영 플레이어들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던 김창환은 거대한 대검을 등에서 빼더니 우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쩡-!

묵직한 대검을 겨우 막아내며 우성이 눈을 부릅떴다. 종속무기인 만큼 검을 놓칠 리는 없겠지만, 팔이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무슨… 힘이!’

우성의 근력 스텟도 그렇게 썩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김창환의 근력은 차원이 달랐다. 이 정도로 거대한 대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걸로 보나, 짓누르는 힘으로 보나 보통이 아니었다.

하긴, 방금 전 말로 보아 2회 차 플레이어라고 했으니 근력 스텟이 우성과 비슷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기에, 우성은 당황하고 말았다.

“오, 너 제법이다.”

쩡-.

“윽.”

옅은 신음과 함께 우성의 몸이 원정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밀려난 우성의 뒤를 이어, 에든이 검을 빼들며 천사 진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공격하세요! 전투 방법은 아까와 같습니다!”

백골렘을 상대할 때처럼 상세한 명령은 없었다. 그럴 만한 틈이 없기도 했거니와 몬스터나 골렘과는 달리, 플레이어들의 상대에는 정석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면 천사 진영 플레이어들은 그 수가 7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박윤성과 다른 두 명의 플레이어까지 원래는 10명이었던 것 같은데, 박윤성의 돌발 행동과 사고로 이제는 7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할만하다.’

우성을 날려버린 플레이어의 수준이 범상치 않아 보였지만, 무려 5배의 전력 차이였다. 더군다나 직업의 조합도 이쪽이 훨씬 다양하니, 승산은 분명 존재했다.

“이 새끼들이 우릴 호구로 아나?”

거대한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김창환이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천사 진영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2회 차와 3회 차의 사이였다. 김창환을 포함해 4명의 2회 차 플레이어와 3명의 3회 차 플레이어들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플레이어의 수준으로만 보면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과 악마 진영의 원정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악마 진영에는 2회 차 플레이어가 에든 한 명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2회 차 플레이어라고 하기엔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수적으로 너무 차이가 났다. 더군다나 그들 사이사이에 포함되어 있는 몇몇 3회 차 플레이어들, 그리고 마법사들과 사제들을 밀어붙인 조합은 제법 성가셨다.

천사 진영의 플레이어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는 방금 전까지 우성과 대화를 이어갔던 김창환이었다. 벌써 두 명의 플레이어를 베어버린 그의 앞을 에든이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넌 나랑 놀아줘야 할 것 같다.”

“좆밥이 제 명줄 깎아먹는 줄도 모르고 나대긴.”

“뭐, 내가 다른 2회 차 플레이어들에 비해 조금 부족한 건 사실이니…….”

김창환의 뒤로 우성이 다가왔다.

“혼자가 안 되면, 쪽수라도 믿고 덤벼야지.”

“이 시팔, 호로새끼들이…….”

에든 한 명만이라면 모를까, 거기에 다른 플레이어가 추가되면 골치 아프다. 더군다나 우성의 실력도 부족하지 않으니 쉽게 볼 수 없었다.

우성은 <광폭화>를 활성화시킨 후, 뒤에서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에든이 달려들어, 김창환은 앞뒤로 동시에 공격당하는 모양이 되었다.

“내가 니들 같은 좆밥으로 보이냐!”

김창환은 양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앞뒤를 동시에 차단시킨 방어를 겸비한 공격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힘으로 휘두른 대검에 우성과 에든은 달려들던 것을 멈추고 잠시 뒤로 주춤 물러났다.

타닥-.

김창환은 검을 휘두르던 것에 이어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우성에게로 달려들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우성을 빠르게 제방하고, 이어서 에든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너야말로 내가 좆밥으로 보이냐?”

그 때, 우성이 아포피스를 앞으로 크게 휘두르며 김창환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아까와는 달리,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게 아닌 같이 휘둘러 부딪힌 것이다.

쩌엉-!

“큭.”

손목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에 우성이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아까처럼 볼품없이 밀려나지는 않았다. <광폭화>를 발동시켜 근력 스텟이 오른 이유도 있지만, 방금 전과는 달리 방심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예상외로 우성이 자신의 검을 막아내자 김창환이 당황해 뒤를 돌아봤다. 황급히 대검을 회수해 찔러오는 에든의 검을 막으려던 순간이었다.

퍽-.

옆에서 찔러온 기다란 창이 김창환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푸른색의 용력이 감도는 창은, 바로 안현수의 것이었다.

“커억!”

푹-.

그리고 이어서 에든의 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창칼에 몸을 찔린 김창환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입안에서 피거품을 토하기 시작했다.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에든과 안현수를 번갈아보던 그가 간신히 피거품을 문 입을 열었다.

“이… 비겁한…….”

“몰랐냐?”

뒤에서 우성의 태연한 음성과 함께, 검을 들어 올린 그림자가 보였다.

“원래 다구리에는 장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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