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시작은 순조로웠다. 마수의 숲 입구에서 나타난 진거미 6마리를 시작으로, 일행은 퀘스트 완료에 한 걸음 다가가며 소량의 경험치 포인트도 획득할 수 있었다.
혜미의 마법은 충분히 도움이 되었고, 혜정의 버프 역시도 꽤 도움이 되었다. 아쉽다면 치료 계열 마법을 보지 못한 것이지만,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게 더 중요했다.
두 마리가 죽고 4마리가 남은 진거미들은 우성과 안현수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6마리가 다 덤벼들었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4마리에 비해서야 조금 더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벌써 안 보이는군.’
숲의 입구를 막 들어섰을 뿐인데 흩어졌던 플레이어들이 벌써부터 보이지 않았다. 하긴, 마수의 숲의 넓이를 생각해 보면 다른 플레이어들을 만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진거미와 같은 몬스터만 마주치면 일이 꽤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숲의 초입부에는 몬스터가 많지 않은지, 진거미들을 만난 이후로 한동안 몬스터 무리를 만날 수 없었다.
“이러다 몬스터를 못 만나서 퀘스트를 못 깨는 거 아닐까 몰라.”
안현수의 걱정에 우성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이 퀘스트 자체가 성립이 안 됐겠지.”
“왜?”
“마수의 숲 퀘스트는 몬스터들이 급격히 번식하면서 생겨난 퀘스트니까.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몬스터들, 정확히는 마수들의 수를 줄이는 게 볼락의 목적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이러다 졸겠는데.”
“숲 중앙으로 갈수록 점점 출현이 잦아질 거야. 긴장 풀지 마.”
진거미들을 해치운 이후 안현수는 물론이고 혜미와 혜정 역시 급격히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거대한 거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끔찍했지만, 실상은 마수의 숲에 서식하는 마수들 중 최하위 계층에 분류되는 몬스터인데 말이다.
‘좋지 않은데…….’
처음보다야 낫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자신감이 붙어도 좋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이런 상황에서는 나을 것이다.
느슨해진 긴장의 끈을 다잡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했다. 물론,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강한 몬스터가 출몰하겠지만 그 때 가서 늦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응?”
그 때, 혜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몸을 굳혔다.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우성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 역시 덩달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저기…….”
혜미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숲 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모르겠지만, 혜미가 가리키는 방향은 일반적으로 나 있는 길은 아니었다.
“저긴 왜?”
“누가 있어.”
‘누구’라고 표현할 걸 보면 사람일 텐데. 그렇다면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았다. 손을 들어 아포피스를 꺼내려는 우성을 보며, 혜미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죽었어.”
“뭐?”
혜미의 말에 우성이 더욱 황급히 아포피스를 소환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안현수 역시 창을 꺼냈고, 늘어져 있던 혜미와 혜정은 다시 긴장의 끈을 잡았다.
우성은 조심스럽게 혜미가 가리킨 방향으로 앞장서 걸었다. 눈앞을 가린 수풀을 치우자, 곧 코를 찌르는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우욱.”
뒤이어 온 혜미가 끔찍한 광경에 연신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차마 보여줄 수 없었는지 안현수는 혜정의 눈을 가렸지만, 이미 그녀 역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끔찍하군.”
비위가 강한 편인 우성과 안현수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플레이어의 시체는 총 세 구였다. 아니, 세 구로 추정되었다. 여기서 ‘추정’되는 이유는 온갖 사지가 뜯어지고 찢겨져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플레이어는 팔 다리가 모두 뜯어진 채 몸통만이 남아있었는데, 무엇에게 먹혔는지 속이 텅 비어있었다. 얼굴이야 말할 것도 없이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머리가 셋이라는 점에서 세 명이라 추정할 뿐이지, 몸통은 두 개밖에 없었다. 아마도 하나는 이미 먹혀 여기저기 뿌려진 살점들로 변했을 것이다.
‘이게 게임인가?’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렇다.’였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눈앞에 보인 참담하고 끔찍한 광경은 서로 상반되어 괴리감을 만들었다.
몬스터가, 마수가 사람을 곱게 죽였을 리 없었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싸움과는 달리, 마수가 사용하는 무기는 손톱과 발톱, 혹은 그 외의 다른 신체의 이빨과 같은 것들이다.
어떤 마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상태에서 잡아먹혔을 수도 있고, 산 채로 잡아먹히며 죽어갔을 수도 있었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끔찍하군.”
이건 게임이다.
게임이지만…….
그 순간, 우성의 머릿속에 볼락의 말이 떠올랐다.
‘변함없이 욕심에 눈이 먼 그대들의 미련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부디 살아서 다시 보길 바란다.’
볼락의 의미심장한 말과 살아서 다시 보자는 뜻.
그 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와 닿지 않았다는 게 정확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고, 볼락의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퀘스트는 플레이어가 마수들을 사냥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마수의 숲’ 퀘스트는…….
“마수로부터 나흘 간 생존해 귀환하라. 이게 바로 퀘스트의 목적이었어.”
“…….”
우성의 중얼거림은 옆에 있던 안현수나 비위가 상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혜미와 혜정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퀘스트의 내용 자체를 곡해하는 말이었지만, 세 사람 모두 우성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눈앞의 광경을 보라. 마수로부터 사지가 찢기고, 먹히고, 죽어 있는. 과연 이 광경을 본 어느 누가 우성의 말을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이거 게임 맞죠?”
잔뜩 겁에 질린 혜정이 안현수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숙이는 것으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아니’라고.
게임? 맞다. 엄연히 말해, 아포칼립스는 게임이었다. 스텟이 있고, 아이템이 있고, 퀘스트가 있으며, 무엇보다 여벌의 목숨이 있다. 게다가 파티라는 시스템도 있어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리얼한 게임이 어디 있냐고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안현수는 물론, 우성 역시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땅을 ‘게임’이라고 정의하여 대답할 수 없었다.
아포칼립스는 게임처럼 스텟과 퀘스트, 여벌의 목숨이 있지만.
현실처럼 고통을 느끼고, 게임에서의 죽음이 곧 현실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게임 캐릭터는 가질 수 없는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이건…….
“역시 게임이 아니야.”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우성은 결론을 내렸다.
“네?”
“아포칼립스… 이건 게임이 아니야.”
“그, 그럼요?”
“여벌의 목숨이 있는 ‘현실’이지.”
‘현실’이라는 말에 혜미와 혜정이 흠칫 놀랐다. 안현수는 이미 꽤 전부터 자각하고 있었는지 그저 실소를 흘릴 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우성은 물론, 일행들 모두는 아포칼립스를 ‘현실과 연관된 특이한 게임’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역시 눈으로 보아야 이해하는 생물인 모양이었다. 지금껏 목이 잘리거나 단순히 피를 흘려 죽은 플레이어들이 아닌,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플레이어들의 사체 덩어리들을 보자 일행은 아포칼립스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다.
“혜미, 혜정.”
“으, 응?”
“네?”
“정신 차려. 긴장 풀지 말고. 너희도 알겠지만, 모든 라이프를 잃으면 게임 오버가 아니야. 그냥 죽는 거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눈앞에 이 광경을 놓고 이야기 하자, 그 말뜻이 새롭게 다가왔다.
혜미와 혜정, 그리고 이름을 부르지 않은 안현수 역시도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우성은 자신 역시도 새롭게 긴장을 다잡을 수 있었다.
‘느슨해졌어, 너무.’
우성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역시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광경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한 번 비위가 상한 것으로 자신과 일행의 긴장의 끈을 다시 단단히 굳힐 수 있었으니 나쁜 일이라고 생각할 순 없었다.
“여기서부턴 더 조심하도록. 저 플레이어들이 죽어있는 걸 보면… 멀지 않은 곳에 몬스터가 있을 확률이 높으니…….”
오도독-.
전신의 소름을 건드리는 소리에 우성을 포함한 일행의 몸이 굳었다. 뼈를 씹어 삼키는 소리가 수풀 너머를 통해 작게 들려온 것이다.
“무, 무슨 소리지?”
“……준비해.”
“응?”
“그런 거 따지기 전에, 각자 마법이나 준비하라고!”
우성의 호통에 혜미와 혜정은 부랴부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안현수의 창에는 어느새 푸르스름한 용력(龍力)이 맺혀있었고, 우성은 아포피스를 꺼내들었다.
오도도독-. 오도독- 꿀꺽-.
꺼억-.
뼈를 씹어 삼키는 소리와 트름 소리가 수풀을 타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감히 도망가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우성과 일행은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 다가오는 소리를 기다렸다.
‘대체 뭐지?’
아포칼립스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우성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단순히 앞에서 잔인하게 죽은 플레이어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멀리서 들리는 산 채로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소리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다가오는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두려웠다. 과연 저것을 상대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여기서 도망가면 끝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어딘가 모를 호승심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신규 플레이어이거나 5회 차, 6회 차의 플레이어들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이 시기에 하멜로 넘어온 신규 플레이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현재 마수의 숲 퀘스트를 맡은 플레이어의 대다수는 5회 차와 6회 차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녀석에게 당한 파티는 기존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파티일 터.
그런 녀석을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우성은 자신들이 더 이상 신규 플레이어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도망치지 마라.
두근-.
아포피스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도망치면 실격이라고. 고작 저런 녀석 따위에게 겁먹는 나약한 정신력으로 자신을 다룰 수 있겠냐고.
말로만 듣던 보스 몬스터일까?
“까짓거…….”
터벅-.
도망치지 않고, 우성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