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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75화 (75/258)

75화

아포칼립스 내의 경매장은 시작의 마을 지하 투기장과 같이 NPC들과 플레이어들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애초 이 시스템 자체가 플레이어들이 고안한 아이디어를 악마들이 받아들여 시작한 것이기에, 대부분의 인력은 악마들을 통하면서도 플레이어들의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매장 시스템은 꽤 왕성했다. 점차 크기를 불려간 경매장은 이제 돈이 없는 신규 플레이어들의 마을인 시작의 마을을 제외하면 모든 마을과 도시에 설립되어 있을 정도였다.

소도시 하멜의 경매장은 중앙 광장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플레이어들과 NPC들이 성황을 이루는 번화가로, 주로 4회 차나 5회 차 플레이어들이 주를 이루었다.

“여긴 언제 와도 사람이 많네.”

“사람만 아니라, 악마들도 많지.”

광장을 둘러보던 안현수가 지나가는 플레이어들과 NPC들을 보며 감탄했다.

하멜에는 보름 이상 머물렀지만 일행이 광장에 온 건 몇 번 되지 않았다. 수련 창고를 대여하기 위해 상점(현실에서의 부동산 개념이다)을 찾았던 때와 퀘스트를 받기 위해 광장을 거쳐 북문으로 갔던 때, 두 번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유난히도 사람이 많은 느낌이었다. 특히 돌아다니는 사람들… 아니, 사람이라고 하기는 그렇다. 광장을 돌아다니는 3할 정도가 플레이어였고, 나머지는 모두 악마 NPC들이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중급 이상의 악마들은 보기가 힘드네. 볼락이라는 영주 밑에 몰려 있나 봐.”

악마들 하나하나를 둘러보던 안현수의 말에 우성은 공감할 수 있었다.

꽤 많은 수의 악마들이 보였지만, 그들의 머리에서는 볼락 밑에 있는 악마들과 같은 뿔이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하급 악마라도 되면 작은 뿔이라도 있을 텐데, 그나마도 없는 악마들이 대부분이었다.

소도시 하멜에 있는 악마들의 대부분은 ‘등급 외’에 속하는 최하급의 악마들이라더니. 그나마 간간히 보이는 작은 뿔을 가진 악마들은 그들이 악마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악마들과 플레이어들이 섞인 광장은 여러 상점들과 신전, 그리고 전직소가 모여 있었다. 주로 플레이어들이 찾는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어 보통 상점을 둘러보는 사람은 플레이어들이었다.

우성과 일행이 향한 곳은 그 중, 가장 많은 플레이어들과 NPC들이 밀집되어 있는 건물이었다. 광장의 신전보다 약간 작은, 소도시 하멜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었다.

“휘유. 크네.”

“그러게요. 신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 같아요.”

어지간한 고층 건물만한 크기에, 높고 넓은 1층의 홀에는 이미 왁자지껄한 소리가 한창이었다. 경매장으로 넘어온 수많은 아이템들의 주인을 찾기 위한 직원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고, 관심이 있는 플레이어들과 NPC들은 손을 크게 들고 소리쳤다.

“50골드!”

“60골드!”

“65골드!”

우성을 비롯한 일행은 잠시 멈춰서 경매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광장에 듬성듬성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은 각자 손을 들고 아이템의 가격을 높여 소리쳤다.

이번 경매에 나온 아이템은 많은 플레이어들이 애용하는 무기인 ‘검’이었다. 검의 이름은 ‘붉은 송곳니’였는데, 능력치가 제법 준수한데 비해 경매 시작가가 낮았다.

‘붉은 송곳니’를 경매에 붙인 사람은 아무래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경쟁에 참여하기를 원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천 골드 이상은 가뿐히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는데, 시작가를 50골드로 잡은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역시 아이템이 아이템인 만큼, 50골드로 시작한 가격이 훌쩍 뛰어 어느새 300골드가 넘어가 있었다.

‘저 셋 중 한 명이 사겠군.’

5골드씩 소심하게 올리는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수십 골드씩 가격을 뛰어 올리는 플레이어가 몇 명 보였다. 낮은 가격에 한 번 경매에 참여해 본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그들은 진정으로 붉은 송곳니가 필요한 이들이었다.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우성은 잠시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경매를 좀 더 지켜봤다. 천 골드가 넘어간 이후로는 세 명의 플레이어들만 남았는데, 10골드씩 가격이 올라 결국 붉은 송곳니는 2300골드에 낙찰되었다.

“2300골드라…….”

[붉은 송곳니]

* 붉은색을 띄는 검신이 피를 머금은 송곳니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핏빛 검신에 뒤지지 않은 강도와 절삭력(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력을 일부 증폭시켜주는 효과를 가진다.

+ 절삭력(공격력) 3% 상승

+ 착용시 민첩 1포인트 상승

+ 피를 머금을 때마다 일부 스텟이 랜덤으로 상승한다. 상승한 스텟은 일정 시간마다 검에 피를 머금지 않으면 다시 하락한다. (최대 3포인트)

확실히 괜찮은 검이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는 무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상점에서 파는 그저그런 수준의 무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옥토퍼스, 그리고 아포피스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다. 특히 같은 검이라는 점에서 아포피스와 크게 비교되었는데, 우성은 새삼스레 자신의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구경 다 끝났으면 가자.”

“그래. 여기 꽤 재미있는데?”

한참 경매에 빠져 있던 안현수는 휘파람을 불며 몸을 돌렸다. 경매 과정이나 조금씩 올라가는 금액을 구경하는 맛이 꽤 쏠쏠했다. 전 재산이 400골드 정도인 일행에 비해, 경매에 나오는 아이템들의 가격은 적어도 200골드 이상이었다.

경매장은 거대한 홀로 이루어진 1층과 경매 물품을 감정하고 접수하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은 실질적인 경매 장소, 그리고 2층은 사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구역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2층으로 올라가자 동글동글한 안경을 낀 하급 악마가 우성을 반겼다. 슬쩍 우성의 뒤를 돌아본 그는 동그란 안경 안쪽의 눈을 가늘게 좁혔다.

“호오. 이제 보니 새로 오신 이방인 분들이군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잘 알지요. 마수의 숲에서 돌아온 이방인 분들 아니십니까? 클클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 하급 악마를 보며 우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알아봐 주는 건 고맙지만 의미심장한 웃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실례했군요. 전 이곳 경매장의 물품 등록을 담당하고 있는 킬락이라고 합니다. 이방인 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방인 이우성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마찬가지로 이방인 안현수, 박혜미, 박혜정입니다. 등록하고 싶은 물품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우성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킬락이라는 악마는 흘러내린 안경을 검지로 올리더니 몸을 돌렸다.

“따라오시지요.”

2층은 1층에 비해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넓이까지 좁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빽빽한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어 훨씬 넓은 느낌이었다.

킬락을 따라 간 방문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표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우성은 이곳에 사는 NPC가 아닌 플레이어였다.

[물품 관리소]

표에 걸린 단어가 메시지의 형태로 떠올랐다. 킬락이 앞장서 방 안으로 들어갔고, 우성을 비롯한 일행이 뒤따랐다.

물품 관리소 안은 2층에 있는 방들 중 그 어느 곳보다 넓었다. 족히 백 평은 됨직한 넓은 하나의 방은 이미 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벽에는 무기나 갑옷, 투구와 같은 장비들이 걸려있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바닥에 역시 여러 장비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간간히 반지, 목걸이, 팔찌와 같은 장신구들이 끼어있기도 했고, 특이한 포션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어립 잡아도 수백 개는 됨직한 장비들과 아이템들에 우성은 가장 눈에 띄는 검을 바라봤다. 그 순간, 눈앞에 ‘감정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감정 불가? 경매장 등록품이기 때문인가?’

아무래도 공식 시스템으로 인정된 경매장인 만큼, 여러 설정이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템들의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게 꽤 아쉽긴 했지만 우성은 미련을 깔끔히 털어버렸다.

“아시고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하멜의 경매장은 그리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 대도시 다크듐과 파라다를 제외하면, 감히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할 만하죠.”

물품 보관소를 보여준 킬락은 자부심이 가득 느껴지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 이곳 경매장은 규모도 그렇고 아이템의 품질도 그렇고, 결코 수준이 낮지 않았다.

“그런 만큼 아무 아이템이나 등록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품질이 검증된 후에나 등록이 가능하며, 수수료 5퍼센트는 저희 경매장 측에서 가져갑니다.”

“수수료 정도야 당연합니다. 5퍼센트 정도면 싼 편은 아니지만… 수용할 만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물건을 좀 보죠.”

킬락의 말에 안현수가 등에 메고 있던 옥토퍼스를 가지고 앞으로 나왔다. 원래는 우성이 들려고 했는데, 아포피스를 착용한 손으로 만지니 하도 울어대서 시끄러운 탓이었다.

킬락은 옥토퍼스의 검붉은 날을 보며 입술을 오므리며 감탄했다. 2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무기인데다가,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무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외관상은 합격이군요.”

상급의 아이템임을 눈치 챈 킬락은 본격적으로 안현수에게서 옥토퍼스를 받아들어 감정을 시작했다. 양 손으로 도끼를 받아든 킬락은 눈에 이채를 띄우며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보기보다 가볍군요. 아니. 보통 가벼운 정도가 아니라, 뭔가 특수한 마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옥토퍼스를 감정하던 킬락의 눈이 반사적으로 크게 떠졌다. 원래 저렇게 눈이 큰 악마였나 싶을 정도였다.

“이, 이건…….”

[마병 ? 옥토퍼스]

* 저주받은 악마 크라켄이 봉인된 무기입니다. 하지만 옥토퍼스에 봉인된 크라켄은 보통 사람들이 아는 바다 괴물 크라켄이 아닌, 악마의 힘을 가진 최상급의 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라켄의 힘은 수백의 상급 악마들을 능히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합니다.

* 플레이어의 근력, 마력에 비례해 추가 절삭력(공격력)과 근력을 얻습니다.

* 크기와 위력에 비해 무게가 매우 가볍습니다. 근력, 민첩 스텟에 비해 보다 강하고 빠르게 휘두를 수 있습니다.

+ 300포인트를 지불하고 크라켄의 다리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이 크라켄의 다리는 기본 능력치에 더해 플레이어의 스텟의 20%만큼 강해집니다.

+ 마병은 플레이어에게 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정신력 스텟이 높을수록 부정적인 영향이 감소합니다.

+ 착용시에 한해 근력, 민첩, 마력이 5포인트 상승합니다.

+ 착용시에 한해 근력, 마력 스텟이 전체 스텟에 비례해 일부 상승합니다.

아포피스도 아포피스지만, 옥토퍼스 역시 무시 못할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표시되어 있는 절삭력(공격력)이 어느 정도 수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밖의 능력들로만 따져보면 아포피스와도 견줄 만하다.

‘붉은 송곳니와는 비교할 무기가 아니지.’

문제라면 NPC인 킬락은 무기의 능력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런 걱정은 역시 기우였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옥토퍼스를 내려놓은 킬락은 이내 덜덜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이, 이걸 어디서 나셨습니까?”

“꼭 아셔야 합니까?”

“아, 아닙니다. 저희야 뭐… 물건에만 하자가 없으면 출처가 어디든 상관없습니다만…….”

“그럼 등록 해주시죠.”

우성은 더 이상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내비추었다. 킬락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는지 옥토퍼스의 도끼날 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끝을 타고 마병의 섬뜩한 마기와 예기가 전해졌다.

꿀꺽-.

“하멜에 마병이 등장하다니…….”

옥토퍼스를 몇 번 쓰다듬던 킬락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의 머릿속이 ‘대박’이라는 단어가 꽉 채워졌다. 푼돈밖에 안 되는 아이템 수십, 수백 개를 파는 것보다 이만한 대박 아이템 하나를 파는 게 경매장 측에는 돈으로나, 명성으로나 훨씬 이득이었다.

“시작가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투는 똑같았지만, 어투가 달라졌다. 손을 슥슥 비비는 킬락은 어느새 갑(甲)이 아닌, 을(乙)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1만 골드.”

“……예?”

손가락 하나를 펼치며 우성이 단호하게 답했다. 1만 골드가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무기가 무기인 만큼 킬락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시작은, 쉽게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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