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올 마스터.”
팟팟팟!!
뿜어지는 기파가 송곳처럼 찌르고 들어오던 저주를 갈가리 찢어 흩어 버린다. 일한은 즉시 한 걸음 물러 서 공간을 확보하며 궁극 주문을 줄 줄이 완성했다.
“악! 아파! 너!!!”
어깨에 돋아난 나뭇가지 모양의 얼 음 조각과 다리에 들러붙은 불꽃을 훑어 털어낸 검은 아이는 그림자를 일으켜 해일처럼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번엔 한 걸음 내디뎌 공 간을 단축시킨 일한의 클레이모어가 수직으로 그어진다.
팟!
뇌강(雷剛)이 해일을 베어내고 그 너머에 있는 적의 모습을 드러낸다.
광!
주먹이 머리를 친다. 검은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려 하자 온몸 을 회전시킨 발차기가 채찍처럼 턱
을 후려쳤다. 그야말로 물이 흐르는 듯한,어떤 무술가가 봐도 감탄을 금치 못할 완벽한 연계였다.
“곡! 악!! 아파!!! 아프다고!!!”
괴성을 지르며 몸을 키운다. 검은 아이의 작은 몸이 삽시간에 거대해 지며 흉측하게 변이하기 시작한다.
쩍!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일한은 묵 묵히 검을 휘둘러 다리를 끊어낸다. 거대해지고 있던 검은 아이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며 그대로 쓰러진다.
[캬아아아!!!]
바닥에 깔린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
러낸 흑색의 늑대가 검은 아이의 팔 을 물고 그림자 안으로 끌어들인다. 검은 아이는 팔을 잘라내 그걸 떨쳐 내고 새로 팔을 만들어 일어나려 들 었지만 그것보다는 다수의 카드가 날아드는 것이 먼저였다.
파파팟!
기이잉一一一!!
잘린 다리와 팔에 박힌 카드가 그 대로 빛을 발하더니 봉인(封印)을 시작한다.
“뭐야? 너 뭐야? 어떻게 이렇게 되지?”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일한은 태연한 태도로 검을 그었 다.
검은 아이는 물론 강력하다. 그는 종말 프로젝트가 필요에 의해 만들 어낸 자아. 우주적 괴물인 종말 프 로젝트의 화신이나 다를 바 없는 존 재니까.
그러나 제약을 벗은 순간.
일한은 그저 잘생기고 똑똑하고 지 혜롭고 창의적인 인간 하나가 아니 다.
그는 우주적인 대영웅,인중신(人 中하). 올 마스터 (All master).
밀레이온 더 윈드리스였다.
치천 (治天).
하늘에 떠올랐던 일한이 마치 창을 던지듯 오른손을 휘두르자 빌딩만큼 이나 두꺼운 벼락이 차원을 찢어버 리며 나타나 검은 아이를 후려친다.
“…뭐야. 이게 뭐야!!! 병신! 병신 같은! 개같은!!”
머리통만 남은 검은 아이가 꽥꽥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런다고 달 라지는 것은 없다. 그나마 얼마 안 남은 그의 몸도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다.
“이건 말이 안 돼! 이렇게 되면 안 된다고!! 내 말 안 들려?! 이게 이 렇게 전개되면 안 된단 말이야! 이 런 거 아니거든?!”
끝까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가 받아들이거 나 말거나 상관없이.
파스스!
결국 종말 프로젝트의 아바타는 산 산이 흩어져 소멸되고 만다.
“아이고……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한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일한아! 일한아! 너 지금 어디서
지켜보고 있지?! 이게 무슨 상황이 야? 날 어떻게 살린 거야?]
검은 아이가 보던 화면을 살피니 한 소녀가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있 는 모습이 보인다.
“하하.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하는데.”
“해주면 되잖아.”
일한의 정면 공간이 일렁이더니 한 명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작고 귀여운 인상의 소녀,성계신 이다.
“오, 사라. 와줬구나.”
반갑게 인사하는 일한. 그러나 성
계신은 그 인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설명. 해주면 되잖아. 팔영분신의 제한 시간이 끝나고 본체로 가도 얼 마든지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팔영분신 (A 影分身).
그것은 무신 다크의 권능으로 만들 어진 마스터 스킬이다. 자신과 완벽 하게 동일한 힘을 가진 7개의 분신 을 만들어내는데 심지어 장비까지 똑같이 복제해 내는 능력.
팔영분신으로 만들어진 복제들은 따로따로 움직이며,스킬이 해제될 때 본체는 모든 분신의 기억을 한
번에 받아들인다.
“그래. 그런 방법도 있지.”
일한은 그 분신 중 하나이다.
원래 팔영분신은 원래 5-10분의 시간 제한을 가지고 있지만 팔영분 신을 완벽히 제어 가능한 밀레이온 은 분신의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시 간 제한을 없애 버릴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기에 일한이 수십 년 동안 지구에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 이다. 은정과 함께 자라나고,그녀와 결혼하고,대하가 자라는 동안 34지 구에서 살아올 수 있었다.
“지금 네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본 체로 돌아가면 후속 조치 정도는 밀
레이온이 충분히 해줄 거야. 녀석이 선량한 인간이라는 건 너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래. 어쩌면 다시 분신을 만들어 서 은정이에게 붙여줄 수도 있지.”
그리고 그의 [기억] 역시 가지고 있는 새로운 분신은 일한과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일 것이다.
성계신의 말이 맞다. 그가 분신을 종료하고 본체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한은 고개를 흔 들었다.
“밀레이온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 아.”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의 인생을 반 추했다.
거대한 신성을 품고 자신을 찾아왔 던 은정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지막 을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떠났던 여 행. 가쁘게 신음하던 모습. 마지막 숨결을 내뱉던 모습.
대하의 모습을 떠올린다.
우렁차게 울던 핏덩이. 바닥을 기 고 걸음마를 하던 갓난아이. 자신을 졸졸 따르며 환하게 웃던 아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비명을 지 르던 모습.
점점 염세적으로 변해가는 표정.
영민의 모습을 떠올린다.
핏물 속에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 타고난 살기를 누르기 위해 고통 받던 모습. 자신을 보던 반짝이던 시선.
“관일한으로 죽고 싶어… 함은정의 남편으로,관영민의,관대하의 아버 지로……
점점 그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 한다. 이대로 팔영분신이 종료되면 그의 기억과 경험은 밀레이온에게 돌아가 버리고 말리라.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계신 이 말한다.
“좋아해.”
“푸홋!”
“왜 웃어!”
버럭 하는 성계신의 모습에 일한은 웃음을 지우고 성계신을 마주 보았 다.
“아아,고마워. 하지만 내가 유부남 이라.”
“…끝까지 너무하네. 진짜.”
스물세 번째 고백을 파토 내며 일 한이 힘겹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부탁해.”
“넌 진짜 나쁜 새끼야.”
우우웅!
성계신의 손에 은빛의 기운이 일어 나 검의 형상으로 변한다. 분신이 종료되고 관일한이 밀레이온의 일부 가 되기 전에 그의 존재를 소멸시키 기 위해서였다.
“•••잘가.”
성계신이 검을 들어 을린다. 일한 은 눈을 감았다.
그의 기억 속의 은정이 그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쩡.
검을 휘둘렀던 성계신이 놀라 자신 의 검을 막은 물건을 보았다.
검 아래에는 커다란 열쇠가 있다.
그리고 그 열쇠는 일한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뭐야 이거?”
황당해하는 순간.
철컥!
열쇠가 돌아간다.
“…뭐야 이거?”
한편 고유세계에서 요양 중이던 밀 레이온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눈앞에는 이러한 텍스트가 떠 있었다.
-분신 칸이 잠깁니다!
-스킬,팔영분신이 칠영분신으로 다운그레 이 드됩 니 다!
“이게……
언제나 차분하던 그의 얼굴에 혼란 이 가득하다.
“이게 무슨……?”
눈을 뜬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있다. 손에는 온갖 문양이 새겨진 철구가 잡혀 있 다.
드드득!
손을 뻗어 철구를 훑어낸다. 철구 위에 새겨져 있던 수십 수백 자의 문양들이 마치 뜯기듯 딸려온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철구를 내던졌 다.
“깍?!”
철구가 삽시간에 확장되더니 여성 의 모습으로 변해 바닥에 철푸덕 주 저앉는다. 그녀,하와는 혼란스런 표 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나에게 시 선을 고정한다.
“지금,지금 뭘 하신 거죠?”
“초월의 힘을 좀 빌려 썼어. 다 복 구시켰으니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주위로 수백 자의 문자들이 벌 떼처럼 날아다닌다.
우우웅一.
눈을 감자 그것만으로 무한정하게
펼쳐지는 인식 세계. 나는 목에 걸 려 있던 목걸이를 잡아 내 주위로 날아다니던 문자 몇 개를 박아 넣었 다.
만들어진 문자는 이러하다.
〈분리 봉인〉
사실 열쇠에 없는 기능이다. 열쇠 의 진정한 힘은 [여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잠그는] 것은 그저 부가 적인 능력.
그러나 상관없다.
철컥!
늦지 않게 목적하던 설정을 잠가 버린다.
그렇다. [설정]을 잠갔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저 힘 의 방향성을 트는 것만으로 가능하 다.
초월병기 넘버 4.
해방(Liberation) 의 힘이라면.
“깨어나셨군요.”
수많은 기가스들 앞으로 한 여인이 나선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빠르 게 걸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가의 가주이자 인간 최고의 권력 자 중 하나인 민경이다.
“고생했어.”
“…이제 끝인 겁니까?”
그녀의 질문에 주변에 있는 모든 기가스들의 신경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진다.
어디 그뿐인가?
나를 시청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있는 상황.
“그래.”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이지는 이제 끝! 우리의 승리 다.”
내 대답에 민경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다른 기가스들 또한 잠시간 침묵을 지켰
그리고 잠시 후.
“하하하!!! 드디어!! 드디어H!”
“와 이게 끝나긴 끝나는구나!”
“흑. 어흑… 흐아아… 흐아아앙!!!”
“엄마. 아빠……
엄청난 굉음이 동시에 터져 나온 다. 통신망은 물론이고 기가스에서 뛰쳐나와 미친 듯 소리치고 뛰어다 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슬쩍 정의 무구를 들어 게시판을 보니 게시판도 난리가 났다.
'뭐,마무리가 남았지만.’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종
말 프로젝트의 모든 힘이 지구에서 벗겨져 나가 우주 한복판에 뭉치고 있다.
하지만 온갖 문명을 파괴하며 우주 의 [설정]을 집어삼키던 이전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힘을 인간들에게 빼앗겼 기 때문이다.
‘뭐 정확히는 거의 내가 뜯어낸 거 지.’
나는 스테이지 클리어의 압도적인 1 위.
자동 전투로 수십만 년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온 나는 이후 1만 회 클 리어 제한 패치로 주춤했지만 억제
기 스킬을 10레벨까지 올려 1회 클 리어를 20회 클리어로 뻥튀기한 보 상까지 받았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자판기에 서 구매한 자재들을 고유세계 안의 재화를 이용해 사들이기까지 했다.
이제는 위성급인 사철의 혹성을 가 득히 채우고 있는 온갖 자원(레어 메탈과 마정석 등)들은 사실 종말 프로젝트의 뼈와 살이라 해도 무방 하다.
“어?”
잠시 우주에 의식을 올려 보냈다가 정면으로 다가오는 인영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그곳에.
형이 있다.
“형.,’
형을 보았다. 형이 환하게 웃고 있 다.
“형!!!!,,
벅차오르는 감동에 앞으로 달려 나 간다. 형도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 습이 보인다.
상당한 거리였지만 언터쳐블 그 이 상의 존재인 나와 초월자인 형이다.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나는 팔을 벌렸다.
형이 달려온다!
팟!
그리고 지나쳤다.
“..<?,,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멍때린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잠 시 인식할 수가 없었다.
‘형이 나를 지나쳤다고?’
황당해 몸을 돌리는 내 눈에.
민경을 와락 껴안는 형의 모습이 보인다.
“민경아!!!”
“앗! 웃……!”
민경은 두 손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형 을 마주 안지도,떨쳐내지도 못하고 그저 얼굴을 가린 채 움찔거리고 있 다.
“흐읍… 아! 너무 좋다. 너무 보고 싶었어.”
“안 돼. 안 돼. 안 돼……
“왜 가리고 그래. 예쁜 얼굴 보여 줘. 응응?”
형의 재촉에도 민경은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지 못한다. 한참을 머뭇거 리던 민경이 거의 중얼거리듯 말을 뱉어낸다.
“안 돼……
“왜 안 돼?”
“나,나 너무… 너무 늙어 버렸는 걸……
확실히 외양에서 차이가 나긴 한 다. 수많은 영단을 집어삼킨 플레이 어의 특성상 나이보다 젊어 보이지 만,그래 봐야 30대 중후반의 외모. 심지어 실제 나이는 그 2배도 더 넘는 상황이 아닌가?
반면 형은 나이보다도 동안이라 10대 중반으로 보인다. 좀 심하게 말하면 부모 자식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투 샷.
“아냐,그래도.”
그러나 형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우리 민경이가 제일 예뻐.”
철혈의 여제,불굴의 여황. 십존 등등 온갖 화려한 이명을 가지고 있 는 여인이 온몸을 파르르 떤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땐다.
눈과 눈이 마주친다. 민경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흐윽! 흐으윽! 흐아아아앙!!!”
이제는 노인이라 할 수 있는 나이 의 민경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음 을 터뜨린다. 그리고 다시 눈이 마 주치고,잠시 후에는 입술과 입술도 마주친다.
“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난.
“형 놈 새끼……
그저 기가 차 웃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