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수업이 끝나고 교문에서 학생들이 구름처럼 쏟아져 나온다.
“야! 검방 가자 짐방!”
“아,배고프다! 밥 먹자!”
“미친놈이신가. 점심 먹고 수업 끝 났는데 배가 왜 고파?”
“그래서 넌 안 먹을 거임?”
“그건 아니죠!”
스테이지가 끝난 지 어느새 1년.
지구는 빠르게 복구되어 가고 있 다. 스테이지는 인류의 90%가 죽어 나간 대재앙이었지만 다행히도 지구 자체에 끼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 다. 스테이지의 대부분은 지구가 아 니라 정지된 시간 속 다른 차원이나 이면세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거대 고래,그러니까 우주 괴 수들의 브레스로 파괴된 건물들이 상당했지만 지구 전체에 비하면 극 히 제한적인 영역일 뿐이다.
“할머니! 할머니! 떡볶이 주세요!”
“저는 저는 팥빙수 주세요!”
“으아! 너무 배고파요!”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학교 앞에 자 리하고 있는 분식집으로 몰린다. 분 식집 할머니는 사람 좋게 웃으며 음 식들을 나눠 주었다.
“이것들아! 고등학생이라는 것들이 말투가 무슨 초등학생이야?”
“저희가 초등학교를 못 나와서 그 런가 봐요!”
“갑자기 또 그렇게 가슴 아픈 이야 기를 하는 게 어디 있니?”
시끌시끌한 분식집.
그리고 그때였다.
우웅!
아무런 전조 없이 공간이 갈라지고 마치 군인처럼 완전무장 한 대여섯 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 뭐지?”
“누구지?”
“공간 이동이라니……
학교 앞에 우글거리던 학생들이 소 란을 멈추고 갈라진 공간과 그 안에 서 나온 사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사내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내는 팔에 차 고 있던 디스플레이를 살펴 34지구 의 대기 상태가 호흡에 적합하다는 걸 알고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
“하하하! 만나서 반갑다! 나는 바 사라의 811번 함 [물푸레나무]의 돌 격대장 깐프리데다!”
“깐… 프리데?”
“바사라?”
영문을 모르겠다는 학생들의 표정 에 깐프리데의 표정에 미소가 어린 다.
하얀 피부에 금색의 머리칼. 그는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외양의 사내였 지만 솟구친 눈매 때문에 사나운 인 상을 가지고 있다.
“아아아〜 주 평화롭구만! 우리 바
사라의 이름을 들어도 비명 지르는 사람 하나 없다니. 하아〜 정말이지 이 뉴비 냄새를 맡으면 참을 수가 없다니까!”
“흐흐흐. 이런 시골 촌놈들이 저희 바사라 이름을 들어보기나 했겠습니 까?”
“뭐,이제부터는 뼈에 사무치게 알 게 되겠지만요.”
뒤에 서 있던 사내들 역시 음침하 게 웃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여전히 학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 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깐프리데가 다시 말했다.
“자자! 어린 친구들! 학업에 충실 한 모습이 매우 보기 좋군!”
고오오!!
깐프리데는 화려하게 치장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제3문명에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 애송이들아!!”
그의 말대로 34지구는 3문명에 들 어섰다. 위대한 게임 마스터(Game master), 철가면이 전수해 준 온갖 기술과 장비들이 인류에 전해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화악!
깐프리데가 검을 휘두르자 하늘이
길게 갈라지며 완전무장 한 수백 명 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뿐이 아니다.
쿵! 쿵!
휘이잉!!
드론 형태의 비행체들과 기급,심 지어 수급 기가스들마저 모습을 드 러낸다. 우주 해적,바사라 소속 물 푸레나무호의 노예 상인들!
“자, 그럼!”
그리고 그들이 학생들에게 달려든 다.
“잡아!”
대우주에서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
명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거나 식민지 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잘 벌어지지 않는다.
성계신 때문이다.
성계신은 가장 흔한 언터쳐블이라 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많지 만 창조신의 위계를 잇고 있기에 오 히려 강력한 편에 속하는 언터쳐를 이다. 존재하는 거의 모든 권능을 다 가지고 있을 정도니 말해 무엇 할까?
성계신이 멀쩡히 살아 있다면 해적 들이나 제국급 세력은 물론이고 심 지어 [연합]이나 그들의 주적이라 불리는 우주적인 존재들조차 쉽사리
해당 문명을 침탈할 수 없다.
“하지만 3문명에 들어서게 되면 이 야기가 다르지!”
어떤 문명이 외부 공격에 가장 취 약해지는 순간이 바로 그쯤이다. 문 명의 발달이 어느 선을 넘게 되어 성계신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시 기. 성계신의 보호는 벗겨졌는데 아 직 대우주에 대한 경험도,무력도, 기술도 부족한 바로 그 순간!
그런 문명을 발견하는 것은 그와 같은 노예 상인들에게 게럴트 매장 지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가슴이 벅찬 순간이다.
“자자! 영능을 익힌 놈들! 혹은 자
질을 가진 놈들 다 포획해! 반항하 는 놈들은 사지를 잘라서 백에 넣어 버리고!”
“네!!”
기운차게 소리친 해적들이 품에서 측정기를 꺼내 작동시킨다.
그리고 작업이 시작된다.
“여기 이 꼬마,적성자입니다!”
“끌고 가!”
“이 꼬마도!”
“시작이 좋구만! 끌고 가!”
“이 꼬마도 적성자입니다!”
해적들이 기세 좋게 학생들을 잡아
수갑과 목걸이를 채운다. 어쩐 일인 지 학생들이 저항을 하지 않았기에 그 모든 과정이 순조롭기 짝이 없 다.
“오! 이 녀석도 적성자야? 여기 무 슨 유명한 아카데미였나,완전 노다 지로구만!”
띠링!
깐프리데 역시 추정기를 꺼내 떡볶 이를 먹고 있던 학생을 가리켰다. 측정기가 녹색이 되었고 깐프리데는 그에게 금속으로 만들어진 구속구, 속칭 [개 목걸이]를 채웠다.
“적성자입니다!”
“적성자입니다!”
“여기 이 녀석도 적성자입니다!”
“저기 이 녀석도……
신나서 민간인들을 포획하고 있던 해적들이 외침에 점점 의문이 깃들 기 시작한다.
“아니,이것들… 죄다 적성자인데 요? 예외가 없어요. 설마 이 많은 것들이 다 [영재]급일 리가 없는데.”
“야. 측정기에 걸리는 건 영재급 말고는 [완성자]급뿐인 거 몰라? 설 마 이 꼬마들 전부가 완성자급 영능 력자라는 개소리를 하고 싶은 거 냐?”
“그럴 리는 없지만 아무리 봐도 이 상합니다. 뭔가 함정 같은 것일 수 도 있고요.”
부하의 의문에 깐프리데가 와락 인 상을 찡그렸다.
“야 이 등신들아! 누가 함정을 이 딴 식으로 파냐? 우리가 이것들 인 질 잡으면 어쩌려고? 영재급 인재들 은 어느 문명에서도 귀중한 취급인 거 몰라? 게다가 이게 함정이려면 이 근처에 매복한 병력이 있어야지! 통신도 다 두절시켰는데.”
그렇게 소리치며 근처의 여학생 둘 을 확 잡아당긴다.
그리고 그쯤에서야,깐프리데도 뭔 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하교 중이던,수백 명이 넘는 학생 들을 바라본다. 수갑과 목걸이를 차 고 한쪽에 몰려 있는 학생들과 자신 의 손에 잡혀 있는 학생들.
심지어 후덕한 체형의 분식집 주인 까지.
“이것들 눈깔이 왜 이래?”
그들의 눈에.
당연히 보여야 할 두려움이 없다.
“네? 제 눈깔이 왜요?”
“너,렌즈를 해서 그러는 거 아니 니.”
“아니,할머니! 이게 얼마나 이쁜 데 그러세요!”
느닷없이 여학생과 분식집 주인이 티격태격거린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에 깐프리데의 얼굴에 살 기가 깃든다.
“이 노인네가!!!!”
번쩍!
깐프리데가 차고 있던 팔찌에서 영 자력 소드가 솟구치고 벼락처럼 휘 둘러진다. 분식집 주인의 목을 쳐 날리려는 자비 없는 일격!
그러나.
쩡!
“…뭐라고?”
노인이 김말이를 썰고 있던 식칼로 그것을 막는다.
“경계!”
“긴장해!!”
“자세 잡아!!”
껄렁껄렁하던 해적들이 단숨에 전 투태세로 들어간다. 각자의 무기를 꺼내고 심지어 기가스들 중 몇이 분 식집으로 다가온다.
깐프리데가 삐뜰어진 얼굴로 웃는
“이야〜 이게 뭐야. 할망구,설마 은둔 고수 뭐 이런 거야? 너 믿고 이 꼬맹들이 겁 안 먹는 거고?”
“은둔… 고수? 나를 향해 하는 말 인가?”
분식집 주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글거리고 있던 식칼에서 검기가 사라진다. 그녀는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에휴. 그래 고맙구려. 병사조차 될 수 없던 나를 은둔 고수씩이나 취급 해 주다니.”
좌아악!!
그렇게 말하고 기름에 막대기를 꽂 은 돈가스를 넣어 튀기기 시작한다.
해적들은 어이가 없어서 그녀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이 노인네가 미쳤나!”
“야! 방심하지 말고 기가스 불러! 이 노인네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인 다!”
“외부 통신 차단된 거 확실하지?!” 분식집을 중심으로 포위진이 짜이 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수급 기가스 검은 곰!
그 옆에 잡혀 있던 학생 하나가 그 모습을 보며 말한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아이언 하 트구나. 혹시 내 푸른 매에 이식할 수 있을까?”
“병신아,기가스의 코어는 말 그대 로 정체성이거든. 아이언 하트를 푸 른 매에 장착하면 네 푸른 매가 죽 는 거나 다름없어.”
“역시 그렇겠지? 아,하지만 동급 이어도 아이언 하트가 5배 이상 좋 다고 하던데… 그럼 그냥 푸른 매를 판매하고 이걸 내가 타는 건?”
“이거 또라이 아냐? 여기에 사람이 몇인데 이걸 네 것처럼 이야기해?”
“우리 학교에 수급 라이더는 넷밖
에 없으니까!”
“그 넷 중에 하나가 나다,이 새끼 야. 그리고 선생님들은 어쩔 거냐?”
“아,왜 자꾸 욕질이야. 등신이.”
시시덕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에 분 식집 주인을 보며 긴장하고 있던 해 적이 인상을 찡그린다.
“이 새끼들이 분위기 파악이 안 돼?!”
퍽!!!
철퇴 같은 주먹이 시시덕거리던 고 등학생의 얼굴을 후려친다. 코뼈는 물론이고 이빨의 절반이 날아갈 정 도로 매서운 일격!
그러나.
“악!!”
비명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던 해적 이 뒤로 물러선다. 놀라서 돌아보니 금속으로 변했던 학생의 얼굴이 사 람의 것으로 돌아온다.
옆의 학생이 부러워한다.
“아,강철 오오라 너무 부럽다.”
“왜? 제작계가 취직 잘되어서?”
“그것도 그렇지만 철가면님하고 같 은 능력 있다는 거 자체로 좀 로망 아님?”
상황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자 분식 집 주인만 경계하던 해적들도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 총구를 학생들 에게 돌렸다.
두두두!!!
까가강!!!
망설임 없는 발포였지만 희생자는 없다.
스킬,[긴급 방에의 힘이다.
“경찰 안 오나 봐! 우리끼리 하 자!”
“에이,괜히 멍 때리고 있었네.”
“스킬 북! [기가스 콜]! 어? 안 되 는데?”
“에이,등신아. 수갑하고 목걸이부 터 풀어야지. 스킬 북! [해방]!”
철컥! 철컥!
학생들이 차고 있던 수갑과 개 목 걸이가 당연하다는 듯 풀려 바닥에 버려진다.
“이런 미친! 죽여!!! 상품이고 뭐고 다 죽이라고!!”
“찢어버려!!”
해적들은 물론이고 기가스들까지 공격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러 나… 이미 늦었다.
“스킬 북! [기가스 콜]! 와라!! 바 바리안!”
“와라!! 워리어!”
“버서커!”
“소드맨!!”
“매지션!”
“하하하! 하찮은 기급 놈들! 와라! 푸른 매!”
“어우! 몇 년 일찍 받았다고 잘난 척 진짜! 우리도 나중에 시험 쳐서 수급 받을 거거든?”
기가스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두 대가 아니다. 하교하던 학생들,그러 니까 수백 명의 학생들 전부가 기가 스를 불렀다.
그렇다! 전부가니
쿵쿵쿵쿵쿵!!!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백 기의
기가스들에 도로가 가득 차 버린다. 학생들은 수백 수천 번 해봤다는 듯 자연스럽게 탑승해 버렸기에 막지도 못했다.
“아니,아니 이게 뭐야……
깐프리데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 을 쩍 벌렸다.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