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준비>
텅, 터터텅…….
비어있는 투구가 바닥에 떨어지며 투명한 소리를 냈다. 잔뜩 긴장했던 우성은 입 안에 잔뜩 고여 있던 침을 크게 삼키며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후우.”
한숨에 가깝게 숨을 크게 뱉으며 우성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얼떨결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무사히 갑옷 괴물 둘을 쓰러뜨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예전에 운동을 했던 기억이 몸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성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더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깜짝 놀라 우성이 오더의 눈을 유심히 살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흰자위 위로 뚜렷한 검은자위가 올라와 있었다.
“뭘 그리 놀라지?”
“……그냥 이제야 좀 사람 같아서 말이야. 그나저나 방금 뭐라고 했던 거지? 뭔가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클레스를 말하는 건가?”
“맞아, 그거. 클레스 A라고 했던가? 그 클레스라는 건 또 뭐지?”
A라면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클레스’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짚어둘 필요가 있었다.
“클레스는 아포칼립스에 들어서기 전, 플레이어의 역량을 측정하는 등급이다. 총 S부터 D클레스까지 존재하며, 이를 측정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근력, 체력, 민첩, 마력, 정신력, 판단력, 반사능력 등이 요구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아포칼립스에 얼마나 빠르게,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을지 대략적인 수치로 나타내는 지표라고 보면 된다. S클레스에 가까워질수록 뛰어난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고, D클레스에 가까워질수록 무능하다고 본다.”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 우성은 자신이 A클레스에 속한다는 사실이 꽤 놀라웠다. 오더의 말대로라면 S클레스가 최상위 등급의 플레이어라는 소린데, 그 중 A클레스라면 꽤나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이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욕심도 났다. 만약 여기서 S클레스로 평가받았더라면 단순히 상위의 플레이어가 아닌 최상위, 최고의 플레이어에 속한다는 소리였다. 자신이 그 정도 역량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앞으로 아포칼립스에서 서현이를 구하기 위한 포인트를 모으기가 더 수월했을 것이다.
“착각하지 마라, 플레이어 우성. 널 A클레스의 플레이어로 평가한 요인은 실력이 아니다.”
“실력이 아니라고?”
우성은 방금 전 완벽하게 앞서 두 마리의 갑옷 괴물을 처리했다. 순간적으로 파고듬과 동시에 크게 검을 휘둘러 단숨에 둘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 능력을 높이 사 A클레스라는 높은 등급을 받았다고 생각했건만. 의아해하는 우성에게 곧 오더가 말했다.
“실력만으로 따지면 플레이어 우성, 네 등급은 B와 C등급의 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데 망설이지 않는 결단력과 판단력을 높게 볼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플레이어 우성, 넌 앞으로 아포칼립스에서 천사들과 다른 플레이어를 죽일 각오가 되어 있다.”
“……내가 살인을 결심했다는 소리야 지금?”
“정확하게 짚었다.”
A클레스라는 높은 클레스에 배정을 받은 기쁨도 잠시, 그 이유가 살인을 결심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우성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그따위 이유로 높은 클레스에 배정받은 것이라면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 하나 이유는 바로 절박함이다.”
“절박함?”
“아포칼립스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은 한 명 예외 없이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다. 돈이든, 명예나 권력이든,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마음속에는 소원이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고, 그 소원에 대한 절박함은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지.”
절박함.
그것 하나만큼은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오직 그 하나만을 가지고 뼈가 부수어질 만큼 일 해왔다. 어떻게 해서든 서현이의 병을 낫게 해 주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서현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것이 클레스의 평가 요인이 된다면 왜 S클레스에 배정되지 않았는지를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S클레스에 배정되기 위해서는 절박함이나 정신력과 같은 요소 외에 체력, 근력, 민첩, 반사신경, 맷집… 이와 같은 모든 신체적 요건이 완벽해야 한다. 플레이어 우성, 넌 훌륭한 플레이어지만 완벽한 플레이어라고 할 순 없다.”
“그것 참 유감이군.”
“하지만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 절박함이라고 할 수 있지.”
[띠링-!]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우성
직업 : 플레이어
국적 : 대한민국
진형 : 악마
성별 : 남자
클레스 : A
[능력치]
- [근력 : 13] [민첩 : 13] [체력 : 19] [맷집 : 13] [반사능력 : 12] [마력 : 10] [정신력 : 24] [PP : 1800]
우성의 눈앞으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상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렇게 하나씩 떠오르는 메시지 창에서 우성은 지금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에서는 마땅히 건질 만한 게 없었다. 이름이나 국적, 성별, 진형이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몰랐던 게 직업이었는데, 아무래도 플레이어라는 직업은 ‘무직(無職)’을 다르게 쓴 이름 같았다.
주목할 부분은 능력치였다. 현실과 유사한 아포칼립스의 성격상 이 능력치는 현실의 우성의 능력치라고 볼 수 있었다. 근력과 민첩, 체력, 맷집, 반사신경, 마력, 정신력, PP. 능력치 하나하나를 살피던 우성이 물었다.
“이 수치가 높은 건지, 아닌 건지는 어떻게 알지?”
“각 포인트의 수치는 너희 인간들의 평균 능력치를 10으로 잡았다. 근력을 예로 들면 성인 남성의 평균 근력의 수치는 10이라고 볼 수 있지.”
“10포인트가 평균이라…….”
썩 나쁘지 않은 수치였다. 아니, 오히려 만세를 외칠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평균을 10으로 잡고 본다면 마력을 제외한 모든 수치가 평균을 웃돌았다. 체력은 보통 사람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고, 정신력은 그야말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무려 24포인트. 보통 사람 두 배가 훌쩍 넘는 수치였다. 이러니 오더가 자신의 정신력을 보고 A클레스라는 상위 등급에 배정 시킨 것이다.
‘내 정신력이 이렇게 강했나?’
사실 정신력이라는 개념 자체는 현실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비슷한 단어로 집중력을 들 수 있었는데, 이것 자체를 힘과 같은 수치로 표현하기는 힘들었다.
물론 우성은 자신의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에 비해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정신력으로는 지옥같이 힘든 고된 하루하루를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외친 서현이의 병을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체력 역시 그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이었다. 몇 년간 막노동과 클럽 일을 통해 우성은 지친 와중에도 그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 미세하게나마 보통 사람에 비해 근력 수치가 높은 이유도 아마 무거운 짐을 옮기는 막노동 때문일 것이다.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알아. S클레스가 아니라는 것만 봐도.”
만약 자신의 모든 능력치가 정신력과 같이 높았다면 충분히 S클레스에 배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하다못해 체력만큼만 됐더라면.
어쩌면 S클레스에 배정받은 플레이어 대부분이 운동선수 출신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체력적으로 단련이 되어 있는 우성이라지만, 그들은 태생부터 몸을 기르는데 힘쓴 이들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포칼립스 내에서도 초기부터 S급 클레스를 배정받은 플레이어는 0.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모든 능력치가 15포인트가 넘어서며, 평균 능력치가 18포인트가 넘어서야만 S급 클레스의 플레이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조건 한번 까다롭군. 그나저나 이 PP? 이것도 능력치의 종류인가?”
“그렇다.”
“다른 능력치와는 다르게 이건 1800포인트… 대체 PP가 뭐지?”
“플레이어 우성, 너에겐 그 질문을 할 권한이 없다. 튜토리얼에 포함되지 않은 질문은 포인트를 지불해야 하며, PP에 관한 설명은 총 10000 포인트를 지불해야 한다.”
“컥.”
10000포인트.
우성이 지급받은 기본 포인트의 부려 100배에 달하는 포인트였다. 1포인트가 어느 정도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 수치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10000포인트라면 결코 적은 양의 포인트는 아닐 것이다.
다른 능력치와 확연하게 구분될 만큼 큰 수치로 구분된다. 게다가 튜토리얼에서 알려주지 않는 만큼 분명 무언가 비밀이 있는 스텟일 게 분명했다.
‘알아낼 길이 마땅히 없지만.’
어떤 능력치이고, 얼마만큼의 수치가 평균인지 알 수 없으니 1800이라는 능력치가 높은지 낮은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결국 우성은 PP에 관한 궁금증을 잠시 묻어두었다. 아마도 아포칼립스를 플레이하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제 튜토리얼의 마지막 과정이 남았다.”
오더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 순간 우성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자위가 돌아온 탓인지 오더의 눈을 통해 그의 감정이 엿보인 것이다.
그는 즐기고 있었다. 단순한 가이드일 뿐인, 생각이나 감정이 없는 기계라고 생각했는데. 오더 그는 분명 스스로 사고하고 감정이라는 게 있었다. 단순한 게임 가이드는 분명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에 우성은 바짝 긴장한 채 다음 오더의 말을 기다렸다.
“우선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우우우웅-.
다시 한 번 우성의 눈앞이 흐려졌다. 이 현상이 우성의 몸이 다른 장소로 이동되는 것인지, 아니면 우성이 서 있는 장소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앞서 한 번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어지럽다는 느낌은 크게 없었다.
일 분 남짓한 꽤 긴 시간 동안 흐려졌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다. 눈을 몇 번 깜박이자 뿌옇게 흐려져 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우성은 움직이지 않고 눈을 굴려 주위를 살폈다.
지금까지 거쳐 온 황무지나 하얀 빈 공간과는 달리 우성이 있는 장소는 우거진 나무로 가득한 숲 속이었다. 푸른 나무들과 먹음직스러운 열매들로 가득한 숲 속은 어딘가 모를 쾌쾌함이 섞여 있었다.
“여긴……?”
[띠링-!]
[지금부터 배치고사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