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56화 (56/258)

56화

<마수의 숲>

성으로 다시 들어가는 볼락의 어깨가 들썩였다. 입가에는 보기 드문 연한 미소가 그려져 있어, 그의 주위를 지키는 수하 악마들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평소 잘 웃지 않기로 유명한 볼락이었다. 이따금씩 보이는 웃음기고 금방 사라지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수십, 수백 년 만에 보는 볼락의 기분 좋은 모습에 악마들은 한결 조심스러워졌다.

“특별히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성문의 바로 앞으로 마중 나온 볼락의 수하, 상급 악마 로글이 물었다. 그는 다른 주위에 있는 중급 악마들과는 달리, 목까지 내려온 긴 뿔을 가지고 있었다. 중급과 상급, 단 한 단계의 차이였지만 가진바 힘의 차이는 한두 단계로 구분 지을 수 없었다.

“재미있는… 아니, 기대하던 걸 발견했구나.”

“네?”

재미있는 걸 발견한 것도 아니고, 기대하던 거라니?

뜻 모를 소리에 로글은 기다란 뿔을 구부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기야, 자신의 주인인 볼락의 말은 가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긴 했다.

볼락은 잠시 걸음을 멈춰 로글을 응시했다. 비록 수백 년간 볼락을 곁에서 모셔온 로글이었지만,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부담스러웠다. 로글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 그의 시선을 감히 정면으로 마주하는 우려를 피했다.

“하급한 악마들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만…….”

상급 악마인 로글을 ‘하급하다’고 표현한 볼락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마신님께서 계획하신 잃어버린 퍼즐 조각 하나가 돌아왔더구나.”

**

볼락의 등장 이후 플레이어들은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내 성으로 돌아간 볼락 대신 플레이어들을 인솔하는 악마들의 지시에 따라 우성을 포함한 플레이어들은 성문 밖 ‘마수의 숲’으로 향했다.

마수의 숲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외관상 그저 평범한 숲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나무에 가시가 꽤 돋아나 있다는 점인데, 우거진 나무와 풀 따위로 하늘이 가려졌던 ‘죽어가는 자의 숲’에 비하면 양호하다 볼 수 있었다.

악마들은 플레이어들마다 하나씩 마수의 숲 지도를 나눠주었다. 제대로 지도를 볼 줄 모르는 우성과는 달리, 안현수나 혜미, 혜정은 꽤 지도를 보고 움직일 줄 알았다. 특히 안현수는 직업이 경찰이다 보니 지도를 보고 길 안내를 꽤 해본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지도는 꽤 특이한데.”

양 손으로 쫙 펼친 지도로 앞을 가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안현수의 모습은 조금 불안해보였다. 저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라도 않을까…….

“으악!”

발라당 앞으로 넘어지는 안현수를 보며 우성은 한숨을 쉬었고 혜미와 혜정은 풋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안현수 덕분에 분위기가 그리 무겁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긴장한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아야야… 야, 여기 너무 많이 넓은데. 길 안 잃어버리게 조심해야겠어.”

시큰한 콧등을 매만지며 자리에 앉은 채 안현수가 지도를 펼쳐 보였다.

지도의 크기는 대략 가로 1m에 세로 50cm정도였다. 그렇게 엄청 큰 지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다고 할 순 없었다.

지도의 아래쪽으로는 북쪽 성문이 작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 위쪽, 중앙에서부터 지도 전반에 걸쳐서 마수의 숲에 대한 그림과 대략적인 길목이 그려져 있었다.

마수의 숲의 크기는 단순히 숲이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넓었다. 죽어가는 자의 숲에 비하면 몇 배나 될지 모를 만큼 지도상에 나타난 마수의 숲은 넓고, 길이 복잡했다.

“서울 정도 크기는 되겠는데요?”

“아니, 더 될 걸? 그나저나 이 길로 가면 숲 중앙 부근인데… 위험하지 않을라나 몰라.”

“언니. 아니지. 이 쪽으로 가면…….”

“일단 퀘스트 내용이 소탕인 만큼, 몬스터를 피해가는 건 맞지 않아. 내 생각엔…….”

혜미와 혜정, 그리고 안현수는 지도를 아래에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중앙으로 가는 게 맞다, 외곽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큰 길을 따라가는 게 맞다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 와중에 우성은 잠시 동떨어져 세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지도를 볼 줄 모르니 무슨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나?”

“응. 혜정이는 큰 길을 따라가는 게 맞다 그러고, 현수 오빠는 이 길대로 숲 중앙으로 가야 한다는데.”

지도는 볼 줄 모르지만 어디로 향할지 정도는 우성 역시 생각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세 사람과는 달리 딱 짚어서 ‘여기로 가야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중앙은… 아무래도 위험하겠지?’

숲의 중앙은 다수의 몬스터가 출현할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보스 몬스터’라도 만난다면 이 네 명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물론 보스 몬스터에 대한 욕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듣기로 보스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는 달리 경험치 포인트가 아닌 꽤 짭짤한 양의 일반 포인트를 준다고 하는데, 때문에 보스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는 플레이어들도 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성이나 다른 일행의 실력으로는 마수의 숲 보스 몬스터를 잡기란 요원했다. <대리인>이라도 사용하면 모를까.

“일단… 외곽으로 돌아 중앙으로 가는 게 어떨까 싶은데.

“응? 외곽? 중앙?”

고개를 갸웃거리는 혜미를 위해 우성은 지도 위로 손을 가져갔다. 지도에는 돌멩이로 긁어놓은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일행이 위치한 곳이었다.

“여기서 바로 중앙으로 가면 아무리 숲이 넓다고 해도 하루 안쪽이야. 물론 중간에 몬스터를 만나거나 변수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걸 생각해도 하루 이상이 걸리지는 않겠지.”

“응.”

“그런데 이렇게 외곽을 돌며 둥근 모양으로 이동하면, 대략 이틀 정도 걸릴 것 같다.

“나올 때는?”

“직선거리로.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이 루트가 몬스터와 자주 만날 수 있으면서, 위험이 비교적 적은 길 같다.”

우성, 안현수, 혜미, 혜정은 파티(Party)라는 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상태였다. 애초 퀘스트를 받을 때부터 네 명이 파티를 이루어 받았기 때문에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400마리의 몬스터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만큼 몬스터를 피해서 다닌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몬스터를 조우할 만한 루트를 통해야 하는데, 막상 중앙으로 바로 향하기엔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우성이 생각한 방향이 바로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중앙으로 향할수록 많은 몬스터가 나올 테지만 원을 그리며 가면 그만큼 몬스터가 출현하는 빈도를 점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위험하다 싶으면 왔던 길로 돌아가기도 수월할 테니까.

우성의 생각을 들은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우성은 외곽을 돌아야 한다는 의견이나 중앙으로 바로 향해야 한다는 의견 모두를 수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괜찮네.”

“나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저도요.”

의견이 하나로 모이며 방향이 정해졌다. 가장 뒤쪽에서 혜정이 지도를 보기로 했고, 혜정의 옆을 안현수가, 혜미의 옆을 우성이 서서 걸었다.

파삭-.

나뭇잎이 부서지는 소리에 혜미는 콧노래를 불렀다. 흥얼거리는 귀여운 목소리로 그녀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즐겼다.

“생각보다 조용하네. 이름답지 않게.”

마수의 숲이라기에 칙칙하고 위험할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죽어가는 자의 숲에 비하면 산책 같은 기분이었다. 긴장할 법도 하건만, 원래 강단이 있는 건지 아니면 죽어가는 자의 숲에서 얻은 경험 덕인지 혜미는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모든 일행이 그녀 같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안현수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용해서 더 문제지.”

“그게 왜?”

“퀘스트 내용을 생각해 봐. 몬스터 400마리. 이대로면 한 마리도 못 잡고…….”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

두 사람의 대화를 자르며 우성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울림이 손을 통해 느껴지며, 손 안에 아포피스의 검붉은 검신이 드러났다.

“준비들 해.”

“오케이!”

휘리릭-.

안현수의 창이 빙그르르 돌아가며 땅에 세워졌다. 폼 좀 내보겠다며 연습한 자세였는데, 안현수는 빠른 속도로 창이라는 무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우웅, 우우웅-.

스스스-.

곧 안현수의 창끝에 푸르스름한 연기가 맺혀 허공으로 흩어졌다. 우성은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기에 사뭇 기대가 되었다.

‘용력(龍力)이라고 했던가?’

유니크 직업 ‘용기사’의 특수 능력 중 하나, 용력(龍力).

일반적인 직업들이 사용하는 힘은 마력(魔力)이었다. 스텟 능력치에도 나와 있듯, 혜미나 혜정, 우성은 물론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근력과 민첩, 마력을 기반으로 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안현수는 특이하게도 직업 특성 스텟인 용력을 기반으로 힘을 발휘했다. 아니, 용력만이 아니라 그는 마력이라는 스텟 역시도 보유하고 있었다.

무슨 차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기엔 큰 차이가 있었다. 먼저, 안현수는 마력이라는 스텟 외에 추가적으로 용력이라는 스텟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즉, 마력 스텟이 가지는 힘에 용력의 힘을 추가적으로 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성은 안현수가 사용한 용력의 위력을 겪어보았다. 시간이 지나 용력이라는 힘에 익숙해지면서 우성과 대등한 접전을 벌였을 정도이니, 나중에 용력의 힘에 더 익숙해지고 숙련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

“*****”

혜미와 혜정 역시도 각자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성과 안현수는 각자 무기를 들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리켰다.

키기긱-.

그그그극-.

“한두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여섯 마리에요. 준비해요!”

“그건 어떻게…….”

뒤쪽에서 들려온 혜미의 외침에 의문을 품었던 것도 잠시, 안현수는 시야에 나타난 거미 형상의 괴물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건 뭐지?”

“진거미. 마수의 숲에 자주 출몰하는 몬스터 중 하나다. 거미긴 해도 얕보면…….”

“아무리 거미래도, 저런 거미를 어떻게 무시하냐?”

거미라고는 하지만 진거미의 크기는 보통 거미에 비해 커도 너무 컸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크기에 옆으로 퍼진 덩치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성인 남성만 할 것 같았다.

“스트랭스! 헤이스트!”

“오오, 혜정이. 고맙다!”

[온 몸에 힘이 샘솟습니다. 근력이 3포인트 상승합니다.]

[몸이 한층 가벼워집니다. 민첩이 3포인트 상승합니다.]

몸에서 느껴지는 활력에 우성과 안현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근력과 민첩이 각 3포인트씩, 총 6포인트 정도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괜찮은 버프였다.

키리릭--.

진거미들이 우성과 안현수를 향해 달려왔다. 덩치에 비해 꽤 민첩했는데, 징그러운 얼굴이 바로 눈앞에 보여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막 진거미들을 향해 안현수의 창이 찔러 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디그(Dig)!”

그그그그그-.

거미들이 서 있는 땅이 움푹 파이며 두 마리의 진거미가 땅속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오던 진거미들은 아쉽게도 움푹 파인 땅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옆으로 넘어지는 등 균형을 잃었다.

뒤를 돌아보니 혜미가 또 다른 마법을 준비했는지 양 손에 검은색 불을 머금고 있었다. 슬며시 양쪽으로 갈라진 우성과 안현수는 그녀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다크 파이어(Dark Fire)!”

화륵-.

순식간에 혜미가 쏘아낸 연한 검은색을 머금은 불꽃은 땅속에 빠진 거미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코를 찌르는 타는 냄새와 고기 익는 냄새가 섞였고, 뒤에 있는 거미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 모든 걸 혜미가 준비한 두 가지 마법으로 만들어 냈다. 예상외의 선전에 안현수가 감탄하는 사이, 우성이 아포피스를 들고 뛰어나갔다.

진거미들을 향해 달려드는 우성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은은하게 걸렸다.

“일단 여섯 마리.”

[띠링-! 진거미를 처치하였습니다.]

[띠링-! 진거미를 처치하였습니다.]

[1/400]

[1/400]

[2레벨 포인트(Level Point)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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