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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89화 (89/258)

89화

어느새 원정대의 리더는 은연중 에든으로 정해져 있었다. 가장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도 그였고, 가장 회 차가 높은 플레이어가 그인 만큼 다른 플레이어들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우성과 다른 일행은 원정대에서 도태되는 느낌이었다.

‘되게 유치하네.’

실력도 보지 않고 6회 차 플레이어라는 이유만으로(사실은 신규 플레이어지만) 배척하는 저들의 행태가 우스울 따름이었다. 우성은 적어도 여기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 중 절반 이상은 싸워 이길 자신이 있었고, 다른 일행들 역시 나름대로 실력이 있었다.

‘회 차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스텟이나 실력일 텐데.’

단순히 몇 회 차 플레이어인지를 밝힌 것만으로 에든은 원정대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2회 차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단순히 플레이어의 능력을 말해주는 경력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우성과 일행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조금 떨어져 걸었다. 어느새 통성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플레이어들은 서로 길을 걸으며 조금씩 이야기를 트고 있었다. 현실에선 무슨 일은 한다거나, 어느 지역에서 어떤 퀘스트와 몬스터를 잡았다는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설마하니 현실도 아니고 아포칼립스에서까지 왕따 문제가 연결될 줄은 몰랐던 우성은 그저 애꿎은 땅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정말 넓긴 넓군.’

벌써 이동을 시작한 지 1시간은 된 것 같았다. 많은 인원이 이동하느라 속도가 많이 느리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벌써 몇 키로는 걸어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동굴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떤 흔적이나 함정, 몬스터. 이 동굴은 던전이라기엔 정말 아무것도 있는 게 없었다.

‘아니면 아직 초입까지도 가지 못했거나.’

도대체 이 동굴이 얼마나 넓을까를 생각하며 우성은 배낭에서 견과류를 몇 개 꺼내 먹었다. 배가 아주 고프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허기는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부르게 먹을 수도 없어, 우성은 견과류 몇 개로 허기를 달램으로써 식사를 마쳤다.

다른 일행들과 플레이어들 역시 상황은 같았다.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달랐지만 저마다 견과류나 육포 따위를 꺼내 입에 우물거렸다. 원정에서는 포만감도, 허기도 좋지 못했다.

그렇게 원정대가 던전에 들어와 두 시간 쯤 이동했을 때였다.

“저기 보세요!”

원정대의 가장 앞에 서서 가던 에든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저마다 수다를 떨거나 터덜터덜 걸어가던 플레이어들이 에든이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동굴로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길이 아닌 문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동굴의 끝으로 보였는데, 벽 한쪽으로는 작은 여닫이문이 하나 있었다.

앞장서 걷던 에든의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따라가던 플레이어들 역시 걸음을 재촉했다. 가까이 가 보니 여닫이문은 멀리서 본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제법 컸다. 2미터는 넘어 보였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여기가 던전으로 들어가는 진짜 입구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저도 예전에 발견했던 던전에서 이런 문을 열었을 때 몬스터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 적이 있어요.”

경험이 풍부한 플레이어들이 다수 있는 만큼,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견을 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은 바로 ‘진짜 던전의 입구’로 통일되었다.

“이미 다들 준비 되셨겠지만 다시 한 번 잊은 게 없나 정비하시길 바랍니다.”

에든의 말에 암흑사제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각각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버프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중복되는 마법을 배운 경우에는 가장 회 차가 높은 플레이어가 버프를 걸어주었다.

“가드 베리어(Guard Barrier), 안티 매직 베리어(Aanti Magic Barrier)!”

[몸을 보호하는 투명한 힘이 느껴집니다. 물리 데미지를 15%만큼 흡수합니다.]

[몸을 보호하는 투명한 힘이 느껴집니다. 마법 데미지를 20%만큼 흡수합니다.]

그 때, 우성과 안현수를 비롯한 몇몇 플레이어들의 몸에 두 겹의 투명한 방어막이 생겨났다. 각각 옅은 붉은색과 푸른색을 띄는 방어막이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투명했다.

방어막을 걸어준 사람은 바로 혜정이었다. 사제 직업을 가진 그녀의 특기는 몇몇 버프 마법과 방어 마법, 치유 마법이었다.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버프 마법의 경우에는 수준이 더 뛰어난 3회 차 플레이어 사제가 있었지만, 방어 부분에서는 혜정이 주목받을 수 있었다.

“가드 베리어랑 안티 매직 베리어? 저 주문을 6회 차 플레이어가 사용해?”

“저거 꽤 희귀 주문인데. 마법서 가격도 장난 아니고.”

“6회 차긴 해도…….”

가드 베리어와 안티 매직 베리어는 물리 데미지와 마법 데미지를 감소시키는 대표 주문이자 가장 효율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그 수량이 극히 적고, 효과가 확실한 만큼 웬만해서는 경매장에도 잘 나오지 않는 마법서기에 사용할 수 있는 사제 플레이어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얼마 전, 두 개의 마법서가 같은 날 동시에 경매장에 나타났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혹시 혜정이 경매장에서 그 마법서를 낙찰받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의 눈초리로 헤정을 바라보면서도, ‘6회 차 플레이어가 무슨 돈이 있어서’라는 생각인지 곧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의문의 눈초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혹시 아직 준비가 덜 되신 분 있으신가요?”

에든이 모두를 둘러보며 물었다. 더 이상 주문을 외우는 사제가 보이지 않기 대문이었다. 대답이 없자 그는 문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둘…….”

드르륵-.

“셋!”

셋을 외침과 동시에, 에든은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러자 문 안쪽의 모습이 눈에 훤히 드러났고, 에든은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뽑으며 외쳤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옵니다!”

뭐가 온다는 걸까? 문을 열어젖힌 에든은 뽑아든 검을 들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문에 가까이 붙어 있던 플레이어들은 안쪽의 상황을 확인했는지 에든과 마찬가지로 문에서부터 거리를 벌렸다.

아아아아아아-.

하아아아아아아-.

신음소리? 아니,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감정이라곤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귀를 울리는 고음에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점점 더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들은 문에서 튀어 나올 무언가를 기다렸다.

아아아아-!

잠시 후,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두 마리의 사람의 형체가 튀어 나왔다. ‘사람’이 아닌, ‘사람의 형체’인 까닭은 그들의 등에 달린 반쪽의 날개와 비어있는 하체 때문이었다.

“천사? 아니, 대체 뭐야 이것들은!”

날개가 있긴 하지만 반쪽뿐이었고, 천사에게 하체가 없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당황한 플레이어들이 새로 등장한 기형 천사들을 향해 각자 무기를 휘둘렀다.

아아아아아아-.

구슬픈 목소리는 역시 기형 천사들의 것이었다. 슬픈 듯한 울림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어딘가 모르게 정신을 현혹시키는 목소리였다. 몇몇 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기형 천사는 한둘이 아니었다. 한쪽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온 기형 찬사들은 끊임없이 문을 통해 튀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수가 하나 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열이 넘어가 있었다.

사악-.

그 때, 에든과 함께 우성의 마검 아포피스가 문을 통해 튀어 나온 기형 천사의 목과 머리를 베었다. 생각 이상으로 민첩한 대응에 에든은 의외라는 눈으로 우성을 바라봤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플레이어들은 각각 무기를 휘두르고 마법을 외우고 있었다. 처음 요란한 등장과는 달리, 기형 천사들의 수준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문제라면 날아다녀서 귀찮다는 정도?

“이 날파리들이 귀찮게!”

이런 자리에서 활약이 두드러지는 플레이어는 당연 사정거리가 긴 마법사들과 창술사들이었다. 그 중 특히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안현수였다.

안현수의 창인 천룡창(天龍槍)은 이전보다 훨씬 형형하게 빛나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마력(魔力)과 용력(龍力)이 하나로 합쳐지며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훨씬 밝은 빛을 띠는 안현수의 창은 단연 이 자리에서 독보적이었다.

더군다나 안현수는 S클래스와 유니크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답게 제법 현란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6회 차 플레이어라는 인식이 박혀 있던 터라, 다른 플레이어들의 놀람은 더욱 컸다.

퍽-, 쫘악-.

안현수는 천룡창의 손잡이 끝을 잡고 허공에 떠 다니는 기형 천사들을 찌르고, 찢고, 베었다. 리치가 긴만큼 비행형 기형 천사들을 상대로 검을 사용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활약이 큰 건 당연했다.

“제법인데…….”

안현수의 활약에 에든이 기형 천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기형 천사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6회 차 플레이어가 손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안현수나 우성이 보여준 움직임은 보통 6회 차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저 마법사 플레이어도 그렇게 수준이 낮지 않고.’

이쯤 되니 같은 일행이라던 혜미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성과 안현수의 활약으로 여유가 생겨 에든은 기형 천사들을 향해 마법을 쏘아대는 혜미를 바라봤다.

아직 마법사로서의 소양은 부족한지 마법을 활용하거나 사용하는 캐스팅은 다소 미흡했지만 전체적으로 나쁘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저만하면 어지간한 4회 차 플레이어와도 견줄 만했다.

문에서 튀어 나온 기형 천사들의 수는 스물 정도였다. 천사라고 하기엔 중급 마수 수준밖에 되지 않아 그렇게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었다. 비행이 가능하고, 반쪽짜리 날개를 휘둘러 공격한다는 특징이 있는 단순한 ‘마수’에 불과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형 천사들을 제거하자 플레이어들은 한숨을 돌렸다. 처음에 다소 우왕좌왕하긴 했지만 우성과 에든의 신속한 대응, 그리고 안현수의 활약으로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 중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단연 안현수를 비롯한 몇몇 창술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플레이어는 바로 안현수였다. 6회 차 플레이어라더니, 다른 상위 창술사 플레이어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라니.

‘이것들, 정말 6회 차 플레이어들 맞아?’

우성과 다른 일행에 대한 놀람은 비단 에든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우성과 안현수로 인해 제법 놀란 상태였다.

그 때, 우성이 날개가 잘려 바닥에 떨어진 기행 천사의 목을 밟았다. 치켜든 검을 머리에 꽂아 마무리를 지으며 우성이 에든을 바라봤다.

“끝났습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6회 차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녀석들이 천사라는 놈들입니까? 악마랑은 좀 다르군요.”

이곳에서의 악마들은 뿔이 나 있는 것을 제외하면 보통 인간들과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물론 그 속을 살펴 보면 사용하는 힘의 근본부터가 다르지만, 적어도 겉모습만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인간과 더욱 비슷해야 할 천사가 이런 모습이라니. 반쪽뿐인 날개야 그렇다 쳐도, 하체가 없고 양쪽 눈이 가려져 있는 천사들은 천사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닙니다. 이것들이 모두 천사였다면 저희가 이렇게 무사할 리 없죠.”

“천사들이 그렇게 강합니까?”

“네. 적어도 3회 차 플레이어가 둘 정도는 있어야 천사 한 마리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3회 차 플레이어라고 해도 그 사이에서 수준이 나뉘겠지만, 일반적인 통계가 그렇다는 겁니다.”

“천사들 사이에서도 악마들처럼 등급이 나뉘죠?”

“네. 대천사장부터 그 밑으로 등급이 나뉘긴 합니다만, 적어도 이렇게 약한 천사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천사들에게는 악마들처럼 등급 외의 천사가 없거든요.”

에든의 설명에 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플레이어’에서 천사에 대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자세한 사진까지는 얻지 못해 의문이던 차였다.

3회 차 플레이어라면 현존하는 플레이어들 중 중상위 이상의 플레이어였다. 그런 플레이어가 둘 이상이 있어야 하나를 감당할 수 있다니, 에든의 말대로 이번에 나타난 게 진짜 천사들이었다면 자칫 큰일 날 뻔했다.

‘아니, 어쩌면…….’

우성은 고개를 돌려 활짝 열려 있는 문 안쪽을 확인했다.

‘진짜를 만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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