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화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난다.
한 달,두 달,세 달,네 달.
최초 10억이었던 인류의 숫자는 7 억 8천만까지 줄어들었다.
2억 2천만의 희생자.
과거 인류의 숫자가 60억을 넘었 을 때에도 이만한 숫자의 인간이 죽
었다면 온 세상에 난리가 났을 것이 다. 사회가 무너져 법질서가 유명무 실해지고 대규모 시위나 내전이 벌 어졌겠지.
그러나 지금의 인류는 눈 하나 깜 빡하지 않는다. 아니,오히려 희망이 보인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종말의 거인을 살해하며 생기는 피해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 기 때문이다.
“미쳤네. 초월자 10만 마리라…… 작고 귀여운 외모의 소녀,성계신 은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지구에서 죽는
초월자의 숫자가 대우주 전체에서 죽는 초월자의 95%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대량으로 찍 어내 원격으로 조종하는 가짜라 해 도 초월자가 도축장의 짐승처럼 죽 어나가는 상황이라니?
6개월, 그러니까 반년이 지났다.
인류의 숫자는 여전히 7억 8천만. 사상자의 숫자는 ‘고작’ 100만 명 안쪽으로 유지되었다.
반면 킬 카운트는 30만을 넘어선 다.
플레이어의 대(對) 초월자 전투가 완전히 안정화되었다. 무엇보다 리 젠 장소가 이제 완전히 고정되었다
는 점이 플레이어들의 전투에 어마 어마한 어드밴티지로 작동하고 있 다.
-너! 자꾸 간섭하고 있다! 내 캐릭 터의 등장 위치를 강제하는 걸 멈춰 라!
“응. 안 돼〜 내가 직접 잡아 죽이 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지는 다 맘대로 했으면서 어따 대고 항의 야?”
20레벨 하급 스테이지가 시작될 즈음,어이없게도 다른 지구의 성계 신이 34지구의 이면세계를 대결전 의 장소로 활용하는 일이 생겼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는 성계신으
로서 그 후폭풍을 34지구의 인류와 분리하기 위해 고생해야 했는데 그 사이 종말 프로젝트가 대하를 암살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쪽 지구’에 가 있던 대하의 형 이 돌아온 것은 나름 반길 일이었지 만 그렇다 하더라도 재앙 그 자체가 될 변수를 품고 있는 대하의 죽음에 댈 정도는 아니었다. 항상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하던 그녀조차 심장이 철렁했을 정도의 사건.
지만 놀라워. 그냥 디카르마가 깨어나 멀리 있는 신성까지 회수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뜻밖에도 대하는 스스로 신
성을 획득해 디카르마에게 주도권 싸움을 걸었다.
심지어 아직 천 년도 못 산 꼬마 가 수십만 년이 넘게 살아온 디카르 마를 밀어붙이고 있다!
“기특하다 기특해. 계속 날 놀라게 만드네.”
그렇게 말하며 플레이어들을 내려 다본다.
쿵!
차원이 찢어지며 종말의 거인이 모 습을 드러낸다.
녀석은 등장과 동시에 사방에 가득 한 플레이어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땅을 박차 뛰어올랐다. 일단 이 장 소를 피하고 보자는 움직임!
그러나.
좌르륵!!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영력의 사슬들이 뛰어올랐던 종말의 거인을 붙잡는다.
성계신에 의해 리젠 위치가 고정되 자 플레이어들은 온갖 준비를 다 한 장소를 전장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 다.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새긴 후 100만 명의 플레이어들이 자신 을 진의 부품으로 삼아 종말의 거인 에게 강력한 압박과 제약을 거는 궁 극 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포격이 시작된다.
쿠쿠쿵!!! 과과과쾅!!!!
각각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씩 일 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은 포격용 기가스들이 코어의 힘과 각자의 영 력을 가득히 담아 포격을 날린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일격이기에 한 번 날리고 나면 반나절은 꼬박 쉬어야 할 정도.
하지만 그렇게 포격을 날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기가스의 수는 수백 만 기가 넘는다.
쿠과쾅! 광!
종말의 거인은 어떻게든 포격에서 벗어나려 포효했지만 합동 마법진에 의해 억압받는 그의 힘은 극도로 제 한되어 이를 회피하거나 튕겨내지 못한다.
그저 막아낼 수 있을 뿐이지만 그 렇게 소모전으로 가면 돌아가며 쉬 는 적들의 포격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1시간, 2시간,3시 간.
쉴 새 없이 때려 부어대는 포격에 종말의 거인을 감싸고 있던 회색 기 운이 사라지는 순간.
멀찍이에서 자신의 몸보다도 훨씬
큰 저격 총을 장착하고 있던 민경의 눈이 빛난다.
“[뜨거운 열기가 너의 영혼을 불태 운다.]”
그녀가 세종대왕의 어빌리티,〈훈 민정음〉을 발동시키며 방아쇠를 당 기자 무기라기보다는 건축물에 가까 운 크기의 화기가 요란스러운 굉음 과 함께 탄환을 쏘아낸다.
투앙!
쏘아지는 순간 탄환은 종말의 거인 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관통하기 에는 힘이 모자랐지만 상관없다.
쩌저저저적!!!
종말의 거인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 미터가 꽁꽁 얼어버린다. 냉기가 터 져 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안 에 있는 모든 [열기]가 한 점으로 집중되었을 뿐이다.
푸확!
무지막지한 열기의 집중을 견디지 못한 종말의 거인의 머리가 탄화된 다. 잠시 아무런 움직임 없이 서 있 는 거인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 들.
이윽고 거대한 몸이 굉음과 함께 쓰러진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전투 예정 시간은 4시간 후 입니다! 아직 여유가 있지만 인원 교대는 신속하게 부탁드립니다!”
“정비조! 기체들 상태 확인해!”
박수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 게 움직인다. 안정적인 퇴치였고 이 제는 사상자조차 잘 발생하지 않는 상황.
그러나 종말 프로젝트라고 마냥 당 하기만 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20레벨 중급 스테이지가 1년쯤 진 행되었을 때.
과아앙!!!
무지막지한 폭발과 함께 결계가 파 괴되고 그와 엮여 있던 모든 플레이 어가 즉사한다. 심지어 그러고도 힘 이 남아 주변에 있던 포격 전문 기 가스들까지 뒤덮는다.
“크악!!!”
“진형! 진형을 새로 짜!”
“이런 미친!!”
언제나처럼 종말의 거인을 살해하 고 있던 기가스들이 박살 난 대지에 기어 다니고 있다.
“다른 쪽에 연락해! 아직 종말의 거인을 죽이지 말라고……
“이번에는 우리가 마지막이었어 요!”
찌이익!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비명을 배경 삼아 차원이 찢어지고 종말의 거인 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모습은… 지금까지와 달 탔다.
회색의 거인은 마치 종양이 가득 들어찬 살덩어리처럼,바람을 한껏 불어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이미 녀석을 제약하던 단체 마법진 은 파괴된 지 오래.
부풀어 오르던 종말의 거인은 그대
로 폭발했고-
번쩍!
눈부신 빛과 함께 모든 것이 파괴 된다.
“맙,소사.”
먼 거리 탓에 무사할 수 있었던 민경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저 멀리에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 고 있다.
“종말의 거인을… 폭탄으로 쓴다 고?”
전투 능력을 모두 버리고 초월의 힘을 파괴력에만 집중하자 그 위력 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단
한 방에 결계를 구성하던 플레이어 100만 명이 몰살당하고 두 방에 포 격 기가스 수백만이 쓸려 나갔다.
그야말로 파멸적인 결과!
게다가 이렇게 전열이 무너진 상태 에서 또다시 공격이 들어온다면…….
“대기조를 불러와! 단체 마법진을 다시 발동해야 해!”
“여유 병력을 끌어와! 다른 팀들은 상황이 어떻지?!”
민경은 황급히 사람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최악이다. 종말의 거인들이 자폭한 것은 그녀 가 담당하는 지역만이 아니었기 때
문이다.
그리고 종말의 거인들이 [자폭]을 하자… 등장과 동시에 [사망]한 종 말의 거인이 즉시 리젠된다. 현 인 류가 감당할 수 없는 사이클이 형성 된 것이다.
찌익!
공간을 찢으며 등장하는 종말의 거 인.
한껏 부풀어 있는 녀석의 모습에 진형을 새로 짜고 있던 플레이어들 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멈춰,움직이지 마라!]”
〈훈민정음〉과 [정언]의 언령이 더
해진 탄환이 종말의 거인을 후려친 다.
방어를 뚫지 못해 타격을 줄 수는 없지만 언령의 힘은 잠시간 시간을 끌어주었다.
“처음의 전투를 기억해라! 물러서 서 포격을 가해! 날아오기 전에 터 뜨려야 해!!”
그렇게 소리친 민경은 즉시 모든 영력을 쏟아부어 포격을 가하기 시 작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쏟아지 는 포격!
그러나 단체 마법진에 억제된 상황 에서도 몇 시간은 포격을 맞아야 방 어가 뚫리던 종말의 거인이다. 자폭
병으로 변하며 방어력이 떨어졌다 해도 잠시 때리는 것만으로 파괴하 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 돼.”
“끝장……
모두가 절망하는 그 순간.
팟!
한 소년이 종말의 거인 앞에 모습 을 드러낸다.
“어?”
“뭐야?”
“맨몸! 거인 앞에 맨몸의 소년이!”
“아니 잠깐! 저 사람은……
모두가 기겁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민경은 그냥 멍하니 그의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운 소년이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오밀조 밀한 이목구비. 남자보다는 차라리 미녀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그는 한 자루의 검을 들고 폭발하려 하는 거인 앞에 서 있다.
민경은 그를 알고 있다.
추억 속의 모습과 똑같다. 어렸을 적의 그녀가 자신의 위치,의무,맹 세 모두를 잃어버릴 것을 각오하고 사랑했던 소년.
“영민아……
사실 그녀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벌써 1년도 전에 등장했는데 고유세 계 최대 세력의 우두머리인 그녀가 그 소식을 모를 리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추억과 똑같은 그의 모습 앞에 도 저히 나설 수가 없었다.
‘나,너무 늙어버렸는걸……
한탄하는 순간 소년의 검이 하늘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모습에 민경은 그의 모 습이 그녀가 기억하던 것과 좀 다르 다는 것을 알았다.
천진난만하던 표정과 환한 웃음은 어디에도 없다.
예전과 똑같이 웃고 있지만 그에게 서 흐르는 퇴폐적인 분위기는 예전 의 그와 전혀 다르다.
쩌억!!
그리고 순간.
차원이 갈라진다.
-끄아아악!!!
갈기갈기 찢긴 종말의 거인이 당장 이라도 터질 듯 빛나던 모습 그대로 허수공간으로 날아가 버린다. 종합 전투력을 가지고 있던 원래의 형태 라면 어떻게든 벗어났겠지만 오직
폭발하기 위한 자폭병 형태에서는 그럴 수 없다.
“아.”
그 순간 민경과 영민의 눈이 마주 친다.
기가스에 탑승해 있음에도 민경은 그가 자신을 정확히 직시한다는 사 실을 알았다. 그리고 잠시 후.
팟!
돌아선 영민의 모습이 사라졌다.
“으아! 사, 살았다!”
“저 사람이 철가면 님의 형이라면 서? 개멋있다.”
“엄청 섹시하다! 으아아 살았어!
살았다고!”
“떠들 틈 없어! 이 틈에 재정비!”
소란스러워지는 전장.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있는 민경은 조용히 눈물 을 흘렸다.
한편.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 영민은 새로 운 종말의 거인을 베었다.
“…알 것 같아.”
영민은 검을 휘둘렀다. 공간이 갈 라진다. 그리고 그 틈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그는 수천 킬로미터도 우 습게 이동했다.
사실 차원을 이동해 모험을 겪으며
그는 이미 [벽]에 도달해 있는 상태 였다. 심지어 깨달음도 어느 정도 얻은 상황.
그에게 부족한 것은 그저 업(業)뿐 이었고.
가짜나 다름없다 해도 초월지경인 적을 베어 죽이는 경험은 그에게 상 상을 초월하는 살업(殺業)을 부여하 고 있었다.
고오오오!!!
또다시 공간을 넘어 새로운 종말의 거인을 벤다.
또다시 공간을 넘어 새로운 종말의 거인을 벤다.
자폭병이 되어버린 종말의 거인은 영민의 단 일검도 버티지 못했다. 종말의 거인의 형태를 바꾸느라 종 말 프로젝트의 간섭력이 거의 소모 되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지도 못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손에 죽어 나가는 거인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 로 늘어만 간다.
고오오!
고오오오!!!
그의 몸에서 새까만 기운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죽인다는 천살(天殺)의 힘.
“알겠어.”
밴다. 적을 밴다
“알겠다고!!!”
벤다. 운명을 벤다.
난폭하게 일렁이던 기운이 점점 정 련되기 시작한다.
하루,이틀,사흘,나흘.
한 달,두 달,세 달,네 달.
그의 영혼이 변해간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진다. 사슬처럼 그를 묶고 있던 운명의 흐 름이 끊어진다. 영혼이 변하자 그의 육신 역시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도 약한다.
좌악!!!
깔끔한 일격에 잘려 나간 종말의 거인이 바닥에 쏟아진다. 그리고 그 순간,검을 뒤덮고 있는 흑색의 기 운은 타오르는 흑염이 아니라 극도 로 안정된 어떠한 물질처럼 보였다.
천살강기 (天殺剛氣).
모든 것을 죽이고 마침내 스스로도 죽이는 저주받은 힘이.
스스로의 운명을 초월하는 순간이 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