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그 규모가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과연.
지니는 그렇게 했다.
뻑!!!
일주일 후,폭격을 마치고 대기 중 이던 나는 성벽 위에서 한참 싸우다 내려온 기가스에서 울린 경고음을
들었다.
정확히는 기가스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였지만 요즘 부쩍 민감해진 청 각에 걸려든 것이다.
[마크롱 씨,볼일은 고유세계로 돌 아가 보셔야 합니다.]
“하,하지만 지니 양! 나 지금 너 무 급한데. 작은 건데도 안 돼?”
[10게럴트 벌금 처리 하신다면 가 능합니다.]
“10게럴트! 으음. 10게럴트. 으으 음……!”
벌금은 고유세계의 화폐이자 우주 공용 화폐인 게럴트로 지불해야 한
다. 10게럴트라면 한화로 치면 약 20만 원 정도. 끼니를 스무 번 때울 수 있고 괜찮은 게임 타이틀 4개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볼일 한 번 보기 위해 내야 하는 것.
‘그러고 보니 대변이 5게럴트에 소 변이 10게럴트인가.’
간단히 말하면 그런 말이다. 대변 을 보려면 10만 원을 내야 하고,소 변을 보려면 20만 원을 내야 한다 는 것!
당연하지만 소변이 대변보다 벌금 이 센 것은 고유세계에서 물의 가치 가 더 높기 때문이다.
‘이게 참 가혹한 듯 아닌 듯 애매
하단 말이지.’
사람들이 시위를 하지도 못하는 게 결국 24시간에 한 번씩 전투조가 교 대하기 때문이다. 스테이지로 나서 기 전에 속을 비우고 나가서 딱 하 루만 참고 있다 복귀하면 아무 문제 없는 것!
심지어 [전투조]에 낄 정도면 일반 인도 아니고 고위 능력자들이 아니 던가? 그들에게는 24시간 볼일을 참 는 것도,10게럴트의 벌금을 내는 것도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닌 상황.
결국 그들을 강제하는 건 벌금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을 갈구는 지니 의 존재일 것이다.
“하. 그래. 우리 지니 양 말인데 두 시간 더 참지 뭐.”
[훌륭하십니다.]
“볼일 좀 참는 것 가지고 훌륭은 무슨.”
투덜거리는 플레이어.
심지어 이건 그저 지니가 진행한 알뜰살뜰한 심시티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으앙! 나 고기 먹고 싶어! 식빵 지겨워! 지니야! 아무리 그래도 30 센티 식빵 4개는 너무 많지 않아?! 다 먹고 나면 밥맛도 없어!”
“그래그래. 하루에 마셔야 할 물
할당량이 10리터라니. 내가 무슨 생 체력 수련자도 아닌데……
“생체력 수련자는 식빵 12개에 물 30리터 먹어야 하거든요?! 내가 뭔 하마도 아니고!”
사람들이 센터 시티에 항상 대기 중인 지니의 메탈 바디 앞에 모여 투덜거린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맘 같아서는 지금의 2배는 먹이고 싶습니다. 제가 극도의 자제심을 보 이고 있다는 걸 여러분은 아셔야 할 것입니다.]
“히익. 식빵 8개에 물 20리터라고?
먹다 죽는다 죽어!”
[참으세요.]
“하이고 맙소사!”
탄식하지만 결국 수긍하고 넘어가 는 사람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난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결국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아니,이건 너무하잖아!”
“살이 쪄요,살이 쪄! 탄수화물이 다이어트에 얼마나 안 좋은지 몰 라?”
“밥 좀 먹고 싶다! 빵도 드립게 맛 없는 식빵,제기랄!”
“우우!! 식고문 그만해라!! 여기가 무슨 쌍팔년도 군대도 아니고!”
꽤나 거센 저항. 심지어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다.
“쿨럭쿨럭! 악! 배가!”
“이,이런! 너 설마 스테이지산 빵 을 먹은 거야?”
“네… 엄마가 먹기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이런 바보! 거기 음식들은 플레이 어밖에 못 먹는다고 했잖아! 여기서 태어난 네가 먹으면 배 속에서 사라
진다고!”
먹은 음식이 배 속에서 사라지면 한순간 음식물이 있던 장소가 진공 상태가 되며 탈이 난다. 심지어 먹 은 지 오래 지나 영양분으로 흡수라 도 된 상태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 진다.
“쿨럭! 우웨!!”
“아이고! 얼른 병원으로!”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 한다. 저항은 점점 더 거세졌다. 심 지어 시위까지 일어날 정도.
지니는 난감해하다가 결국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취이익----!
[1〜10번 냉동고 개방 완료. 아이 스 에이지(Ice Age)를 종료합니다!]
[11 번〜20번 냉동고 개방 완료. 아 이스 에이지(Ice Age)를 종료합니다!]
[21 번〜30번 냉동고 개방 완료. 아 이스 에이지(Ice Age)를 종료합니다!]
냉동했던 플레이어들을 깨우기 시 작한 것이다.
고유세계의 사람들은 기대했다.
“휴! 다행이다 우리 인구가 거의 두 배 가깝게 늘었으니 할당량이 절 반 가까이 줄어들겠지?”
과연 줄어들었다.
하루 식빵 3개에 물 7리터로!
“아니,이게 뭐야! 고작 이만큼 줄 었다고?!”
[최대한 양보한 겁니다.]
“아니,지니 양! 이거 욕심이 끝이 없는 거 아니야?!”
황당해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황당해 봤자 급속 냉동 되었 다가 다시 깨어난 사람들만큼이나 황당하겠는가?
“나름 각오하고 냉동 인간이 되었 는데 똥 싸는 기계가 필요해 냉동을 풀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한탄한다 해도 풀려
난 사람들에게서는 사실 별다른 불 만이 없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그 들이 머물 거주지와 거주민 등록이 끝났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들은 스테이지를 겪으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 가던,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전쟁을 경험한 이들.
잔뜩 늘인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유 지하던 긴장감을 풀 수 있는 여유로 운 삶은 그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것 이다. 덕분에 하루 식빵 3개와 물 7 리터를 숙제처럼 먹어야 하는 일 따 윈 부담조차 되지 않는다.
2년이 지났다.
100개의 냉동고가 추가로 해제됐 다. 고유세계의 인원은 어느새 200 만 명에 가까워졌다.
냉동 해제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왜냐하면 고유세계로 음식물이 들어 오면,단지 한 끼 해결할 양식이 들 어왔다. 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유세계라는 [생태계]로의 편입.
데스나이트들에게서 드랍된 물병과 식빵들은 매일 교대되는 [전투조]에 의해 부지런히 운반되었고,플레이 어들에게 소화되었으며,그 모든 것 들이 고유세계의 생태계에 누적되었
다. 3문명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 는 지니에게 있어서는 소변에서 칼 륨이나 질소,인 등의 성분을 분리 하는 것 따위 일도 아니니 고유세계 의 생태계는 점점 풍부해졌다.
3년이 지났다.
실전을 바라는 이들이 많아져 [전 투조]의 숫자가 1만에서 10만으로 다시 늘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되자 드랍템의 수급량 또한 늘어났다.
4년이 지났다.
전황이 급변한다. 데스나이트 킹이 출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훨씬 일찍 등장했어야 하는 녀석들 인데 우리가 전투를 질질 끌어서 이
제야 등장한 것.
결국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 다.
센터 시티에서 대규모 장례식이 거 행되 었다.
사람들 속에서 그 모습을 살피던 내 귀로 참배객들의 말이 들린다.
“그래. 아직 우리는 종말을 살아가 고 있었지. 너무 평온해서 그만 잊 고 있었군.”
“그래도… 안심이 되는군요. 수억 명이 죽어도 슬퍼하지도 못하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5년이 지났다.
냉동고가 개방되고 사람들이 풀려 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하루가 다르게 센터 시티의 규모가 커져갔 다.
6년이 지났다.
마법사들의 도시,칠색 마탑(도시 이름이 마탑이다)이 생겨났다.
장인들의 도시인 블루 메탈이 생겨 났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축하합니다!!!”
“행복하게 살아요!”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고 있는 커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뒤 늦게 내 존재를 눈치첸 사람들이 술 렁거 린다.
“와! 철가면 님이다!”
“대하 님!!! 대하 님,저 팬이에요!”
“배재석 님하고 대하 님이 친구라 는 말을 언뜻 듣기는 했지만 그게 진짜였구나……
깜짝 놀라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 가 재석이와 악수한다.
“결혼 축하해.”
“고마워. 와줬구나?”
“당연히 와야지. 뭐 대단히 바쁜
일 있다고.”
인간 흉기나 다름없는 몸을 쫙 빠 진 양복으로 감싼 재석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어느덧 녀석의 얼굴 에서 연륜이 보인다.
“대하 안녕!”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뭐가 어째?! 아오,이 녀석은 왜 나이도 안 먹어?”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휘 휘두르는 경은의 모습에 웃는다. 웨딩드레스 를 입은 그녀의 배가 살짝 불러 있 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경은이 다른 친구들에게 인사
간 사이 재석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결혼 말이야? 어차피 10년 가까 이 사실혼 관계였는데 뭐.”
“그거 말고 자식 말이야. 가질 생 각 없다면서.”
내 말에 재석이 진지한 눈으로 나 를 바라본다.
“그래. 그럴 생각이었지. 경은이하 고 서로 합의한 바였기도 했고… 하 지만 대하야.”
불현듯 재석이 씩,하고 웃었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그래. 그거면 됐다.”
나는 녀석과 한 번 포옹했다. 그러 고는 준비된 좌석에 앉아서 결혼식 을 구경했다.
그런데 내 옆에 익숙한 얼굴이 보 인다.
“선애야?”
“…오랜만이야.”
그녀는 내 짝끙이었던 선애다. 살 구색 재킷에 A스커트를 단아한 느 낌이 나도록 코디한 그녀는 나를 보 며 살짝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살짝 놀랐다.
“하나도 안 변했네.”
이미 고유세계에서 30년이 넘는 시
간을 보냈음에도 그녀의 외모는 거 의 변하지 않았다. 지구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20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만 하겠어.”
항상 굳어 있던 예전과 다르게 꽤 여유 있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선애.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칭호를 확 인한다.
[강철계]
[17 레벨]
[만령자 이선애]
놀랍게도 그녀는 스스로를 유지하 면서도 변신했을 때의 능력을 고스 란히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고 유세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레벨.
내가 그녀를 내버려 둔 사이 그녀 는 자신의 정체성과 능력에 대해 어 느 정도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주례석에는 경은의 언니인 민경이 서 있다. 저렇게 젊은 여자가 주례를 보는 경우가 잘 없는데 그녀의 직위 가 직위인 만큼 아무도 이상하게 생
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재석과 경은은 모 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장을 나 섰다.
결혼식장 밖에는 날개를 활짝 펼친 수급 기가스,주작이 자리하고 있다.
“잘 다녀오세요!!”
“휘익!!”
“결혼 축하해요!!”
주작에 경은이 탑승한다. 재석은 멋쩍어하며 주작의 품에 안겼다. 주 작은 슬쩍 상체를 숙이나 싶더니.
광!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결혼시 축하해요!!!”
“와아아!! 주작 멋지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결혼식이 끝난다. 결혼식 하면 흔히 생각하는 어른들께 인사하고 다니거나 그런 과정은 전혀 없다. 저 둘은 저대로 날아서 자신들이 정한 신혼여행지로 떠날 것이다.
“끝났네.”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털고 일 어났다. 사방에 가득한 사람들이 흘 껏흘껏 내 모습을 홈쳐보거나 수군 거렸지만 누구도 감히 다가와서 함 부로 말을 걸거나 하지는 못했다.
고유세계 안에서 내 입지는 절대 만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느닷없는 말에 고개를 돌리자 선애 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이 말이 늘 하고 싶었어 ”
“뭘.”
나는 대충 손을 흔들고 자리를 떠 났다.
다시 시간이 지난다.
그렇게 15년째.
나는 장례식에 참여했다. 지킴이 방 (防)의 장례식이었다. 더 이상 지킴 이로서의 의무를 지고 갈 수 없다고
악을 쓰던 그가 죽고 만 것.
당연하지만 내가 그의 죽음을 기릴 이유는 없다. 나와 그가 무슨 인간 적인 교감을 나눈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장례식이라서 참여한 것도 아 니다. 고유세계에 장례식이 처음도 아니고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다만,지금 이 장례식은 지금까지 의 장례식과 좀 다른 점이 있어서 찾아왔다,
“호상이지. 잘 살다 가신 거야.”
“그놈의 스테이지 때문에 고생 많 이 했는데 그래도 돌아가실 때에는
편안하게 가셨네요.”
장례식장에 모여 있는 지킴이들이 절을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이 장례식이 시사하는 바는 꽤 크 다.
왜냐하면 그를 해친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었다.
15레벨이 넘는 강력한 능력자로, 일반인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던 그도 결국 [그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 그의 사인은.
노환(老患) 이다.
[시작이군요.]
“뭐,예전부터 걱정하던 문제긴 하 지.”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그리고 지니의 말대로.
그의 죽음은 시작일 뿐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당신의 머리 위에 2부 >