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플레이어-19화 (19/258)

19화

<특성 : 불굴의 의지>

*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일정 이상의 출혈에 내성을 가지게 되며, 혼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일정 수치 이상의 물리데미지로부터 소량의 면역력을 얻습니다.

* 체력 +2

* 맷집 +2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는 게 아닌, 우성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정보였다. 아무래도 특성은 스킬의 일종인 만큼 직접 머리로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우성에게 딱 갖춰진 능력치였다. 24포인트라는 높은 정신력은 물론이고 19포인트에 이른 체력 스텟 역시 여타 플레이어들의 평균 스텟을 생각해 보면 무척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었다.

새로운 특성이 생겨난 후, 우성은 자잘한 상처 부위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정 이상의 출혈로부터 내성’이라더니 아무래도 이 정도 출혈은 버텨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쉬이익-.

우성은 방어를 버리고 검을 크게 휘둘렀다. 크게 좌에서 우로 휘두른 검은 단숨에 김정원의 목을 베어버릴 것처럼 위협적이었지만, 그 대신 옆구리가 훤히 비어버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파고들까, 피할까를 고민하던 김정원은 결국 뒤로 피하는 선택을 내렸다. 자칫 잘못하면 우성의 옆구리를 노리려다가 목이 베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후우우.”

“지쳐 보이네.”

우성은 김정원과 싸움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새로운 특성이 생겨남과 동시에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거칠어진 김정원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싸움의 요소에는 민첩과 근력만 있는 게 아니다. 그밖에 반사능력이라는 스텟도 있었고, 맷집과 체력이라는 스텟도 있었다.

우성이 보기에 김정원은 빠르긴 하지만 그밖에 다른 스텟은 형편없었다. 힘이 세지도, 반사능력이 아주 빠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체력이 바닥이었다. 싸움을 시작하고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숨을 헐떡거리다니. 반면 이리저리 움직이며 김정원의 공격을 겨우겨우 피하던 우성은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지 그랬어?”

“……죽여 버리겠어.”

“그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나?”

비아냥거리는 우성의 말에 김정원의 눈이 돌아갔다. 희번득하게 눈을 치켜뜬 그가 다시금 우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물러섬 따위는 없다는 각오가 그의 검에서 묻어나왔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우성은 그의 검이 피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검을 피하는 게 익숙해진 덕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김정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이유가 가장 컸다.

체력은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한 능력으로 작용된다. 체력이 떨어지면 결국 움직임이 둔해지고 힘이 약해지며, 집중력이 떨어진다.

결국 체력의 마이너스는 민첩을 포함한 다른 모든 스텟의 마이너스를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체력 스텟이 탄탄한 우성은 김정원과는 달리 다른 준수한 능력치 모두를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놀지 말고 초반에 끝냈어야지, 멍청아.”

“킬킬. 그러게. 몸이 예전 같지 않긴 하네.”

김정원은 반 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아포칼립스 내에서 기본 능력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의 능력을 반영한다.

다른 힘이나 민첩과 같은 스텟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 년 넘게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 없는 감옥에서는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김정원의 체력 스텟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 탓인 듯했다.

“그래도 너 하나쯤 써는 데는 문제없어.”

“허세는.”

입밖으로 꺼낸 말과는 달리 오히려 허세를 부리는 쪽은 우성 자신이었다.

단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김정원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김정원의 체력이 떨어지고, 움직임이 느려진 만큼 승기는 우성이 잡았다 할 수 있었는데도 그는 자신만만했다.

반면 승기를 잡은 우성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살기로 가득한 김정원의 눈을 보며 정말로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차라리…….’

타다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엔 김정원이 아닌 우성이 먼저 움직였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우성은 예전에 배웠던 대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김정원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사악-.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해낸 김정원이 옆으로 돌아 빠르게 우성을 향해 접근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아까와 같은 움직임은 없었다.

쨍-!

아래로 내렸던 검을 그대로 들어 올리며 우성이 김정원의 검을 쳐냈다. 작은 단검과 기다란 장검, 두 검이 부딪히자 당연하게도 김정원의 팔은 검과 함께 하늘로 떠올랐다.

우성의 머릿속으로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승리를 확신한 달콤함을 즐길 시간도 없이 김정원은 그대로 우성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윽.”

달려오는 힘 그대로 우성을 향해 달려든 김정원은 어깨로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렇게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그 충격으로 인해 우성의 몸이 잠시 휘청거렸다.

하늘로 떠올랐던 김정원의 검이 우성의 가슴을 노렸다.

“죽어!”

“……혼자는.”

그 순간, 우성의 검 역시 김정원을 노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었다. 우성의 검은 김정원에게, 김정원의 검은 우성을. 서로가 서로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커억!”

“큽.”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느낌에 우성이 몸에 힘을 주며 눈을 부릅떴다. 왼쪽 옆구리에 꽃인 검의 차가운 느낌과 화끈한 느낌이 동시에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고통이었다.

[띠링-! 플레이어 특성 불굴의 의지가 발동합니다.]

[기준치 이상의 물리피해를 입었습니다. 물리데미지가 소량 감소합니다.]

[출혈량이 기준치를 넘어섰습니다. 상태 ‘지혈’을 통해 출혈을 멈출 수 있습니다.]

새로운 특성 덕분인지 우성은 배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느낌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우성은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미안한데… 내가 이겼네.”

“컥컥.”

우성의 검은 김정원의 목에 박혀 있었다. 우성과는 달리, 목이 꿰뚫린 김정원은 끊어지는 숨소리를 간헐적으로 토해내며 눈을 까뒤집었다.

쑤욱-.

검을 뽑아내자 김정원의 몸이 옆으로 허물어졌다. 눈을 붉게 물들이고 피를 토하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거나 불쌍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서웠다.

“나…중……에…….”

입안에서 피를 흘리며 힘겹게 목소리를 끊어내던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매를 말아 올렸다.

“죽…여…….”

“식상한 말 그만하고, 빨리 죽어.”

푸욱-.

우성은 다시 한 번 검을 들어 ‘죽여 버리겠다’라는 말을 잇던 김정원의 머리에 검을 찔러 박았다. 점점 힘이 풀려가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더니 이내 곧 초점이 사라졌다.

[띠링-! 475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우성의 눈앞에 지금껏 본 적 없던 양의 포인트가 떠올랐다. 포인트 양으로만 보면 300명의 플레이어들 중 2위에 랭크됐던 만큼, 김정원은 어마어마한 양의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950포인트. 김정원이 가지고 있던 포인트였다. 그는 열 명이 훨씬 넘는 수의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다녔던 것이다.

이것으로 우성이 보유한 포인트는 1025포인트. 드디어 1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일종의 성취감에 우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우성

직업 : 플레이어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남자

클레스 : A

[능력치]

- [근력 : 13] [민첩 : 13] [체력 : 21] [맷집 : 15] [반사능력 : 12] [마력 : 10] [정신력 : 24] [PP : 1800]

* 플레이어 특성 : 불굴의 의지 <상세정보>

새로운 플레이어 정보에는 19였던 체력이 21로, 13이었던 맷집이 15로 올라가 있었다. 불굴의 의지의 효과와 15맷집 덕분인지 우성은 칼에 찔렸음에도 조금 움직임이 불편할 뿐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래도 아프긴 하군.’

쑤욱-.

“우욱.”

우성은 옆구리에 꽂힌 검을 빼내며 이를 악물었다. 칼이 꽂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칼이 박혀 있던 상처 부위에서 꽤 많은 양의 피가 흘렀다.

몸에 꽂혀 있는 칼을 빼내는 우성의 독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이 튼튼하고를 떠나,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시도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욱. 후욱.”

김정원과의 싸움에선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던 우성의 숨이 가늘게 떨려왔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식은땀이 흘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통에 못 이겨 정신을 잃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24포인트라는 우성의 정신력과 플레이어 특성 <불굴의 의지>덕분에 이 정도에서 그칠 수 있었다.

상처에 비해 출혈량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를 꽤 흘린 탓인지 우성은 잠시 비틀거리더니 벽에 잠시 몸을 기대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혜미가 다가갔다.

“괜찮아?”

“……아직은.”

이마에 흐른 식은땀과 하얗게 변하는 얼굴은 별로 괜찮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표정만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몰라도 아직 죽지 않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혜미를 바라봤다. 검을 뽑아낸 옆구리가 아픈지 그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별계로 그의 눈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어제처럼 도망가거나… 도움 안 되고 걸리적거리면, 이번엔 너부터 죽일지도 몰라.”

그의 눈에는 어느새 살기가 번져 있었다. 우성의 눈동자는 마치 방금 전 김정원의 눈동자와 흡사하게 닮아있었다.

죽일지도 모른다는 협박에 혜미는 잠시 움찔했으나, 곧 우성의 의도를 눈치 채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설마… 너?”

“검 들어.”

우성의 검이 거실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로 향했다.

“이놈들, 다 죽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