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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33화 (33/258)

33화

‘특전 : S [무기 - 반(半) 마검 아포피스]’

분명 카드의 앞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검붉은 색을 띄고 있는 매끈한 검신이 그림의 형태로 드러났다. 검의 이름이나 그림은 고사하고, 우성의 눈에는 S라는 한 단어만이 또렷하게 보였다.

잠시 후, 한참을 울리던 카드는 바닥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어갔다. 새하얀 바닥으로 스며들었던 카드는 사라지고 이내 익숙한 모습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이 아닌 실물로 보니 검신은 검붉은 색에 비해 고운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보석처럼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검신의 아름다움에 우성의 눈이 몽롱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아… 하필이면…….”

오더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던 오더가 처음으로 내보인 큰 변화였다. 반 마검 아포피스를 보는 그의 동공이 살짝 떨렸다가 다시 고요해졌다.

“플레이어 이우성. 특전을 재 선택 할 권한을 주겠다.”

“갑자기 왜 말을 바꾸지?”

기쁨도 기쁨이었지만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기회는 한 번이라고 해 놓고선, 왜 갑자기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아포피스를 보는 오더의 눈과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플레이어 이우성.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왜? 이 검이 그렇게 위험해?”

S등급의 특전.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이 검의 가치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니크 직업이 A등급으로 분류됨에서 S등급 판정을 받은 걸 보면 어마어마한 능력이 숨어 있음이 분명했다.

“특전 속에는 아포피스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마검이 숨어있다. 그 중에는 마창이나 마궁과 같은 여러 마병기(魔兵器)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럼 괜찮은 것 아닌가?”

“아니. 하지만 그건 안 된다. 플레이어 이우성, 그건 네가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 하아, 대체 ‘그분’은 왜 이걸…….”

‘그분’이라니?

처음으로 나온 오더의 존대에 우성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이 게임을 만든 장본인이 오더가 아닐까 생각하던 차였는데 그보다 더 위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분’이라고 일컬어지는 그가 누구일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마검 아포피스의 처우였다.

오더는 아포피스를 권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S등급의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특전을 포기하고 다른 특전을 선택할 것을 권유했다. 필시 마검인 만큼 위험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나?”

“검에 손을 댄 상태에서 명령어 ‘상태’를 입력하면 된다.”

우성은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아포피스의 손잡이를 잡았다. 찌릿한 느낌이 검신을 타고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전류에 휩싸인 듯한 착각에 우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확실히 보통 검은 아니다.

“상태.”

[반(半) 마검 아포피스]

* 아포피스는 신화 속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 라와 적대했던 대악마(大惡魔)입니다. 그 힘은 가히 강력하여 태양신 라조차 두려울 정도이며, 아포피스가 라를 잡아먹으면 일식(日蝕)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 플레이어의 성장 정도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마검입니다. 플레이어의 근련과 민첩, 마력에 비례해 절삭력(공격력)이 강해집니다.

* 아포피스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 권능을 지닙니다.

* 종속 계약 시 유니크 직업(아포피스의 대리인)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 평소에는 장갑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사용자가 원할 때 검의 형태로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 종속 계약 시 근력과 민첩, 마력이 각각 5포인트 상승합니다.

+ 400포인트를 소모하는 것으로 ‘나가(Naga)’ 1개체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나가의 힘은 플레이어의 스텟의 40%를 이어받습니다.

+ 마검은 플레이어에게 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신력 스텟이 높을수록 마검에 대한 반발 효과가 줄어들거나, 소멸됩니다.

+ 플레이어의 성장 정도에 따라 반(半) 마검이 진(眞) 마검으로 진화합니다.

어마어마한 능력치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템을 획득한 적이 없어 비교할 대상은 없지만, 이만한 능력치를 가진 아이템이 흔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능력치도 능력치였지만 우성의 눈에 특히 들어온 효과는 바로 ‘유니크 직업(아포피스의 대리인)’이었다. 검도 검인데다가 추가로 유니크 직업까지 얻을 수 있다니. 과연 S등급 특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절대 부러지지 않는 권능은 즉 무한의 강도를 지니고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강도 강한 검이 더 위력적임은 당연했고, 능력치와 비례한 절삭력은 끝없이 강해지는 공격력을 의미했다.

거기에 추가 능력치는 또 어떤가? 모든 스텟이 무려 5포인트 늘어난다. 포인트로 계산하면 어느 정도의 포인트에 해당하는 것인지 실로 어마어마했다.

나가(Naga)의 소환은 아직까지 좋은 건지 아닌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400포인트라면 결코 적은 포인트가 아니었는데, 그 정도 포인트가지고도 고작 40퍼센트밖에 되지 않다니. 이 스킬의 사용 유무는 보류였다.

물론 스킬 하나가 쓸모없다고 하더라도 아포피스의 매력은 충분히 차고 넘쳤다. 유니크 직업 하나만 해도 만족한데, 거기에 어마어마한 능력치의 검이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부정적인 영향이라… 이건 좀 걸리긴 하네.’

아마도 오더가 걱정한 부분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마검(魔檢)은 불길한 이름만큼이나 사용자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특히 신화 속 이야기에서는 마검을 다루다 광인(狂人)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더러 나오곤 했다.

플레이어의 정신을 갉아먹을지도 모르는 무기. 하지만 위험부담만큼이나 매혹적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무기였다. 오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성은 갈등에 빠졌다.

‘어떻게 한다.’

처음 어떤 카드를 고를까 했던 고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머리가 아파왔다. 능력치만 보고 선택하기엔 오더의 만류가 마음에 걸렸다.

‘역시…….’

우성이 검을 들어 검신을 눈으로 쓸었다. 어두운 검붉은 색이면서도 형형한 광채를 띠고 있는 마검은 절로 빨려들어갈 듯 아름다웠다.

“특전 아포피스 받아들이지.”

“플레이어 이우성.”

“충고는 고맙지만 내 선택이야. 무슨 걱정인지는 알겠는데, 이 녀석만 잘 길들이면 그만한 대박도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아포피스를 길들인다니 그 무슨 터무니 없는… 하아.”

처음 봤던 모습과는 달리 연이어 한숨을 쉬는 오더를 보니 다시금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후회나 결정을 번복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플레이어 이우성은 특전 반 마검 아포피스를 받아들인다.”

“……승인한다. 그것은 플레이어 이우성에게 전해진 권한이니.”

[띠링-! 신화 계열 무기 반(半) 마검 아포피스를 획득하였습니다.]

[반(半) 마검 아포피스의 종속이 시작되었습니다.]

[종속이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스텟 포인트가 5포인트 상승합니다.]

[유니크 직업 ‘아포피스의 대리자’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스킬 ‘나가(Naga)’를 터득합니다.]

아이템 하나를 종속하는 것만으로도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직업과 스텟 포인트, 스킬에 무기까지. 아포피스 하나만으로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특전을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와는 별계로 오더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가려져 있는 얼굴이 아닌, 유일하게 보이는 두 담담한 눈동자는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쩌면… 플레이어 우성의 정신력 스텟이라면…….”

중얼거림이긴 했지만 가까이 있던 우성은 오더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포피스를 받아들일 때부터 우성이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마검의 효과에 의하면 플레이어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정신력 스텟에 따라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력 스텟은 현재 우성이 가지고 있는 스텟 포인트 중 가장 높은 포인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검을 받아들이면서 획득한 5포인트의 스텟으로 인해 현재 우성의 정신력은 32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무려 3배가 넘는 수치였다.

게다가 여차하면 플레이어 특성 <불굴의 의지>도 있으니, 마검에게 피해를 입는 것은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는 만큼 냉정히 분석한 오더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우성의 스텟이나 플레이어 특성을 계산하면 아주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괜찮겠냐?”

그 때, 뒤쪽에 있던 안현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오더의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있어 나지막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져 있던 안현수에게도 또렷이 들린 것이다.

그 역시도 오더가 이렇게 감정 변화를 보인 건 처음 보았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충고까지 했음에도 그 이름도 무서운 ‘마검(魔儉)’을 받아들였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다.

그가 정말로 우성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우성 역시 안현수의 걱정이 썩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마웠다.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아 넣은 사람에게 이런 걱정을 다 해주다니, 오지랖인지 천성이 착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우우우웅-.

그 때, 우성의 손에 쥐어져 있던 마검이 미약하게 진동하며 이내 장갑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검과 똑같은 반짝이는 검붉은 장갑이었는데, 단단하게 손을 감쌌음에도 전혀 불편한 느낌이 없었다.

“신기한데?”

반 마검 아포피스의 자세한 효과를 모르는 안현수는 그저 신기하다는 듯 우성의 장갑을 바라봤다. 아마 검의 효과와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유니크 직업을 알게 된다면 입을 쩍 벌릴 것이다.

애초 검 자체도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장갑은 더욱 가벼운 느낌이었다. 아예 무게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일일이 검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데 꽤 편리했다.

여차하면 무기가 없는 척하다가 갑작스럽게 무기를 꺼내는 식으로 상대의 방심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때, 마음에는 들어?”

“아주.”

“그래? 난 창을 들어야 한다니 좀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유니크 직업이라니 괜찮겠지. 오더도 재능이 없다는 말은 안 했고 말이야.”

양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웃는 모양새가 자신과 같은 나이가 맞나 싶을 만큼 천연덕스러웠다. 그래도 친근한 느낌이 들어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성격 덕분에 처음 소원의 방에서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문득 그를 보고 있자니 우성은 자신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어른스러운 게 아닌가도 싶었다. 다른 말로 애늙은이라고 하던가? 그러고 보니 또래 나이의 친구들과 깊게 이야기 해 본 게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이것으로 플레이어 우성의 가이드를 마치겠다. 다음으로는 플레이어 안현수의…….”

“잠깐.”

오더의 말을 끊으며 우성이 손을 들었다. 짐작이라도 했는지 오더는 왜냐고 묻지 않고 우성의 말을 기다렸다.

안현수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성을 바라봤다.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었던 우성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표정은 잔뜩 긴장해있었다.

“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망설이는군, 플레이어 이우성.”

우성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오더는 그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를 단번에 짚어냈다. 고민하는 건 아니었지만 답을 듣기가 무서운 만큼 지금껏 우성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끼고 아꼈던 마지막 질문. 우성에게 있어서는 아포칼립스보다 훨씬 중요한, 이 게임을 하는 목적 그 자체였다.

“서현이를 살리려면… 포인트가 얼마나 필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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