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위험한 쉼터>
1위 : 안현수
2위 : 김정원
3위 : 이우성
3위 : 박현
5위 : 라정환
……
78위 : 박혜미
플레이어 랭킹 3위. 300명으로 시작했던 처음 플레이어들의 수를 생각하면 높은 랭킹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지만 금세, 우성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에야 3위라는 높은 랭크에 위치해 있지만, 한 번 죽으면 가지고 있는 포인트의 절반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그 포인트는 고스란히 자신을 죽인 플레이어에게 더해질 것이다.
랭킹의 변동은 한순간이다. 아직 배치고사는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자만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78위라… 너도 생각보다 꽤 높네.”
“그러게. 어제 그 놈 덕분인가?”
혜미는 어제 밤,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고 75포인트를 빼앗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썩 좋지 않은 기억일 수 있으나, 포인트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임에 분명했다.
더군다나 배치고사 2일차에 들어서면서 얻은 50포인트까지. 그녀 역시 225포인트라는 결코 적지만은 않은 포인트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오늘부턴 나도 좀 도울게.”
“어제도 꽤 도움이 되긴 됐는데… 이제 좀 괜찮나 봐?”
“응? 뭐가?”
“살인. 어제까지만 해도 그 검, 장식 아니었나?”
우성이 허리춤에 걸려 있는 혜미의 두 단검을 가리켰다.
실제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혜미는 우성을 찌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도 혜미는 누군가를 찌르는 게 두려워 우성을 찌르지 못하고 위협하는 데에서 그쳤다.
그 다음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혜정을 죽인 플레이어들에게도 차마 덤비지 못했고, 사람이 아닌 하프 구울에게서는 아예 도망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어제 밤에 만났던 플레이어들과는 제법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실력보다는 우연에 가까웠다. 그런데다가 적을 찔러놓고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던 모습이란.
“이거… 게임이잖아?”
혜미는 단검을 꽉 움켜쥐며 애써 밝게 웃었다.
“몬스터도 있고, 스킬도 있고, 포인트도 있고… 랭킹도 있어. 게임 맞잖아? 그치?”
그녀의 질문은 하나의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어려울 것 없었다. 우성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아. 게임이지.”
“그럼… 뭐가 무서워?”
스스로에게 질타하듯 묻는 말. 그녀는 밤새 생각을 정리하고, 마인드 컨트롤에 힘을 썼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노력은 지금에 와서야 두려움을 한 꺼풀 벗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작은 공터를 벗어난 우성은 바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성과 혜미는 밤새 이 주위로 다른 플레이어나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지 불침번을 섰다. 숲 속은 지나치게 조용해서 누군가 근처에 왔었다면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저절로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이곳 죽어가는 자들의 숲에서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죽은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처리되는 듯했다.
“아쉽군.”
우성은 해가 완전히 뜨기 전, 다른 플레이어들을 찾아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숲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 수 없었고, 무작정 걸어 다니다 마주치기를 바라기엔 우성에게도 위험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바로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단서로 다른 플레이어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제만 하더라도 여성 플레이어의 시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지 않았는가?
단서가 없으니 결국 무작정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직 날이 완전히 밝은 건 아니었지만 심연이라는 특성을 익힌 혜미 덕분에 큰 위험요소 없이 어둠 속에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어?”
그 때, 혜미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가던 우성이 물었다.
“누가 있나?”
“누구라고 하긴 그런데. 저기 봐.”
우성은 혜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아침 안개 때문에 가려져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해서 보자 뭔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몸을 낮게 숙인 우성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우성은 깜짝 놀랐다.
혜미가 발견한 것의 정체는 바로 오두막이었다. 숲 속에 오두막.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사는 숲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죽어가는 자들의, 하프 구울들이 서식하는 숲이었다.
이건 게임이다. 우성은 머릿속으로 그것을 상기시켰다. 그렇다면 분명 저 오두막 역시 이 게임을 만든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일 터. 그 의도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 봤자…….’
머리를 굴리던 우성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머리를 굴린다고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저 오두막이 함정인지, 아니면 보물 창고일지는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들어가 봐야지.”
비릿한 냄새가 풍기지만, 우성은 피하기보다는 부딪히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위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하프 구울은 낮에 활동하지 않았다.
만약 플레이어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싸우면 그만. 어제의 일로 우성은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설사 두 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있다고 해도, 그의 곁에는 이제 새로이 정신무장한 혜미도 있었다.
오두막의 겉모습은 수수했다. 새로 지은 것처럼 견고해 보이지도, 낡아서 위태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오두막’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표본을 그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오두막 근처로는 나무가 다 베어져 있어 숲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침 해가 훤히 들어오는데 비해 이상하리만치 오두막 근처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어두운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어둠과는 달리 안개 속에서는 혜미의 심연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아마도 안개와 같은 자연 현상에서는 심연의 숙련도가 더 높아져야 효율을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오두막 근처로 가까이 다가간 우성은 잠시 문 앞에 멈춰 주위를 살폈다. 오두만 근처는 물론, 숲 속에 역시 한 점 소음 없이 조용했다. 새 소리나 짐승 우는 소리라도 들리면 한결 마음이 편하련만, 너무 조용하다 보니 오히려 더 불안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또렷이 들린다. 혜미뿐만 아니라 이상하리만치 우성 역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곳 죽어가는 자들의 숲에 들어온 이래, 가장 크게 긴장하게 된 순간이었다.
“준비해. 연다.”
드르륵-.
조심스레 문을 열며 우성이 검을 꽉 끌어 쥐었다. 뒤에 선 혜미도 조심스레 단검을 들어 언제든 휘두를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잡았다.
겉보기와는 달리 문이 꽤 낡았는지, 아니면 주변이 워낙 조용해서 그런지 문 여는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시끄러웠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자, 우성과 혜미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위험한 쉼터를 발견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플레이어끼리의 싸움이 금지됩니다.]
[장시간 거주하기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우성과 혜미는 동시에 팽팽하게 당겨 놓았던 긴장의 끊을 놓았다. 다른 무엇보다 플레이어끼리의 싸움이 금지된다면 유일하다고 볼 수 있었던 위험 요소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두막 안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생각보다 넓었다. 입구는 비좁았지만 안쪽으로 몇 개의 방이 더 있었다. 그 중 우성은 가장 넓은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 쫄래쫄래 따라간 혜미가 거실에 들어서며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앗!”
“뭘 그리 놀래?”
아삭-.
사과 하나를 베어 물며 태연하게 묻는 남자.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거실에만 하더라도 무려 7명의 플레이어가 거주하고 있었다. 세 명만 하더라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자 혜미는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왜 겁먹지? 어차피 전투 불능 지역인데.”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이놈들은 동맹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그 때, 우성의 뒤쪽으로 또 다른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거실이 아닌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플레이어인 듯, 그는 눈꼽이 잔뜩 낀 얼굴로 물었다.
“하암~. 뭐야? 또 늘었네?”
“또……?”
“젠장. 여기도 이제 미어터지는군. 이러다 잠자리까지 부족한 거 아닌가 모르겠어.”
등을 벅벅 긁적이던 플레이어는 혜미를 발견하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웬 여우가 한 마리 들어왔군.”
“여, 여우?”
“안전지역에 눌러 붙은 플레이어들인가?”
우성은 오두막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정도로 많은 수의 플레이어가 동맹을 맺었을 것 같진 않았다. 분위기만 보더라도 이들은 자신과 혜미처럼 뭉쳐있는 게 아닌, 모여 있기만 할 뿐 각자 개인행동이나 수면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한심하긴.’
안전지역. PK가 가능한 게임에서 이런 장소는 단기간으로 보자면 약일지 모르나, 장기간으로 보자면 독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다량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인 배치고사를 제 발로 걷어차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찌어찌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소량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지만 결국 5일째에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목숨들이었다.
우성의 눈에 그들은 겁쟁이였다. 아무리 살인이 무섭다 해도, 혜미처럼 그것을 극복하는 게 옳았다. 배치고사는 포인트를 획득하는 것만이 아닌, 게임에 대해 미리 적응하고 들어가는 시험장과 같았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분명 장기간 거주하는 걸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게임 시스템 메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건 사람이지, 시스템이 아니니까.
찝찝한 기분이 올라온 것도 잠시, 우성은 곧 그 기분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위험한 쉼터가 생성된 후 12시간이 경과되었습니다.]
[앞으로 12시간동안 위험한 쉼터는 전투지역으로 전환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