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우주의 시간축(時間軸)이 뒤로 밀 리고 있었다……!!
쩌엉!
하와가 오른손을 휘둘러 천신검을 후려친다. 그리고 곧장 벼락처럼 기 간테스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복부 를 후려쳐 버렸다.
“뭐,뭐야? 갑자기 웬 로봇들이야?”
“모두 피해!!”
시간축이 점점 뒤로 간다. 기간테 스와 하와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빛 살과도 같아 한 합에 0.1 초도 안 걸 리는데 그들이 충돌할 때마다 밀리 는 시간은 거의 1초에 가까웠기 때 문이다.
시간이 뒤로 당겨지니 다른 사람들 에게는 느닷없이 나타난 기가스들이 싸우는 모습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내가 하와에 타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된다는 점은 좋지만 조금 더 밀리면 내가 그들에게 경고한 게시 물마저 사라질 것이다.
“이게 무슨… 이러다 아예 과거로
가버리는 거 아냐?”
기가 찬다.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 인가. 농담이 아니라 그들이 이렇게 계속 싸워준다면 온 우주의 시간을 다 돌려서 죽은 지구인들을 다 살리 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
‘하지만 그렇게 오래 싸우지는 않 겠지.’
그들 한 명 한 명이 일격에 지구 를 파괴하는 게 가능한 우주적인 존 재들이다. 하와만 해도 태양계 전체 를 뭉개 버릴 만한 힘과 권능을 지 닌 존재였는데 그녀가 기가스가 되 고,또 그 기가스에 기계신 디카르 마가 타버렸으니 그 힘이 어떠하겠
는가?
만일 그들이 물리적인 힘으로 싸웠 다면 검과 주먹이 충돌하는 순간 그 충격파만으로 지구는 먼지로 변해 버렸겠지.
그러나 지금. 그들의 파괴 행위는 고작(?) 대륙 수준으로 제한되고 있 다.
그들의 힘이 만들어내는 후폭풍이 물리력 따위가 아니라 더 높은 영역 에서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시간축이 뒤로 밀리고 있는 이 미쳐 버린 현상이 바로 그 증거 였다.
“아니,가만.”
그런데 그러다 보니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이렇게 뒤로 가다가… 내 가 후안에게 당해서 쓰러지기 전까 지 밀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만일 그렇게 된다면 모순이 생긴 다. 내가 녀석에게 찔려 죽지 않았 다면 디카르마는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천신검과 하와의 주먹이 다시 충돌 하려는 순간.
- 그만.
한 인영(人影)이 그 사이에 껴들었 다.
뚝
마치 마술처럼 휘둘러지던 검과 주 먹이 멈춘다. 수백 미터나 되는 덩 치 사이에 끼어있음에도 그 모습은 전혀 위태롭지 않다.
그는 노인이다.
새하얀 머리칼과 수염을 가진 훤칠 한 신장의 그는 몸에 착 달라붙는 턱시도를 입고 있다. 패션쇼나 잡지 에서나 볼 법한 외향.
그의 손에는 근사한 디자인의 회중 시계가 들려 있는데,그 시계의 시 침과 분침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 르게 돌고 있다.
뻗고 있던 주먹을 당긴 하와의 안 에서 디카르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이런. 목줄 묶인 개가 왔구 나.”
그러자 양복을 입은 노인이 싸늘하 게 웃는다.
“그래,집 나간 개야. 이제 보니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모양이야.”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그의 칭 호를 확인했다.
[올림포스]
[53 레벨]
[시간의 신 크로노스]
“•••뭐? 53레벨?”
어이없는 레벨에 헛웃음마저 나온 다. 10레벨의 마스터 클래스. 20레 벨의 초월자 클래스. 30레벨의 황제 클래스. 40레벨의 언터쳐블 클래스 마저 넘어서는… 최상급 신들에게서 나 볼 법한 레벨.
흔히 말하는 절대신에 근접한 존 재.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제니카가 말 한다.
“크로노스 개새끼.”
그 말에 크로노스보다 아빠가 기겁 하는 게 느껴진다.
“야! 왜 자극하고 그래? 너 죽고 싶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한 번 죽었어! 크로노스가 날 죽였다고!”
버럭 하는 제니카의 목소리에 턱시 도를 입은 노인,크로노스의 고개가 돌아간다.
“검마왕에게 당한 모양이군.”
“부캐 관리 좀 해요!”
“녀석은 부캐 같은 게 아니다. 떨 궈 버린 찌꺼기일 뿐이지.”
둘의 대화에 디카르마가 웃는다.
“아아, 그래. 크로노스,그러고 보 니 그런 일이 있었지.”
“•••닥쳐라.”
크로노스가 차갑게 경고했지만 디 카르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 올림포스 신족의 전횡이 도 를 넘어서 아버지께서 올림포스 전 체를 멸망시키실 때… 오직 너만이 그것이 그분의 [시나리오]라는 걸 눈치 챘지. 큭큭큭. 자신의 아내,자 식,혈육 전부들 모두를 버리고 혼
자서 살아남겠다고 와서 빌던 모습 이 아직도 눈에 선해.”
“닥치라는 말이 안 들리나?”
후응!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시계가 사라 지고 거대한 낫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낫을 들고 서자.
온 우주의 시간이 멈춰 선다.
키이 잉——.
우우웅一.
그의 노여움에 [시간]이 비명을 지 르고 바짝 엎드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의 존재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시간은 지금까지의 섭리대로 움직이
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디카르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빌었지. 살 수만 있다 면 뭐든 하겠다고. 내가 말해줬지. 넌 너무나 오만하고 많은 죄악을 저 질렀기에 용서받을 수가 없다고. 하 하하! 찌꺼기라. 그래! 확실히 찌꺼 기긴 해. 그때 넌 자신의 오만과 죄 악을 그대로 절단해 내던져 버렸으 니까! 꽤 대단하고 참신한 결단이었 어. 아스가르드 놈들은 아무도 살아 남지 못했는데 올림포스 신족 중에 서는 너 하나가 남았으니까.”
“..r
놀라운 사실에 입이 절로 벌어진 다. 디카르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찌꺼기가 스 스로 검을 연마해서 마왕의 자리까 지 오른 것도 대단한 일이지. 심지 어 이름도 고치지 않아 검마왕 크로 노스가 되었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도 놀랐다. 제법 난놈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크로노스의 얼굴이 차가워지다 못 해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그가 말했다.
“날 자극하고 있군. 디카르마.”
“그래. 하지만 글러 버린 것 같군. 하긴 애원해 맨 목줄인데 이렇게 끊 어버릴 수는 없겠지.”
크로노스가 디카르마를 가만히 바 라보았다.
한창 흥분한 듯 그의 과거를 누설 하던 디카르마는 단숨에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흥. 저지를 생각이 없으면 꺼져라. 지금 이 상황은 그저 결과적인 현상 일 뿐,우리는 그 어떤 흐름에도 간 섭한 적 없다. 설마 나한테 규칙을 설명할 생각은 아니겠지?”
디카르마의 말에 크로노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기간테스를 돌아보았 다.
[너희가 질 것이다. 알고 있겠지?]
[100%입니까?]
[그래. 녀석은 권능을 숨기고 있 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대화한 후 크로노스의 모습 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충돌.
나는 그 와중에도 영문을 알 수 없어 멍하니 있었다.
“뭐지? 왜 나한테 들리지?”
방금 대화는 디카르마조차 듣지 못 한 이야기 같은데도 들을 수 있었 다. 그뿐이 아니다.
기간테스와 그 머리 위에 올라가 궁극 마법을 쏟아내고 있는 제니카 사이의 [귓속말]역시 인식된다.
[야,못 이기는 모양인데?]
[하다못해 하와만 없었어도 가능성 이 있었겠지만… 부자는 죽어도 3대 는 간다는 거겠지. 틈을 봐서 빠지 자. 놈은 리전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니 연합에 보고하면 수가 있 을 거야.]
[하지만 보내줄까? 외부로 통신연 결도 안 되는 걸 보니 완전히 차단 한 모양인데.]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강기로 만들어진 번개의 창들이 허 공을 가로지른다. 강철로 만들어진 온갖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 그것 을 맞받아친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밀린다.”
모두의 이야기대로 전세가 점점 기 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대로 디카르마가 승리하 거나 혹은 둘이 도망쳐 싸움이 끝나
버린다면… 디카르마는 다시 이곳으 로 돌아와 나에게 손을 쓰겠지.
“막상 손을 어떻게 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 [나]처럼 심장이 뜯길 수도 있고.”
철컥!
열쇠를 이용해 문을 잠가보았다. 열쇠의 기능 중 하나지만 별 효과는 없어 보인다. ‘잠그는’ 능력은 꽤 대 단한 권능이지만 이 문은 이미 잠겨 있기 때문. 더 ‘세게’ 잠근다,같은 말장난이 먹힐 상황이 아니다.
똑똑!
«..<?,,
순간 디카르마가 돌아온 줄 알고 기겁했지만 여전히 그는 전투를 이 어나가고 있다.
“계시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외 시경에 눈을 댄다.
그리고 밖에 서 있는 존재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명월 스님?”
내 말에 문 앞에 서 있던 노인. 명 월이 오히려 깜짝 놀란다.
“아니… 철가면께서 나를 알고 계 셨단 말이오?”
어린아이의 손에 은행 강도가 죽는
모습을 보고 펑펑 우는 장면을 보았 다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듯했 다.
“뭐,어떻게 알고 있지요.”
“영광이구려. 당신 같은 거인(巨 人)이 저 같이 흔한 땡중을 알고 계 셨다니.”
그렇게 말하며 명월이 웃었다.
“혹시 들어가도 되겠소?”
그의 말에 나는 잠시 그의 모습을 보았다.
디카르마가 나를 속이기 위해 만든 존재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그가 전투 중이어서가 아니다. 어차피 전
투가 끝나면 얼마든지 문을 부수고 들어올 수 있는 그가 나를 속일 필 요가 없기 때문이다.
철컥.
문을 열자 그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안으로 들어온다.
“신기하구려. 누구나 조금씩 마음 의 벽을 치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 게나 명확한 문의 형상은 처음 보 오.”
“저도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은 처 음 봅니다. 대체 어떻게 오신 겁니 까?”
“업의 흐름을 타고 왔다오.”
내가 의문을 표하자 그가 내 오른 손을 가리킨다.
내 손에는 정의의 조각칼이 들려 있다.
쿠우웅!!!
그때 폭음이 울린다. 내면세계의 일은 아니었고,내가 띄워 놓은 [시 청] 창에서 난 소리다.
창을 보니 전투가 점점 격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장관이구려. 그야말로 신화적인 싸움……
그는 잠시 그 모습을 보다 나를
보며 웃었다.
“아는 존재들이오?”
“굳이 소개하자면… 친부와 양부 정도 되겠네요.”
“허? 하하하! 철가면 님께서도 참 복잡한 상황이시구려.”
그는 호탕하게 웃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나 타나 의자의 형상으로 자라난다.
‘아,그러고 보니 드루이드라고 했 던가.’
그를 따라 의자에 앉자 그가 말했 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점 죄 송스럽게 생각하오.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지. 해줘 야 할 말도 있었고.”
“수명?”
“살 만큼 살았으니 때가 온 것이지 요.”
“하지만 만년불사단(萬年不死丹)이 있잖습니까?”
“하하. 안타깝지만 전투에 그렇게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소. 그렇게 까지 해서 오래 살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허공을 본 다. 뭔가 해야 할 말을 고르는 느낌.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서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옷을 다 벗으세요.
정중하기까지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팔다리를 교차하듯 묶 어 막대기를 끼워서는 책상 사이에 걸어놓던 사내들의 모습도. 마치 통 닭구이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얼 굴에 씌워지던 수건도,부어지던 물 도,질식 상태나 다름없던 자신에게 가해지던 각목 구타까지.
타인의 심상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전해지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하 다. 아마도 이곳이 심상세계이기 때 문에 벌어지는 현상인 것 같다.
잠시 후 그가 말한다.
“나를 안다면. 혹시 내가 옥살이를 했다는 것도 알고 있소?”
“누명을 썼다던가 하는 걸로 기억 합니다.”
“그렇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에게 누명을 씌운 주체는 공안검 사였고… 나중에는 총리직까지 역임 했소. 그리고 최후에는 강철계로 넘 어가 천수를 누리고 평안히 눈을 감 았지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내가 최초 고유세계에 받았던 이들 이 어떤 이들이던가?
악인 (惡人) 이다.
악인이면서도 어느 정도 머리가 돌 아가던 자들. 권세와 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의의 요람에 들어갈 수 없 어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죽을 게 뻔 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을 받아들였기에 초창기 의 고유세계를 수월하게 끌어갈 수 있었다. 그중 태반이 충분한 교육을 받은 이들이었고,쫓겨나면 죽을 상
황이었기에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 다. 어차피 악인들이라는 생각에 다 루기도 편했고.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그것은 내가 그들의 죄악을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명월은 웃었다.
“원망한다는 말이 아니니 그런 표 정 지을 것 없소. 물론 그런 적도 있지만… 그 덕에 이런 게 가능하게 되었기도 하고.”
명월의 등 뒤로 한 그루 나무의 형상이 그려진다.
후우웅!
어떠한 흐름이 느껴진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엇이었지만,나무에 서 떨어져 내린 나뭇잎들이 그 흐름 에 내려앉자 전체적인 흐름의 형상 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건?”
“업(業)이오. 삼신이 다루던 힘이기 도 하지. 이것을 볼 수 있게 되면 서… 나는 전생(前生)을 알 수 있었 고 현생(現生)을 이해했으며 후생 (後生)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소.”
그의 말에 나는 나를 보았다.
“"•이건?”
어떠한 흐름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건 명월이 전생이라고 말하는 무 언가와 상당히 달라 보였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흐름.
나는 깨달았다.
“아,
그 거대한 흐름이.
내면세계 밖의 디카르마와 연결되 어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