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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6화 (6/258)

6화

질문을 던졌을 때, 우성은 생에 처음 살인을 결심했다. 타 게임을 봤을 때, PVP는 위험도가 높은 만큼 그만큼 큰 보상을 가지고 있었다. 가능한한 빠른 시일 내에 서현의 병을 낫게 해 주고 싶다. 이런 마음가짐이 우성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질문 범위 허용 안이다. 플레이어를 죽였을 때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같은 진형의 플레이어를 죽였을 때 그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의 십분지 일을 빼앗을 수 있다.”

“십분의 일이라…….”

아직까지는 포인트라는 걸 접해본 적 없는 우성으로서는 어느 정도의 득이 되는지 그다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고작 십분의 일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니.

‘아니, 이건 살인이 아니야.’

우성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며. 현실과는 달리, 플레이어에게는 다섯 번의 기회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덜덜 떨리던 우성의 몸이 조금씩이지만 차분해졌다.

“살인은 살인이다, 플레이어 우성.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습은 아포칼립스에서 썩 좋은 자세가 아니다. 살인을 받아들이고, 즐겨라. 그것이 게임의 방식이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내 속을 읽고 있었군.”

“이곳에서의 난 전지전능하다.”

투구로 가려진 오더의 얼굴이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웃음은 비웃음일 것이다. 하찮은 존재, 전지전능한 존재가 하찮은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정말로 신이라도 되는 게 아닐까? 우성은 이 게임의 존재보다도 눈앞에 있는 오더의 존재가 더 궁금해졌다.

“두 번째 경우는 적 플레이어, 즉 천사들 진형의 플레이어를 죽였을 때다.”

“천사들 진형?”

“아포칼립스에서는 천사들과 악마들의 진형이 존재한다. 플레이어 우성, 네가 선택받은 진형은 악마들의 진형이며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넌 천사들의 적이 된다.”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간들.

마치 삼 세력의 전쟁인 라그나로크를 떠오르게 만드는 설정이었다. 기왕이면 천사들 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오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천사들 진형의 플레이어는 우성 너의 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을 죽일 경우 상대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 중 오분지 일을 빼앗아 올 수 있다.”

오분지 일. 악마 진형 플레이어를 죽였을 때에 비하면 두 배나 되는 포인트였다.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던 십분지 일에 비하면 충분히 많은 양의 포인트를 빼앗아 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성도 가능한한 살인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의 특성 상, 살인을 피할 수 없는 구조라면 가능한 최소한으로 손에 피를 묻히고 많은 양의 포인트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악마 진형의 플레이어보다는 천사 진형의 플레이어를 죽이는 게 훨씬 나았다.

그 뒤로 오더는 아포칼립스의 전반적인 세계관을 늘어 놓았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악마 진형과 천사 진형의 싸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플레이어의 역할이었다. 설명을 대략 요약하자면 각 플레이어는 자신이 속한 진형을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기 플레이어의 포인트는 100포인트로 시작한다. 방금 전 설명한 포인트의 개념은 이해했겠지?”

[띠링-!]

[1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나타난 메시지 창. 눈앞에 입체 영상처럼 나타난 문구에 우성은 눈을 크게 뜨며 앞을 향해 손을 휘적거렸다.

역시나 잡히는 건 없었다. 우성은 그때서야 이게 정말 게임이구나 싶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느낌이나 공기의 스산함, 오더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게임이 아닌 현실처럼 생생해서 잠시나마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메시지 창에 나타난 100포인트라는 수치를 유심히 살피며 우성은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아포칼립스에서 포인트란 모든 것이다. 그것은 게임 내의 스텟이 될 수도 있고, 아이템을 거래하는 돈이 될 수도 있으며,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100포인트.

이 수치가 어느 정도로 많은 포인트인지 우성은 아직 알지 못했다. 티끌만큼 적은 포인트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많은 포인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정도 포인트만으로도 서현이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고 있었다.

“꿈 깨라.”

그 때, 다시 한 번 오더의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소원은 이미 알고 있다. 딸의 병을 고치고 싶다지?”

“고칠 수 있겠지?”

“이 세계에서 불가능은 없다. 불로불사도, 황제와 같은 권력도, 억만금과 같은 돈도. 포인트만 충분하다면 무엇이든 가능하지. 하지만.”

오더는 지금까지의 그답지 않게 잠시 말을 끊었다.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해 우성은 숨을 죽이고 마음을 졸였다. 혹여나 이 게임마저 불가능한 게 서현이의 병을 치료하는 일이면 어쩌나 싶어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과 죽을 사람을 살리는 일. 이 두 가지는 네가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포인트를 필요로 하다.”

“……뭐야.”

절망적일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우성은 내심 안도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무수히 많은 생각들과 감정은 오더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복잡한 생각들 중, 결국 우성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결국 불가능은 아니라는 거네?”

“좋은 정신력이다, 플레이어 우성.”

희망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성은 이제 절망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불치병이라고, 언제 죽을지 모를 나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런 하루하루는 지긋지긋했다. 서현이의 생명을 그저 연명하는 것만이 아닌, 병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이상 더 이상 우성은 포기하거나 절망할 시간이 없었다.

“대략적인 기초 설명이 끝났으니 지금부터 본격적인 튜토리얼에 들어가지.”

지잉-.

오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성의 옆으로 검은색 검이 생겨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검이었지만 우성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까지도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일들의 연속.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었다.

검정색 단색으로 만들어진 검은 아래쪽으로 날이 없는 뭉툭한 손잡이가 있었다. 우성은 손을 뻗어 조심스레 검을 잡았다.

시퍼런 날이 선 검이긴 하지만 우성은 검도 대회에 나가 상을 탄 전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우성은 검을 잡은 즉시 양 손으로 검을 들어 올려 검도 자세를 취했다.

“플레이어의 무기는 분석하에 그에게 가장 적합한 무기가 주어진다. 플레이어 우성, 넌 총 38퍼센트의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무기인 보편적 무기 ‘검’을 선택받았다. 불만이 있을 경우, 플레이어는 원하는 무기를 선택할 수 있다.”

“불만 없어.”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검도에 관심이 있었고, 꾸준히 해 왔다. 지금껏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검을 잡자 조금은 꼬리를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 때, 흐뭇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러보던 우성의 머릿속에 순간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잠깐. 설마?”

“그 생각이 정답이다, 플레이어 우성.”

웃었다.

분명히 웃었다.

우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오더,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자신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키리릭-.

까드드득-.

오더의 양 옆으로 검은 갑옷 두 개체가 제각각 팔다리를 맞추며 요란스럽게 일어났다. 갑옷 마디마디로 보이는 부분으로 텅 빈 속이 보였지만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현실성이 없다지만 이런 황당한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봇을 조립이라도 하듯 검은 갑옷은 투구와 검을 마지막으로 모든 무장을 끝냈다. 삐걱 소리를 내며 텅 빈 갑옷이 움직이는 모습은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들었다.

씨발.

욕 외에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 오더에게 검을 받았을 때, 기쁨은 잠시 곧 불안감이 들었다. 아무 이유 없이 검을 쥐어줬을 리 없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더는 필요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가이드였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데 필요한 궁금증이나 상식 외에는 그 어떤 행동이나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 내킨다고 검을 선물로 줄 가이드는 절대 아닌 것이다.

검을 사용한 만한 일. 당연하다. 싸움, 그것도 검을 휘두를 정도로 위험천만한 싸움밖에는 없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오더는 곧장 이 해괴망측한 갑옷 괴물을 만들어 보였다.

“지금부터 이것들과 싸워라.”

“……역시.”

갑옷이 혼자 삐걱거리는 모습에 당황하긴 했지만 이곳에서 싸움이란 어차피 불가피한 일이었다.

지금 이 상황은 말 그대로 튜토리얼. 아포칼립스는 어디까지나 천사와, 그리고 플레이어와의 싸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임이다. 이 튜토리얼의 목적은 바로 그 기본적인 게임의 흐름을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었다.

두근-.

두근-.

우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요동치는 가슴을 꾹 눌렀다.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다. 서현이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날카로운 검을 든 상대를 마주하니 앞서의 각오와는 상관없이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후우.”

우성은 눈을 감고 서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딸의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여린 손과 창백한 피부, 올망졸망한 눈동자. 그리고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 그것을 생각하자 무섭지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다.

“좋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들부들 떨리던 양 팔이 진정되었다. 긴장한 마음에 아직까지 호흡이 가쁘고 심장이 뛰긴 했지만 이 정도면 싸울 만 했다. 저들도 기다리기 지쳤는지 두 갑옷 괴물은 우성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우성 역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성급하게 처음부터 뛰어드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갑옷 괴물들과 우성의 사이가 조금씩 가까워져, 그 거리가 삼 미터 정도에 이르렀다.

타다닥-.

그 때, 우성의 몸이 순간적으로 갑옷 괴물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찰나의 틈과 완벽하게 거리를 계산한 돌진이었다.

두 마리의 갑옷 괴물 틈으로 달려들자 갑옷 괴물은 우성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미리 돌진을 준비하고 있던 우성과는 달리 갑옷 괴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쉬이이익-.

텅-!

우성의 검이 크게 횡으로 휘둘러졌다. 돌진과 동시에 좌우에 있는 두 마리 갑옷 괴물의 머리를 노린 공격이었다. 허를 찌른 우성의 공격은 두 마리 갑옷 거인의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오더의 흰자위 위로 쌔까만 동공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우성, 클레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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