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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60화 (60/258)

60화

[126/400]

마수의 숲에 들어온 지도 하루가 지났다.

잡은 몬스터의 수를 보면 알 수 있듯, 우성을 포함한 일행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몬스터들에 질린 상태였다. 빠르게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였다.

“왜 또…….”

“혜미! 집중 안 하고 뭐 해!”

우성의 외침에 혜미가 울상을 지었다. 그나마 한 무리 몬스터를 잡고 쉬고 있던 중, 다른 몬스터들이 일행을 습격해 온 탓이었다.

일행의 모습을 가히 ‘거지꼴’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아니, 아마 그보다 더 할 것이다. 우성과 안현수는 접근전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한 탓에 옷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피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혜미와 혜정 역시 두 사람보다야 낫지만 꼴이 말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하도 마력을 난사한 나머지 창백해진 피부와 새파란 입술은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키릭, 키기기긱-.

단단한 껍질이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눈앞에 나타난 자이언트 앤트(Giant Ant)들은 5살 어린아이 몸집만한 덩치를 가진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자이언트 앤트는 덩치가 작다고 결코 얕볼 수 없는 몬스터였다. 덩치는 비록 진거미에 비해 작으나, 힘이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몇 배는 되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한 번에 출몰하는 수가 적어도 십여 마리가 넘어 수적으로도 위험한 몬스터이기도 했다.

“젠장. 이 새끼들,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그 만큼 퀘스트 완료는…….”

“아 좀 쉬자고!”

수가 많은 만큼 퀘스트 완료에는 빠르게 가까워 졌지만, 안현수는 이제 퀘스트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모양인지 소리를 꽥 질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용력을 머금은 그의 창은 단단한 자이언트 앤트들의 껍질을 짓이기고 있었다.

남은 자이언트 앤트들을 보며 우성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 역시 지치긴 했지만 <광폭화> 스킬을 쓰지 않은 이상 아직까지는 여유가 남아 있었다. 아마 안현수도 여유가 있으니 저런 엄살도 부리는 것이리라.

“플레임 에로우(Flame Arrow)!”

화륵-.

혜미가 만들어낸 두 발의 이글거리는 화살이 두 마리의 자이언트 앤트의 몸에 박혔다. 단단한 껍질을 꿰뚫는 위력이 제법이라 할 만했지만, 이미 앞에서도 몇 번이나 봤던 광경이기에 우성은 칭찬할 겨를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키리릭.

파삭-.

껍질과 함께 몸통이 반으로 베어지며 자이언트 앤트의 진득한 액체가 몸 안에서 흘러 나왔다. 검은색과 녹색을 섞어 놓은 듯한 피를 흘리며 자이언트 앤트 한 마리가 쓰러졌다.

남은 한 마리의 자이언트 앤트는 안현수가 처리했다. 다수였으면 모를까, 고작 한 마리. 높게 고쳐 세운 창을 내려찍는 것으로 한 무리의 자이언트 앤트들이 사라졌다.

[130/400]

“하, 죽겠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 안현수는 자이언트 앤트의 몸에 박힌 창을 회수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꽤 많이 지쳤던 모양이었다.

상황은 혜미나 혜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녀들 역시 마력을 난사한 탓인지 꽤 지쳐있었다. 혜정의 경우에는 싸움 전후로 버프 마법과 치료 마법, 그리고 방어 마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주었다.

그 중에서 근 몇 번의 전투에서 특히 많이 사용한 스킬은 단연 방어 마법이었다. 자이언트 앤트들은 최소 열 마리 이상씩 무리를 지어 움직여서 사방을 둘러싸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럴 때 바로 혜정의 방어 마법이 필요한 것이다.

“아, 땡큐.”

혜정이 쪼르르 달려와 안현수의 발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손에서 검푸른 빛이 흘러나와 자이언트 앤트에게 물린 다리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씁, 아아…….”

“포션도 부을게요.”

어깨에 메고 온 작은 가방에서 포션을 꺼낸 혜정은 안현수의 다리에 포션을 남김없이 흘렸다. 스킬만으로 치료할 때와는 달리 고통이 꽤 줄었는지, 안현수는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된 것 같다. 고마워.”

“뭘요.”

포션의 마개를 닫으며 혜정이 빙긋 웃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피던 우성이 혜미에게 다가가 소곤거렸다.

“쟤들 뭐냐?”

“게임 속에서 이렇게 사랑이 싹트고……?”

“거 참 지랄들 하네.”

“우리도 연애나 할래?”

“나 딸 있는거 몰라?”

“아, 맞다. 하… 그럼 나만 솔로야?”

혜미의 투덜거림에 우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내는 없다만.”

“…….”

갑작스럽게 어색해진 기분에 혜미가 시선을 회피했다. 딸이 있으니 당연히 아내도 있겠거니 했는데, 아내는 또 없다니.

이혼한 걸지도 모르고, 죽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알고자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괜히 자신이 아픈 부분은 건드렸나 싶어 혜미는 어쩔 줄을 몰라 우성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응?”

그 때, 혜미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말 그대로 ‘이상한’,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좀 더 자세히 볼 요량으로 눈을 가늘게 떴는데, 그런 생각 때문인지 그녀의 플레이어 특성 <심연>이 발동되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그녀의 눈에 맺혔고, 그 순간 자그마한 땅 구멍 하나가 자세히 보였다.

[비밀 던전 - 개미구멍]

“어?”

**

“……그러니까, 여기가 던전이라고?”

“응.”

“이 작은 구멍이?”

“그렇다는데?”

양쪽 눈이 푸르스름한, <심연>을 활성화 시킨 혜미의 말이었다. 이걸 안 믿을 수도 없고, 우성은 그저 이유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혜미가 발견한 구멍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법한 작은 구멍이었다. 그나마도 손으로 위쪽에 우거진 잡초들을 걷어냈기 때문이지, 그전에는 구멍이라고 생각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작은 홈 정도로 생각했겠지.

물론 구멍은 구멍이긴 했다. 깊이도 꽤 되는 듯했고, 어린아이 덩치의 자이언트 앤트들이 들어가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우성이나 다른 일행들이나, 구멍에 비해 덩치가 꽤 크다는 것이다.

“어쩐지 근처에 개미새끼들밖에 없더라니.”

“개미구멍이 근처에 있으니 당연하지.”

호기심 강한 안현수는 개미구멍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어 깊이를 확인했다. 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구멍인지 구멍의 바닥은 햇빛이 비추지 않는 저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깝긴 한데…….”

구멍이 작긴 해도 던전은 던전이었다. 아마도 자이언트 앤트들이 서식하는 던전. 비교적 약한 대신 개체수가 많은 자이언트 앤트들인 만큼, 던전에 들어서기만 한다면 금세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불빛이야 혜미의 라이트(Light) 마법으로 대체하면 될 거고…… 문제는 공간인데.”

과연 저 아래 성인 남성, 여성들이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이언트 앤트들에 의해 개죽음을 당할 게 분명했다.

“저 아래, 꽤 넓어.”

“응? 그건 어떻게…….”

아, 하는 표정으로 우성이 혜미를 바라봤다.

그녀의 플레이어 특성 <심연>은 애초 배치고사에서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라큘을 잡은 레벨 포인트로 스킬 레벨도 더 오른 상태인지라 구멍 속을 볼 수 있을 정도인 모양이었다.

“어느 정돈데?”

“생각 이상으로 넓어.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자세한 건 내려가 봐야 알 것 같지만…….”

“그래?”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혜미가 이렇게 말한다면 움직임에 큰 제약이 있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우성은 결정을 내렸다.

“잠시 쉬었다가, 던전에 들어간다.”

“정말로 가게?”

“그래. 가능하면 자이언트 앤트들로 퀘스트를 끝낼 수 있으면 다행이지. 숲 중앙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던전 하나를 도는 게 더 안전할 것 같고.”

우성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던전 안쪽이 위험할 거라 생각했던 혜미와 혜정도 숲으로 더 들어가는 것과 비교하니 이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자이언트 앤트들과는 몇 번 싸워본 만큼 큰 위험이 된다고 생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되도록 구멍 아래의 공간이 넓기를 기도하며 일행은 잠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우성과 혜미가 한 조를, 안현수와 혜정이 한 조를 이루어 불침번을 서며 해가 진 후부터 아침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전 입구인 개미소굴과는 조금 떨어진 장소를 휴식처로 잡았는데, 그 덕분인지 더 이상 자이언트 앤트들의 습격은 없었다.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긴 했지만 해가 진 직후부터 다시 해가 뜰 때까지 꽤나 긴 휴식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일행은 피로를 거의 풀 수 있었다.

해가 막 떠오르자, 일행은 다시 개미소굴의 앞으로 향했다. 몇 마리 밖으로 나온 자이언트 앤트를 잡고는 우성이 앞장섰다.

“일단 먼저 내려가 볼게.”

“안 위험하겠어?”

“……그럴 리가. 혜미 넌 두 번재로 내려와.”

“왜?”

“그래야 앞에 뭐가 있는지 볼 거 아니야. 햇빛도 안 들어올 텐데, 나 혼자 들어가서 어쩌라고?”

던전이라지만 그래도 개미구멍이라는 느낌에선지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었다. 혜미가 삐죽 나온 입술로 알겠다고 대답하자 우성은 아포피스를 장갑의 형태로 바꾸고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가려던 우성은 구멍 안으로 뛰어들자 몸이 아래로 훅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저 ‘떨어진다’가 아닌,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이라 우성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느낌도 잠깐뿐이었다. 곧 양 다리를 단단한 땅이 밭쳤다. 환하진 않지만 미약하게 들어온 햇빛으로 인해 눈앞이 아주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감탄할 무렵, 우성의 눈앞으로 익숙한 메시지들이 연속해서 떠올랐다.

[‘비밀 던전 - 개미소굴’을 발견하였습니다.]

[1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던전 내에서 24시간 동안 경험치 포인트를 20퍼센트만큼 추가로 획득합니다.]

[던전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입구와는 다른 탈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혜미의 말이 맞았다. 추가로 획득한 예상치도 못한 포인트에 우성이 미소를 지을 무렵, 들어왔던 구멍 위쪽으로 안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던전 맞아! 들어와도 돼!”

우성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손짓했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 혜미가 내려왔고, 안현수와 혜정이 서로 손을 잡은 채 내려왔다. 조심스럽게 에스코트까지 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성이 손가락으로 던전의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라이트 마법부터.”

“네, 네. 분부대로.”

잠시 중얼거리던 혜미의 손끝에 새하얀 빛이 어렸다. 그러더니 이내 순식간에 만들어낸 빛의 구체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처음에 비하면 밝기도 무척 밝아졌고, 유지하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다. 정예지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만 했다.

순식간에 환해진 동굴 안은 높이가 족히 4미터는 되어보였다. 창을 휘두르기에도 무리가 없는 크기라 안현수는 안도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공간이 좁으면 좁을수록 넓은 공간을 사용해야 하는 안현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입구만 넓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좁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좀 더 들어가도 넓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복도처럼 넓고 높은 공간은 개미굴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여기 쓸데없이 너무 큰 거 아니야?”

‘쓸데없다’는 안현수의 말에 우성도 고개를 끄덕여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긴 이상하군.”

이곳의 주인은 자이언트 앤트였다. 비록 개미치고는 지나치게 크다 하나, 개미는 개미였다. 이런 개미굴을 만들어 생활하는 걸 보면 덩치와는 별계로 우성이 아는 개미의 습성은 똑같이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정도로 큰 개미집은 필요하지 않았다. 개미들이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정도의 크기, 1미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물론 그런 거면 여기가 던전으로 설정되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혜미가 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 사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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