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소도시 하멜에 신규 플레이어와 5회 차, 6회 차 플레이어들이 몰리는 이유는 하나의 ‘퀘스트’ 때문이었다.
퀘스트의 이름은 ‘마수의 숲’이었다. 의미가 명확한 이름답게 의미 그대로 마수들이 살고 있는 숲이 퀘스트의 장소였다.
아니, 정확히는 퀘스트를 받는 장소는 따로 정해져 있었다. 하멜의 북쪽 문에는 하멜의 영주인 백작급 악마 볼락(Volac)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북문에서는 매 석 달마다 마수의 숲 소탕에 나설 플레이어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마수의 숲은 매 달마다 마수들이 증식하는 기괴한 숲이었다. 한 때 그 수를 끊임없이 증식하다 마수들에 의해 하멜이 점령당하기까지 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 이후 볼락은 정기적으로 마수의 숲을 토벌하곤 했는데, 거기에 플레이어들 끌어들인 것이다.
과거에는 골칫거리였던 마수의 숲은 이제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있었다.
“사람 한 번 많이도 모였군.”
몇 백 명이나 되는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볼락의 북쪽 광장에 모여 있었다. 다른 때에는 출입이 통제되는 하멜의 영주 볼락의 성이었는데, 오직 ‘마수의 숲’ 퀘스트 시기에만 성문이 개방되곤 했다.
마수의 숲 퀘스트를 받기 위한 조건은 꽤 까다로웠다. 초보자 플레이어들을 위한 퀘스트라는 말이 있는 만큼 ‘마수의 숲’ 퀘스트는 5회 차와 6회 차, 그리고 신규 플레이어들밖에 받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또 하나 조건으로 B클래스 이상의 플레이어만 참가가 가능했다. 다행히도 일행 중에서는 B클래스가 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전원이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퀘스트 도착!]
이름 : 마수의 숲
구분 : 반복 퀘스트(1인 1회 한정)
등급 : A
보상 : 1라이프(Life), 1000포인트 + (초과 마수 x 10포인트)* 하멜의 북문에 위치한 마수의 숲에서 마수 100마리 이상을 소탕하라.
* 100마리 이상을 초과할 시, 추가 마수 당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파티(Party) 시스템 이용 시, 인원수 x @만큼 완료 조건이 변경됩니다. ([email protected] 포인트는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됩니다.)
배치고사 이후 2번째 A등급 퀘스트였다. 난이도가 높다는 점이 걱정되긴 하지만 보상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완료시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1000포인트도 중요하지만 무려 1라이프(Life)가 보상으로 깔려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라이프가 중요한 우성에게는 이만한 보상의 퀘스트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라이프를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알려져 있는 퀘스트 중에서는 대개 난이도가 너무 높은 퀘스트들이 대부분이었고, 알려지지 않은 에픽(Epic) 퀘스트는 말 그대로 발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우성과 다른 일행들이 도전할 수 있는 라이프 퀘스트는 하멜에 있는 마수의 숲 하나뿐이었다. A등급 퀘스트로 난이도가 썩 낮지는 않았지만 파티를 이루면 난이도가 B등급 정도로 내려간다고 하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 동안 스텟도 꽤 올랐고.’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우성
직업 : 아포피스의 대리자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남자
칭호 : 생존자
클레스 : S
[능력치]
- [근력 : 32] [민첩 : 36] [체력 : 36] [맷집 : 30] [반사능력 : 26] [마력 : 24] [정신력 : 42] [PP : 1807]
: (- 100p)
* 플레이어 특성 : 불굴의 의지 Lv.3 <상세정보>
* 업적 : 죽어가는 숲의 생존자
* 포인트 : 9155p
* Lv. 포인트 : 211
* Life : ****
[플레이어 정보]
이름 : 혜정
직업 : 암흑사제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여자
칭호 : --
클레스 : B
[능력치]
- [근력 : 7] [민첩 : 8] [체력 : 8] [맷집 : 5] [반사능력 : 12] [마력 : 33] [정신력 : 15] [PP : 120]
: (- 100p)
* 플레이어 특성 : 축복 Lv.4 <상세정보>
* 포인트 : 50p
* Lv. 포인트 : --
* Life : ****
[플레이어 정보]
이름 : 혜미
직업 : 마법사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여자
칭호 : --
클레스 : B
[능력치]
- [근력 : 9] [민첩 : 12] [체력 : 13] [맷집 : 9] [반사능력 : 15] [마력 : 32] [정신력 : 22] [PP : 150]
: (- 100p)
* 플레이어 특성 : 심연 Lv.3 <상세정보>
* 포인트 : 1150p
* Lv. 포인트 : 4
* Life : ****
우성의 스텟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마검술>에 레벨 포인트를 쏟아 부으며 근력과 민첩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그밖에 수련을 통해 근력, 민첩, 반사능력, 체력, 정신력 등이 소폭 상승했다.
거기에 더해 <불굴의 의지>특성 레벨이 한 단계 상승했다는 게 큰 성과였다. 그 덕분에 체력, 맷집, 정신력 스텟이 각각 2포인트씩 총 6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우성도 우성이지만 혜미와 혜정 역시 꽤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본 마력 능력치가 탄탄한 두 사람이었다. 우성이 비교적 다른 능력치에 비해 마력 능력치가 낮긴 했어도, 신규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결코 낮지 않은, 오히려 높은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혜미와 혜정의 마력 능력치는 우성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물론 혜정의 경우 다른 스텟 능력치가 너무 낮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직업을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안현수야 말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스킬을 통한 능력치의 상승폭을 제외하면 안현수의 스텟 능력치 상승폭이 우성보다 더 클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우성을 상대로 힘들어하던 안현수가 이제는 우성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싸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성과 안현수야 더 이상 신규 플레이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고, 혜미나 혜정 역시 마력 스텟만큼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마법사 계열인 만큼 제 몫을 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됐어.’
애초 처음 시작은 혜미에게 진 빛을 갚고자 했던 것이고, 안현수야 그가 따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결과를 놓고 보면 썩 나쁘지 않은 파티라 생각되었다.
그 생각은 안현수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안현수는 삼삼오오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배치고사 때랑은 전혀 다른 풍경이네. 그 땐 혼자 있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것도 게임이니까. 한 손 보다는 여러 손이 낫겠지. 그리고 직업을 가진 만큼, 파티를 이루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어?”
“쩝. 하긴. 알피쥐(RPG) 게임은 파티가 기본이긴 하지.”
주위를 둘러 봐도 혼자 온 플레이어는 없어보였다. 대부분 4명에서 6명 정도로 무리를 지어 있었는데, 다들 나름대로 직업을 맞춰 파티를 결성한 모양이었다.
역시 이것도 게임은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 즈음, 북쪽 성문이 열리며 광장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달리 무장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광장에 모인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드디어 보는구만. 진짜 악마들.”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리며 안현수가 휘파람을 불었다. 원래의 겁 많던 성격은 어디로 갔는지 혜정 역시도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을 구경했다.
‘하급 악마. 아니, 마족이라고 해야 하나?’
악마의 등급을 구별하는 기준은 바로 ‘뿔’이었다. 인간들이 뿔을 가진 악마들을 상상해서 그린 게 아닌 듯, ‘진짜’ 악마들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등급을 내릴 수 없는 대부분의 보통 악마들은 뿔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상 악마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힘을 가지지 못한 이른바 ‘하위 계층’의 존재들이었다.
진정으로 악마라 불릴 수 있는 존재들은 머리에 작더라도 뿔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은 하나같이 상위 플레이어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 등급 외의 악마들에 비해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이른바 선택받은 피를 가진 중급 악마 이상의 존재들인 것이다.
뿔의 크기야말로 악마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표시였다. 북쪽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삼십여 명의 악마들은 하나같이 한 뼘 크기 이상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비교할 만한 악마를 본 적이 없었지만 그리 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으로 본 진짜 악마들의 위용에 감탄할 때쯤, 악마들의 뒤를 이어 앞의 악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이 나타났다.
“헉.”
“……와우.”
우성은 그의 존재감에 헛바람을 삼켰고, 안현수는 그저 감탄했다. 혜미와 혜정은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뒤늦게 나타난 악마를 보며 입만 벙긋거렸다.
새까만 색의 화려한 로브를 걸친 남성형 악마는 악마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새하얀 피부는 시커먼 로브와 대조되었는데, 그 모든 걸 제치고 가장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바로 악마의 상징인 뿔이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질 정도로 거대한 뿔. 앞의 악마들 역시 그리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새로 등장한 악마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도 되지 않아보였다.
“저 녀석이 볼락인가?”
그저 외향적인 모습만으로 감탄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우성은 볼락에게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마기에 몸을 떨었다. 그와 동시에 아포피스가 길게 울었는데, 마치 겁먹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순간, 볼락의 시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의 초점 없는 새빨간 눈을 마주한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무의식중에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오직 한 사람, 우성만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군. 내 이름들을 아주 잘 아는 것 같으니.”
남자치고는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를 울림이 섞여 있어, 조용히 이야기 했음에도 광장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은 볼락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우성은 그 말이 자신을 보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계속해서 울리는 아포피스 덕분에 감히 눈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지만, 그뿐이지 두려운 마음은 여전했다.
악마진형의 백작급 악마 볼락(Volac).
그는 하급, 중급, 상급 악마를 넘어서 뿔을 가지지 않은 등급 외 악마들과는 다른 의미로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악마였다.
극소수 존재하는 상위 등급 외 악마들을 위해 악마들은 그들에게 인간들에게 작위를 내리듯 또 다른 등급을 만들었다. 하급, 중급, 상급 위쪽으로는 남작 급과 자작 급, 백작 급, 후작 급, 그리고 공작 급으로 나뉘었는데 이 중 볼락은 백작 급의 악마였다.
볼락은 천천히 광장의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의 뒤쪽으로는 앞에서 나타났던 서른 명의 중급 악마들이 도열했다. 아무래도 딴에는 볼락의 호위인 모양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볼락이 훨씬 세 보였다.
“이, 이쪽으로 오는데?”
당황한 안현수가 놀라 물었다. 광장으로 들어온 볼락은 여전히 우성과 눈을 마주한 상태로 광장으로 계속 걸어오고 있었다. 혹여나 앞길을 막을까 앞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슬금슬금 옆으로 길을 텄다.
우연인지 아닌지 볼락의 걸음은 정확히 우성을 포함한 일행의 앞에서 멈췄다. 물론 그 주위로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우성은 볼락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반갑다, 이방인 햇병아리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 볼락이 주최한 축제에 참여해 주어 감사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변함없이 욕심에 눈이 먼 그대들의 미련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미련하다.
볼락은 자극적인 단어로 플레이어들을 건드렸다. 하지만 발끈해서 대드는 멍청한 플레이어가 있을 리 없었다. 백작 급 악마라는 이름을 봐도, 허리까지 내려온 거대한 뿔을 봐도 볼락은 초보 플레이어인 그들이 상대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볼락의 시선이 옮겨져 주위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한 번 훑었다. 한명, 한명 플레이어들을 살펴본 볼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그의 시선은 우성에게로 돌아와 멈추었다.
“부디 살아서 다시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