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91화 (91/258)

91화

콰드드득-.

날카로운 검 끝이 백골렘의 몸을 파고들었다. 단단한 하얀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했지만, 마기와 마력을 가득 머금은 검 끝은 백골렘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검이 삼분지 일쯤 들어갔을 때, 우성은 위쪽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바람이 부수어지는 소리와 함께 우성은 검을 뒤로 빼내며 몸을 숙였다.

후웅-.

대기를 찢는 소리가 우성의 귓가를 울렸다. 백골렘의 팔이 우성을 노리고 횡으로 휘둘러진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저 거대한 팔에 얻어맞았을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한 번의 기습이 실패하자 우성은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뒤로 내뺐다. 그 와중에도 백골렘은 집요하게 우성을 노리고 팔과 다리를 휘둘렀지만, 다행히 뒤로 몸을 피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우성!”

그 때, 에든의 다소 화난 듯한 음성이 우성을 불렀다. 우성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목소리의 톤과는 달리, 표정은 그렇게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합니다. 플레이어 우성은 예외적으로, 창술사들과 합류합니다. 창술사들 뭐합니까! 자리 잡지 않고!”

에든의 명령에 우성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안현수의 옆으로 섰다. 화를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냥 넘어갔다.

에든은 두 마리의 백골렘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있는 후방이야 그리 큰 위험이 없었지만,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았다.

“플레이어 우성, 당신은 저쪽의 백골렘을 상대해 주십시오.”

“이 녀석부터 빨리 잡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음에 저 녀석을…….”

“아니요. 효율적으로는 그게 더 좋을지 모르나, 아군의 피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우성, 당신은 다른 아군 플레이어들이 죽지 않도록 백골렘의 어그로를 끄는 탱커 역할을 수행합니다.”

에든의 말에 그의 말을 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깜짝 놀랐다. 다른 역할도 아니고, 에든은 고작 6회 차 플레이어라 밝혀진 우성을 ‘메인 탱커’ 역할을 맡긴 것이다.

탱커가 무너지면 그 뒤쪽의 다른 플레이어들까지 공격을 받는다. 보통은 메인 탱커로서 적합한 플레이어가 없는 경우, 그 역할을 창술사들과 검사들이 나누어서 맡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다른 플레이어들을 두고 우성에게 메인 탱커의 역할을 맡긴다는 것은, 그의 실력을 어느 플레이어들보다 높게 샀다고 볼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번 봅시다, 플레이어 우성.’

에든은 우성의 실력을 인정했다.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백골렘에게 빠르게 접근해, 그의 피부를 뚫고 핵에 조금이나마 타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느 누구보다 큰 공이었고, 실력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뒤에 백골렘의 공격을 피하면서 보여준 움직임 또한 보통은 아니었다. 에든은 우성이라면 충분히 메인 탱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6회 차 플레이어라는 그의 실력을 한 번 보고 싶었다.

핵을 공격당한 한쪽 골렘과는 다르게 다른 앞쪽의 골렘은 플레이어들을 향해 미친듯이 주먹과 다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제법 민첩하고 똑똑하기까지 해, 플레이어들은 제법 애를 먹었다. 아마 사제들의 방어 마법이 아니었다면 진즉 중상자나 사상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광폭화.”

우성의 몸이 익은 것처럼 붉어졌다. 검은색 눈까지 언뜻 붉은빛을 띠며, 더욱 깊어졌다.

다른 모든 스텟이 상승하는 대신, 체력이 급감했다. 하지만 방금 전 백골렘을 정면에서 상대해본 바, 우성은 보통 상태로는 백골렘을 상대로 핵을 노리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저 놈, 너무 단단하단 말이지.’

그래도 <불굴의 의지> 특성이나 체력이나 정신력 모두 이전에 비해 제법 높아져 있었다. 처음 광폭화를 사냥에서 사용했을 때에는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숨이 차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제법 호흡도 안정되고 정신도 멀쩡했다.

우성의 눈에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마구 날뛰고 있는 백골렘이 보였다. 저 거대한 덩치를 상대해야 한다는 게 아직까지도 암담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내뺄 수도 없었다.

‘보인다.’

우성의 눈에 백골렘의 정 중앙에 있는 반짝이는 돌이 보였다. 겉이 아닌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주먹만한 돌이었지만, 우성은 그것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청량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성은 막 백골렘을 향해 달려들기 직전, 주문을 외우고 있는 혜미를 향해 외쳤다.

“혜미! 보조!”

“오케이!”

힘차게 대답한 혜미는 곧 웅얼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한층 안정되고 빨라진 주문 속도는 우성이 백골렘을 향해 도달할 즈음, 완성되었다.

“어스퀘이크(Earthquake)!”

쿠구구-.

백골렘이 날뛰고 있던 땅이 울리더니, 이내 지면이 쩍쩍 갈라져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반경 오 미터 이상이 폭삭 주저앉는 광경은 제법 장관이었는데, 다른 플레이어들은 혜미의 수준보다는 마법 자체에 더 관심을 보였다.

“어스퀘이크? 하멜에 저 주문을 배운 마법사가 있었네?”

대규모 지진 마법, 어스퀘이크는 제법 잘 알려진 유명한 마법치고는 수요가 극히 적었다. 어스퀘이크 마법은 지팡이 종류의 마병을 사용하는 최상위 플레이어 ‘토머’가 주로 사용하는 마법으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었는데, 그가 사용하는 지진 마법의 위력은 전장의 환경을 뒤바꿀 정도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토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혜미가 사용한 주문 역시 적잖은 효과를 가져왔다. 직경 오 미터의 크기로 무너진 지면은 정확히 백골렘을 지면 아래로 꺼뜨렸다.

하지만 백골렘은 그렇게 지능이 낮지 않았다. 일반 골렘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고, 어지간히 지능이 발달한 마수들과도 견줄 만했다.

백골렘은 지면이 무너지기 직전, 거대한 양 손으로 땅을 붙잡음으로서 땅으로 꺼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백골렘의 무지막지한 힘을 생각해 보면 머지않아 다시 땅 위로 올라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그냥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쉬익-.

콰드득-.

“일단, 팔부터.”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던 우성이 지면을 붙잡고 있던 백골렘의 손등을 검으로 내리찍었다. 검은색 연기가 뭉실거리는 아포피스는 중력의 힘이 더해져 백골렘의 손을 그대로 관통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라고 해서 쉬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스퀘이크 마법으로 인해 행동이 묶인 백골렘을 향해 마법사들의 주문이 연달아 이어졌고, 우성을 따라 창술사들이 백골렘이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창을 내질렀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쾅-!

파바바박-.

백골렘의 몸을 향해 여러 마법들이 쏟아졌다. 자욱한 안개가 깔리고, 마법사들의 주문이 멈췄다. 창술사들은 마법사들의 마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조금 거리를 벌렸다.

“죽었겠지?”

이 정도면 끝났겠지, 싶었다. 그는 백골렘을 잘 알지 못하는 플레이어였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터엉-.

쿵-!

“으아악!”

우드드득-.

허공으로 몇 미터 뛰어 오른 백골렘이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 있던 곳에 내려앉았다. 떨어지는 힘과 덩치로부터 나오는 무게에 두 명의 창술사 플레이어의 몸이 비명과 함께 으스러졌다.

가까이 있던 플레이어들이 깜짝 놀라 창과 검을 휘둘렀다. 마법사들은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역시나 제법 경력이 있는 플레이어들답게, 돌발 상황에서도 대처하는 능력이 있었다.

콱-.

챙-.

“어?”

백골렘과 가까이 있던 창술사 플레이어와 검사 플레이어는 각자의 무기가 먹혀들지 않자 당황해 무기를 거뒀다. 창술사의 창은 백골렘의 몸에 한 뼘 정도 박혀 들어갔는데, 핵을 찌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놈을 어떻게 죽여!”

“창술사들 뭐 해! 힘을 그거밖에 못 써?”

“젠장, 핵을 안 부수면 꿈쩍도 않는데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며 말은 참 잘한다. 하지만 모든 플레이어들이 다같이 그처럼 한심하지만은 않았다.

콰득-,

파악-.

몇몇 플레이어들의 칼과 창이 백골렘의 몸에 박혔다가 빠졌다. 이미 백골렘의 몸에는 마법사들이 날린 어둠의 창이 박혀 넘실거리고, 불에 타 여기저기가 그을려진 상태였다. 핵 외에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 골렘이라 해도, 이 정도로 두드렸으니 아주 멀쩡하지는 않았다.

“엄한 데 노리지 말고, 핵을 노리라고 멍청이들아!”

“시팔, 네가 해 보던가!”

“야, 야! 길 막지 말고… 으아아악!”

“검사들 마법사들 보호 안 하냐!”

난장판이다.

새삼 에든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명령을 내릴 사람 한 명이 사라졌다고, 이렇게 개판이 되어버리다니 말이다. 백골렘이 너무 강한 탓도 있었지만, 중심이 될 플레이어의 부재가 너무나도 뼈아팠다.

“여기 좀 봐라, 이 덩어리야!”

우성이 백골렘을 향해 빠르게 파고들어 아포피스를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마법사들에 의해 몸이 그을리고 마력으로 부식된 몸은 처음보다 많이 약해져 있었다.

퍼억-.

그리 깔끔하지 못한 소리였지만 우성은 백골렘의 손 하나를 베어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다른 몬스터였다면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 충격에 발광을 했겠지만, 백골렘은 마수가 아닌 자아가 없는 ‘골렘’.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마수들보다 진정한 괴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백골렘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적을 찾아 죽이도록 세팅이 되어 있는 기계였다. 그런 점에서는 마수들에 비해 부족하다 할 수 있었다. 잘못하면 똥오줌 못가리는 바보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 여기다, 덩어리.”

그그그그-.

삐거덕거리는 몸을 돌리며 백골렘이 우성을 향해 남아있는 한 손을 뻗었다. 온 몸을 짓이길 듯한 거대한 손이 다가오자, 우성은 눈을 빛내며 그대로 검을 수직으로 크게 휘둘렀다.

퍼억-!

“크윽.”

우성의 검이 백골렘의 손에 박혀 멈췄다. 그대로 남은 한쪽 팔까지 베어버릴 생각이었는데, 그게 생각처럼 또 쉽지가 않았다.

백골렘의 피부 깊숙이 박힌 검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어지간히 힘을 주어야 간신히 빠질 텐데, 백골렘이 우성의 몸을 짓이기고자 힘을 주고 있는 터라 그게 쉽지 않았다.

간신히 검에 힘을 주어 막고 있지만, 백골렘의 손은 금방이라도 우성의 몸을 짓이길 듯했다. 손이 반쯤 베어져 신경에 문제가 있는지,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젠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빠져나갈 수도, 힘으로 이길 수도 없었다. 온 힘과 마력을 짜내 간신히 깔아뭉개지는 걸 막고는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우성을 구하고자 나섰다. 손아귀에 깔리다시피 한 터라, 마법사들은 우성이 다칠까 차마 함부로 마법을 날리지는 못했다. 결국 기대할 건 창술사들과 검사들, 그 외에 전사 계열의 플레이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기는 백골렘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손이 잘린 한쪽 팔로 플레이어들을 파리처럼 쳐 내며, 백골렘은 다른 한쪽 손으로 계속해서 우성을 짓눌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우성을 가장 큰 위험분자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저 도움 안 되는 새끼들…….’

버티는 것도 한계였다. 슬슬 검을 잡는 팔이 후들거렸다. 힘으로 골렘을, 그것도 백골렘을 이긴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한계에 이르러 슬슬 팔에 힘이 풀리려던 순간이었다.

[플레이어 특성 ‘불굴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극한에 달한 상황입니다. 정신력 스텟 70을 확인하였습니다.]

[플레이어 특성 l.v 2 - ‘초감각’이 일시적으로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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