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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61화 (61/258)

61화

혜미는 말과 함께 라이트(Light) 구체를 좀 더 앞으로 가져갔다. 전등처럼 우성을 포함한 일행을 밝히던 구체는 방향을 바꿔 혜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컴컴한 개미굴 안쪽이 밝혀지자 가장 먼저 혜정이 깜짝 놀랐다.

“저, 저건…….”

“해골?”

라큘에게 당한 것처럼 끔직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대체 얼마나 된 시체인 건지 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부패된 거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게 뼈만 남아 있는 시신은 징그럽다기보다는 그저 ‘시체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해골은 총 두 구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시체. 그저 체격이나 입고 있는 옷을 봐서 여자가 한 명, 남자가 한 명이었겠구나 싶을 뿐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우성은 앞장서 해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 뒤를 혜미가 마법을 활성화시킨 채 따랐고, 안현수와 혜정이 함께 걸었다.

가까이 다가간 우성은 조심스럽게 앉아 해골의 위를 쓰다듬었다. 해골의 위로는 피 몇 방울이 굳어있을 뿐이었다. 그밖에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쌓인 먼지와 모래들 따위가 전부였다.

“깨끗하게도 죽었네.”

“부패된 건 아닐 거다.”

우성의 말뜻을 이해한 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살이 썩어서 부패된 거면, 뼈가 이 정도로 멀쩡할 리 없을 테니까.”

그런 과학적인 부분까진 모르겠고, 우성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우선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시체가 남아있는 걸 보면, 이들은 플레이어가 아닌 NPC였다. 게다가 이곳은 단순한 개미굴이 아닌, 자이언트 앤트들의 서식처였다.

아마도 이곳을 발견한 NPC가 자이언트 앤트들에게 당했을 것이고, 자이언트 앤트들이 두 명의 NPC를 사이에 두고 파티를 벌인 모양이었다.

다른 일행들이 뼈만 남아 시체가 된 해골에 눈살을 찌푸릴 때, 우성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 손을 가져갔다. 죽은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게 썩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NPC가 사용하던 물품이라면 괜찮은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여기는 던전이 아닌가?

“감정.”

[라크락의 모험용 로브]

* 라크락은 하급 마족들의 옷을 만드는 하멜의 유명한 재봉가이며 대장장이입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천 옷이지만, 적지 않은 물리 방어력과 ‘착용시에 한해’ 마력을 증폭시켜줍니다.

+ 마력 2포인트 상승

+ 소량의 물리 데미지로부터 방어, 기준을 초과하는 물리 데미지로부터는 일정 내성을 가집니다.

[마력 증폭 지팡이++]

* 마법 아이템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지팡이라 할 수 있지만, 특수한 마법 처리가 추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마력과 함께 소량의 마기가 주입되어 있어 마(魔)계열 주문을 보다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착용시에 한해’ 마력을 증폭시켜 줍니다.

+ 주문 증폭률 5% 상승

+ 주문 캐스팅 속도 10% 상승

+ 마력 1포인트 상승

[카우킹의 가죽 갑옷]

* 두껍지 않은 가죽 갑옷이지만 마수의 숲에 서식하는 상급 마수 ‘카우킹’의 가죽을 제련하여 만들어 매우 질기고 탄성이 강합니다. 적지 않은 물리 데미지를 흡수하는 효능을 지닙니다.

[???] - 파손

* 능력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손상되어 있습니다. 능력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장간에서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눈에 띄는 아이템은 총 네 개였다. 로브와 지팡이, 가죽 갑옷과 부러진 검. 검은 반으로 뚝 부러져 제 기능을 할 수 없었지만 크게 아쉽진 않았다. 어차피 아포피스만 못할 게 뻔했으니까.

결국 건진 아이템은 총 3개였는데, 하나같이 꽤 쓸 만한 아이템들이었다. 카우킹이라는 상급 마수의 가죽을 제련한 갑옷이야 설명만 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지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밖에 두 아이템은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는, 일종의 마법사용 ‘매직 아이템(Magic Item)’이었다.

“일단 이건 현수, 네가 가져라.”

“내가? 왜? 네가 입어도 되는데?”

우성은 망설임 없이 카우킹의 가죽 갑옷을 안현수에게 건넸다. 엄밀히 말해 가죽 갑옷은 우성에게나 안현수에게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지만, 우성의 생각은 달랐다.

“난 이미 사기템 하나 있잖아.”

“어… 그건 그러네.”

순식간에 납득한 안현수는 냉큼 가죽 갑옷을 받아들었다. 그 다음으로 지팡이는 혜미가, 로브는 혜정이 받아서 챙겼다.

우성만 아무 아이템을 받지 못하자 다른 일행들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템을 얻으니 좋긴 하지만, 우성만 아무 아이템을 배분받지 못하니 눈치가 보인 것이다.

“됐어. 던전을 좀 돌다 보면 또 뭔가 나오겠지.”

출발은 좋았다. 불안했던 것과는 다르게 벌써부터 쓸 만한 아이템 3개를 얻었다.

우성이야 아이템 자체에 큰 욕심은 없었다. 이미 던전을 발견한 보상으로 얻은 100포인트가 있었고, 어쩌면 던전을 클리어 하면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중에는 적지 않은 포인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우성은 가지고 온 육포 주머니를 꺼내 한 조각 입에 물었다. 시간이 꽤 지나 딱딱하긴 했지만, 이만하면 먹을 만하다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혜미가 마력을 낭비하면서 불로 육포를 굽고 있었다.

세 사람이 따뜻하게 구워진 육포를 먹을 때, 혼자 딱딱한 육포를 먹은 우성은 찝찝한 기분으로 앞장섰다. 이상할 정도로 자이언트 앤트들이 나오지 않는다 싶었다.

“개미들은 원래 개미굴에 살지 않나?”

“그러게 말이다.”

우성의 물음에 안현수가 답했다. 그 역시도 슬슬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상할 만큼 던전은 조용했다. 보이라는 몬스터는 보이지 않고 길 곳곳에는 해골바가지와 새하얀 뼈다귀 몇 개가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다.

분위기만 보면 누구나 ‘던전’하면 떠올릴 법한 곳이었지만, 우성은 이 던전이 이상하다 느꼈다.

우선 자이언트 앤트들이 보이지 않았다. 던전 이름이 ‘개미구멍’인걸 보면 자이언트 앤트들이 있는 던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로 입구에서 만난 NPC들의 시체나 곳곳에 있는 사람의 뼈다귀들이 있었다.

두 번째로 가장 이상한 점은 이상하리만치 넓은 던전의 크기였다. 단순히 ‘게임이니까’라는 생각을 하기엔 아포칼립스는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들을 위해 자이언트 앤트들이 넓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정말이지 멍청한 생각이다.

그 때쯤,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속이라 그런지 더욱 울리는 단단한 껍질 소리는 바로 자이언트 앤트들의 것이었다.

끼기기긱-.

“……기우였나?”

던전에 들어오고 한 시간 정도나 지났지만, 어쨌든 자이언트 앤트들을 만나긴 했다. 소리로 보아 수가 제법 되는 듯하지만, 푹 쉬고 난 뒤라 그렇게 걱정하진 않았다. 자이언트 앤트들은 하나하나 개체로 보면 그렇게 강하지 않았으니까.

“혜미, 혜정. 주문 준비해. 혜정은 어제처럼 방어에 특히 신경 써 주고.”

“************”

“*****”

그렇지 않아도 이미 익숙해 졌는지 혜미와 혜정은 자이언트 앤트들을 발견한 직후 이미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혜미는 라이트 마법을 구현중인 상태에서 또 다른 마법을 준비하려다 보니 꽤 애를 먹는 듯했다.

먼저 혜정의 버프 마법이 우성과 안현수를 감쌌고, 이어서 혜미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아포피스를 꺼내든 우성과 창을 곧추세운 안현수는 자이언트 앤트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

“……?”

일분 정도가 지났을까? 우성과 안현수는 조금씩 이상하다고 느꼈다. 분명 저 앞에 자이언트 앤트들이 있었고, 녀석들은 일행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이언트 앤트들은 달려들지 않았다. 지금껏 보아온 자이언트 앤트들의 습성으로 보아, 녀석들은 이른바 ‘선공몹’이라고 볼 수 있었다.

혹시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어 우성은 조심스럽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한 번 돌맹이를 던졌다 다시 잡고는, 30포인트가 넘는 근력 스텟으로 있는 힘껏 집어 던진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각-.

“히익.”

요란스러운 소리에 혜정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심연>특성으로 자이언트 앤트들을 보고 있는 혜미 역시 꿀꺽 침을 삼켰다. 지금껏 보아온 자이언트 앤트 무리들 중, 가장 많은 수의 무리였다.

“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거지?”

“스무 마리는 훌쩍 넘는 것 같아.”

“스물이라… 진짜 개미새끼들이구만.”

혜미의 대답에 안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징글징글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퀘스트 완료를 위한 400마리를 채우기에는 안성맞춤이라, 거기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돌멩이를 던졌음에도 자이언트 앤트들은 달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 속을 넘어, 분노로 번뜩이는 개미의 눈빛이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왜 안 움직이지?”

“……자리를 지키는 건가?”

그것 말고는 생각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들을 발견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저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무엇을 지키는 걸까?

“궁금한데.”

터벅-.

“저 뒤에 뭐가 있을지.”

아포피스에서 흐르는 검신과 닮은 검붉은 마력이 흩어져 어둠에 삼켜졌다. 우성이 앞으로 나서자 혜미는 라이트(Light)마법을 앞으로 비춰 우성의 시야를 밝혀주었다.

안현수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자이언트 앤트들의 수가 많은 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어, 그는 처음부터 창끝에 용력과 함께 마력을 가득 머금었다. 괜히 시간을 길게 끌어 체력을 낭비하느니, 용력과 마력을 일거에 쏟아내는 게 나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윽고 우성과 안현수와 자이언트 앤트들의 사이가 몇 걸음 정도로 좁혀졌다. 라이트 마법에서 뿜어진 빛이 자이언트 앤트들의 모습을 밝히고, 우성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걱-.

“……어?”

순식간에 한 마리를 베어냈지만, 우성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껏 싸워온 자이언트 앤트들과 조금 다르다. 더 강하다거나, 특징이 다른 게 아니었다. 우성의 검에 반으로 베어져 죽은 자이언트 앤트의 크기는 고작해야 갓난아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자이언트 앤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몬스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자이언트 앤트들은, 우성의 검이 한 번 휘둘러 질 때마다 우수수 쓰러졌다.

[142/400]

[144/400]

...

[경험치 1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1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우수수 쓰러지는 자이언트 앤트들에 정작 싸우고 있는 우성과 안현수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경험치 포인트는 고작 1밖에 주지 않았지만, 퀘스트에 필요한 마수 400마리는 착실하게 쌓이고 있었다.

‘마수는 맞는 것 같은데…….’

이렇게 약한 놈들이?

스무마리가 넘는 자이언트 앤트들을 모두 베자, 우성은 떨떠름하게 자이언트 앤트들의 시체를 바라봤다.

“대체 이것들 뭐지?”

“새끼겠지.”

“아니, 새끼인 건 알겠는데. 다 큰 놈들은 어디 가고?”

“……지금 그게 문제냐?”

안현수의 의문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성이 생각하기에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오, 오빠!”

쿠구구-.

뒤에서 들려온 혜미의 외침에 이어, 육중한 덩어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안현수와는 새끼 자이언트 앤트들의 등장에서부터 짐작하고 있던 우성은 긴장을 다잡으며 아포피스를 들었다.

“새끼가 있다는 건…….”

라이트 마법이 비추는 거리로, 넓직한 굴을 꽉 매우는 거대한 개미가 나타났다. 수많은 새끼 자이언트 앤트들을 거느린 녀석의 덩치는, 라큘이 우습게 생각될 정도였다.

“어미가 있다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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