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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79화 (79/258)

79화

<새로운 원정과 정비>

킬락이 구해 준 집은 하멜의 북문 근처에 위치한 작은 저택이었다. 저택이라고는 하지만 규모가 조금 큰 단독주택 수준이어서 큰 부담은 없었다.

가격은 애초 킬락이 말했던 1만 골드의 두 배가 훌쩍 넘는 2만 5천 골드였지만, 우성은 큰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었다. 창고에는 옥토퍼스를 처분한 142만 5천 골드가 들어 있어, 집값을 지불하자 딱 140만 골드로 맞춰졌다.

집은 우성이 요구한 조건에 딱 부합했다. 악마들이나 플레이어들이 거주하는 여관들과는 꽤 동떨어져 있으면서, 영주인 볼락이 거주하는 북쪽 성과 인접해 있어 치안이 괜찮았다. 물론, 조건이 이러니 2만 골드나 되는 비싼 집값이 성립이 되는 것이겠지만.

하루 만에 이런 집을 알아본 킬락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여 수련장이 근처에 있었으면 한다는 우성의 요구 조건까지,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킬락은 경매장 직원이 아닌 고용인이라고 한다. 경매장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인 일처리를 도와주는 일꾼으로, 하멜에서 꽤 유명한 심부름꾼이었다. 원래라면 그 몸값이 상당히 비쌌는데 우성은 옥토퍼스를 경매장에 맡긴 덕분에 VIP고객 대우를 받아 저렴한 값에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우성이 생각한 ‘집’의 용도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여관을 대신할 안전한 ‘리셋 포인트’, 그리고 틈틈이 마당에서 할 수 있는 ‘수련장’의 역할.

아포칼립스에서의 생활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수면을 취하는 시간 동안, 즉 4일 정도까지는 꼼짝없이 아포칼립스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킬락이 구해준 집을 리셋 포인트로 설정하고, 일행은 다음 경매를 기다렸다. 다음 경매를 통해 어느 정도 장비를 구비한 후에 현실로 돌아가자는 의견이었다.

틈틈이 경매장을 찾아 하멜의 경매장, 그리고 다른 도시의 경매장에 어떤 물품이 나오는지를 확인하고 대여 수련장을 들락거리며 일행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다음 경매가 열리기 사흘 전이었다.

“우성님, 계십니까?”

대문을 두드리며 크게 소리치는 익숙한 소리에 밤중에 마당에서 검을 휘두르던 우성이 검을 멈추었다. 그 옆에서 창술을 연습하던 안현수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열띈 토론을 나누고 있던 혜미, 혜정 역시 잠시 하던 것을 멈추었다.

달칵-.

끼릭-.

대문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풀고 꽤 묵직한 대문을 열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싶었는데 역시나 아는 얼굴이었다.

‘킬락?’

경매장 일꾼이자, 동시에 소도시 하멜의 유명한 심부름꾼 악마. 특별한 부탁을 추가로 한 기억이 없었기에 우성은 그의 방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거, 생각보다 일찍 뵙는군요. 다른 일행 분들은 다들 계십니까?”

“네. 여기 뒤에…….”

막 뒤따라 온 일행을 가리키려던 우성은 킬락의 뒤쪽에 서 있는 거구의 악마들을 발견했다. 어쩐지 하급 악마인 킬락치고는 범상치 않은 마기가 느껴진다 했더니, 보통이 넘는 악마들이 함께 온 모양이었다.

“이분들입니다. 이방인 이우성, 안현수, 박혜미, 박혜정. 얼마 전 마수의 숲에 다녀오신 분들이지요.”

“수고했다.”

험악한 송곳니를 가진 악마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킬락을 향해 건넸다. 저 안에 들어 있는 돈이 모두 금화라면, 족히 10골드는 넘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볼락님께는 말씀 좀 잘 전해 주십시오.”

“저급한 하급 악마 주제에 어디 그분의 이름을…….”

송곳니를 길게 드러내며 악마가 은은하게 마기를 뿜었다. 심부름꾼으로 꽤 유명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킬락은 하급 악마였다. 몸을 벌벌 떨던 킬락이 이내 굽신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죄, 죄송합니다. 미천한 게 주제넘게 그만…….”

“볼 일은 끝났으니 이만 꺼져라. 다음에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르지.”

“아, 알겠습니다.”

연신 허리를 숙이며 킬락이 멀리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우성은 자신을 찾은 세 명의 악마들을 바라봤다.

‘두 명은 중급 악마인 것 같고…….’

덩치 큰 두 명의 악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2미터에 가까운 덩치와 단단한 근육, 그리고 제법 큰 뿔은 그들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중급 악마 한 명이 어지간한 4회 차 플레이어보다 낫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중급 악마를 눈앞에 둔 우성은 그렇게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둘이면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막 두 명의 중급 악마 사이의 악마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가 앞으로 나섰다.

“네가 이방인 이우성인가?”

중급 악마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선 악마는 우성과 비슷한 키와 꽤 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인간의 기준으로 서른 중반, 혹은 마흔 정도로 보이는 중후한 인상이었는데, 겉모습만 보면 다른 중급 악마들보다 강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 나 있는 뿔은 다른 중급 악마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깨 아래까지 이어져 있는 긴 뿔은 그가 중급 이상의 악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기’ 스텟이 생성된 이후, 우성은 악마들이 가지고 있는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악마들에게서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면, 이제는 그것이 마기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의도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성은 다른 두 명의 중급 악마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기를 가지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급 악마들과는 달리, 눈앞에 있는 악마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만.”

“흠. 말투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군. 이방인 녀석들은 참 하나같이 버릇이 없단 말이야.”

그는 수염도 없는 매끈한 턱을 긁적이며 우성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쯧. 볼락님의 말만 아니었어도.”

‘볼락?’

“일단 내 소개를 하지. 소도시 하멜의 영주이자, 72악마 군주 중 한 명인 볼락님을 모시고 있는 종속 라몬이라고 한다.”

솨아아-.

소개가 끝난 직후, 라몬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발밑을 중심으로 주위가 마기로 인해 부식되었고, 그 마기는 곧 우성을 덮쳐왔다.

[띠링-! 진(眞) 마검 아포피스가 다량의 위협적인 마기를 감지했습니다.]

[마기 스텟과 마력 스텟을 체크합니다. 마기 11, 마력37. 진(眞) 마검 아포피스가 반응합니다. 다량의 마기를 상쇄합니다.]

[‘불굴의 의지’가 발동합니다. 60의 정신력 스텟을 확인했습니다. 마기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납니다.]

우성은 몸을 잠식하던 마기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우성의 몸에 부딪히며 안개처럼 흩어지는 자신의 마기를 보며 라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오?”

자신의 마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우성을 보며 라몬이 나지막한 감탄을 터뜨렸다. 우성 역시 라몬 정도의 악마의 마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웠지만, 메시지에 나타난 여러 요인들을 확인하자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아포피스와 <불굴의 의지>, 그리고 60의 정신력. 이만하면 뭐…….’

무엇보다 60의 정신력의 영향이 컷으리라. 궁극적으로 악마들의 마기가 위험한 이유는 대상의 정신을 크게 뒤흔들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럽게 정신력 스텟의 위력에 실감이 났다. 그 전, 볼락을 마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우성은 아포피스를 들고 있음에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기에 몸을 움츠렸다. 지금 라몬처럼 의도적으로 마기를 내뿜은 게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만 가지고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수준이 낮다지만, 꽤나 상급의 악마가 내뿜어대는 마기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뭘 그리 감탄하고 그러십니까?”

우성은 안개처럼 흘러나온 라몬의 마기를 손으로 휙 저었다. 우성이야 괜찮다지만, 뒤쪽의 일행이 괜찮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어 스킬이 없고, 라몬에 비해 마기 스텟이 떨어지는 우성이 그의 마기를 방어하기란 불가능했다.

“건방지긴 하지만… 인정할 만하군. 이방인 주제에 아주 제법이야.”

“그거 고맙군요.”

마기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면서도 우성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에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라몬이 내뿜는 마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우성뿐이지, 역시나 뒤쪽의 안현수나 혜미, 혜정은 그렇지 못했다.

안현수의 경우에는 그나마 버틸만 한지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조금 떠는 정도였지만, 혜미나 혜정은 아예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세 사람의 모습을 잠시 살핀 우성이 라몬을 노려봤다.

“이제 그만 하시지 그러십니까? 저야 괜찮지만, 일행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알겠다. 이만하면 확인으로는 충분하지.”

거짓말처럼 라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기가 사라졌다.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우성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대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듣자하니 볼락님과 연관이 되어 있는 모양인데.”

“눈치 한 번 빠르군. 그 말이 맞다.”

라몬은 잠시 말을 끊고는 일행이 머물고 있는 집을 슥 둘러봤다.

“누추하진 않군.”

“예?”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지. 짧은 이야기는 아니니.”

**

집 안으로 들어온 라몬은 두 명의 중급 악마를 양 옆에 거느린 채 거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킬락의 수완 덕분에 꽤 괜찮은 가구들을 여럿 들여놓을 수 있었는데, 소파와 그 앞의 탁자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차 없나?”

“……손님에겐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한심하긴. 다음부터는 준비해 놓도록.”

쯧, 하며 혀를 차는 라몬의 얼굴에 당장 검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 이 집이 무너질 것임을 알기에 그저 속으로 상상만 할 뿐이었다.

눈치가 빠른 혜정이 후다닥 냉수를 가져왔다. 그래도 물잔은 꽤 고급스러운 것이라 나름 구색은 갖춰졌다. 우성은 라몬과 나란히 앉아 냉수를 쭉 들이킨 후 물었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성격 한번 급하군. 짜증나게.”

눈살을 찌푸린 라몬은 막 들어 올리려던 물 잔을 내려놓았다. 혜미와 혜정은 거실 끝에서 우성과 라몬의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안현수는 우성의 뒤에 서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가 이번 마수의 숲에서 꽤 많은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공이라니 무슨…….”

“믿을 순 없지만 마수의 숲으로 숨어들어 온 대천사의 씨앗을 제거하는 데 일조했다고 하더군. 물론 그 모든 것은 볼락님의 손에서 이루어 졌겠지만, 시간 벌이 정도의 역할은 했겠지.”

무시하려고 한 말이겠지만 틀린 말 하나 없었다. 실제로 우성이나 다른 일행이 박윤성 등을 잡는 데 도움이 된 것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도움을 받았다면 우성 일행이었지, 볼락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 벌이라는 말에는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볼락이 우성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박윤성을 찾고, 그를 제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

“그래서 그 공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 능력을 높이 사는 점에서, 이방인 우성 외 세 명의 일행에게 한 가지 의뢰를 맡기신다더군.”

‘의뢰’라는 말에 우성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포칼립스에 있어서 의뢰라는 것은 바로 퀘스트였다. 그리고 한 도시의 영주이자, 최상위 악마 중 한 명인 볼락의 의뢰라면 보상도 어마어마할 것.

지금까지 라몬을 바라보던 시큰둥한 우성의 눈에 보석이 박힌 듯 반짝거렸다. 볼락이 내리는 퀘스트라면 상당한 양의 포인트와 잘만 하면 라이프(Life)까지도 노려봄 직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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