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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12화 (12/258)

12화

[하프 구울]

* 죽어가는 자들의 숲의 주인. 반은 사람이며 반은 구울이다. 죽어가는 자들의 숲에 갇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구슬픈 존재. 반쯤 사람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우성은 이 숲의 이름이 왜 죽어가는 자들의 숲인지 알 수 있었다.

죽어가는 자들이란 곧 이 하프 구울을 의미했다. 처음에는 사람이었지만, 숲에 갇혀 점차 구울이 되어가는 존재들. 죽지도 살지도 못하되,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존재들이 바로 이 하프 구울이라는 몬스터였다.

차라리 그냥 구울이었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을. 우성은 찝찝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메시지에 의하면 하프 구울은 조금이나마 사람이었을 적의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즉, 반은 사람 반은 괴물이라는 뜻이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죽어줄 순 없지만.”

우성은 아직까지도 뒤에서 덜덜 떨고 있는 혜미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미끼 역할은 무슨. 처음부터 방해만 되는 혜미를 보자면 앞날이 시커멓게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정신력 수치도 놓고, 성격도 당차서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그럭저럭 싸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몬스터라는 변수가 나타나자 천생 가녀린 여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본 우성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넌 이따가 따로 이야기 좀 하자.”

물론 살아남는다면.

우성은 이를 악물고 곧장 하프 구울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어어어어-!

하프 구울은 달려오는 우성을 보며 침이 잔뜩 고인 입을 열었다. 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는 관절들만큼이나 하프 구울의 입은 징그러울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온 몸 가득 검버섯으로 가득 찬 몸이 꿈틀거리며 우성을 향해 덮쳐왔다. 벌어진 입 안으로 시커먼 치아가 보였다. 물리면 아프겠다는 생각도 잠깐, 우성은 있는 그대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띠링-! 하프 구울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우성의 검이 하프 구울 하나의 목을 뎅겅 날려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벌어진 입을 베어 입 아래와 입 위쪽으로 머리가 나뉘어졌다는 편이 정확했다.

‘하나!’

속으로 처리한 하프 구울의 수를 세던 우성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허업!”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킨 우성은 날아오는 기다란 손톱에 가슴을 쓸어 넘겼다. 방금 전 우성이 처리한 하프 구울이 쓰러지면서 손톱을 크게 휘두른 것이다.

이들이 사람이 아닌, 몬스터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사람을 죽여보진 않았지만 머리가 잘린 사람이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들 하프 구울은 머리가 잘리고도 잠깐이나마 우성을 향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후우, 깜짝이야.”

그어어-.

“……진짜 자아가 있긴 있나 보네.”

동료가 당하자 흉포하기만 했던 아까와는 달리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는 하프 구울을 보며 우성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돌을 던진 쪽도, 먼저 검을 날린 쪽도 따지고 보면 우성이 먼저였다.

괴물, 몬스터라는 편견을 깨고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해자는 우성이고 피해자는 하프 구울이 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하프 구울은 그냥 몬스터도 아니고 조금이나마 사람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였다. 앞니로 입술을 꽉 깨물며 우성이 눈을 부릅떴다.

“시팔! 사람 죽일 생각도 했는데…….”

우성이 다시금 남아있는 세 마리의 하프 구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을 못 죽이겠냐!”

**

[띠링-! 하프 구울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하프 구울 무리를 처치하였습니다. 추가 경험치 2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하아.”

연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우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한 상황이 없잖아 있었지만, 다행히 별다른 상처 없이 하프 구울 무리를 처리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몬스터라고 하기에 하프 구울은 상대적으로 약한 느낌이 있었다. 차라리 일반 플레이어가 훨씬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 같았다.

일단 하프 구울은 움직임이나 판단이 보통 사람에 비해 굼떴다. 반은 사람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역시나 반은 구울이었다. 수가 네 마리여서 그렇지, 한 마리씩 상대한다면 무기도 없는 어린애를 상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격이었다. 물론, 날카로운 손톱이나 크게 벌어진 입으로 다가오는 이빨은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무기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경험치 포인트라… 이건 뭐지?”

하프 구울을 하나씩 처리할 때마다 경험치 포인트가 올라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작 해야 1포인트 정도지만 기왕이면 없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있는 게 좋은 법이었다.

“스텟 창.”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우성

직업 : 플레이어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남자

클레스 : A

[능력치]

- [근력 : 13] [민첩 : 13] [체력 : 19] [맷집 : 13] [반사능력 : 13] [마력 : 10] [정신력 : 24] [PP : 1800]

경험치 포인트 : 6 (6%)

튜토리얼에서 오더가 설명해준 대로 스텟 창을 외치자 우성은 자신의 현재 스텟을 볼 수 있었다. 생각했던 대로 우성은 처음과는 달리 스텟 창 밑으로 경험치 포인트가 추가로 생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험치 포인트라… 이 게임에도 역시 레벨이 있나?”

경험치라 하면 레벨을 올리는 대표적인 포인트였다. 처음 스텟 창을 확인했을 때 레벨이라는 개념이 적혀있지 않아 의아했는데, 아무래도 포인트를 획득하기 시작해야 레벨의 개념이 등장하는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또 새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바로 반사능력 스텟이었다. 다른 스텟은 모두 그대로였지만, 유일하게 하나 반사능력 스텟은 1포인트가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포인트가 아니라 경험으로도 스텟을 올릴 수 있는 건가?’

오더는 게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했을 뿐, 게임 내 시스템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에게 들은 설명으로는 포인트를 모으면 스텟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헌데 플레이어와 싸우고, 하프 구울과 싸움을 겪으면서 1포인트라고는 하나 반사능력 스텟이 올라가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현실성이 지나치게 높은 아포칼립스의 성격상, 경험이나 수련을 통해 본인의 능력치가 올라가는 시스템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수익이 괜찮은데?”

하프 구울을 잡으며 경험치 시스템을 알아냈고, 반사능력 포인트가 상승했다. 이 정도면 도망치지 않고 하프 구울을 사냥한 게 다행일 정도였다.

“이만 정리도 됐으니 다시 출발을…….”

방금 전까지 혜미가 있던 자리를 돌아본 우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그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허억. 허억.”

헐레벌떡 있는 힘껏 달린 혜미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자 휘청거리며 뜀박질을 멈췄다. 그녀는 나무에 한 손을 밭치고 몸을 숙여 겨우겨우 숨을 골랐다.

“대, 대체 그것들은 뭐야……?”

그녀는 아직까지도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꿈같기도 하고, 지독한 현실 같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그녀는 지금 이곳을 게임 속의 한 장소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성과 그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인식의 문제였다. 우성은 24포인트라는 높은 정신력과 서현이라는 존재를 통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곳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피부를 스치는 풀잎과 붉은 핏빛과 피비린내, 귓속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비명소리.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이곳이 게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현실이냐, 게임이냐. 이 인식의 차이는 곧 두려움과도 직결됐다. 이곳을 현실에 가까운 어디까지나 ‘게임’으로 받아들인 우성은 살인에 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 하프 구울이라는 괴물에 대한 존재를 보다 빠르게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마냥 현실과 가까이 받아들인 혜미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에 대해서도, 하프 구울이라는 비현실적인 괴물에 대해서도 마냥 두려움이 앞섰다.

자기도 모르게 무작정 어디론가 뛰어오긴 했지만, 그녀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그녀의 곁에는 혜정도 없고, 우성도 없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보니 이 알 수 없는 장소로 떨어진 이래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가 된 것이다.

“뭐, 뭐 까짓것 어때? 그 미친 놈 곁에서 벗어나고 좋지 뭐.”

혜미는 애써 중얼거리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우성의 곁에 있으면 그녀는 얼마 안가 죽을 목숨이었다. 우성의 말에 의하면 결국 이 배치고사가 끝날 때, 5일 후에 그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가 이 배치고사에서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이상 그녀도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긴 했지만 말이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마친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저녁이 꽤 깊어 주위는 어두컴컴해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간은 본디 빛보다는 어둠을 무서워하는 동물이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어쩌지?’

[띠링-! 밤 7시가 넘어 플레이어의 특성, 심연(深淵)이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심언(深淵)은 어둠을 통과해 일정 거리까지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거리는 심연의 레벨과 숙련도에 따라 비례합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메시지에 혜미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한치 앞도 보기 힘들었던 방금까지와는 달리, 달이 환하게 뜬 밤처럼 조금이나마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플레이어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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