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77화 (77/258)

77화

첫 번째 아이템은 ‘상급 악마의 정수’라는 포션이었다. 일반적으로 상점에서 판매하는 회복 포션과는 달리, 그 효과가 보다 즉발에 가깝고 지혈 효과가 탁월하다는 데에 상급 플레이어들이 애용하는 물품이었다.

상급 악마의 정수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평소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가격을 높였을 플레이어들이 오늘은 시큰둥했다. 혹시라도 돈이 부족해 ‘옥토퍼스’를 놓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시작 가는 그리 높지 않아 몇몇 플레이어들이 손을 들고 가격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지만, 상급 악마의 정수는 경매 시작 가에서 멀어지지 않은 헐값에 판매되었다.

그 외에 다른 장비와 아이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시작 가에서 크게 올라가지 못하고 헐값에 판매되거나, 시작 가가 높은 장비의 경우에는 아예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좀 미안한데.”

“우리 건 언제 나오는 거야?”

“뒤로 갈수록 시작 가가 높아지네. 아마도 맨 마지막에 나오겠지.”

시작 가 300골드였던 상급 악마의 정수를 지나, 그 다음 장비들은 400, 500, 1000골드 차례로 점차 시작 가가 높아지고 있었다.

물론 시작 가가 낮다고 아이템 자체의 가격이 낮은 건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나온 물품 중 가장 비싼 물품을 꼽자면 상급 악마의 정수로, 2000골드에 낙찰되었다. 원래라면 3000골드 이상은 너끈히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것도 비교적 싼 가격에 낙찰된 것이다.

그 외에는 주인을 찾은 물품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경매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의 대부분이 3회 차 이상의 상위 플레이어들인지라 경매에 등록된 장비들이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장비에 비해 손색이 있었던 것이다.

낙찰되는 물품이 없어 진행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사회자가 1부터 10까지 순서대로 세었고, 경매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없으면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진행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아, 저기 나왔네.”

경매장 직원이 옥토퍼스를 조심스럽게 들고 나온다. 형형한 검붉은 광채를 뿜어대는 거대한 도끼의 등장에 경매장이 술렁거렸다.

“저건가?”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니야? 이야, 능력치 죽인다!”

경매를 구경하던 몇몇 플레이어들이 옥토퍼스의 능력치를 확인해 보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그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그야말로 사기 급 아이템이었다.

반면 옥토퍼스를 노리고 온 거물급 플레이어들과 클랜은 조용조용 떠들어 대던 목소리를 낮추고 숨을 죽였다. 이제부터 저 마병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게 될지에 따라, 추후 클랜과 플레이어의 명성이 달라질 것이다.

“드디어 오늘 경매의 하이라이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 악마들, 그리고 악마들과 함께하는 이방인 분들에게 있어서 마(魔)라는 이름이 새겨진 장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물품 소개부터 앞의 물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광택이라도 칠했는지 옥토퍼스의 검붉은 광채는 더욱 형형했으며, 소개가 이어질수록 플레이어들의 눈에 맺힌 탐욕이 점점 더 붉어졌다.

“한 때 악마들의 소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 최상급 마물 크라켄! 그 마물이 봉인된 무기, 이름하여 마병 옥토퍼스입니다!”

“시끄럽고 빨리 시작하기나 해!”

중요한 만큼 길수밖에 없었던 소개였다. 그런데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우글우글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재촉의 말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 역시 더 이상 끌 생각은 없어보였다. 경매장 분위기는 이만하면 충분히 과열되어 있었다. 앞의 물품들이 비교적 너무 싼 값, 혹은 아예 낙찰이 되지 않아 경매장 측에 손해가 있었지만 마병 하나만 잘 팔면 충분히 만회할 만했다.

“시작 가격은 1만 골드! 자, 그럼 경매에 참여하실 분들은 번호표를 들고 말씀해 주십시오!”

1만 골드!

결코 싼 값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플레이어라면 수중에 가지고 있을 법한 돈이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 중, 절반 이상은 1만 골드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43번, 1만 골드!”

“네! 1만 골드 나왔습니다!”

“11번, 1만 5천 골드!”

“23번, 2만 골드!”

“33번, 2만 1천 골드!”

“5번, 2만 5천…….”

“78번, 3만…….”

그 조용하던 경매장이 과열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 돈 좀 있다’는 플레이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번호표를 들고 경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낮은 가격으로 시작하면 이게 좋았다. 비교적 수중에 돈이 없더라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매에 참여할 수 있으니까. 만약에라도 헐값에 살 수 있다면 대박인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으니까.

예상대로 옥토퍼스는 5만 골드까지 가격을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그 모습을 2층에서 우성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1번, 10만 골드!”

“오오오!”

드디어 대형 클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미국의 대표 클랜, 가네스 클랜. 공공연하게 현존하는 아포칼립스 악마 진영의 최강 클랜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그 세력이 거대한 클랜이었다.

“쪼잔하게 10만은. 17번, 20만 골드!”

“오오오, 붉은악마다!”

5만 골드가 10만 골드로 뛰었고, 그게 다시 순식간에 20만 골드로 뛰었다. 지금까지 몇 천 골드에서 1만 골드씩 올라가던 경매와는 차원이 다른 액수들이었다.

“시작됐네.”

“예상은 했지만 장난 아니네. 야, 우리 대체 투기장에서 뭘 한 거냐?”

“……저거 주우러 갔지 뭐.”

며칠 뼈 빠지게 고생하면서 투기장에서 번 400골드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괜찮은 장비나 기타 아이템들이 수백, 수천, 심하면 옥토퍼스처럼 수십만 골드를 호가하니 말이다.

새삼 정예지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왜 그렇게 마검과 마병을 노렸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템 하나에 왜 이리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지 몰랐는데, 이 정도 파급력과 액수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대체 네 검은 얼말까?”

“이거 못 팔아. 종속이야.”

“알아, 인마. 그냥 만약에 팔 수 있으면 말이야. 저 도끼 네 검에는 좆밥 아니야?”

안현수의 질문에 혜미와 혜정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이 옥토퍼스를 얻을 수 있었던 투기장, 그곳에서 우성은 옥토퍼스를 들고 있는 토르안과 싸웠다.

크라켄의 다리까지 꺼내들었던 토르안과는 달리, 우성은 나가(Naga)도 불러내지 않았고, <대리인>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옥토퍼스는 우성의 검에게 겁에 질려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본 세 사람은 나중에 우성에게 어떻게 된 일이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에 대한 우성의 답은 하나였다.

상하관계(上下關係).

마검 아포피스와 마병 옥토퍼스. 두 사이의 어떤 수직성 관계 때문에, 옥토퍼스는 아포피스에게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아포피스가 장갑의 형태로 변해 있을 때, 우성이 옥토퍼스를 잡으면 옥토퍼스가 두려움이 웅웅 떨기도 했다.

“글쎄… 과연 얼마이려나.”

100만? 200만?

부르는 게 값인 게 마병이고 마검이다 보니,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었다. 그거에 대한 대략적인 액수라고 상상해 보기 위해서는 일단 옥토퍼스가 얼마에 낙찰되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

정진혁은 2회 차 플레이어였다. 아포칼립스가 생겨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상당한 고 회 차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배치고사에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얻었다. 그 덕분에 붉은악마 클랜이라는 그 당시 나쁘지 않은 클랜에 들어올 수 있었고, 붉은악마 클랜이 한국 최고 수준의 클랜으로 성장한 지금에는 아포칼립스 내에서도 꽤 알아주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2회 차 플레이어에 레어(Rare) 직업, 그리고 A급 클래스까지. 최상위 플레이어가 될 만한 여건은 거의 다 갖춘 그가 가장 원하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저건 내가 무조건 갖는다!’

그가 사용하는 주 무기는 도끼였다. 그것도 한손에 들고 싸우는 도끼가 아닌, 옥토퍼스처럼 양손에 들고 강한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도끼! 눈앞에 보이는 옥토퍼스는 정진혁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장비였다.

게다가 보통 장비도 아니었다. 붉은악마 클랜에서도 단 하나밖에 보유하지 못한 마(魔)등급 장비.

마(魔)등급 장비의 보유 개수는 클랜의 힘을 상징하는 증표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붉은악마 클랜은 규모에 비해 다른 국가의 대표 클랜에 뒤져지고 있었다.

때문에 붉은악마 클랜은 이번 마병 옥토퍼스의 등장에 모든 클랜 잔고를 쏟아 부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중책의 당사자가 바로 정진혁이었다.

‘옥토퍼스만 가져올 수 있으면, 장비는 네가 사용해도 된다, 진혁아.’

붉은악마 클랜 마스터의 결정.

평소 정진혁을 신임하던 그인 만큼, 이번에 얻어낸 마병을 그에게 넘겨주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양손도끼를 사용하는 정진혁은 레어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만큼 마병을 사용하면 S클래스에 못지않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정진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얼마를 들여서라도 옥토퍼스를 손에 넣어야 했다. 붉은악마 클랜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17번, 40만 골드!”

어느새 5만, 10만 골드씩 가격이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중 10만 골드씩 가격을 껑충 뛰어 올리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정진혁이었다.

오직 마병을 손에 넣겠다는 집념 하나. 그의 수중에는 현재 붉은악마 클랜에서 지원해준 거액의 전표가 들려있었다. 10만 골드 정도는 충분히 올려볼 만한 거액이.

하지만 대형 클랜은 붉은악마 클랜만 있는 게 아니었다.

“50번, 50만 골드!”

또 다시 10만 골드를 치고 올리는 클랜은 바로 붉은색 갑옷을 트랜드 마크로 사용하는 ‘오사카’ 클랜이었다. 붉은악마 클랜과는 사이가 썩 좋지 않은 클랜으로, 일본 국적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클랜이었다.

적대적인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붉은악마 클랜과 오사카 클랜의 사이는 경쟁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역사 속의 관계는 게임 속 세상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저 원숭이 새끼들이!”

정진혁이 홧김에 가격을 올리려던 때였다.

“1번, 70만 골드!”

“뭐?”

갑작스럽게 20만 골드가 올라갔다. 마궁 코발이 50만 골드에 판매되었는데, 이미 그 가격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하긴, 지금껏 마궁은 몇 번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도끼라는 종류의 마병은 처음 등장하는 것이었으니.

‘백만 골드는 넘겠군.’

지금껏 등장한 마병 중 가장 비싼 가격을 받은 마병은 200만 골드였다. 바로 ‘마창(魔槍) 크로커’로, 현존하는 창 무기 중 최강의 살상력을 가진 무기로 꼽혔다.

실제로 마창 크로커를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현존하는 악마 진영 플레이어들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상위 랭커였다. 소문에는 유니크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는데,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창 크로커보다 비싸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백만은 넘겠군.’

정진혁은 확신했다. 도끼류 무기는 검, 창, 지팡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무기였다. 당연히 그만큼 가격도 비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7번, 100만 골드!”

“오오오!”

순식간에 100만으로 치솟은 가격에 주변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만하면 어지간한 대형 클랜도 떨어져 나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까지만 해도 슬금슬금 손을 들어 올리던 플레이어들 몇몇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클랜은 각 국가의 대표 클랜들 정도.

그 중 정진혁은 가네스 클랜의 대표로 온 플레이어가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가네스 클랜이 끝끝내 옥토퍼스를 사기를 고집했다면 난감할 뻔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하긴, 저 녀석들은 이미 마검도 가지고 있고, 마병도 두 개나 가지고 있으니…….’

그에 반해 붉은악마 클랜에는 마검이 없고, 마병도 하나밖에 없었다. 가네스 클랜과는 달리 다른 클랜에 마병을 넘겨주면 겉으로 보이는 클랜의 위상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가네스 클랜이 현존하는 클랜들 중 최고라 꼽히는 이유.

그것은 비슷비슷한 세력 사이에서, 가장 많은 마(魔)등급 장비들과 신(神)등급 장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네스 클랜이 포기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더 이상 입찰하는 플레이어가 나타나지 않자, 사회자의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더 입찰하실 분 없으십니까? 그럼 열을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숫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정진혁의 입꼬리도 따라서 점점 올라갔다. 그렇게 사회자가 막 9를 세었을 때였다.

“50번, 110만 골드!”

오사카 클랜의 손이 번쩍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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