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탁.
허공이 갈라지며 건장한 체격의 사 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탁.
그리고 그 옆에 귀여운 외모의 소 녀가 내려선다.
“같이 내려서다니. 너도 스테이지 를 진행한 건가?”
“으아! 쉬러 온 지구에서 이놈의 공포 특급을 몇 달이나 해야 해! 오 랜만에 사람을 보니 동민이 녀석이 다 반갑네!”
“진행했나 보군.”
사내,동민은 자신이 장비하고 있 는 장비들을 확인했다.
노블레스 중의 노블레스인 드래곤 의 고향이라 불리는 드래고니아에서 지급받은 무장으로,그중에는 심지 어 초월병기까지 있다.
다만 그것들을 스테이지에서 사용 하지는 못했다. 스테이지라는 특수 한 공간이 외부 장비를 용납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넌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 던 거야?”
“나도 지금 온 거다.”
동민의 말에 귀여운 외모의 소녀, 보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다른 타임라인을 가진 공간 이었구나. 뭐,그런 분위기라 차분하 게 실괴면서 진행한 거긴 하지만… 아니,그런데 여긴 어디야? 우리 분 명 한국에 내려서지 않았어?”
“한국이다.”
“그게 무슨. 한국에 이런 지형이 어디 있어?”
보람은 황당해하며 주변을 살폈다.
쏴아아!
철썩!
파도가 친다. 바다에서나 들을 법 한 소리와 광경이었지만 문제는 이 곳이 동해도,서해도,남해도 아니라 는 점이다.
기이잉!
보람이 끼고 있던 디바이스를 작동 시키자 세계지도가 펼쳐진다.
그들이 있는 곳은.
경기도 오산이다.
“…아니,왜 오산에 바다가 있어?”
그것도 서쪽에 있는 바다가 아니라 남쪽에 있는 바다다. 저 멀리 수평 선까지 보이는 걸 보니 그 아래쪽 상황이 어떨지 덜컥 겁이 날 정도 다.
“이 정도면 평택은 물론이고… 충 청남도가 다 날아간 거 아닌가? 설 마 표면세계도 이런 건 아니겠지?”
“표면세계 상황은 밖에서 보고 들 어왔잖아. 이면세계만의 일이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뭔 일이 있던 거야… 이 이면세계인가 뭔가 에 관련된 문제인 거 같은데.”
보람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때였다.
-스테이지 (Stage)가 진행 중입니다.
-레벨 20. 중급(中級).
-종말의 거인을 처치하십시오.
“…아니,잠깐만. 나 20레벨 하급 하고 안 싸웠는데. 동민아,너는?”
“나도 19레벨 최상까지만 했다.”
“뭔데 스킵이야. 게다가 이제 시작 도 아니고 이미 진행 중인 걸 보니 20레벨은 현실에서 하는 모양……
쿠구구구궁!!!
그때 폭음이 울린다. 아주 멀리에 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동민과 보람 모두 그것을 느꼈다.
“경복궁!”
“으악! 설마 20랩 몬스터가 이가로 쳐들어간 거야?! 서둘러!”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보람의 등 뒤로 빛의 날개가 떠오른다.
그러나 막 날아오르려는 보람의 발 목을 동민이 잡았다.
“깍?! 무슨 짓이야?!”
“날아갈 틈 없다.”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배경이 변한 다. 정확히는 그들이 공간을 넘어서
단번에 경복궁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경복궁에 도달한 그 들은 보았다.
종말의 거인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여인의 모습을.
쿠구궁!!!
폭음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던 종말 의 거인이 세 발짝 물러선다.
그리고 여인은 총알처럼 뒤로 튕겨 져 나간다.
광! 쾅! 좌악!
바닥에 두 번 튕겼다가 하늘로 날 아올라 커다란 날개를 펼쳐 감속한 다.
“흐윽… 하악… 아프다,진짜.”
선애는 부러진 갈비뼈,고깃덩어리 가 되었던 오른팔이 복구되는 것을 느끼며 헛웃음을 지었다.
“다 늙어서 주책이지. 콜록!”
사실 선애가 이곳에 나와야 할 이 유는 없었다. 고유세계에서 그녀의 등급은 고작 일반 시민일 뿐이니까. 특별한 권리가 없는 대신 특별한 의 무 또한 없다. 대하는 평온한 삶이 라는 항상 꿈꾸면서도 기대하지 않 았던 선애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 어떤 상황에도 그녀를 재촉하거나 활용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는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친구 를 만들고,반려동물을 돌보고 떠나 보냈다.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바 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커피숍을 운 영했다.
그래 그렇게.
그녀는 천천히 늙어갔다.
선애를 끊임없이 충동하던 [니케] 의 인자는 평온에 짓눌려 사라져 버 렸다. 덕택에 선애는 니케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녀는 그 힘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19레벨 스테이지가 시작하고 고래 같이 생긴 마수들이 고유세계를 습 격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운영하던 키즈 카페에 찾아 왔던 아이들 태반이 죽었다.
“그냥 늙어 죽겠다잖아.”
고오오오오----!!
당연한 말이지만 19레벨 스테이지 가 끝나고도 자판기가 소환되었다.
선애는 거기에서.
대환단 500개를 먹었다.
“왜! 왜 그냥 날 놔두질 않아!!!” 쾅!!!!
총알처럼 날아가 종말의 마수와 충 돌한다. 앞으로 달려들던 종말의 마 수가 밀려난다.
물론 그 대신 선애의 몸은 그야말 로 짓뭉개진다.
다루는 힘의 크기만 따지면 선애의 힘은 결코 종말의 마수에 뒤지지 않 았지만 다루는 힘의 격(格)이 차이 난다. 초월의 힘을 다루는 종말의 거인은 결코 선애가 감당할 만한 적 이 아니다.
쿠앙!
다시 얻어맞은 선애가 경복궁 안쪽 으로 튕겨 들어가고,그 뒤를 종말
의 거인이 뒤따라 들어간다.
이미 긴급 명령을 작동,거대한 함 정이나 다름없어진 경복궁에는 사람 한 명 없다.
과과광!!!
광화문으로 들어서는 종말의 거인 을 향해 무차별 폭격이 쏟아진다. 그뿐이 아니다.
과쾅!!!
땅이 터져 나가며 무지막지한 위력 의 폭발과 파편이 쏟아진다. 그뿐이 아니다.
위이잉一一一!!
비잉!!!
경복궁 중앙으로부터 입자포가 쏘 아진다. 준비되어 있던 수백 수천 장의 부적이 동시에 타오른다. 여기 저기 늘어져 있던 제물로부터 저주 가 쏟아진다. 그야말로 과학,마법, 주술,흑마법의 총집합!
그러나 그 순간.
-우어어어어---!!!
거인의 포효와 함께 날아들던 모든 공격이 박살 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개중 포효를 뚫은 공격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종말의 거인을 둘러 싼
회색의 막에 가로막힌다.
콰직과적!
쩡!
경복궁에 걸려 있는 수십 겹의 결 계가 박살 나고 건물이,성벽이 금 가고 무너진다.
아직 경복궁 전체를 뒤덮고 있는 [일방통행]이 유지되고 있지만 광화 문을 통해 적이 들어온 이상 소용없 는 이야기다.
키잉!
그리고 그런 위기 상황.
경복궁에 봉인되어 있는 최후의 수 호자들이 눈을 뜬다.
-누가 우리를 깨우는가!
-맹약이 나를 부르는구나!
경회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이 무기,흑(黑)과 백(白)이 눈을 뜬다.
이무기.
용이 되기 위해 수행을 쌓는 존재. 영수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그 신비로운 생물들은 두 눈을 떠 영단 에 들어 차 있는 웅혼한 신통력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주먹을 휘두르는 종말의 거인을.
퍼억! 광!
-끄억?!
-깩?!
폭음과 함께 경회지 위로 올라왔던 두 이무기가 엉망진창으로 건물을 부수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나마 일격에 죽지 않은 것만 해 도 천운이다.
잠들어 있는 동안 최고조에 이른 신통력이 아니었다면 단 일격에 그 들의 몸이 터져 나갔을 것이다.
-이,이,이게 뭐야?! 괴물이야! 형! 도망쳐야 해!
-으아! 백아! 저거 초월자 아니냐? 난데없이 이게 무… 으악! 허리뼈가
부러졌어! 악!
-배가 터진 거 같아… 으으..
대마법사에 의해 통제된 영지(靈 벤)에서 태어난 형제 뱀은 잠들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 차원이 다른 광 경에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기었다.
그들은 이가의 수호신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그 역할에 걸 맞은 위엄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 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들의 레벨 은 15나 되었으니까!
얼마 전의 지구였다면 누구도 고개 를 쳐들 수 없었을 정도의 경지다. 인류 최강의 전사라 해도 감히 그들
에게 대항할 수 없었겠지.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일반 병사도 기가스에 타면 15레
벨이 넘는 상황이 되어버린 34지구. 말하자면.
두 이무기는 미쳐 버린 파워 인를 레의 희생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어어어어一!!!
-으앙! 도망가야 해!
-저게 뭐야! 무서워!
두 이무기가 본성에 따라 바닥을
기며 적에게서 달아났다. 물론 종말 의 거인은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두 꼬리를 잡아채기 위해 벼락처럼 내뻗은 손!
푹! 과득!
그러나 그 손은 꼬리를 잡지 못한 다.
“후,다행히 기습이 잘 먹혔군.”
“여! 뱀 아저씨들,괜찮아요?”
극저온의 냉기를 뿜어내는 금속 창 이 종말의 거인의 머리에 박혀 있 다. 그리고 금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입고 있고 있는 소녀가 종말의 거인 의 그림자를 태워 버리고 있다.
-뱀이라니! 그런 모욕적인!
-잠깐 형! 우리 목숨을 구해준 분 들한테 왜 그래!
-그렇긴 하지만 뱀이라잖아!
떠드는 이무기들의 모습을 보며 동 민은 초월병기,[멧 스페셜]의 상태 를 살폈다. 다행히 멀쩡하다.
‘진이 다 빠지는군.’
온갖 전투를 다 경험해 온 그였지 만 그럼에도 초월경의 적을 죽여보 는 건 처음이다.
“와,아무리 그래도 지구에 오자마 자 초월자를 죽이게 될지는 몰랐어.”
변신이 풀리자 금빛 갑주가 사라지
고 보람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다.
사실 운이 좋았다.
보람도 동민도 초월경의 벽을 넘어 서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종말의 거인을 죽이기는커녕 대적하기도 어 려워야 할 상황.
그러나 그들에게는 초월병기가 있 었다.
드래고니안의 용족들이 선물로 준 물건이다.
‘노블레스는 노블레스라는 건가. 선물로 초월병기를 주다니.’
물론 넘버링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저급품이지만 초월병기는 초월병기 다. 동급의 초월자가 싸울 때 한쪽 만 들면 10:1까지 가능하다는 초월 병기!
원래 종말의 거인과 동민의 전력은 프로 격투기 선수와 싸움박질 좀 하 는 초등학생 수준으로 차이난다. 백 번을 싸우든 천 번을 싸우든 이길 수 없고,정면으로 붙으면 단 한 대 도 유효타를 낼 수 없는 수준.
그러나 초등학생의 손에 아주 날카 로운 칼이 들린다면 어떨까? 심지어 그 칼이 바위도 자르는 명검이라면?
기습만 잘하면 충분히 상대를 격살 할 수 있다.
“안녕.”
“어? 아! 아까 저 괴물을 막고 있 던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
경복궁의 잔해를 헤치고 모습을 드 러낸 선애를 향해 보람이 인사한다. 선애가 웃었다.
“오랜만이야,동민아.”
“응? 아는 사람이야?”
보람이 동민을 돌아보았다. 동민도 상대를 보았다.
단아한 인상의 여인.
나이를 유추하자면 대략 중년으로 보였지만 전해지는 분위기에 그 외 모보다 훨씬 많은 나이의 소유자라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외모가 왠지 낯익다.
‘내가 저런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선애 가 웃었다.
“너,되게 멀리 나갔다 온 모양이 구나.”
어색하면서도 힘 빠지는 웃음.
동민의 표정이 굳는다.
“너… 설마 선애냐?”
동민과 선애는 사실 동기라 할 수 있다. 둘 모두 흑마법사 집단,로맨 서의 실험체들이었으니까. 그리 친 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얼굴이나
아는 사이.
그들은 반란을 일으킨 동민이 로맨 서를 해체시켜 버릴 때 헤어졌었다 가 클래스메이트로 다시 만났었다. 절친이 아니더라도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는 되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아니… 이건… 대체. 너,무슨 일 을 겪은 거냐?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회포를 풀 시간은 없었다.
쿵!
저 멀리에서 공간이 찢어지며 종말
의 거인이 내려선다.
그 모습을 본 보람이 얼굴을 찌푸 린다.
“저게 뭐야. 계속 나오는 건가요?”
“그래.”
“얼마나요?”
“지금은 20레벨 중급 스테이지니 까 다섯 씩. 생존자 수가 10억이니 총 50억.”
대우주를 여행하고 제국을 경험하 고 노블레스의 심처,드래고니안에 서 수행해 대우주의 넓음을 체감하
고 온 두 전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20레벨 초월자 50억???
“내,내가 아는 지구가 아닌 거 같 은데. 잘못 온 거 같은데.”
그들이 기막혀하거나 말거나.
종말의 거인이 접근하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