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49화 (49/258)

49화

키에에에에엑-.

꾸드드득- 쿵-!

꿈틀거리는 열두 개의 다리가 바닥을 내리쳤다. 포악한 기세를 내뿜는 크라켄의 다리들에 우성과 안현수의 주위를 둘러 싼 기존 플레이어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겁을 먹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리의 공격 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함. 하지만 그것은 달리 생각해 보면 안현수가 불러낸 크라켄의 다리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마병을 손에 쥐더니 안현수 역시 큰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은 본신의 힘도 힘이지만 가진바 모든 패를 다 꺼내야 할 때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마병 옥토퍼스에 내제되어 있는 스킬 ‘크라켄의 다리’는 이미 전에도 토르안이 선보인 바 있었고, 아포피스와는 달리 계약이나 직업 계승을 거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경기에서는 아포피스에게 눌린 옥토퍼스가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다. 그 때는 다소 형편없는 모습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포피스에게 눌려 강아지 같던 녀석이 원래의 흉포함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라면…….’

다시 한 번 가까이서 보니 옥토퍼스의 힘은 가히 무시무시했다. 열두 개의 다리는 하나하나가 위협적이라, 6:4라는 수적 열세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반대로 수적으로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희박했던 승리의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우성은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자신 역시 아포피스에 내제되어 있는 스킬, 나가(Naga)를 불러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아니면 차라리…….’

갈등.

하지만 이내 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이라는 생각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왜 안 덤벼? 쫄리냐?”

“이 새끼가 자꾸…….”

휘리릭-.

샤오만이 등에 매고 있던 창을 돌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등장에 맞춰 안현수가 불러낸 크라켄의 다리가 꿈틀거렸지만, 샤오만은 주눅들지 않았다.

“그래 봤자 신규 플레이어가 불러낸 소환물 따위…….”

쉬이이익-.

그 때, 안현수의 의지를 반영한 크라켄의 다리가 일제히 샤오만을 노렸다. 보통 이 정도면 기겁할 만한데, 역시나 신규 플레이어와는 다르다는 듯 샤오만은 손에 쥐고 있는 창을 크게 180도로 휘둘렀다.

촤악-.

위협적으로 휘둘러진 창 끝에 크라켄의 다리 3개가 베어졌다. 하지만 남은 9개의 다리는 다시금 샤오만을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적은 샤오만 혼자만이 아니었다. 정예지를 포함한 다른 네 명의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일사분란하고, 재빨랐다.

키에에에엑-!

옥토퍼스의 입에서 다시금 괴성이 뿜어져 나오고 다리들은 성난 듯 포악하게 움직였다. 검이나 창에 베인 다리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재생되며 다시금 기존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우성과 싸울 때와는 사뭇 다른 기세였다.

하지만 역시 기존 플레이어들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마병이 불러낸 괴물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신규 플레이어인 안현수가 불러낸 이상 일정 이상의 힘은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포악한 기세를 드러내던 다리는 이내 기존 플레이어들의 협공에 점차 뒤로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샤오만이 혼자가 아니듯, 크라켄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

까앙-!

크라켄의 다리 사이로 우성과 안현수의 마검과 마병이 기존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려찍어진 두 무기는 역시나 마(魔)자가 들어간 최상급 무기답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라는 것도 역시 사용자가 뒷받침 되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우성과 안현수는 신규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역시 탑 클레스(Top Class)에 속했지만, 상대는 신규 플레이어가 아닌 기존 플레이어들이었다.

“신규 플레이어 치고는 제법이군.”

쩡-!

가볍게 우성의 검을 막아낸 플레이어는 반대로 검을 크게 휘둘러 아포피스를 밀어냈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우성의 손아귀가 얼얼해졌다.

‘역시… 다르긴 다르군.’

쉽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부딪혀 보자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대처 능력이나 움직임, 힘, 어느 하나 배치고사에서 보아온 신규 플레이어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다행히 안현수가 불러낸 크라켄의 다리 덕분에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다. 열두 개의 크라켄의 다리는 재생을 계속하며 기존 플레이어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기존 플레이어들도 만만치 않았지만 크라켄의 다리는 쉽게 보다간 그들 역시 큰코다칠 수 있었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 이상은 아니야.”

쉬이익-.

그 순간, 우성의 패시브 스킬 <마검술>이 빛을 발했다. 능력치 면에서는 떨어지지 몰라도 우성에게는 직업 특성인 <절대적인>이 있었다.

마검을 휘두를 때 절삭력(공격력) 20퍼센트 상승과 중립 계열에게 5퍼센트 추가 피해. 수치로 표현했을 뿐이지 이 두 가지 보정은 실제 격돌에 있어서 상당한 위력을 뿜어냈다.

툭-.

“어?”

기존 플레이어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왼편을 바라봤다.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는 곧 소리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끄아아아!”

‘일단 한 놈.’

쉬익-.

순식간에 팔을 잘라낸 우성은 곧장 목을 자를 요량으로 검을 휘둘렀다.

까앙-!

“어?”

“이런 시발… 어디서 내 팔을…….”

으득-.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 우성의 검을 막으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팔이 잘려 나간 충격으로 공황에 빠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발 빠른 대처였다.

이제는 한쪽 팔만 남은 플레이어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언뜻 화를 못 이겨 무작위로 휘두르는 듯했지만, 그렇다 해도 상당히 그의 검은 상당히 빠르고 매서웠다.

깡-!

“허억. 허억.”

몇 번 검을 주고받던 플레이어는 우성에게서 잠시 떨어져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왼 팔에서 흐르는 피가 제법 많아 이대로 싸우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듯했다.

주머니에서 꺼낸 병의 마개를 열어 붉은색의 액체를 왼팔에 흘려보내며 그는 우성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우성은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다시 달려들고자 했으나, 이내 터져 나온 불빛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다크 붐(Dark Boom)!”

탁한 색을 띤 불빛이 터지는 것을 확인한 우성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한 순간 시야를 시커먼 어둠이 꽉 채웠다.

꽈아앙-!

폭발과 함께 우성의 몸이 뒤로 멀리 날아갔다. 다행히 아포피스를 들어 보호하고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덕에 폭발에 완전히 휘말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타격이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괜찮아?”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우성에게 왼 팔이 잘린 플레이어는 정예지의 물음에 이를 갈며 대답했다. 괜한 분풀이를 당했다는 생각에 정예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 신규 플레이어 따위에게 당하냐. 허접하긴.”

“방심해서 그래. 젠장!”

핑계로 들릴 법한 말이었지만 정예지는 그의 말이 꼭 핑계만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방심했기 때문이지, 우성의 검은 기존 플레이어들에게 먹힐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마검의 절삭력과 신규 플레이어답지 않은 몸놀림과 힘은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협적인 정도는 아니다. 현재 우성의 상태는 신규 플레이어와 기존 플레이어의 사이 정도. 거기에 좋은 무기를 하나 들고 있을 뿐이다.

그 때, 크라켄의 다리와 안현수를 상대하고 있던 플레이어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왼 팔이 잘린 남자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멍청한 새끼.”

“박성훈!”

“거기서 쉬고 있어라. 잘린 팔에도 포션 듬뿍 바르고. 나중에 도시로 가서 붙일 수 있게.”

박성훈이라는 한국 플레이어는 왼 팔이 잘린 외국인 플레이어를 쉬게 하고는 우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를 이어 정예지가 무언가 주문을 외우는 게 보였는데, 우성은 검을 들며 생각했다.

‘산 넘어 산이군.’

힐끗 옆을 돌아보자 크라켄의 다리를 부리며 세 명의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 안현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간신히 상대 플레이어들을 막아내고 있었는데, 어디까지나 ‘막아내고’있다는 데에서 그쳤다.

크라켄의 다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재생이 더뎌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잘려 나갔던 부분이 붙었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잘린 부분이 재생이 되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안현수가 지치면서 그의 소환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어렵군.’

잠시 한눈을 팔았던 우성은 달려드는 박성훈의 창을 옆으로 피해냈다. 매섭게 찔러온 창은 아슬아슬하게 우성의 옷을 찢고 지나갔는데, 그 사이의 간격을 이용해 우성은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흐읍!”

창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박성훈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우성을 향해 곧장 창을 휘둘렀다. 찌르기 후에 이어진 휘두르기는 처음부터 준비했던 것처럼 부드럽고 빠르게 이어졌다. 달려들던 우성은 깜짝 놀라 검을 옆으로 세웠고, 박성훈이 휘두른 창을 막았다.

깡-!

“큭.”

앞서 싸웠던 플레이어보다 더 강한 힘에 우성의 몸은 박성훈이 창을 휘두른 방향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싸우고 있던 안현수 역시 밀리고 있었는지 연신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하아, 힘들어 죽겠네.”

언제 이렇게 가까워 진거지?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와 있는 안현수는 무척 지쳐보였다. 땀을 흘린 머리는 샤워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흠뻑 젖어있었고,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던 옥토퍼스의 울음소리도 지친 짐승처럼 소리가 잦아들어 있었다.

“파이어 붐(Fire Boom)!”

콰아앙-!

그 순간, 우성과 안현수의 주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애초부터 폭발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던 듯, 두 사람의 주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어느새 멀찍이 물러선 상태였다.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가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서서히 땅으로 가라앉은 흙먼지로 인해 우성과 안현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허억. 허억.”

열두 개의 크라켄의 다리가 우성과 안현수를 감싸고 있었다. 자아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크라켄의 다리는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안현수를 보호했다. 그리고 그가 지키고자 한 우성 역시 보호 대상에 속해있었다.

안현수의 숨은 거칠다 못해 끊어질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지칠 체력이 아니었지만 옥토퍼스가 불러낸 크라켄의 다리는 안현수의 체력을 급속도로 소모시킨 것이다.

“안… 되겠는데…….”

쿵-.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으로 안현수가 가까스로 쓰러지는 것을 면했다. 더 이상 싸우기가 어려워 보이는 안현수를 보며 우성은 이어서 적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부상이 셋.’

우성이 왼팔을 자른 플레이어를 포함해 적 플레이어들 중 부상자는 셋이었다. 그 중 중상으로 보이는 사람은 둘이었고, 한 명은 경미한 부상 정도였다.

안현수가 무려 네 명의 플레이어를 붙잡아 두며 부상까지 입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안현수 역시 신규 플레이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경이로운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마병 옥토퍼스의 힘을 빌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역시… 이대론 힘들겠어.”

벼랑 끝에 몰리다 보니 망설임이 사라졌다.

안현수도 한계였다. 그는 충분히 자신의 몫을, 아니 그 이상을 해내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차례였다.

“이젠 네 차롄가 보다, 아포피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울림이 아포피스를 통해 느껴졌다.

-환영한다, 내 어린 주인아.

잊을 수 없는 음성이 이어진 뒤.

[고유 능력 - <대리인 : E. rank> 가 발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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