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그러니 너의 이름은.”
점점 사라져 가며 그가 말했다.
“디카르마(De karma)다.”
어두워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멍하 니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게… 무슨 뜻이지?’
나는 지금껏 [관리자]가 영락해 기
계신이 되었고,그 기계신이 무신 다크에게 치명상을 입어 지구에 떨 어진 뒤 어머니와 만나 내가 태어났 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 이 광경이 뜻하는 바 는 다르다.
나는 디카르마가 했던 말을 떠올렸 다.
-하하하! 찌꺼기라. 그래! 확실히 찌꺼기긴 해. 그때 넌 자신의 오만 과 죄악을 그대로 절단해 내던져 버 렸으니까!
조롱을 위한 그 말이 스스로에게 적용되는 상황이다.
크로노스가 스스로의 죄와 오만을 분리해 냈듯,[관리자] 역시 창조신 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분리해 낸 것이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배경이 떠오른 다.
사람으로 가득한 명동 한가운데 사 내 한 명이 쓰러져 있다. 하체는 어 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가슴에 는 머리통만 한 크기의 주먹 자국이 새겨져 있는 상황.
그는 울고 있다.
고통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모든 일을 망친 무신에 대한 분노 때문도 아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의 영혼을 잘라냈다. 긴 시간 그의 신기 속에서 잠들었고,그리하여 그 의 [찌꺼기]가 살해당하는 순간 정 신을 차린 것이니 그 찌꺼기의 목표 따위 뭐가 중요하겠는가?
이제 그는 완전히 순수한 존재.
그러나… 깨어난 그는 그 모든 게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큭큭큭… 하하하하하!”
인간이나 다름없는 육신에서 눈물 이 쏟아진다.
그는 더 이상 [관리자]라는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보와 문명 의 신]이라는 위대한 신위는 산산이 흩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형제나 다 름없던 아수라가 죽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방치,아니,사실 상 승인했다.
“하하하……
여전히 위대한 신성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버림받은 자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가기 위해 뭐 든 했지만 아버지는 그의 존재를 잊 었다. 세계 그 자체인 그가 정말로 잊을 리는 없으니 더 이상 신경 쓰 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정확하리라.
“저기… 괜찮아요?”
쓰러져 있는 그에게 한 소녀가 다 가온다.
수많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그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 세계 멸망을 대비해 인간들 사이에 심어져 있는 한 송이의 꽃.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아니야!!”
파앙니
배경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다. 나 는 어느새 내가 내면세계로 돌아왔 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앞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디카르마가 서 있다.
“내가 가짜라고? 내가… 내가 고작 버려진 찌꺼기라고?”
오오오!
오오오오오!!!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내면세계
전체에 거센 기류가 휘몰아친다.
디카르마가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거짓말이야!”
나는 그를 마주보며 말했다.
“그럼 왜 디카르마지?”
디 카르마(De karma).
불교용어다. 해석하자면 업고(業 苦). 어떤 고난을 받게 될 원인인 업,혹은 그 업으로 말미암아 받는 괴로움…….
사실 기계신의 이름으로는 조금 특 이한 종류이기는 했다.
“나는,나는 운명을 거스르는 자이 기 때문이다!”
“가져다 붙이지 말고. 그런 이유의 이름이면 적어도 그 이름을 붙였을 때의 기억이 있을 거 아냐?”
내 말에 디카르마의 얼굴이 창백해 졌다. 여태껏 어른처럼 나를 내려다 보았던 표정에 감정이 실린다.
“네… 놈!!”
디카르마가 이를 갈며 달려든다.
좌악!
그러나 가까워졌던 그와 나의 거리 가 순식간에 멀찍이 떨어진다. 어느 새 내 옆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명월이 서 있다.
“엄청난 존재감이구려. 이곳은 내
게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인데도… 그저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 어지 러을 정도요.”
좌악!!
다시 달려들던 디카르마가 멀찍이 밀려난다.
명월이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시간을 끌 수 있을 뿐이오.”
“아까는 저 녀석이 나랑 연결되어 있어서 잘되었다고 했잖아요?”
내 말에 명월이 슬쩍 고갯짓했다.
시청 창에 밖의 상황이 보인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정신 차리세
요. 아버지!]
“뭔지 모르겠지만 약해졌다! 지금 이야! 이렇게 된 이상 끝내자!”
“통합 스킬 가동……
한 걸음 물러선 기간테스가 몸을 웅크린다.
“올 마스터.”
우우응!!!
기간테스의 숫자가 단숨에 7기로 변한다. 어떤 기체는 천신검을,어떤 기체는 활을,어떤 기체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또 어떤 기체는 마신갑 으로 주먹을 뒤덮고 맨손으로 돌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모든 것을 거듭하는 거울이여! 한 계를 뛰어넘어 비춰라! 거듭되는 세 계의 17월!!”
웅--!
7기의 기간테스가 마치 복사되듯 반대편에도 나타난다.
환상이 아니었다.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심지어 원본과 동일한 힘을 가진 존재들!
총 14기의 기간테스가 하와를 덮 친다.
지금껏 내내 유리한 싸움을 이어나 가던 하와였지만… 한순간에 전력이
14배로 뛰어버리니 버틸 재간이 없 다.
“보셨소? 이게 내가 원래 하려 했 던 거요. 잠시 시간을 버는 정도! 저렇게 미친 듯이 쳐들어와서 덤비 는 건 해결하기가… 콕!”
좌악!!
지팡이가 휘둘러지고 달려들던 디 카르마가 다시 멀어진다.
“후… 하……
명월이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의 몸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노승의 모습이 보인다.
뼈와 가죽만 남은.
시체.
“…명월,지금 저건.”
“고작 인간이 업의 흐름을 보고, 또 간섭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좌악!
그가 다시 한번 디카르마를 밀어낸 다. 명월의 모습이 더욱 크게 얼렁 인다.
‘이대로는 오래 못 가.’
원래대로라면 내가 압도적으로 유 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내 내면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카르마가 품고 있는 신 성은 그 모든 걸 의미 없게 만든다.
똥개가 제집에서는 먹고 들어간다 지만 그래 봐야 호랑이를 이길 수는 없는 법.
물론 방법은 있다.
디카르마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이 겨 신성을 차지하면 된다.
‘제길. 하지만.’
나는 제국의 황제가 된 뒤 신성을 신급 기가스 라에 봉인하고 지구로
돌아왔다. 신성에 취했을 때 나의 자 아가 오염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두려움.
그것은 어쩌면 죽음이나 다름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건달 양아치였소.”
'••네?”
느닷없는 말에 고개를 들자 다시 한번 디카르마를 밀어낸 명월이 말 했다.
“세상에 불만이 많은 망종이었지. 고아였고,잘생기지도 못했고,머리 도 똑똑하지 못했소. 그저 성질이 더럽고 덩치만 커서 사람 때리고 다
니는 게 일이었지요.”
지금 그의 모습을 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과거다. 벌레 한 마리도 못 죽 일 것 같은,언제나 자비를 행하며 살았을 것 같은 푸근한 인상의 그였 다.
“공안검사 녀석이 괜히 나를 선택 한 게 아니오. 뒷배도 없고 매일 사 고나 치던 사고뭉치였으니 희생양으 로 삼기 좋았겠지.”
그리고 그 뒤의 일은 나도 언뜻 엿봤다. 비인간적인 고문과 억지로 씌워진 누명. 그리고 40년간의 감옥 생활.
“나는 상상도 못 했소. 나는 내가
죽으면 죽었지 고분고분 살 수 없는 인간인 줄 알았으니. 하지만… 40년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어 버렸소. 어디 그뿐이겠소? 감빵 생 활을 하면서도 종교에 코웃음을 치 고 살았는데도 교도소를 나와서는 이렇게 스님이 되었지. 심지어 수많 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기까지 한 다오. 내가 어머니 배 속부터 스님 이었을거라고 말하는 사람마저 있 지.”
그가 나를 돌아본다. 푸근한 인상 의 노승 뒤에 바짝 마른 시체의 모 습이 비친다.
그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게 마련이오.”
나는 앞을 보았다. 디카르마가 다 가오고 있다.
디카르마를 계속 밀어내던 명월의 정의 무구가 마침내 힘을 다하고 사 라진다. 명월의 몸은 이제 숫제 깜 빡거리기 시작한다.
명월이 말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 오.”
팟!
달려온 디카르마가 거칠게 내 어깨 를 잡아챔다.
마치 세탁기 안에 들어간 것 같다. 온 세상이 팽팽 돌았다. 어디가 위 인지 어디가 아래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혼란.
'아까 녀석이 문을 두들길 때 이렇 게 섞여 버렸다면 얼마 버티지도 못 하고 잡아먹혔겠지.’
그러나 디카르마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그 사실을 나 역시 알고 있는 지금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말 프로젝트 가 진행하는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의 신성과 신앙을 쌓 았다.
‘그리고 그 신성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선택지]가 존재한다.
먼저 전쟁의 신에 도전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싸워오며, 또한 전쟁성좌 워로드와 전쟁의 신 아레스를 타고 싸우면서 나는 충분 할 정도의 전쟁 속성을 손에 넣었 다.
무엇보다 전쟁의 신은 강력한 신성
이다.
만약 전쟁의 신성을 얻을 수만 있 다면 디카르마와 정면 대결도 해봄 직 하다. 전쟁은 문명의 발생과 동 시에 기나긴 시간 동안 존재해 왔 고,그 속성의 특성상 전신은 투신 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돼.’
그러나 모자라다. 전쟁 속성은 충 분히 쌓았지만 전쟁의 신이 되기에 신성의 양이 턱없이 모자라다.
무엇보다 [경쟁자]가 느껴진다.
‘전쟁의 신이 되길 원하는 후보 가… 셋인가.’
대우주 전체가 범위라 해도 상당한 숫자다. 내가 전쟁의 신이 되길 원 한다면 그들 모두를 압도하지 않으 면 안 되겠지.
말이 좋아 전쟁이지 개인 기량과 장비빨로 싸움을 이끌어 온 내가 이 기기는 힘든 상대들이다.
‘다음은 강철의 신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속성력이 정령계 에 묶여 있는 상황이라 어려웠다.
‘그리고 제작의 신.’
역시나 어렵다. 이쪽은 경쟁자가 훨씬 많다.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 서 우글거리는 10명도 넘는 존재들
이 느껴진다.
내 제작 능력은 제법 자신을 가질 수준에 이르렀지만 감히 신의 경지 를 논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헛된 것은 아니다.’
제작자로서의 역량이,생체력 수련 자로서의 역량이,정령사로서의 역 량이 초월의 벽을 두드린다.
전신위광.
아레스,그 사고뭉치 녀석이 멋대 로 건드린 그 기예가 초월의 힘이 되어 나를 밀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선택했다.
쿵!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디카르 마와 마주 선다.
녀석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무슨……
그리고 말한다.
“게임의 신?,,
누군가 내 칭호를 볼 수 있다면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없음]
[20레벨]
[게임의 신 관대하]
“하.”
디카르마가 짧게 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이내.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 머저리 같은 놈! 거 대 개념인 기계문명을 그딴 장난감 같은 속성으로 비비려고 하다니!”
파직! 파직H 파지직!!
디카르마의 몸에서부터 회색의 빛 이 뿜어져 세상을 침식하기 시작한 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한 걸음 내디몄다.
후웅!
바람이 분다. 나를 중심으로 뿜어진 파동은 온 세상을 뒤덮고 녀석이 침 식했던 영역 역시 가볍게 침범했다.
“…어?”
그 압도적인 광경에 디카르마가 당 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왜 그렇게 놀라?”
“이,무슨.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어떻게……?”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황하던 녀
석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푸확!
녀석의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뿜어 진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영역]을 침범 하지 못한다.
나는 말했다.
“맞는 소리야. 어떻게 게임의 신이 기계신에 비비겠어? 하위 속성이나 다름없는데.”
그렇다. 틀림없는 소리다.
한 400년 전에는 그랬단 말이다.
일루견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무의 신과 마법의 신이 힘을 합쳐 만든
게임이다. 그 게임은 수많은 플레이 어를 만들었고,심지어 대우주 전체 를 멸망에서 구해낸 인중신 밀레이 온이라는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었 다. 어디 그뿐인가? 마도황녀 제니 카,무황 레이그란츠 등등 그 결과 물은 온 우주를 떨쳐 울렸다.
대전쟁 와중,그리고 이후.
온갖 세력들,장소들에서 비슷한 것들이 만들어졌다. 노블레스들의 후원하에 다이내믹 아일랜드 온라인 이라는 게 만들어져 운영 중이라는 정보와,신선들이 만들어낸 투신전 (關神戰)이라는 게임이 비밀리에 돌 아가고 있다는 정보가 머릿속에 인
식된다.
리전도 만들고,우주 해적 바사라에 서도 만들고,봉인된 고대신들도,정 체불명의 외신들조차 만들고 있다.
심지어,지금 스테이지를 진행 중 인 종말 프로젝트조차 게임의 형태 이지 않은가?
“너,뒤처졌구나?”
나는 웃었다.
그래,그렇다.
온 우주에…….
게임 시스템이 넘쳐나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